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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9일 오후 6시 9분]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9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세제개편안을 비난하며 월급생활자의 지갑을 털어간다는 의미의 '유리지갑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9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세제개편안을 비난하며 월급생활자의 지갑을 털어간다는 의미의 '유리지갑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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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직장인, 월급쟁이의 유리지갑을 박근혜 정부가 탈탈 털어가려고 합니다."

사람 몸통만한 투명 비닐 지갑 안에 만 원짜리가 하나 둘씩 떨어져 내린다. 몇 번 툭툭 털자 이내 지갑 안에는 지폐가 한 장도 남지 않게 됐다.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이 털리는 장면이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 오전 시청광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같은 퍼포먼스를 하며 "박근혜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결국 세원이 100% 노출되는 직장인과 월급쟁이의 유리지갑을 털겠다는 것"이라며 "월급쟁이와 자영업자, 농민에 대한 세금 폭탄으로 귀결된다, 민주당은 이를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리지갑을 털어 복지재원을 마련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2013년 세법개정안 처리에 난항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하루 전 정부는 세제발전심의위원회를 열어, 연간 근로소득 3450만 원 이상 근로자 434만 명의 세부담이 평균 16만~865만 원씩 증가하는 세법개정안을 확정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1조 3000억 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공약인 자녀장려금·근로장려금 지급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운 박근혜 정부가 손쉽게 세금을 뽑아낼 수 있는 월급생활자들에 대한 증세를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하려는 것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높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세금 원폭", "박근혜 스타일의 '증세 없는 복지'란 다름 아니라 '유리지갑 틀기'"라는 비판이 줄 잇고 있다. 보수언론조차 청와대의 유리지갑 손대기에 비판적인 기사를 나란히 실었다.

장외 투쟁에도 꿈쩍하지 않는 청와대에 속 끓이던 민주당으로서는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하며 정부·여당을 거세게 몰아 붙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민주당은 세법개정안 저지를 위해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야권이 한데 뭉친다면 세제개편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도 막을 수 있어 정부의 세법개정안 원안 그대로 국회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전면전' 불사 민주당 "중산층·서민 위해 만리장성 쌓고 싸우겠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한길 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민생 역행의 길로 가고 있다,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대기업과 부유층은 그대로 놔둔 채 월급쟁이 호주머니만 털겠다는 것"이라며 "붕괴되어 가는 중산층을 벼랑 끝으로 모는 것으로, 민주당은 결코 세법이 이대로 통과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전 원내대표는 "경제부총리는 고소득자·대기업 세수가 늘 거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대기업 비과세 감면은 생색내기에 그쳤고 법인세 감면 규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유망서비스 R&D 세제공제는 오히려 확대되었다"며 "배고픈 서민들의 등골을 빼서 배부른 재벌 대기업의 배만 채워주는 이른바 '등골 브레이커형' 세제개편"이라고 일갈했다.  

박용진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무시하고, 야당을 무시한 이런 세금 폭탄안이 국회를 절대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민주당은 중산층·서민을 고생시키는 박근혜 정권의 부자감세·서민증세 개편안과 전면전을 각오하고 있다, 국회에서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국회 저지'가 가능한 것은 세제개편안 관련 법률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심사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제개편안과 관련한 15개 법률을 9월 말경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때부터는 국회 몫이다. 국회 기재위가 법률안에 대한 심사를 하고, 이에 대해 통과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것. 현재 기재위 의원 수는 새누리당 13명에 민주당 11명, 통합진보당·정의당 각 1명씩으로 여야 동수다. 즉, 야권이 한 목소리를 낸다면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국회 통과가 불가능한 것이다.

박 대변인은 "현재 기재위가 여야 동수다, 민주당 동의 없이 세제개편은 없을 것"이라며 "민주주의 수호와 국정원 개혁을 위해 천막을 친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을 지키기 위해서 만리장성을 쌓고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역시 세제개편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박원석 정의당 정책위원장은 8일 논평을 통해 "이번 개정안은 서민중산층에 대한 보편증세는 A+인 반면 재벌과 부유층에 대한 부자증세는 의도된 낙제"라며 "늘어나는 세금의 대부분이 재벌대기업과 부유층이 아닌 노동자나 자영업자에게서 조달된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불만 부추기는 정부·여당 "세수 증대 필요... 중산층도 십시일반 기여"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해 이마의 땀을 닦고 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해 이마의 땀을 닦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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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여당은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중산층에 부담이 가중되는 지점에 대해서는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나아가 "봉급생활자들은 다른 분들보다 여건이 낫지 않냐"는 등의 발언을 통해 불만에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유리지갑 중간소득 샐러리맨들에게 부담이 지나치게 증가한다면 시정돼야 할 것"이라면서도 "고소득층에 유리했던 소득공제방식을 세액공제방식으로 전환해 소득 계층 간 형평성을 높여 세원을 넓혔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은 한 발 더 나아가 "세법개정안으로, 중산층은 한 달 평균 1만 원 정도 (세금이) 늘어나게 된다, 이건 결코 세금 폭탄이 아니"라며 "복지 수요 증대에 따라 세수 증대가 필요한 시점에, 중산층도 십시일반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게 바람직한 인식임에도 세금폭탄으로 과장하는 건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비판의 핵심은 그동안 소득세제도에서 고소득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소득공제방식을 세액공제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중산층의 세 부담이 일부 늘어난다는 것인데, 이런 전환이 바람직하다는 걸 공유해야 한다"며 "다만 중산층의 세부담이 일부 늘어나는데, 과도하게 증가하지 않도록 꼼꼼하게 따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도 "이 정도 세금 부담은 감내할 수준"이라며 세제 개편안에 대한 적극 방어에 나섰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을 인상한 게 아니니 증세가 아니"라며 "이번 조치는 소득 배분이 개선되는 방향으로의 비과세 감면 조치"라고 강조했다. '월급쟁이의 주머니만 털어가는 거 아니냐'는 지적에 "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소득이 위로 올라갈수록 부담이 많아지는 식으로 형평성을 개선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소득공제가 사라져, 유리지갑에게 손해가 돌아간다고 재차 따져 묻자 "그 부분은 참 죄송스러운 부분이고, 입이 열 개라도 다른 설명은 못드리겠다"며 "이해를 해주십사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봉급생활자들은 다른 분들보다 여건이 낫지 않나"라고 말했다.

안을 마려한 정부에서조차 '이해'만을 구하고 있는 상황에,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간 소득 3450만 원 기준을 국회 세법 심의 과정에서 올려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정부안의 수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태그:#세법개정안, #월급쟁인, #유리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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