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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보이네."

 

대피소 아래층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이 기상나팔처럼 아래층에 누워있던 남자들과 위층의 여자들을 일으켰다. 나도 벌떡 일어났다. 잠은 이미 3시부터 깨어 있었다. 그때 화장실에 가면서 본 안개는 쉬이 가실 기세가 아니었다. 일출 보기는 그른 날씨였다. 그러니 나는 새벽 댓바람부터 천왕봉에 오를 이유가 없다. 느지막이 움직여도 된다.

 

오늘은 천왕봉에 올라갔다 내려와 세석대피소까지만 가면 된다. 산행이 아니라 산보처럼 느긋한 걸음으로. 그런데 별이 보인다면… 서둘러 바람막이 점퍼와 헤드랜턴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선다. 별이 어디 보여? 하늘도 땅도 온통 어둠과 안개뿐이다.

 


장터목은 그 옛날 북쪽 기슭의 마천 주민과 남쪽 기슭의 시천 주민들이 만나 물물교환을 했던 장소란다. 매년 봄과 가을에 생산품을 지고 올라와. 지금은 천왕봉 일출을 보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새벽 댓바람부터 장터마냥 북적인다.

 

새벽 4시, 랜턴 불빛이 줄지어 천왕봉으로 향한다. 천왕봉까지는 1.7㎞. 오늘 일출시간은 5시 20분. 내 걸음 속도로는 발을 부지런히 놀려야 그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 어둠과 안개 속을 걸으니 한눈 팔 일은 없다. 어젯밤 기진맥진 쓰러졌던 몸인데, 걸을 만하다. 무거운 배낭도 벗어놓고 나왔으니. 제석봉을 지나 5시 쯤 통천문을 통과했다. 안개 속에서도 어느새 여명이 깔렸다. 랜턴을 끄고 얼마간 더 가파른 암벽 길을 오른다. 마침내 천왕봉 정상이다. 해발 1915m.

 

바람 부는 천왕봉... 까딱하단 날아가겠네

 


지난 번 종주 때 H는 통천문을 통과하며 말했었다. 천왕봉에 오르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산행 초짜가 악천후 속에서 2박3일 죽을 둥 살 둥 고생 끝에 정상에 도착했으니, 감개무량할 일이다. 그래, 눈물 나게 가슴 떨릴 일이다.

 

그는 정말 정상에 올라 떨었다. 무섭다며 떨었다. 천왕봉 정상은 몇 발짝 끝으로 사방이 암벽 낭떠러지였다. 안개에 둘러싸여 있어 그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이 더 까마득하게.

 

그는 거기까지 오면서도 절벽 길을 만나거나 암벽을 오르내릴 때면, 공포에 질려 얼굴이 딱딱하게 굳곤 했었다. 그래도 남자라고 보호본능을 발휘해 "조심해요", "위험해요"라며 나를 연신 챙겼다. 나는 절벽 끝으로 일부러 다가가거나 바위 위를 폴짝폴짝 건너뛰며 "어유, 무서우세요? 많이 무서우세요?"라며 얄밉게 그를 놀려먹었다. 결국 그날 그는 천왕봉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해 뜬다! 내 옆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소리친다. 와아~ 환호성을 길게 지를 새도 없이 동쪽 하늘은 다시 안개로 덮였다. 잠시 후 또 하늘 한쪽에서 안개가 걷혔다. 붉은 기운이 서린 하늘이 반짝 보인다. 와아~ 또 몇 초간이다. 급류처럼 흘러와 눈앞을 가로막는 안개.

 

내 옆의 중년 남자가 스마트폰을 열어 천왕봉에서 찍은 일출 사진들을 보여준다. 오늘 못 본 일출을 사진으로라도 보라는 듯. 부산에서 산다는 그는 지리산을 수십 번 종주했단다. 왜 그렇게 많이 왔냐고 내가 물었다.

 

"올 때마다 뭘 빠뜨리고 갑니다. 내가 좀 칠칠맞거든요. 잃어버린 걸 찾으러 왔다가 또 빠뜨리고 다시 찾으러 왔다가… ."

 

근처에서 왁자하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바람이 거세다. 잘못 서 있다간 까딱 날아갈 것 같다. 청년들이 바람과 맞서 "와! 와!" 소리를 지른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적힌 천왕봉 표지석을 끌어안고 바람 속에서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적이다. 하얀 와이셔츠 차림에 넥타이를 맨 어린 청년들이 보인다. 내가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멋지다고 말했더니, 친구들이 "미친 컨셉이에요!"라고 짓궂게 소리친다.

