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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녀가 손을 꼭 잡고 삼도봉에서 내려오고 있다. 장애물을 만나자 남자가 한 발 앞장 서 여자를 이끈다. 다시 나란히 보조를 맞춰 걷는다.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둘은 내 옆을 스쳐지나 천천히 나무계단을 밟아 내려간다. 둘은 살면서 힘들 때마다 지금처럼 서로 손을 잡아줄까. 그 손 영원히 놓지 않을까.

 

나는 혼자 퍼질러 앉아 있다. 지리산에서 악명 높은 나무계단을 막 올라선 참이다. 누구는 594계단이라고 하고 누구는 561계단이라 하는. 기력이 바닥 난 것 같다. '망할 놈의' 계단 때문이다. 내겐 산에서 만나는 가파른 계단이 지옥 같다. 지리산종주 마지막 날이다. 도보 거리는 연하천대피소에서 성삼재까지 10.4. 그 절반도 못 미쳐 퍼져버렸다.

 

물집 떠뜨리고 들뜬 발톱 봉하고 나선 길

 


아침 다섯 시에 연하천대피소에서 나왔다. 연하천은 해발 1440m 고산지대인데도 맑고 시원한 시냇물이 콸콸 흐른다. 푸푸, 그 물을 손으로 떠 세수를 했다. 소금으로 양치질을 했다. 지리산에서는 산을 오염시킬 비누나 세제, 치약 사용을 금지한다. 손발이고 얼굴이고 머리고 밥그릇이고 대충 물로 헹궈야 한다. 며칠 그런다고 내 미모(?)가 어디 죽겠냐만.

어제 오다 만난 젊은 부부가 앞서 성삼재로 출발하기에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정한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나 어디로든 전화를 걸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오늘도 샌들 신고 길을 나섰다. 어제 저녁 바늘로 발가락 물집도 땄고 (대피소직원이 직접 빨간 색실을 꿰어 바늘을 소독해 빌려주었다), 부어오른 엄지발가락에는 일회용 밴드를 덕지덕지 붙였다. 들뜬 발톱을 봉했다. 발바닥에 파스까지 붙였다. 이래저래 불편한 발로 명선봉까지 0.7를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걸었다. 신선한 숲 기운을 들이마시며.

 


그 길이 지난번 종주 때 H와 야간산행을 했던 길이다. H는 줄곧 열 발짝 가다 서다 가다 서다, 속도를 내지 못했다. 안경에 서린 수증기를 닦느라 그랬다. 산행 초짜인 H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 땀을 비오 듯 쏟았다. 게다가 내내 안개 속이었다. 또 내 걸음이 산에선 워낙 느려지니. 그날 목적지인 연하천대피소에 밤 10시께가 돼서야 도착했다.

 

성삼재부터 12시간 걸렸다. 도중에 전화 통화를 했던 대피소직원이 밖으로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지리산의 모든 대피소에서는 입실시간까지 도착하지 않은 예약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생사(?) 확인을 한다). 친절한 그가 우리를 붙들고 안전산행에 대해 일장훈시를 했다. 우리는 지치고 배고파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얼차려를 당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H가 농담을 했다. 나는 너무 피곤해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명선봉을 내려가 찬찬히 흙길을 걸었다. 이어 가파른 돌길을 타고 해발 1533m인 토끼봉에 올랐다. 오르는 길에 잎이 하트 모양인 하수호 덩굴을 보았다. 야생약초 적하수호였다. 뽑아갈까. 꿀꺽, 생심이 돌았다. 얼른 눈을 돌렸다.

 

토끼봉에서 화개재 가는 길엔 유독 쓰러진 거목들이 많았다. 센 바람 자주 들이치는 곳인가. 둥치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쩍쩍 갈라져 누워 있다. 뿌리 채 뽑혀 벌렁 누워있는 나무도 여러 그루 보였다. 구상나무였다. 그들은 삶과 죽음이라는 자연의 순환 속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 옆에서 주황색 세발버섯이 피었다. 기린초가 노랗게 꽃을 피웠다. 지리터리풀 꽃도 곱다.

