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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동안 정보공개 활동가로 일한 필자가 올해처럼 큰 충격을 받은 적은 없다. 우선 자신들이 생산하는 모든 정보는 비밀기록이고, 예산 사용내역까지 국민에게 밝히지 않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1급 비밀에 해당하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하 회의록)을 일반 문서로 해제해 공개한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예전에 국정원을 상대로 이런저런 정보공개청구를 해보았지만 물품구입 내역 등 아주 단순한 정보조차 단 한 번도 공개를 한 적이 없던 곳이 국정원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상회담 회의록은 어떤 문서인가? 외교당사자들 간의 회의록은 각 국가에서도 1급 비밀로 취급하며 양 당사국의 합의가 없으면 보통 25~30년 후에나 공개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그런데 불과 6년 전에 작성되어 있는 회의록을 회담 당사국의 동의도 받지 않고 공개했다.

회의록에 NLL 포기 발언이 명백히 적시되어 있다며 회의록 전문을 폭로하고 나선 국정원은 대선개입 의혹 등으로 궁지에 몰리자 너무 큰 사고를 쳐버렸다. 일종의 현대판 '사화(史禍)'가 발생한 것이다.

국정원 사태 이후 '기록 없는 나라'로 돌아갈까 걱정

이 사태가 엄중한 것은 한국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국가들에게 '정보기관이 1급 비밀을 폭로하는 나라'로 인식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향후 정상회담 상대국들이 한국을 신뢰할 수나 있을지, 내밀한 협상이 진행될 수나 있을지 걱정이다.

이 사건 이후 여야는 국정원장에게 책임을 묻고 사후재발 방지를 위해 힘써야 했다. 또한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해 차분히 국정조사를 진행해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조직개편을 이뤄내야 했다. 하지만 국정원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확산되었다.

문재인 의원이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회의록 원본을 열람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다는 NLL 포기 발언의 진위 여부를 가리자고 나선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필자가 소속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와 기록관리전문단체협의회 등은 대통령지정기록물 열람에 강하게 반대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향후 집권하는 대통령들은 민감한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유출할 것이고, 이로 인해 다시금 '기록 없는 나라'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가들의 수많은 반대에도 대통령지정기록물 열람 동의에 국회의원 257명이 찬성표를 던지고 말았다. 기록학계는 분노했고 동시에 절망했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기록전문요원들은 이례적으로 신문광고를 내고 대통령기록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비판했다. 그런데 반전은 다시 발생한다. 여야가 두 차례 예비열람을 했지만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언론에서 흘러나왔다.

국가기록원의 갈팡질팡까지 겹쳐

이때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 보존 책임기관으로서 대통령지정기록물을 검색하고 존재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국민에게 설명해야 했다. 또한 대통령기록 관련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회의록을 찾는데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국가기록원은 무엇이 급했던지 회의록은 대통령기록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 입장발표조차 정치적으로 편향되게 보일 수 있다는 경고도 무시했다. 그리고 정치권과 국가기록원은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새누리당의 고발로 검찰수사가 시작되고 있다.

기록전문가들은 국가기록원의 이런 모습에도 흥분하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1급 비밀이자 대통령지정기록물이다. 이 기록물은 이중, 삼중으로 암호화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고, 이 때문에 원문 파일의 전문검색이 불가능했을 수 있다는 것이 기록학계의 의견이다.

게다가 외부로 알려진 결과는 대통령기록관리시스템(PAMS)의 지정·비밀 기록서버만 검색한 것일 뿐 기록 존재유무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이지원(e知圓) 검색결과는 빠져 있다. 국가기록원은 참여정부에서 사용했던 이지원 시스템을 복원하고 해당 서버를 검색하는 것을 포함해 지정·비밀서고 녹음테이프, CD까지 찾은 다음에 회의록이 없다는 발표를 해도 늦지 않았다.

장관급 기관 설립과 독립성 보장 방안

국가기록원은 이번 사태로 독립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대통령기록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애초에 안전행정부 산하 1급 기관에 불과한 국가기록원이 헌법기관인 대통령이 생산한 기록을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기록전문가들이 주장했듯이 국가기록관리위원회를 장관급 기관으로 신설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이 기관의 위원장은 청문회를 거쳐 외부전문가를 선임하고 임기를 보장하는 한편 국가기록원과 대통령기록관의 관리·감독 권한을 부여해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사회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기록을 보호해야 할 국정원은 조직 보호를 위해 비밀기록을 폭로해 전직 대통령을 부관참시하려 했고, 정치권은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를 망가뜨렸으며 국가기록원에서는 대통령기록이 증발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런 엄청난 희생을 겪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해외토픽 뉴스감과 웃음거리만 제공했을 뿐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성을 찾아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개선에 나서야 하며, 이제라도 지긋지긋한 정쟁을 멈추고 민주주의와 법치를 다시 세우며 민생을 챙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2013.7.31 ⓒ 창비주간논평

덧붙이는 글 | 전진한 기자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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