 

초원과 관목과 고사목의 풍경 위로 퍼진 햇살


 


6시가 가까워져 간다. 조용하다. 안개만이 바람에 밀려 허공을 거칠게 내달린다. 모두 내려가고 이제 남은 사람은 칠십 노부부와 그들의 아들과 나뿐이다. 우리는 바람을 피해 동쪽 바위틈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칠십 중반의 노부부와 그의 아들도 성삼재부터 2박 3일 걸어왔단다. 체력과 인내가 대단한 분들이다. 그러나 지금 노부부는 조금 낙망한 표정으로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이라도 안개가 걷히면 좋으련만.

 

남한 내륙에서 가장 높이 솟아 있는 천왕봉. 백두대간의 남쪽 끝이다. 이곳에서 백두산까지 1400㎞ 이어지는 우리 국토의 등줄기 백두대간. 지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대간꾼들이 있다.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지난번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하산하는 길에 그들을 만났다. H와 나는 6월 26일 천왕봉에서 내려와 백무동으로 하산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 그 길을 타고 천왕봉으로 오르는 중이었다. 그들이 백두대간 종주 첫발을 내딛은 날이었다. 팀 이름이 호프덕(HOPE DUCK)이라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쓴 백두대간 종주기 <희망을 걷다>를 읽고 감동을 받아 다섯 명의 청춘이 뭉쳤다고 했다. 나 역시 <희망을 걷다>를 읽고 한동안 그 깊은 울림에 가슴 떨렸었다. 그의 도전과, 고된 여정과, 사람과 자연과 국토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들… 그 힘든 길을 왜 가냐고 호프덕에게 물었다. " 걸으면서 그걸 생각해보려고요." 그들 중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들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한여름 폭음과 폭우 속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며 걷고 있을까. 두 달여의 긴 여정 끝에 마침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면, 백두산까지 백두대간을 완주할 날을 다시 꿈꾸기 시작할까.

 

나는 그 길을 조금 뒤따르듯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 걸을 것이다. 지난 번 종주와는 반대 방향으로 걷는 거다. 아예 느릿느릿 걷기로 작정하고 길게 날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면….

 

터벅터벅 장터목대피소로 내려오는 길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지리산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구상나무를 눈여겨본다. 얇은 종잇장처럼 일어난 사스레나무의 수피를 훑어본다. 그런데 제석봉 조금 못 미쳐서다. 갑자기 안개가 걷힌다. 어떤 징조도 없었는데.

 

하늘이 파랗게 변한다. 시야가 열린다. 뒤돌아보니 천왕봉의 장엄함 자태와 뻗어 내린 산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나는 마치 개벽을 목격하는 양 심장이 쿵쿵쿵쿵 뛴다. 남쪽 산맥 저 멀리 운해가 흐른다. 제석봉의 초원과 관목과 고사목의 풍경 위로 햇살이 퍼진다. 나는 한참이나 거기 붙들려 있었다.

 

장터목으로 내려와 서쪽으로 반야봉과 노고단을 조망한다. 만복대, 고리봉,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북쪽 능선들도 훤히 눈에 들어온다. 끝도 없이 유장하게 흘러가는 연봉들. 장쾌함! 산위에서 천하를 굽어보는 기분이다. 땀 흘려 산에 오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지리산 북쪽 능선 끝 바래봉 아래,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눈으로 짚어본다. 아, 내가 저기서 살고 있구나! 지리산자락 굽이굽이 흘러가는 저 산기슭… 쉬이 눈을 뗄 수 없다. 아름다운 풍광, 맑은 공기, 물, 기운… 나는 지리산의 '크나큰 시혜' 속에 살고 있었다.

 

어제 걸은 그 길이 오늘의 이 길이 아니다

 


지난 번 종주에서는 구름과 안개와 빗속에 갇혀 지리산의 위용을 볼 수 없었다. 이번에는 날짜를 잘 잡았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지리산은 광대무변한 변화를 보여준다. 그 시각 서울과 중부지방은 장맛비에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남부지방은 폭염 속이었다. 장터목의 기온은 17도였다.

