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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민국엔 캠핑붐이 일고 있다.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해서 이번에 가족캠핑을 기획하게 되었다. 우리가족은 나와 아들 시우, 그리고 여동생네 가족과 이종사촌 여동생네 이렇게 세가족이 캠핑을 가게 되었다. 사실 캠핑을 가면 낮에는 아이들이 좋고 밤에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어른들이 좋다. 이종사촌네가 수원에 살고 있어서 경상남도와 수원의 가운데 쯤인 경북 상주의 캠핑장에서 만났다.

세 가족 모두 아이들의 또래가 비슷하다. 시우가 8살이라 가장 성숙(?)했고 그 밑으로 율건이(7), 아현이(5), 윤지(4), 그리고 채현이(2)가 있다. 채현이는 엄마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이지만 윤지부터 시우까지는 자기의 의지로 이동을 할 수 있는 나이이기에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지난 20일 오전 11시 상주에 있는 사설 캠핑장에 도착했고 우린 유쾌한 마음으로 텐트와 타프를 치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야. 다들 잘 지냈어?"
"네 형님, 잘 지내셨죠?"
"오빠 너무 오랜만이야. 시우도 많이 컸네."
"율건이와 윤지는 너무 이쁘구나."
"채현이 웃는게 너무 귀여워."

정답게 인사를 하며 일정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미 뛰어 놀기 시작하고 엄마들은 식사 준비를 아빠들은 텐트와 타프를 쳤다. 우리 타프를 치는데 시간이 가장 많이 걸렸다. 이유는 단조팩(텐트나 타프의 줄을 고정시키기 위해 땅에 박는 못)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하긴 제일 긴 것은 60Cm에 육박했으니 말이다.

"형님 그렇게 긴 것을 박을 필요가 있습니까?"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겠네."
"그렇제."
"이러다 돼지 삼형제 꼴 나는거 아닙니까? 첫째 둘째는 허술해서 무너지고 제일 튼튼한 막내집으로 옮기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모두 같이 웃었다.

거의 다 쳤을 무렵 갑자기, 정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온다! 대피하라!"

이때 아이들은 옷을 갈아 입느라 엄마들과 함께 텐트 안에 들어가 있었고, 아빠들은 중앙에 타프 치느라 서 있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잠시 타프 안에 피신해 있는 상황. 이때 갑자기 막내집 텐트의 플라이(비를 막으려고 텐트 위에 치는 것)를 고정시켜두었던 단조팩이 빠지면서 플라이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앗! 비들어온다 어서 공사 시작하자!"

막내 매제가 비를 맞으며 부리나케 보수 공사에 나섰고 나는 부득이 하게 타프 봉을 잡고 있어야 해서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보수공사 현장을 보며 우리집 텐트와 둘째집 텐트도 안전한지 번갈아 지켜보고 있었다. 보수공사가 끝날 무렵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해가 쨍! 하고 떴다.

"이야 이거 말이 씨가 된네. 진짜로 비바람이 불어서 우리집만 날아갔네."
"이제 둘째 집 차례인가?"
"형님집 타프가 제일 튼튼하네요. 역시 처음에 칠 때 단단히 쳐야 해."
"그래도 사람이 안 다쳤으니 다행이야."

우린 한시름을 놓았고 이때까지도 아이들은 텐트 안에서 저희끼리 웃고 즐기고 신나게 놀고 있었다. 곧 엄마들의 식사준비가 끝났고 메뉴는 '철판 오삼불고기!'

오삼불고기
▲ 사진1 오삼불고기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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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준비 다되었어요. 어서 오세요. 애들아 밥먹자!!"
"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신나게 달려가 같이 밥을 먹었다. 캠핑의 여러 매력 중 하나는 같이 밥을 먹는 것이다. 뭘 먹든 정말 맛있다. 더욱이 이렇게 땀을 흘리고 나서 시원한 맥주와  먹는 밥은 꿀맛이다.

식사중인 아이들
▲ 사진2 식사중인 아이들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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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난 뒤 본격적인 물놀이 시간. 걸어서 40m 정도 가니 하천이 나왔다.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아주 흡족했다. 수심도 어른 발목부터 배꼽정도로 적당하여 아이들과 어른들이 같이 놀 수 있었다. 우린 미리 준비해간 고무보트에 몇몇 아이들을 태우고 아빠들은 물고기 잡고 사내아이들은 잠수를 하며 신나게 놀았다.

이때 나는 물놀이 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폰을 들고 갔었는데 주머니에 폰이 있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다가 5분 쯤 지나 그걸 깨달았다. '헉!' 하며 물 속에 있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폰이 있었다. 이때의 현기증이란... 결국 폰은 사망했다. 하지만 폰의 죽음을 애도할 틈도 없었다. 강바닥에서 납작한 돌을 주워 사내아이들에겐 물수제비 구경시키랴, 송사리, 피라미 쫓아다니랴, 잠수하는 것 도와주랴, 다슬기 잡는 것 담아주랴, 물잠자리 구경시키랴, 정말 신나게 놀았다. 가장 좋은 것은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것이다.

