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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보고 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공식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보고 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공식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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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2인분 시켰는데 왜 5인분이 나와?"

민병두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의 말입니다. 지난 3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영수회담을 제안하자 그걸 받아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3자회동을, 6일엔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이 나서 5자회동을 제안했습니다. 점점 인원이 불어난 회동을 하게 되자 민주당 지도부 핵심 전략가인 민병두 본부장은 내심 불쾌한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둘이 만나자고 했더니 다섯이 만나자고? 뭥미?'하는 심정일까요?

김한길 대표는 지난 3일 비장한 각오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담판을 제의했습니다. 지난 대선 국정원의 불법적인 선거개입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니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서라도 현직 대통령은 야당 대표와 만나야 하고, 일명 '남해박사(남재준 해임, 박근혜 사과)'와 국정원 개혁까지 허심탄회하게 얘기 좀 해보자는 것이었지요.

5자회동으로 변신한 영수회담... 야당 무시 전략?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2인자가 된 김기춘 비서실장을 내세워 김한길 대표의 제안을 '뭉갰습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회동은 원내 현안이 있어 만나자는 것이니, 또 그 현안은 국회에서 많이 다뤄지는 내용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모시고 현안을 논의하자는 의미가 크다는 겁니다.

이같은 해석은 지난주 "참을 만큼 참았다"며 장외로 뛰쳐 나온 민주당과 김한길 지도부의 긴급한 실천을 별거 아닌 일로, 특히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을 '원내 현안 중 하나'로 치부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동시에 김한길 대표가 던진 담판 제의를 굉장히 축소해석하는 태도이기도 하지요.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만나 양자회동으로 속깊은 얘기를 들어보자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런데 돌고 돌아 청와대가 다섯이 만나자고 역제의를 한 것은 일단 이 논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빠지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청와대가 마련한 자리지만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를 두고 여야는 옥신각신 대립하게 돼 있고 그 싸움이 예상되는 테이블에서 황우여 대표와 김한길 대표가 각각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앉아 있다가 심판을 내리는 판관 노릇을 하겠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과 관련해 아는 바 없고 국정원으로부터 신세를 진 적도 없으며 고로 이 일은 국회가 알아서 처리할 문제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편 이날 브리핑에서 놀라웠던 것은 김기춘 실장의 이날 긴급브리핑 서두였습니다. 김 실장은 이날 브리핑을 시작하면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 비서실장이 한 가지 발표를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MB정권에서조차 이 같은 극존칭은 없었습니다. 김 실장의 이 같은 '극존칭 화법'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김 실장이 이보다 더 강도를 높인다면 이미 사라진, 과거 70~80년대 대통령에게 썼던 용어 '각하'를 쓰겠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극존칭의 대상인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가 한 자리에 모인다면 그 자리에서 무슨 대화가 어떻게 오갈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 친노 핵심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왜 지금 5자회동을 제안했겠냐"라며 "이건 완전히 야당 무시 전략인데, 그림은 뻔한 것이다, 4명의 정당 실무자들 불러놓고 여왕께서 훈계하고 꿀밤 한 대씩 때리겠다는 것과 같다"고 개탄했습니다.

정호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제1야당 대표가 제안한 대로 일대일 영수회담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인식을 확인하고 구체적 해법을 논의해야 한다"며 "국정과 민생 안정을 위한 목적이라면 어떤 형식의 대화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가 (사안의) 심각성과 해결책에 대해 제대로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지요.

청와대 가서 사진만 찍고 말 거라면... 깊어지는 민주당의 고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8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한길 민주당 대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박 대통령, 강운태 광주시장, 박준영 전남지사.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18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한길 민주당 대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박 대통령, 강운태 광주시장, 박준영 전남지사.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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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5자회동 제의를 거부할까요?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공식적으로도 거부는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으니까요. 무엇보다 민주당이 황우여 대표의 3자회동 제의에 형식이나 의제에 관계없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거부할 명분도 뚜렷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민주당 안에서는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이걸 걷어차느냐고 보는 시각도 있고 5명이 모여봐야 얘기될 것은 하나도 없는데 그런 무의미한 회동에 왜 나가느냐,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꽤 너울거립니다.

다섯(박근혜 대통령, 황우여-최경환, 김한길-전병헌)이 모여 밀린 얘기나 듣자는 콘셉트라면 결국 밥 먹고 사진 찍고 끝일 테고 의미있는 선언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야당에게 출구를 열어주지 않고 계속 이렇게 무시 전략으로 나오면 민주당도 서울광장에 계속 머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9월 정기국회도 현실적으로 보장하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진단도 나옵니다. 민병두 본부장은 "지금 중요한 건 의제다. 민주당이 제기한 '남해박사', 국정원 개혁 없으면 만남에 의미가 있을까?"라고 되묻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당이 내건 '남해박사' 카드를 수용할까요?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선언한 지금도 여전히 여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편인데요. 민주당이 투쟁의 수위를 높일수록 민생을 외면한 야당, 싸움만 하는 야당, 문제해결능력이 없는 야당이라는 보수언론의 총공세는 전쟁터의 폭격처럼 중단없이 계속되겠지요? 그 뒤에 민주당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래서 정치권 주변에서는 이런 분석들이 흘러다닙니다. 김한길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5자회담 요구를 결국 수용할 것이다, 만나서 '남해박사'를 제의하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와 천막 안에 머물면서 8월의 불볕더위를 보낼 것이다, 그렇게 9월이 오면 그때는 정기국회 현장에서 또다른 싸움거리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매듭을 지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기대되는 성과는 없다고.

때문에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국정원 국정조사 증인채택 문제로 가뜩이나 스텝이 꼬여 있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담판이 5자회동으로 변질된 이 상황에서도 스텝은 계속 꼬여 가고 있습니다.

김한길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여러분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태그:#김기춘, #김한길,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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