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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진상규명 촛불문화제'에 수많은 참가자들이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시청광장 가득 메운 촛불시민 지난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규탄 진상규명 촛불문화제'에 수많은 참가자들이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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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기관보고가 비공개로 됐으니 1/5쪽짜리가 된 셈이다. MB는커녕, 원세훈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청장도 증인석에 세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로 경찰 하위직들이…. 결국 '마이너리그 증인잔치'가 될 수 있다. 이거 반쪽짜리다, 거세게 비난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여야가 국정원 국정조사 재개를 합의한 지난 28일 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말끝을 흐렸습니다. 전형적인 용두사미형 국정조사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자, 앞으로 얼마나 큰 욕을 먹게 될까 지레 겁먹는 눈치였습니다. 민주당 국조특위 위원들도 실망감이 상당해 보입니다. 일은 일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게 됐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도 당연지사겠지요.

은수미 민주당 의원은 29일 트위터에 "비속에서 타오르던 수천, 수만개의 촛불과 홍익표, 진선미, 김현의 희생으로 얻은 국정조사가 결국 비공개로 진행?"이라며 "옥동자인 줄 알았던 국정조자사가 결국 사산아? 무더위 때문에 숨이 턱 막히는 것만은 아니겠지요"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민주당 국조특위 위원인 신경민 의원은 29일 교통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대단히 불만족스러운 합의"라며 "여야 간사들이 고생은 했지만 국정조사 공개 원칙이라는 데에서 멀어졌고, 8월 5일로 (국정원 기관보고 일정을) 합의했는데 (사실상) 휴가를 간다는 뜻"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여기엔 '악마의 합의'가 담겨 있다고 아주 비판적으로 말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이 이럴 진대, 시민들은 어떨까요? 시민들의 갑갑증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타고 분출하고 있습니다. 약삭빠른 새누리당에게 민주당은 미련한 곰처럼 질질 끌려 다니는 게 아니냐는 비난이 육두문자와 함께 SNS 공간을 둥둥 떠다닙니다. 차라리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함께 국회를 떠나라는 거센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새누리당의 요구대로 민주당이 국정원 기관보고를 결국 비공개하기로 합의해준 데 있습니다. 이를 놓고 민주당은 '솔로몬의 재판'에 비유했습니다. '국정원 국조라는 아이'를 살리기 위해 국정원 기관보고를 비공개로 합의해 줬다는 건데, 이 논리에 국민들은 좀체 납득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반발만 거센 형국입니다.

생각해 보면 논리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지난 대선은 민주주의와 정당질서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치러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국정원과 경찰, 국가공무원들이 버젓이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했고 대놓고 관건선거를 했습니다.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이 공개한 경찰CCTV 동영상에는 그 증거가 백일하에 전부 드러납니다. 범죄행위가 낱낱이 드러났는데도 그 죄상을 국민 앞에 낱낱이 못 밝히겠다? 그것도 기밀 유출을 이유로? 그래서 비공개로 한다? 납득이 안 되는 겁니다. 이유는 이런 겁니다.

국가기밀을 다루는 남재준 국정원장은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같은 국가기밀문건을 임의로 등급을 낮추고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공개해 버렸습니다. 현 정권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불법도 감행하면서 최소한의 직업윤리도 내려놓는 사람들인 것이지요. 그런데 그 잘못의 죄상을 국민 앞에 상세히 못 밝히겠다? 그래 놓고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거센 겁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이같은 황당한 주장을 하는 새누리당의 입장에 합의해주는 민주당은 뭐야, 이런 불만이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국민들이 민주당을 향해 분풀이 독화살을 날리는 것도 어찌 보면 이유 있는 항변입니다.

왜 민주당은 새누리당에게 끌려다니나

26일 오전 국정원 국정조사를 위한 특위 전체회의에 남재준 국정원장과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해 파행을 빚고 있다.
 26일 오전 국정원 국정조사를 위한 특위 전체회의에 남재준 국정원장과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해 파행을 빚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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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새누리당의 황당한 주장에 합의해 준 게 이번 한번은 아닙니다. 민주당 국조특위 위원인 박영선 의원은 기관보고 순서를 놓고 새누리당 권성동 간사와 언쟁을 벌인 바 있습니다. 국정원 기관보고를 비공개하려는 새누리당의 의도를 간파한 거지요.

이때도 박영선 의원은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12조 '공개원칙'을 강조하면서 반드시 국정원 기관보고는 공개로 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실제 이 법에 따르면 국정원 기관보고는 공개로 하는 게 맞습니다. 국민적 의혹이 큰 사안에 대해 국정조사를 벌이는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하는 게 맞지요. 그런데 이걸 비공개로 합의했으니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당시에도 새누리당은 기관보고 순서를 법무부, 경찰, 국정원 순으로, 민주당은 국정원, 경찰, 법무부 순으로 하자고 맞섰습니다. 실랑이를 거듭하다가 이때도 결국 새누리당의 뜻대로 관철됐습니다. 법무부, 경찰, 국정원 순으로 받은 것이지요. 박 의원의 예상대로 국정원 기관보고는 파행됐고 비공개로 안 하면 하지 않겠다면서 불참을 해버린 겁니다.

