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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되던 해 임종국은 거리에서 일본군 패잔병을 만났다. 그는 임종국에게 물었다. 지금 어떤 생각이냐고. 임종국은 대답했다.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어 기쁘다고, 일본군 패잔병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한참을 노려보더니 "20년 후에 만나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든 영상을 통해 알게 된 일화의 한 대목이다. 패잔병의 말처럼 20년 후 일본은 박정희 정부와 한일협정 체결에 성공했다. 이에 충격을 받은 임종국은 평생을 친일과 맞서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 정리했고, 이것이 밑거름되어 2008년 친일인명사전이 편찬되었다.

<조선을 떠나며> 책표지
 <조선을 떠나며> 책표지
ⓒ 역사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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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인 8·15를 떠올리면 해방, 감격, 환희 등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막 풀려난 이들이 두 팔을 추어올리며 만세 부르는 사진, 한여름 뙤약볕도 마다치 않고 일장기 개조한 태극기 휘두르며 만세 부르던 군중들이 땀에 흥건히 젖어있는 모습….

조선을 떠나기 싫었던 일본인들

하지만 패망이라는 충격 속에서 한반도를 떠나야 했던 일본인의 모습에 관심을 둔 적은 없었다. 무관심 때문이어서 그랬을까. 이에 대한 연구 자료를 접한 적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패전 후 한반도를 떠나야 했던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린 <조선을 떠나며>를 접하면서 받은 충격이 컸다. 패전을 맞은 그들이 한반도를 떠나며 남긴 얼룩이 광복 68년을 보낸 지금까지도 질기게 남아있으니까.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임종국을 노려보던 일본 패잔병처럼 일본의 패망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일본인들도 많았다. 지배자로서 누리던 특권이 송두리째 붕괴한 상황에서 조선에서 태어나 자랐고, 일가도 친척도 재산도 모두 조선에 있었던 일본인들이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연고조차 변변찮은 일본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어떻게든 조선에 남고 싶었다.

식민지 지배의 상층에 있었던 일본인 관료, 갑부 등 고급 정보를 독점한 이들이 일찌감치 재산을 처분해서 일본으로 밀반출했지만,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없어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며 살아왔던 일본인들 중에는 자신들이 '고향' 같은 조선을 떠나 낯선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들은 자신들이 뿌리내리고 살아왔던 땅이 조선인의 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당시 조선에 있었던 공중목욕탕은 대부분 조선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일본인은 조선인과 한 욕조에 몸을 담글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들은 조선 땅에 살면서 조선인의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패전 후 돌변한 조선인의 모습을 통해서 비로소 조선인의 존재감을 느끼면서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인들을 향한 분노와 적개심을 쌓아나갔다.

패전이란 엄청난 현실 앞에 맞닥트린 일본인들은 조선에 남은 재산을 처분해서 본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해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했다. 현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갔고, 가재도구를 시장에 내다 팔았고, 토지와 건물 등을 처분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결과 시장에 물자는 넘쳐났지만, 한 몫을 노린 투기꾼들의 사재기가 겹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물가는 치솟았다. 해방의 기쁨에 들떠 있던 조선인들도 치솟는 물가고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직도 어른거리는 그들의 그림자

해방 직후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까지 미 군정과 구 조선총독부 고관들이 결탁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과거 조선 땅에서 갖가지 악행을 저질렀던 전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시오바라 도키사부로와 재무국장 미즈타 나오마사, 전 조선은행 부총재 기미지마 이치로 등이 조선에 머물고 있다는 기사가 1948년 6월 8일 <경향신문>에 났다. 한편 신문기자회는 구 총독부 내조설외에도 제주도 4·3 사건 당시 200여 명의 일본인이 토벌대로 투입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과거 이 땅에서 악행을 저질렀던 일제의 수괴들이 이번에는 미 군정과 결탁해서 건국을 앞둔 조선에 또 다른 해악을 끼치려는 것이라는 의심이 확산되었다. 이에 대해 미 군정은 일본인 구 관리들을 활용하거나 제주도 사건 진압에 이용한 적이 없고, 이런 소문은 모두 공산주의자들의 '선전술에 기초한 낭설'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신문 기사는 정말 근거 없이 작성되었던 것일까. 신문기자회가 제기했던 의혹은 정말 낭설에 불과했을까. 미 군정의 발표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분명한 건 해방 후 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친일 세력이 되살아났고, 독립운동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어갔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가 뭘까. 식민지 통치의 핵심을 이루었던 귀환 일본인들과 이에 동조했던 친일 조선인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해방 후에도 지속해서 유지되었다. 미 군정은 이들 네트워크 차단에 소극적이었고, 이승만 정부는 반민특위를 무력화시켰다.

해방 후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일제 식민지 지배자로 군림했던 일본인들의 움직임을 제대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역사 논픽션<조선을 떠나며>는 광복 68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꼭 한 번 읽어 볼만한 책이다. 집단적 지위권 행사 운운하는 일본 정부의 우려스런 모습이 일시적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덧붙이는 글 | <조선을 떠나며>/ 이연식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12/14,800원



조선을 떠나며 -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

이연식 지음, 역사비평사(2012)


태그:#광복 68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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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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