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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의 줄거리 및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 모호필름, 오퍼스픽쳐스


영화 <설국열차>가 한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감독이 만들고 한국 배우가 일부 나오고 있지만, 한국어 자막을 보아야 하는 이 낯선 영화에 관객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자는 프랑스 사람이며 배경도 현실적이지 않다. 지구 온난화를 막고자 살포한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가스를 대기권에 뿌려 지구에 빙하기가 온다는 가상의 설정. 한국에서 영화로 만들어내기에는 어딘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이야기임에도,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초등학교 6학년짜리 딸에게 영화 감상평을 물어보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이었냐고 재차 물었더니, 뜬금없이 북극곰이 나오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단다. 그러고 보니 영화 마지막 장면에 설원위에서 관객을 바라보는 북극곰이 등장했다.

이 장면에서 영(zero)의 세계와 무한(limitless)의 세계는 결국 동일하다는 사뭇 철학적인 결론을 유추해냈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한 점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우주를 형성했다는 것이 골자이다. 건물이 파괴되어야 번듯한 건물을 또 지을 수 있듯이 언제나 영과 무한의 세계는 반복되어지는 것이다.

결국 요나(고아성 분)와 흑인 아이 한 명만이 살아남고 모든 인류가 사라진 상황, 북극곰의 등장은 다시 생명이 씨앗을 뿌리기 직전을 의미하는 듯하다. 마치 15만 년 전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아담과 이브가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인류의 조상이 되었듯이 말이다. 지금 요나와 흑인 아이는 아담과 이브의 현현인 셈이라고 해야 하나.

인류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를 말해주는 영화

설국열차는 갇힌 공간이다. 이 공간은 철저히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으로 이분화되어 있다. 피지배 계층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생존하고 있기에 반란을 꿈꾸고 있다. 피지배 계층의 반란은 몇 차례 있었다. 반란이 있을 때마다 지배 계층은 더욱 악랄하게 피지배계층을 억압해 왔다.

경제학의 기본 원리는 최소 비용을 들여 최대 효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이는 지배계층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파레토라는 경제학자는 '최대 효용'이라는 개념을 경제학에 접목했고 분배를 논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인류가 그간 가장 못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분배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이 '분배'의 문제로 인류는 갈등을 빚으며 살아오고 있다. 인류가 지금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바로 분배의 문제다. 분배 문제의 해결만이 피지배 계층과 지배 계층이 공존할 수 있는 열쇠라는 뜻이다.

인류사를 통틀어 분배를 제대로 시행한 경우는 별로 없다. 그리고 바로 이 분배 문제로 인류는 갈등을 빚으며 살아오고 있다. 이것이 인류가 지금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 이유는 분배문제의 해결만이 피지배 계층과 지배계층이 공존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설국열차에서 지배계층은 바퀴벌레를 원료로 만든 단백질 튜브로 피지배계층인 꼬리 칸 승객에게 최소한의 영양분을 공급한다. 그리고 지배계층에는 없고 피지배계층에게만 있는 필요한 것을 무조건 빼앗아 간다. 그것이 피지배계층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강탈해 간다. 그리고 당연하다고 여긴다. 반항을 하면 팔을 기차 바깥에 7분 정도 노출시켜 얼린 다음 망치로 때려 잘라 버린다.

그리고 반란이 일어나 피지배계층이 꼬리 칸에서 엔진이 있는 열차 칸으로 가면서 단백질 튜브 바를 만드는 곳, 식물을 키우는 곳, 지배계층 자녀들이 교육을 받는 곳, 최음제에 취해 젊음을 불태우는 향락 공간을 보여준다. 물론 꼬리 칸 피지배 계층은 이 과정에서 대부분 죽는다. 반란의 대가가 목숨이니까.

디테일에 강하다하여 '봉테일'이란 별명을 가진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답게 설국열차는 수많은 메시지가 영화 전편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려 한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격렬한 투쟁이라는 외피 속에 무언가 다른 내용을 콘텐츠로 채우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메시지를 모두 수신하기에는 영화가 다소 어렵다.

'직선' 커티스 VS '파괴' 남궁민수가 보여주는 것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주인공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남궁민수(송강호)와 그의 딸 요나(고아성)의 도움으로 열차의 앞칸으로 전진한다.

영화 <설국열차>의 한 장면 ⓒ 모호필름


<설국열차> 속 인물을 '동선'으로 살펴보자면, 꼬리 칸의 반란 주모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직선형, 남궁민수(송강호 분)는 파괴형의 사나이다. 커티스가 꼬리 칸에서 엔진 칸을 향해 열차 내에서 무조건 일자로만 나아가려고 한다면, 남궁민수는 '열차 자체를 파괴하겠다'는 사고의 전환을 보여준다.

커티스에게 다른 길을 알려준 이가 바로 이 열차를 설계한 남궁민수다. 그는 최음제로 쓰이는 크로놀을 계속 모은다. 그리고 크로놀로 만든 폭탄을 열차 왼편에 설치하고, 아예 설국열차 밖으로 나가려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과도 같다. 결국 설국열차는 이러한 사고를 통해 파괴되었고, 그 밖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징을 통해 봉준호 감독은 직선으로만 가려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꼬집고 있다. 이는 꼭 어느 국가의 문화나 상황에만 특정한 것이 아닌 인류 모두에 해당되는 것일 테다.

즉, 직선의 세계에 빗금을 하나 더 긋는 이러한 행동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해진 틀 속에서만, 그리고 익숙한 행동패턴 만을 보이는 다람쥐에게 좌회전이라는 발상의 전환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인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통해 <설국열차>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가 싶었던 상황에서 곧 새로운 세상을 우리의 눈앞에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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