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거창군 고제면은 홍로라는 사과 품종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사과들이 푸른 빛을 띠지만 8월 말 정도 되면 아주 '새빨간' 사과가 된다. 뒤쪽에 보이는 산은 삼봉산이다.
▲ 홍로 거창군 고제면은 홍로라는 사과 품종으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사과들이 푸른 빛을 띠지만 8월 말 정도 되면 아주 '새빨간' 사과가 된다. 뒤쪽에 보이는 산은 삼봉산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곽 작가, 그딴 식으로 할라믄 다시는 여그 오지마라. 그라케 일하믄 여러사람 욕본데이..."

날카로운 이모님의 음성이 내 머릿속을 한바퀴 휘돌아 나갔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거지?

'아, 맞다. 1층 화장실 청소 때문에 그러시는구나!'

솔로 변기를 구석구석 세척해야 했지만 필자는 귀찮다는 이유로 물만 들입다 뿌려댔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화장실 청소가 말끔히 되지 않았고, 그 일이 이모님의 심기를 건드렸던 모양이다. '뺑끼' 좀 썼다가 제대로 혼쭐이 났던 셈이다.

8월 말이 되면 이렇게 사과는 새빨갛게 된다. 이 사진은 작년에 촬영했다.
▲ 사과 8월 말이 되면 이렇게 사과는 새빨갛게 된다. 이 사진은 작년에 촬영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거창귀농학교

필자가 혼쭐이 났던 곳은 거창귀농학교였다. 거창귀농학교는 경남 거창군 고제면에 있는 곳인데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설립되었다. 고제면은 거창 읍내에서 북쪽으로 약 20Km 정도 떨어져있는데 백두대간인 삼봉산과 덕유산이 자리잡고 있어 말그대로 '깡촌'인 곳이다. 이곳의 농업형태도 논농사보다는 고랭지 작물 위주로 경작된다.

특히 이곳은 홍로라고 불리는 사과 산지로 유명한데 이 홍로라는 품종은 잘 영글면 <백설공주>에 나오는 그 '새빨간' 사과처럼 아주 먹음직스럽고, 빛깔도 무척 고운 품종이다. 이런 환경적 특성 때문에 거창귀농학교는 사과나 오미자 같은 특산 작물에 대한 현장실습 교육을 많이 실시한다고 한다. 

거창귀농학교? 귀농학교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욕을 먹었다? 그렇다면 필자에게 귀농을 준비하냐고 물으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느긋하게 사과 농사나 지으면서 말이다... 아니다. 필자는 귀농할 의사가 없다. 나이가 들면 백두대간 아래에 터를 잡고 누렁이들을 기르며 살고 싶기는 하지만 농사를 지을 생각은 없다. 그리고 농사는 아무나 짓나? 필자처럼 게으른 사람은 남의 집 소작도 못 부칠지 모른다.

고제면은 전형적인 산촌 마을의 모습을 보이는 곳이다.
▲ 거창군 고제면 고제면은 전형적인 산촌 마을의 모습을 보이는 곳이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자전거여행하다 자원 활동했다!

필자는 2012년 여름에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행했다. 강원도를 거쳐 경상북도를 종단한 후 경남 거창에 진입했는데 문득 한대수 선생이 떠올랐다. '물 좀 주소'를 부른 가수 한대수 말고 거창 민예총을 이끈 연극인 한대수 선생이 떠올랐던 것이다. 거창 한대수 선생은 민속무(民俗舞)로 유명한 분인데 그중에서도 살풀이와 관련된 춤사위가 일품인 연극인이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7년 만에 다시 뵈었는데 한대수 선생은 변한게 거의 없으셨다. 오히려 7년 전보다 훨씬 더 건강해보이셨다.

"백두대간 여행한다고? 그라지말고 아시아1인극제나 와서 도와라."

그렇게 하여 필자는 백두대간 자전거여행을 잠시 멈추고 <거창아시아1인극제>와 인연을 맺게 됐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식으로 자전거여행을 하다가 연극제 자원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 삼봉산이면 백두대간인데 그곳에서 숨 좀 돌려보지 뭐!'

# <거창아시아1인극제>

거창아시아1인극제? 혹시 수승대라는 명승지에서 개최되는 <거창국제연극제>의 다른 이름인가? 아니다.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거창국제연극제>와 별개의 행사다. 둘은 단지 '거창'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합치되는 면이 없다. 더구나 수승대는 위천면에 소재해 있고, 아시아1인극제가 열렸던 거창귀농학교는 고제면에 소재해 있다. 서로 지역적으로도 거리가 있는 셈이다.