 

나흘째 홀로 걷는 길, 동반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오늘 나는 아무래도 적적하다. 나흘째 혼자 걷는 길이다. 역시, 길을 걸을 때는 활기와 대화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휴대폰을 꺼냈다. 통화권 이탈 지역이었다. 지리산능선 구간 중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곳, 화개재에 도착했다. 옛 사람들이 화개장터에서 물건을 지고 올라와 북쪽 뱀사골로 내려가 남원을 오고갔다 한다. 소금과 해산물을 지고 이고.

 

그들처럼 이곳에서 뱀사골 등산로를 타고 내려가면 내가 사는 산내면이다. 계곡 따라 얼마간 더 내려가면 마을이 나온다. 그러니 지리산 능선에서 내 집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이 길로 후딱 내려갈까? 남은 6.4는 생략할까. 혼자 걷는 것도 신물날 때 됐다. 아니다.

 

나는 돌 같이 단단한 침묵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거리낄 것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걸으며. 역시, 혼자 걸어야 한다. 동반자가 있으면 가지가지 방해 받는 게 많다. 명상과 자유와 자연스러움과…. 마음 가는 대로 발걸음을 멈추거나 멈춰서 경치를 음미하거나 계속하여 가거나 할 수 없다. 동반자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건 피곤하고 진부한 여행이다. 혼자 걷는 여행이 참여행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나는 백 번 천 번 동의한다. 그래, 혼자라서 자유로운 길. 바람은 푸르고 구름은 높고 나는 가볍다.


드디어 그 '망할 놈'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조난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구간이라 만들었다는, 가파르게 뻗어 오른 나무계단. 다리가 후들후들 거렸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보며,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힘내세요!'라며 격려했다. 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 고통 속에서 나는 중차대한 일을 하고 있었다. 계단을 세고 있었던 것이다.

 

580개의 계단을 겨우겨우 올라, 나는 그만 털퍼덕 주저앉아버렸다. 580! 세상의 비밀 하나를 밝혀낸 것 같다. 계단은 594개도 아니고 561개도 아니고, 580개였다. 마침 대여섯 명의 등산객들이 줄지어 내 옆을 지나간다. 계단을 밟고 내려서기 시작한다. "그 계단, 580개예요!" 나는 가쁜 숨을 고르고 있던 와중에도 고양된 목소리로 그들에게 일러준다. 뿌듯한 표정으로. 나도 참….

 


잠시 후, 젊은 남녀가 손을 꼭 잡고 삼도봉에서 내려온다. 푸른 잎 싱싱한 갈참나무가지가 어룽어룽 그늘을 드리운 나무계단을 밟아 내려간다. 그 모습이 애틋해 눈을 떼지 못하겠다. 문득,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는 것을. 참나무, 사이프러스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하늘로 뻗은 참나무가지를 올려다보고, 두 손 꼭 잡은 그들을 내려다보고…. 그때, 아는 얼굴이 불쑥 계단 위로 올라왔다. 깜짝 놀랐다. 둘째 날 세석대피소에서 만났던 김천 아주머니다. 나를 불러 라면과 고기와 소주를 나눠주었던. 세상에, 그녀는 빨간 모자를 쓰고 벌써 천왕봉에 갔다 오는 길. 오늘 아침 벽소령대피소에서 출발했단다. 23일로 지리산 왕복종주 중이었다. 그날 함께 저녁을 먹었던 수원 아저씨는 그 다음날 천왕봉에 올랐다가 백무동으로 하산했을 것이다.

 

같은 거리를, 당일치기로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틀 만에 걷기도 하고, 나처럼 4일 동안 걷는 사람도 있다(지리산종주는 대부분 23일로 걷는다). 산에 온 목적이 다른 걸까. 사는 속도가 그렇게 다른 걸까. 애초 즐거움을 느끼는 방법이 다른 걸까. 누구는 찬찬히 걷고, 누구는 건성 걷고, 누구는 빠르게 걷는다. 사는 것도 그럴까. 또 같은 산길을, 누구는 여럿이 어울려 걷고, 누구는 둘이 걷고, 누구는 혼자 걷는다.

 

지쳐있는 내게 페트병에 타 들고 온 커피를 건네주고, 그녀는 또 후다닥 잰 걸음으로 사라진다. , 정말 빠르구나. 그녀에게 계단의 비밀을 말해주지 못한 게 아쉽다. 셀 때마다 계단 수가 달라지는 마법의 계단이라고. 세다 보면 숨이 차 누구나 정신이 흐려질 때가 있는데, 그때 셈이 뒷걸음치거나 앞으로 건너뛰어 그런 거라고.