4시간 정도 물놀이를 하고 텐트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대충 씻기고 옷갈아 입히고 풀숲에 방생했다. 이제 모든 캠핑의 하이라이트인 저녁 식사시간! 밥은 중요하지 않다. 안주가 중요한 순간이다. 아이들에게는 돼지고기와 계란프라이 등으로 먼저 먹이고 어른들은 말로만 듣던 제주도산 돼지고기 오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캠핑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장작과 숯에 불을 지펴 그 불로 고기를 굽는, 이때의 고기 맛은 숯향이 스며들어 환상적이다. 고기와 술과 밥을 맛있게 먹고 아이들은 불꽃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며 행복해 했다.

불꽃놀이 하는 아이들
▲ 사진3. 불꽃놀이 하는 아이들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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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저게 바로 북두칠성이에요."
"이야. 맞네! 저게 바로 북두칠성이야."
"외삼촌, 달에 오로라가 생겼어요!"
"저건 오로라가 아니라 달무리라고 하는거야. 그런데 정말 오로라처럼 예쁘구나."
"저게 바로 북극성이야. 저 별만 보고 가면 북극에 갈 수 있어."
"정말 신기해요."

아이들과의 대화 자체가 힐링이었다. 이후 아이들은 꿈나라로 향했다(사실 낮에 물놀이를 세게 하는 것도 어른들의 작전이다. 낮에 힘들게 놀아야 아이들이 일찍 잘 잔다. 그래야 어른들의 진짜 힐링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새벽 3시 정도까지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서로의 안부부터 여러 다양한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캠핑의 또 다른 묘미! 술이 취하지 않고 이야기가 참 잘 된다. 도시 술집과의 또 다른 분위기가 한 몫 하는 것 같다. 이야기 하는 내내 풀벌레 소리와 은근한 물소리가 분위기를 더욱 돋운다.

드디어 어른들도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이 되었다. 참 신기한 것이 있다. 아이들은 어찌 쉬는 날이면... 더군다나 캠핑오는 날이면 이리도 일찍 깨는 것인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빠들을 깨우고 난리다.

"아빠 차 열어 주세요. 아빠 차 안에 곤충 잡는 통있단 말이에요. 아빠 어서 일어나세요. 아빠!"
"아빠 라면 먹어요. 다 불어요. 어시 일어나세요. 아빠!"
"아빠 매미 잡아줘요. 바로 저기 있단 말이예요. 아빠!"
"아빠는 왜 캠핑와서 잠만 자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줄꺼예요. 어서 일어나요. 아빠!"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아빠가 바로 산타할아버지"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9시쯤 약간 지끈한 머리를 잡고 일어났다. 아이들은 이미 잠자리 잡으러 모두 출동한 상태. 더운 것을 예상하고 왔으나 이곳은 바람이 아주 시원했다. 새벽에 잘 땐 침낭을 꼭꼭 덮고 잘 정도였다. 아침에 일어나 삼너구리(삼양라면과 너구리를 합한 라면)를 먹고 아이들은 또 실종되고 아빠들은 철수를 준비했다.

1박 2일 동안 참 즐거운 경험을 했다. 간만에 가족들이 모인 것만 해도 즐거운 일인데 이렇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니, 뜻깊었다. 우린 8월 부모님을 모신 캠핑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가족 단체사진.
▲ 사진4. 가족 단체사진.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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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우에게 물었다.

"시우야 재미있었어?"
"네 아빠 율건이와 수영하고 벌 잡은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율건이 집에 우리 또 놀러가요."
"그래? 그럴까? 좋아 방학 때 엄마에게도 말해서 한 번 가보자."

말로만 '누구랑 사이좋게 지내라, 재미있게 놀아라'라고 반복 하는 것보다 이렇게 살 부대끼며 하루 노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TV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고, 공부도 없는 곳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니 저희들끼리 알아서 잘 논다. 땅도 파고 도랑물도 휘저어 보고 물고기도 보고 별자리도 보고, 궁금하면 엄마아빠에게 물어도 보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는 것이다.

동생 율건이와 포즈중인 시우
▲ 사진5. 동생 율건이와 포즈중인 시우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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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캠핑하기 참 어렵다. 예약이 힘들기 때문이다. 사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적도 있다. '이 모든 것이 TV의 예능 프로 때문이야. 그래서 캠핑용품 가격도 오르고 비매너의 캠퍼들도 늘어나는 거야. 자리도 잡기 어렵고. 으, 정말 짜증나는군.'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허나 최근의 생각은 바뀌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단위로 캠핑을 오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아이들이 어릴 때 가족들과의 추억을 만드는 것이고 대화의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며, 또 자연과 함께 숨쉬며 환경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도시에 있으면 단지 각자의 일을 하며 TV나 컴퓨터로 시간을 죽이게 될 텐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여러모로 장점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의 가족들은 변하고 있다. 가족이 변한다는 말은 아이들이 건전하게 자라고 있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건전하게 자란다는 말은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사회가 보다 더 건전해 진다는 말이다.

오늘도 다음 캠핑장을 예약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다. 캠핑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여름은 보다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다.


태그:#가족캠핑,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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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보다는 협력, 나보다는 우리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책과 사람을 좋아합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일의 걱정이 아닌 행복한 지금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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