<아시아1인극제>는 민속극의 대가인 심우성 선생의 주관으로 1988년 서울에서 1회 대회가 개최됐다. 1회 대회 이후부터는 아시아 각국을 돌며 공연이 계속되었다. 남사당패처럼 유랑을 하며 공연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 1996년, 충남 공주에 안착하게 된다. 공주민속박물관이 들어섰는데 거기에 둥지를 튼 것이다. 그래서 명칭에 '공주'가 들어가 <공주아시아1인극제>가 된다. 하지만 아시아1인극제의 '유랑'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7년에 거창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거창귀농학교의 다른 이름은 삼봉산문화예술학교인데 그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아시아1인극제는 거창에서 개최됐다. 그래서 명칭도 <거창아시아1인극제>로 변경되었다.

한 여름밤,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공연은 신명이 넘쳤다.
▲ 2013년 <거창아시아1인극제>: 한 여름밤,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공연은 신명이 넘쳤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1인극의 영어 명칭은 monodrama다. 즉, 무대에 오른 한 명의 배우가 무대 밖의 객관적 실체들을 내적 자아에 투영시켜 각양각색의 극중 인물상들을 풀어내듯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배우 1인이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다는 말인데 연극 <버지니아모놀로그>가 좋은 예이다.

하지만 아시아1인극제에서는 서구 연극계의 'monodrama'의 정의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 왔다. 유언극과 함께 무언극도 공연됐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모노드라마가 공연되는가 하면, 민간신앙에서나 볼 수 있는 무속무도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판소리의 거장 박동진 명창의 <진국명산>이 울려 퍼졌고, 공옥진 여사의 <심청전>이 무대에서 조용히 날갯짓을 펼쳤었다. 그 외에도 내로라하는 아시아 각국의 수많은 공연자들이 아시아1인극제의 무대를 수놓았다.

하지만 그건 옛날 말이 되어버렸다. 올해 8월 2일부터 3일까지 진행된 2013년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아시아'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국내파'들로만 꾸려졌다. 더욱이 초청된 국내파들은 공연료도 받지 않고 재능기부를 해주었다.

우리문화연구소 이원하 소장이 아이들 앞에서 죽방울놀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원하 소장은 충남 공주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놀이문화에 대한 연구와 보존에 힘쓰고 있다. 한편 죽방울놀이의 기원은 보부상단의 볼거리 문화에서 기원한다고 전해진다. 장터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보부상들이 
'이벤트'를 벌이다 발전한 것이 죽방울놀이라고 한다.
▲ 죽방울놀이 우리문화연구소 이원하 소장이 아이들 앞에서 죽방울놀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원하 소장은 충남 공주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놀이문화에 대한 연구와 보존에 힘쓰고 있다. 한편 죽방울놀이의 기원은 보부상단의 볼거리 문화에서 기원한다고 전해진다. 장터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보부상들이 '이벤트'를 벌이다 발전한 것이 죽방울놀이라고 한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다시 서야 할 아시아1인극제'

그렇다. 돈이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여름에 수박을 쪼개먹던 큰 평상 4개를 붙여서 무대를 만들 정도였을까. 또한 손·발이 턱없이 부족하여 필자와 같은 고급인력(?)이 화장실 청소를 하며 자원활동을 해야 했다. 필자는 계획했던 '여름 정기투어'를 잠시 접어두기까지 했다. 그러다 뒷마무리까지 마친 후, 8월 6일에서야 서울로 귀가할 수 있었다.

사실 2013년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칫 했으면 아시아1인극제의 명맥이 끊길 뻔했다. 그런 상황을 반영하듯 이번 대회의 부제는 '다시 서야할 아시아1인극제'였다. 그렇지만 십시일반이라고 공연자들이 무료공연을 펼치고, 뜻있는 분들이 격려금을 전달해 주셔서 어려운 상황에서나마 대회를 잘 마칠 수가 있었다.