 

아침은 장터목대피소관리 직원에게 뜨거운 물을 얻어 전투식량을 푹 익혀 먹었다. 친절한 직원이 건네준 사과도 한 개 먹었다. 그에게서 '산 사람' 얘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그가 타준 원두커피도 두 잔이나 마셨다. 어제의 피로가 완전히 가셨다.

 

9시 조금 지나 세석평전을 향해 떠난다. 자연의 변화와 순환 속에 온전히 몸을 섞는다. 바람과 햇살이 찰랑거리는 숲으로. 어제 걸은 그 길이 오늘의 이 길이 아니다. 나도 어제의 내가 아니다.

 

해발 1730m의 연화봉을 넘어 고지대의 넓은 들판을 지난다. 지리털이풀 꽃과 범의 꼬리 꽃과 참조팝나무 꽃들이 만든 천상의 여름화원 속을. 다시 흙길과 돌길을 걸어 삼신봉을 넘는다. 거북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굽이치는 능선과 산줄기들을 조망하랴 자주 멈춘다. 지의류와 이끼와 버섯들의 동고동락을 구경하랴 나무의 몸통에 눈길이 자꾸 잡힌다. 기이한 암석들과 여름 야생화들도 번번이 내 발목을 붙잡는다. 혹, 멧돼지나 노루나 너구리같은 산짐승들이 보이지 않을까 숲을 기웃거린다. 호 호 호 호오~, 츠으삐 빗~ 스치빗, 스치빗… 산새들의 지저귐이 청량하다.

 

신생대 지각운동에 의해 백두대간이 일어섰다. 지리산은 3000만 년 전에 태어났다. 대부분 변성암인 편마암 지질지대로 오랜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흙산이다. 둥글고 부드러운 수많은 능선과 계곡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 그러나 지리산의 야생은 훼손되어 갔다. 원시림은 사라져갔다.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는 인간의 무분별한 사랑(?) 때문이다.

 

"산의 주인은 산에 사는 생명들입니다. 우리는 객입니다."

 

아침에 원두커피를 타준 장터목대피소 관리직원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의 야생성을 복원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의 의지에 불이 붙었다. 여기저기 나 있던 많은 등산로들이 차단되었다. 특별보호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 늘었다. 반달곰이 방사되어 야생에 적응하며 살고 있다. 올 10월이 되면 지리산 야생 반달곰이 스물아홉 마리가 된단다. 걷다 보면 곰과 관련된 경고문이 눈에 많이 띈다.

 

지리산의 모든 대피소는 예약이 필수다. 지난해까지는 예약하지 않고 올라온 사람들도 느슨하게 받아주었는데 올해부터는 턱도 없단다. 비박꾼들 단속도 강화 되었다. 이제 지리산 비박을 하려면 가슴 졸이며 단속을 피해 숨어 다녀야 한다. 편안한 기분으로 야영을 하며 산을 즐기기는 틀렸다.

 

입산시간 지정제도 철저하게 실시되고 있다. 야영과 야간산행을 막기 위해서다. 노고단 등반도 오후 3시 30분이면 노고단 고개에서 차단된다. 7월 20일부터 8월 11일 사이에는 예약제로 하루 일곱 번만 열린다. 자기가 만든 쓰레기는 각자 들고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인간과 자연과의 공생공존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지나간 발자국이 혹… 저어하며 조심조심 걷는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길고 험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오후 1시께, 촛대봉에 도착했다. 발 아래로 세석평전이 펼쳐졌다. 뒤로는 천왕봉부터 오늘 지나온 제석봉, 연하봉, 삼신봉과 능선이 이어져 온다. 능선 양옆으로 계곡과 산줄기가 뻗어 내렸다. 풍광이 말 그대로 장엄하다. 아름답다.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대피소까진 0.7㎞ 남았다. 촛대봉 바위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앉는다. 천왕봉 방향으로. 바위양지꽃이 여기저기 노랗게 피었다.

 

밀크 빵 하나와 찐 달걀 두 개로 간단하게 점심 요기를 한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를 걷는다>를 펼친다. 예순 두 살의 베르나르와 함께 배낭을 메고 실크로드를 걷기 시작한다. 두 시간 정도 그와 도보여행을 즐겼다. 간간히 고개를 들어 눈앞의 풍광을 감상하면서. 평화롭고 달콤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개미 몇 마리가 팔뚝을 타고 올라 왔다. 잠자리가 무릎에 앉기도 했다.