결국 민주당은 공개-비공개 문제로 파행을 겪다가 결국 새누리당의 입장을 받아 비공개로 합의해 줬습니다. 이 또한 민주당이 끌려 다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 남은 아킬레스건은 증인 채택입니다. 이마저도 민주당이 새누리당에게 끌려간다면 어떨까요? 정치권 내부에서는 증인채택 문제도 별다른 성과 없이 물거품으로 끝나게 될 공산이 높다는 분석이 쏟아집니다.

민주당이 초반에 이번 국정조사의 증인석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세워야 한다고 압박했지만 결국 그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커녕 직접 범죄행위에 연루돼 불구속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도 증인석에 세우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야 합의로 원세훈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청장에 대한 증인심문을 채택해도 그들이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분석입니다. 진주의료원 폐업사태로 시작된 공공의료 국조특위에서 홍준표 경남지사를 불렀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고 끝내 증인석에 서지 않았습니다.

건설업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구치소로 가는 차량에 올라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 '금품수수'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구속 건설업자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구치소로 가는 차량에 올라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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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원장도 현재 개인비리로 구속 수감된 상태라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벌금형 정도로 처벌하는 것으로 끝낼 수 있답니다. 김용판 전 청장의 경우도 정치적 계산을 해보고 나오는 것보다 나오지 않는 게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면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MB정부 인사들 이외에도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계속 실행된 걸로 판단하고 있는 증거인멸 관련 경찰간부들과 디지털 분석관들, 그리고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의 플랫폼 역할을 한 것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박원동 국익정보국장, 검찰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 등등에 대해 증인요청을 하겠지만 '나올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현락 경찰청 수사부장, 서울경찰청내 디지털분석관들, 수서경찰서 권은희 수사과장 등의 경찰라인들은 출석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밖에 플랫폼 의혹을 받고 있는 박원동 국장 등은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결국 잔챙이 청문회가 되고마는 것일까요? 왜 이렇게 증인채택에 어려움이 노정되는 걸까요?

결국 잔챙이 청문회... 새누리당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민주당?

이유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버티기 때문이지요. 사석에서 민주당 국조특위 관계자들은 분통을 터뜨립니다. 아무리 기를 쓰고 준비해도 결국 새누리당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것 같아 매우 불쾌하다는 것이지요. 한 의원의 말입니다.

"새누리당은 정보와 돈, 권력을 모두 쥐고 있다. 그에 비하면 민주당은 맨 땅에 헤딩하는 거다. 새누리당은 정보가 빠르고 많다. 정보정치를 하고 있지 않나. 당해낼 재주가 없다. 판판이 깨지는 거 안다. 그래도 어쩌겠나. 최대한 싸우는 수밖에."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국정원 국정조사를 요구했습니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리 없기 때문에 국정조사를 통해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상당히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실제 민주당은 이번 국정조사에 앞서 지난 대선이 과연 정당했었나 국민적 의혹을 갖게 하는 수많은 문제들을 폭로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권영세 파일'이지요. "NLL 대화록, 집권하면 우리가 까고" 발언은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실제 박근혜 정부 하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화록을 공개했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지난해 12월 10일 당시 녹취록에 따르면, 권영세 주중대사는 NLL 대화록을 언론을 통해서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까지 밝힙니다. 그것은 계획대로 실행됐지요. 정말로 소름 돋는 상황 아닙니까. 그래서 민주당에서는 소위 새누리당의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의혹도 갖습니다.

어쨌거나 이번 국정원 국정조사를 통해 베일에 쌓여 있었던 지난 대선의 비밀이 드러나지 않을까 기대했던 국민들은 이제 슬슬 실망감에 젖어드는 것 같습니다. 내달 7~8일 양일간 청문회를 하고 12일 보고서를 채택한들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내달 15일 마감 예정인 이번 국정원 국정조사에서 기대했던 것과 달리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리게 되면 국민적 실망은 어디로 분출될까요?

우선 민주당은 국정원 댓글의혹사건과 일란성 쌍생아라고 보고 있는 NLL 대화록 유출 사건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검법안을 내고 이 문제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나설 것 같습니다. 조만간 특검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라고 합니다.

새누리당은 이에 맞불을 놓겠지요. 바로 문재인 의원을 정점에 놓고 벌이는 NLL 대화록 실종사건의 진실을 밝히자고 말이지요. 7, 8월 하한기 'NLL 대화록 유출이냐 실종이냐'를 놓고 여야는 제2라운드를 시작하게 될까요?

대체 이 길고 먼 진실의 터널, 그 끝은 어디일까요?


태그:#국정원 국정조사, #박영선 의원, #민주당, #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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