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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2년 12월 17일 오전 강남구 대포동 수서경찰서 회의실에서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 17일 오전 강남구 대포동 수서경찰서 회의실에서 국정원 직원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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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선 투표를 5일 앞둔 지난해 12월 14일, 국정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던 수서경찰서는 두 차례에 걸쳐 서울지방경찰청에 키워드 검색을 의뢰했다. 1차 73개, 2차 27개 등 총 100개의 키워드 검색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서울지방경찰청은 키워드를 4개로 축소한 뒤 디지털 증거분석작업을 벌였다.

'신속한 수사'를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키워드 검색을 100개에서 4개로 축소한 것은 축소·은폐 수사의 출발점이었다(관련기사: '경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정치경찰이 차버렸다). 이를 바탕으로 경찰은 같은 해 12월 16일 오후 11시에 "대선 관련 댓글 흔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대선을 3일 앞둔 민감한 시점에 국정원 댓글 사건에 '1차 면죄부'를 준 것이다.

1차 73개, 2차 27개 등 총 100개의 키워드 검색 요청

12일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경찰의 감찰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3일 임아무개 서울지방경찰청 분석관이 유아무개 수서경찰서 사이버팀장에게 "분석방향을 잡을 수 있게 키워드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유 팀장은 김아무개 지능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청에서 키워드를 달라고 한다, 최대한 많은 키워드를 보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백아무개 경사 등 지능팀 경찰관들에게 "인터넷을 검색해 선거 관련 키워드를 많이 뽑아 보라"고 지시했다. 이후 백 경사는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등의 단어로 뉴스를 검색한 뒤 이슈가 될 만한 단어를 추렸다. 그런 과정을 거쳐 1차 73개의 키워드가 선정됐다.

'강금실 검찰개혁 공약 군대 군복무 굿판 김대중 김두관 김어준 납세 네거티브 노동자 노무현 단일화 대선 명품안경 명품의자 문성근 문재인 문재인캠프 민정수석 민주통합당 바른손 박근혜 반값등록 병역 부림사건 부산 부산저축은행 부정취업 불법대선자금 사람사는 세상 사형제 폐지 새누리당 선거 선거사무실 손학규 아이패드 안철수 여론조작 연설 열린우리당 원전공약 유시민 윤여준 이은미 이정희 인권변호사 전과 정권교체 정당 종교평화법 종북 종북세력 증오범죄처벌법 지지율 진선미 집중유세 찬조연설 참여정부 테마주 통합진보당 특전사 평화대장정 한겨레 한대련 한명숙 호남 호남유세 호화저택 후보 흑색선전 힐링캠프'

2012년 12월 15일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 대첩' 유세에서 가수 이은미씨와 손잡고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2012년 12월 15일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광화문 대첩' 유세에서 가수 이은미씨와 손잡고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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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안경, 명품의자, 부산저축은행, 부정취업, 호화저택 등은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쏟아진 의혹들과 직결된 키워드들이다. 이는 당시 민주통합당이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가 인터넷에서 문재인 후보를 비방했다고 고발한 내용에 대체로 충실한 키워드 선정이었다.

1차 73개의 키워드가 선정된 이후 유 팀장은 추가로 "키워드를 최대한 많이 선정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신아무개 사이버팀 경장이 민주통합당의 고발장을 참고해 27개(2차)의 키워드를 추가로 선정했다.

'대선토론 협력 열쇠 사람 주체사상 슬로건 동계올림픽 DMZ 나꼼수 26년 수임료 법무법인 서민 김정은 김일성 호구 사랑채 취업특혜 기득권 특권 다운계약서 부산저축은행 나라사랑 가식적 위선적 호화주택 네이버'

명품안경, 명품의자, 부산저축은행, 부정취업, 호화저택 등 문재인 후보에게 부정적인 키워드 검색을 보완하기 위해 수임료, 법무법인, 사랑채, 취업특혜, 호화주택 등을 추가로 선정한 것이다. 수서경찰서는 이날 오후 4시 23분과 오후 8시 28분 두 차례에 걸쳐 서울지방경찰청에 공문을 보내 총 100개의 키워드 검색을 공식 요청했다.