 


세석대피소를 향해 천천히 세석평전을 내려간다. 미역줄나무, 오이풀, 뱀무, 종덩굴, 말나리, 주황빛 처연한 동자꽃, 긴 꽃대 끝의 비비추….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1980년대까지의 무분별한 야영과 취사로 황폐해진 세석평전의 생태계가 복원돼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들의 발길을 제한하며 지리산의 생태계를 보호하려고 애써도, 그 모든 노력들이 한 방에 '물먹을' 수 있다. 생태계에 일대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다.

 

국립공원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게 바로 그거다. 구례, 산청, 함양, 남원의 지자체에서 기싸움을 하며 지금도 경쟁적으로 케이블카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지역경제의 활성화라는 명목 아래.

 

그런데 찬성하는 사람들은 "케이블카 만들려면 돈이 돌잖아. 또 케이블카 타겠다고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개떼처럼 몰려올 텐데, 산을 깎든지 뭉개든지 똥을 싸든지 뭉개든지… 그 통에 돈 버는 거지. 환경? 자연보호? 개뿔! 돈이 최고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케이블카를 놓으면 산을 타지 못하는 노인과 장애인들이 우리의 명산을 구경할 수 있게 된다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그러니 반대하는 사람은 노인과 장애인을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천하의 나쁜 놈이다.

 


또, 하나는 지리산에 댐을 만드는 거다. 지난해, 내가 살고 있는 산내면 일대가 지리산댐 건설 문제로 술렁였었다. 국토부와 수자원공사가 경남 함양군 용유담 인근에 댐 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댐이 건설되면 명승지 용유담과 지리산의 칠선계곡과 마천면 일대가 물에 잠기게 된다. 그리고 산내면이 바로 댐의 상류가 된다. 반대 현수막이 도롯가 곳곳에 내걸렸다. 반대 촛불 집회도 일어났다.

 

한 번은 내가 인월에서 버스를 타고 마을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버스기사가 지리산댐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승객들을 향해 주장하기 시작했다. 버스에는 나와 대여섯 명의 어르신들이 타고 있었다. "부산 사람들이 마실 물이 없다, 사람이 물을 못 마시면 죽는다, 사람 죽게 놔둘 거냐, 인지상정이니…" 기사의 호소가 간절했다. 어르신들이 동요되었다. "사람이 죽는다는데, 그런 거라면 물을 줘야지, 댐을 만들어야지…" 착하신 어르신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듣다듣다 나는 그만 흥분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부산 물 부족은 낙동강 수질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먼저 4대강사업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식수용댐이라니 가당찮다… 감정적으로 어르신들을 선동하지 말라!"(현재 지리산댐은 홍수조절용댐으로 사업목적을 바꾸어 추진 중) 내 목소리가 기사의 목소리보다 컸나 보다. 어르신들이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죠"라며 기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올해 초 국회에서 지리산댐 건설 대안개발조사비를 전액 삭감시켜, 댐 건설이 주춤 하는 듯했다. 술렁거리던 산내면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그러나 지리산댐 건설이 여전히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어지럽게 돌고 있다.

 

갑자기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오후 4시 쯤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야외테이블에 잠시 혼자 앉아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천사 같은 사람들이 나를 부른다. 나는 마다하지 않고 거기에 낀다. 얌체 같이 숟가락, 젓가락만 챙겨들고. 열한 번째 지리산종주를 하고 있다는 김천 아주머니와 마라톤이 취미인데 지리산에는 처음 왔다는 수원 아저씨, 그리고 나. 우리는 셋 다 혼자 온 사람들이었다.

 

김치를 넣고 볶은 돼지고기와 오이김치와 라면과 소주도 한 잔 받았다. 어제 저녁 쫄쫄 굶던 생각을 하니 완전 호사다. 배불리 먹었다. 세석평전의 자연관찰로를 산책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오늘은 6.8㎞를 걸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길고 험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지리산능선 종주기는 네 편으로 나뉘어 올립니다. 네 편 각각 다른 주제를 다룹니다. 
1편-짐, 2편- 자연, 3편- 역사, 4편- 동행  


태그:#지리산종주, #천왕봉, #세석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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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2017년도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출간. 유튜브 <은경씨 놀다>. 네이버블로그 '강누나의깡여행'. 2019년부터 '강가한옥펜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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