 

함께 산을 오르는 사람들, 더 돈독해지거나 등 돌리거나

 

커피를 마시고 얼마간 더 앉아 있었다. 결국, 몸을 추스르고 일어난다. 심호흡을 하며 기운을 차린다. 푸르고 맑은 공기가 몸의 원기를 북돋운다. 그 길로 바짝 발을 재게 놀려 삼도봉 암릉에 올랐다. 세 도의 경계선을 표시하는 삼각형 강철 구조물이 보인다. 그 걸 빙빙 돌며 전라남도로 갔다, 전라북도로 갔다, 경상남도로 갔다…. 세 개의 도에 걸쳐 있는 지리산의 크기와 위용을 몇 발짝으로 체험한다.

 


세 바퀴 째 돌다가 경상남도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만났다.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맥 아래로 화개장터를 찾아보던 중에. 13살짜리 아들과 아버지가 종주 중이란다. 이번 종주 중에 아버지와 아들 팀을 대여섯 번 만난 것 같다. 대피소 잠자리가 편할 정도로 등산객들이 북적이지 않았는데. 한산한 산길이었는데. 그런데 한국에서 부자간은 소원한 사이 아니었나. 언제부터 이렇게 가까운 사이가 됐지. 아버지들이 변했나. 세태가 바뀌었나. 아무튼 흐뭇해 보이는 동행이다.

 

누군가와 함께 길 위에 나서서 힘든 여정을 겪어 간다는 것. 숨어있던 내밀한 부분들을 목격하게 된다. 나로부터 혹은 상대로부터. 그 결과 사이가 더 돈독해지거나, 척지고 아예 등 돌리게 될 수도 있다.

 

지난번 종주 때 H와 나는 식사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H는 식탁으로 사용하는 대피소의 테이블들이 음식물 찌꺼기와 기름때로 찌들어 있는 꼴이 못마땅해 얼굴을 펴지 못했다. 그런 테이블 위에 내가 아무렇지 않게 물건들을 꺼내 놓는 걸 못 견뎌했다.

 

나는 H가 반찬통, , 물통, 배낭 같은 물건들이 더렵혀지는 걸 질색하며 신경 쓰는 모습이 못마땅했다. H는 무신경할 정도로 털털한 나의 성미가 한심해 보였고, 나는 H의 그 까다로움이 불편했다. 잠깐씩 신경이 곤두서, 대립했다. H와 나는 상대의 그런 모습을 경멸하거나 이해해야 했다'어떤 사람과 열흘 동안 함께 걷는다는 것은 그와 십년 동안 함께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은, 맞다.

 


갈림길에 섰다. 우측 길로 든다. 반야봉 가는 길이다. 지난번에는 주능선에서 조금 비켜 있는 반야봉을 그냥 지나쳐 갔었는데. 가파르게 패인 길을 타고 200여 미터 올라가 배낭을 벗어 놓는다. 천왕봉과 반야봉과 노고단고개를 가리키는 날개표지판이 서 있는 곳이다. 카메라만 들고 0.8를 더 올라간다.

 


해발 1732m 반야봉. 내가 사는 마을에서 반야봉의 봉오리 두 개가 둥그스름한 엉덩이처럼 보이는데. 그 반야봉 정상이다. , 일대 장관이다. 이번 지리산 종주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것 같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과 푸른 산이 어우러져 만든 절경. 하늘과 땅의 파노라마. 쿵쿵쿵쿵 심장이 큰북처럼 울린다. 설마, 내가 오늘 이곳에서 생명의 진리를 깨닫고 반야(지혜)를 얻게 되나.

 

천왕봉부터 여태까지 걸어온 모든 능선이 한 눈에 아스라이 잡힌다. 굽이굽이 능선을 넘어가는 구름 떼가 비경을 만든다. 천왕봉에 살고 있던 여신 마고의 사랑이 이 반야봉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에게까지 닿을 수 없었나. 그 길이 까마득하여 신기하고 애틋하다.