키워드 검색 4개로 축소... "100개 다 하면 1월로 넘어가"

그런데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분석팀은 12월 14일 저녁부터 '문재인, 박근혜, 민주통합당, 새누리당' 4개의 단어와 김아무개씨의 노트북에서 발견된 아이디·닉네임 40개 등 총 44개의 키워드로 검색·분석하고 있었다. 특히 서울지방경찰청은 수서경찰서에서 총 100개의 키워드 검색을 공식 요청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날(12월 15일) 열린 회의에서는 기존의 키워드 검색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12월 15일 오후 8시 이아무개 수사과장과 김아무개 수사2계장, 장아무개 사이버범죄수사대장, 김아무개 사이버분석팀장, 4명의 분석관이 참여하는 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서는 '문재인, 박근혜, 민주통합당, 새누리당' 등 4개의 단어와 아이디·닉네임 40개를 결합해 키워드 검색을 진행한다는 방침을 최종 결정했다. '아이디·닉네임으로 작성한 게시글 확인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의 감찰 결과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 참석한 분석관들은 "(대선과) 관련없는 단어가 대부분이다, (100개의 키워드 검색을) 다하면 1월로 넘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임아무개 분석관은 "핵심단어 4개와 아이디·닉네임 40개로 검색해야 게시글, 댓글 확인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임 분석관은 이날 오전 9시 50분께 열린 회의에서도 "키워드 선정을 제가 수서서에 요청했지만 너무 많아서 4개로 줄이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100개의 키워드 검색을 진행할 경우 분석이 늦어질 수 있다는 분석관들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정보기술(IT) 전문가인 김인성 한양대 교수는 "수서서 수사팀이 당초 요청한 대로 100개의 키워드를 넣어 분석해도 하루 이틀이면 검색을 끝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관련기사: 경찰, '국정원 수사 축소' 해명도 거짓).

이후 서울지방경찰청은 총 100개의 키워드 검색을 요청한 수서경찰서 공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수사과장과 수사2계장, 사이버범죄수사대장, 사이버분석팀장이 별도로 모여 논의한 끝에 다시 공문을 받는 것으로 결정났다. 결국 서울지방경찰청의 요구에 따라 수서경찰서는 12월 16일 오후 3시 06분에 '4개의 키워드 검색'을 요청하는 공문을 다시 보냈다.

권은희 과장 "서울청 지시와 재촉 없었다면 키워드 축소 없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2일 오후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정청래 간사가 추가 공개한 경찰청 CCTV 영상을 보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2일 오후 본회의에 앞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정원 국정조사특위 정청래 간사가 추가 공개한 경찰청 CCTV 영상을 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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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은 키워드 검색 축소가 수사팀과 협의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경찰의 감찰에서 "우리가 공문으로 요청한 100개의 키워드를 서울청에서 4개로 줄이라고 한 것은 협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12월 16일 서울청으로부터 축소 요구를 받고 김아무개 수사2계장에게 전화했더니 '수서서에서 의뢰한 대로 하면 결과가 1월에 나올지, 2월에 나올지 모른다'고 하면서 '4개로 축소해라'는 취지로 재촉해 다투었다. 서울청에서 축소하라는 지시와 재촉을 하지 않았다면 축소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협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특히 이러한 키워드 검색 축소 과정에서 당시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그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키워드 검색을 축소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뒤 "분석은 서울청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결과만 받아보면 된다"고 말했다.

또한 김아무개 수사2계장은 경찰의 감찰에서 "김아무개씨가 컴퓨터를 임의제출할 때 (분석) 범위를 '2012년 10월 이후 박근혜, 문재인에 대한 지지, 반대글을 올렸는지 여부'로 제한했기 때문에 이를 초과하면 위법수집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경찰의 감찰 결과에서도 경찰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에 소극적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는 고스란히 축소·은폐·부실수사로 이어졌다.

한 일선 경찰관은 "국정원 사건에서도 숨어 있는 댓글을 낱낱이 찾으려면 키워드 100개는 고사하고 1000개로 검색해도 모자랐다"(관련기사: 김용판에게 보내는 서울경찰청 소속 일선 경찰의 편지)"라고 통탄했다. 하지만 경찰은 키워드 100개조차도 "너무 많다"며 '경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을 스스로 차버리는 중대한 오점을 남겼다. 


태그:#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서울경찰청, #수서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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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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