지역의 문화행사가 돈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큰 문제일 것이다. 지원금의 유·무에 의해서 대회 개최의 유·무가 결정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지역문화 행사에 대한 안정적인 지원과 관심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모닥불이 소품으로 쓰였다. 마임의 소품으로 모닥불이 이용되는 건 처음 보았다. 그만큼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품격 높은 공연을 많이 선보인다.
▲ 마임 모닥불이 소품으로 쓰였다. 마임의 소품으로 모닥불이 이용되는 건 처음 보았다. 그만큼 <거창아시아1인극제>는 품격 높은 공연을 많이 선보인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그런 의미에서, 입장료는커녕 오히려 동네 분들에게 돼지고기와 막걸리를 대접하는 <거창아시아1인극제>에 대한 안정적인 예산 집행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면소재지에 짜장면집 하나 없는 '깡촌'에서 마을 주민들이 언제 그런 수준 높은 문화예술 활동을 접할 수 있겠는가! 소외지역 문화행사 지원 차원에서라도 적절한 지원금은 반드시 집행되어야 할 것이다. 

기왕 돈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 더 언급하고 가겠다.

2012년 <거창아시아1인극제>에서는 부대행사로 거창·함양지역의 다문화 가정들의 1박 2일 캠프가 개최됐었다. 참가자들은 국적도 다양하고, 피부색도 조금 다르긴 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그저 축제를 재밌게 즐기면 그만 아니던가! 그래서 그런지 꼬맹이들의 장난 때문에 거창귀농학교의 운동장은 떠들썩했다. 그들의 엄마인 이주여성들도 조금은 느긋한 모습이었다. 공연을 즐기며 하룻밤 야영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았던지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돈이 없어서 큰 평상 4개를 붙여서 무대를 만들었다. 큰 느티나무가 뒷배경으로 쓰였는데 야간 조명이 무대 뒤 나무들을 비추었을 때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환상적인 무대 덕택인지 모르겠지만 올해<거창아시아1인극제>는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 무대 돈이 없어서 큰 평상 4개를 붙여서 무대를 만들었다. 큰 느티나무가 뒷배경으로 쓰였는데 야간 조명이 무대 뒤 나무들을 비추었을 때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환상적인 무대 덕택인지 모르겠지만 올해<거창아시아1인극제>는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당시에는 아시아 각국에서 온 공연자들이 자국의 전통무를 공연했었다. 필리핀에서 온 공연자들이 필리핀 이주 여성들 앞에서 공연을 펼쳤고, 인도네시아 온 공연자들이 인도네시아 이주 여성들 앞에서 춤사위를 펼쳤다. 이주 여성들의 표정은 무척 진지했다. 낯선 곳에서 자국의 전통무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큰 감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공연중에 눈물을 훔치던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 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괜히 쓸데없는 토목 공사 하느라 세금 낭비하지 말고 이런 문화축제에 쓰면 얼마나 좋겠는가!

거창아시아1인극제 자원활동을 마친 후, 돌아오는 길에 <고제 사과길>이라는 트레킹 코스를 하나 개척해 보았다. 8월 말 경에 이 길을 걷다보면, 새빨간 사과들 사이를 걷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고제 사과길> 거창아시아1인극제 자원활동을 마친 후, 돌아오는 길에 <고제 사과길>이라는 트레킹 코스를 하나 개척해 보았다. 8월 말 경에 이 길을 걷다보면, 새빨간 사과들 사이를 걷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곽동운

관련사진보기


# <고제 사과길>

앞서도 언급했듯이 거창군 고제면은 홍로 사과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8월 말 경에 가보면 '새빨간' 사과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멀리서보면 마치 녹색의 그라운드에 빨간색 점들이 뿌려진 것처럼 보인다. 녹색과 빨간색이 서로의 배경색이 되어 시각적으로 장관을 이루는 것이다.

필자가 누군가? 역사트레킹 마스터 아닌가! 자원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트레킹 코스를 하나 개척해보았다. 약 6km 정도 되는 짧은 코스인데 사과와 관련된 도보여행길이다. 이름하여 <고제 사과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 탐스러운 사과와 함께 백두대간 삼봉산의 아름다운 풍광도 감상할 수 있다.

이제 추석이 한 달 남짓 남았다. 그럼 사과 수확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음에 사과 작업하러 거창귀농학교에 갈 때는 '뺑끼'를 쓰지 않고 일을 좀 열심히 할 생각이다. 특히 화장실 청소에 역점을 둘 것이다. 그럼 이모님에게 이런 소리를 듣지 않을까?

'곽 작가. 조단조단 일 잘 하네. 이 막걸리 한 잔 묵고 하그래!'

덧붙이는 글 | 제 다음블로그에도 게재를 합니다.

http://blog.daum.net/artpunk



태그:#거창아시아1인극제, #거창귀농학교, #고제면, #홍로, #고제사과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