 

남쪽으로는 구름 속에 광양의 백운산이 선계의 섬처럼 떠 있다. 서쪽으로는 노고단과 성삼재, 이어서 서북능선의 고리봉, 만복대…. 푸른 능선 위로 운해가 펼쳐져 있다. 사방이 둥글게 하얀 구름 띠를 둘렀다. 지구가 둥글구나, 할 정도다. '천리길을 찿아온 정성이 통했나.'(화담 서경덕이 반야봉에 올라 지은 시 구절 중) 반야봉에서 나는 절정의 풍광과 마주섰다.

 


혼자 감탄사를 터뜨리고 있는데, 스님 열 분이 갑자기 극적으로 등장했다. 지리산자락 하동 쪽 사찰의 선방 스님들이 단체로 등산을 오신 거다. 얼마간 하계를 굽어 살핀 스님들이 바랑을 푼다. 그러고 보니 정오가 넘었다. 오늘 나는 빵 한쪽 먹은 게 다다. 스님들이 공양을 같이 하자는데 마다할 리 없다. 김밥, 오미자차, 뽕잎차, 복숭아, 오이, 초콜릿을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반야봉에서 나는 지혜 대신 피와 살이 될 양식을 얻었다. 그 힘으로 반야봉에서 내려와 팽개쳐 두었던 배낭을 거뜬히 짊어질 수 있었다. 남은 길을 생기에 차 걸을 수 있었다.

 

반야봉의 일몰 풍광이 장관이라는데 못 보고 내려가려니 아쉽다. 스님들과 헤어져 반야봉을 내려온다. 노루목을 지난다. 임걸령에서 샘물을 받아 마신다. 산죽 사이 오솔길을 걸어 피아골 삼거리를 지난다. 거기서부터 돼지령을 지나 너덜 길로 노고단고개까지 오는데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인적 끊긴 늦은 오후의 산길, 분홍빛 지리터리풀 꽃이 고요하게 흔들린다. 조금은 쓸쓸한 길이다.

 

쉬이 가라앉지 않는 산행의 흥분, '수다'가 필요할 때

 

오후 330, 노고단을 오른다. 안개가 사방을 가렸다. 첫날 세석평전에서 만난 안개처럼 두텁다. 시작과 끝이 이렇게 이어지나. 멀리 조망되지 않으니 또 발밑의 야생화들만 내려다보며 걷는다.

 

노고단에서 성삼재 휴게소까지 내려오는 길은 무료했다. 넒은 차도라. 마침내 성삼재 휴게소에서 지리산능선 종주 도보가 끝났다. 나흘 동안 41.1를 걸었다. 이제 44일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한다. 대전에서 워크숍 왔다는 공무원들의 리무진 버스를 얻어 탔다. 861번 도로를 꼬불꼬불 30여분 내려가 마을 앞에서 내렸다.

 


집에 도착했다. 마당 한쪽에 도라지꽃이 한참 피어있는 작은 한옥집이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냉장고를 뒤져 맥주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찾아냈다. 툇마루에 조용히 나앉는다.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고 장엄한' 지리산 품에 얌전히 안기는 것처럼. 어둑어둑 몰려오는 땅거미를 바라본다.

 

44일의 지리산종주 마지막 밤이다. 산행의 여운과 흥분이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잠들지 못하겠다. 지리산에 깃들어 있는 지혜, 역사의 아픔, 피고 지는 꽃들, 산에서 만난 사람들, 나의 발에 대해 누군가를 붙들고 수다를 떨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이젠 정말 교감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결국, 찬 맥주로 노독을 식히며 H에게 전화를 건다. "산행은 어땠어요?" H가 묻는다. "들을 준비 됐나요? 밤 샐지도 모르는데…" 내 목소리가 한껏 들떴다. ", 기대됩니다. 날씨는 좋았나요?"

 

"글쎄, 그만두고 싶더라고요.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어요. 전날 밤 잠을 완전히 설쳤고,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나갔으니까요. 몸이 피곤하니 산행의 흥분도 싹 가셨어요. 계곡의 절경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뭣 때문에 이 힘든 짓인가…. , , 고작 2.7킬로미터 가량 걸었을 뿐이었다니까요. 그것도 가파른 길도 아니었어요…."

 

이 밤, 나의 수다가 지리산의 여름 꽃처럼 핀다.


태그:#지리산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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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2017년도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출간. 유튜브 <은경씨 놀다>. 네이버블로그 '강누나의깡여행'. 2019년부터 '강가한옥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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