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손노리개 십자매. 이 녀석을 데리고 해수욕장에 갔다.
 손노리개 십자매. 이 녀석을 데리고 해수욕장에 갔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올 여름엔 아빠가 어떻게든 시간을 낼까 하는데, 피서를 해변으로 갈까?"

모처럼 아빠의 제안인데, 아이들은 대꾸를 하지 않는다. "아빠 최고"라는 말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대답을 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섭섭하다는 생각보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2007년 무덥던 8월 어느 날. 강원도 고성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갔다. 해수욕장 규모가 작아서인지 관광객들도 많지 않은 한적한 곳이었다.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바다가 마치 제 세상인 양 물속을 들락거리고 모래톱을 뛰어 다니며 난리였다.

이렇게 좋아하는 걸 왜 진즉에 데려오지 않았는지 일순 후회도 했다. 차 트렁크를 열어 낚시할 때 가지고 다니던 텐트도 해변가에 설치했다. 집사람과 장인어른, 아이들 둘,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 잠을 자기엔 턱없이 비좁은 텐트였지만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고, 감수하자는 데 모두 동의하는 눈치다.

아! 생각해 보니 식구가 하나 더 있었다. 십자매. '손 노리개'로 만들기 위해 어릴 때 어미로부터 격리시켜 이유식으로 키우던 녀석이다. 시간 맞추어 이유식을 주어야 했기에 아내의 반대도 무릅쓰고 데려가야 했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인근의 장터를 찾을 때까지만 해도 그런 행복한 시간이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어둠이 내리자마자 모기들이 기를 쓰고 덤비기 시작했다. 모기들은 우리 식구의 피를 빨지 못해 안달을 냈다.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는 무슨 훈장처럼 얼굴이 붉은 반점을 덕지덕지 달았다.

그곳 모기들은 유격훈련이라도 받은 걸까. 텐트의 지퍼를 내려도 녀석들은 낮은 포복으로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낚시용으로 쓰던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텐트. 노트를 찢어서 군데군데 난 구멍을 막았지만 그곳으로도 모기들이 침투했다.

"당신은 새가 중요해, 애들이 중요해?"

아내는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악몽이 닥칠줄 몰랐다.
 아내는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악몽이 닥칠줄 몰랐다.
ⓒ 신광태

관련사진보기


"어떻게 피서를 오겠다는 사람이 모기향도 준비 안 하고 물파스도 안 가져왔냐!"

집사람의 불평에 아이들은 내게 원망 어린 눈빛을 보낸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했던가. 밤 11시쯤이 되자 엄청난 소나기까지 퍼부어댔다. 그냥 '지나가는 비'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폭포가 무색할 정도로 소나기는 그칠 줄 몰랐다. 텐트 안은 물 위에 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당신은 새가 중요해, 애들이 중요해?"

어린 십자매가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릴까 하는 염려에 비가 새지 않는 곳을 찾아 이리저리 옮기는 것을 보고 아내하는 소리다. '당신은 인간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핀잔을 준다. 세 시간여가 지났는데도 비는 그칠 줄 몰랐다. 다섯 식구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서야 차량으로 피신을 했다.

"아빠, 집에 가자."

새벽 두 시쯤 되었을 때 차 안에서 오들거리던 딸아이가 집에 가자는 제안을 하자 아들도 동조를 한다. 웬만하면 내일 해수욕 기대 때문에 좀처럼 집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을 아이들의 말이라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고성에서 화천까지 두 시간 정도 오는 동안 잠을 자는 것도 아닌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난 미안함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었고 아이들은 아빠가 미안해 할까봐 아무 말이 없는 듯했다.

그 사건 이후 한 번도 가족 동반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 악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충격 때문이었을까 아이들은 피서의 '피'자만 나와도 나를 원수 대하듯 노려보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회할까. 아내한테는 새는 데리고 가지 않는다고 말하면 되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설득해야 가족휴가를 갈 수 있을지 가끔 고민을 하곤 한다.

덧붙이는 글 | '야(野)한 이야기' 기사 공모 응모글입니다



태그:#고성, #화천, #해수욕장, #피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