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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그만두자.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지난 밤 잠을 완전히 설쳤다.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왔다. 몸이 피곤하니 산행의 흥분도 싹 가셨다. 계곡의 절경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뭣 때문에 이 힘든 짓인가. 의미도 흥미도 시들해졌다. 고작 2.7가량 걸었을 뿐인데. 그것도 완만한 오르막길을.


지리산 자락 아래 사는 나는 왜 지리산 종주에 나섰을까

 

한신계곡 한 여름에도 한기를 느낀다는 한신계곡에서 쉬고 있는 등산객들


산행 첫 날(7월 9일)이다.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지리산능선 종주에 나선 길이다. 4(?) 4일의 긴 여정으로. 오늘 목적지는 장터목대피소. 대개는 백무동에서 하동바위 코스를 타고 곧바로 장터목대피소로 올라간다. 그런데 나는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협곡인 한신계곡을 타고 있다. 지루한 돌계단 코스보다 계곡의 절경이 나를 더 끌어당겼다. 바위를 치고 넘으며 힘차게 흐르는 물길이 장관이다. 그제까지 며칠 동안 쏟아진 폭우로 계곡물 소리가 우렁차다.

 

허덕허덕 가내소 폭포까지 올라왔다. 배낭을 벗어놓고 기진맥진 주저앉았다. 천둥처럼 물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거대한 물기둥이 10여미터 넘는 바위절벽 위에서 낙하하고 있다.

 

옛날에 이곳에서 한 도인이 수양을 했다고 한다. 마지막 수양에서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 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했다. 유혹에 넘어간 도인이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그가 "나의 도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 하여 '가내소'가 되었다는 전설. 나도 그 도인처럼 '가네'하고 여기서 돌아가야 하나.

 

이번 종주는 그만 접자라는 생각에 자꾸 빠져든다. 포기한들 문제 될 게 뭐 있나. 처음도 아니고. 사실, 23일로 지리산능선 종주를 하지 않았나. 그것도 13일 전,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H와 둘이. 그런데 나 혼자 이 고된 산행을 다시 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뭔가.


집으로 돌아가자. 되감기 버튼을 누르듯 확, 돌아서면 간단한 일이다. 집이 지척 아닌가. 계곡을 내려가 백무동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탄다. 20여분 후 산내 삼거리에서 내린다. 반야봉을 바라보며 뱀사골 쪽으로 만수천 둑길을 걷는다. 삼화교를 건너 동네로 접어든다. 집에 도착한다. 무거운 배낭을 벗어 버린다. 샤워를 하고 따뜻한 밥을 해먹는다. 떨어져서 흠모하는 이를 바라보듯 툇마루에 앉아 지리산을 바라본다…. 이렇게 지금 나를 유혹하고 있는 지리산녀는 ''.

 

어쨌든, 허기부터 채워야겠다. 오후 1시가 넘었다. 허겁지겁 맘모스 빵 하나와 방울토마토를 먹었다. 배낭 무게를 그만큼 줄였다. 먹고 쉬니, 기운이 다시 솟는 것 같다. 오기도 발동했다. 더 오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나는 나의 유혹을 뿌리쳤다.

 

산악회 회원들이 우르르 나를 추월해 앞서간다. 나는 천천히, 더딘 걸음으로 햇살 밝게 비쳐드는 여름의 짙푸른 숲과 계곡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뚝뚝 송이채 떨어진 함박꽃을 내려다보고, 산수국 청보라 꽃 속에 빠져들고, 바위취 하얀 꽃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빼들고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산뽕나무, 노각나무, 노린재나무, 비목을 살피고…. 갈겨니, 가재를 찾아 물속을 들여다본다. 산의 생명들과 동화되어가는 시간, 어떡하든 나 역시 자연의 한 귀퉁이가 되기 위해.

 

한신계곡 가내소 폭포


계곡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출렁다리와 나무다리를 여러 번 건넌다. 내내 깊고 넓은 계곡을 옆에 끼고 오르는 길이다. 우릉우릉 꽝꽝 우릉…. 계곡물소리가 산의 모든 소리를 쓸어안고 아래로 흘러간다. 나는 그 반대로 에메랄드 물빛의 소들과 하얗게 부서지며 흘러가는 물줄기들을 수없이 거슬러 올라간다.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숨은 차오른다. 다리도 아프다. 이상하게 배낭은 갈수록 무거워져가는 것만 같다. 이번 산행을 계획하며 내가 가장 신경 쓴 것은 날씨와 배낭 무게였다. 나흘 동안 산길을 걸으려면 최대한 배낭 무게를 줄여야 했다.

 

밥을 해먹지 않기로 했다. 버너나 코펠 같은 화기와 쌀과 밑반찬들이 빠지면 짐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대피소에서 아침 저녁으로 즉석밥을 사먹고, 점심은 빵이나 초콜릿으로 때우면 된다. 그래서 빵과 초콜릿, 김치, 전투식량 세 봉지만 챙겼다. 그런데도 이런저런 물건들로 배낭이 꽉 찼다. 그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오르막길을 숨차게 만든다.

 

짐이 인간을 말해준다고 했던가?

 

세석평전 세석평전 무거운 배낭을 지고 허덕이며 H가 안개로 덮인 세석평전을 걷고 있다.


난코스로 들어섰다.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세석까지 줄곧 1.4. 육체적인 고통이 어떤 한계 지점을 넘어서면 머릿속이 하애진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사라져 버린다. 오로지 몸의 고통만이 생짜로 팔딱거린다. 내 몸이 살아 움직이는 조화 속을 절로 실감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 발 한 발. 힘겹게 발을 위로 내딛는다. 헐떡헐떡 숨을 가쁘게 내쉬며. 한 손엔 카메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땅을 짚어가며 세 발로 기다시피하며 전진한다. 죽어라고.

 

계곡물 소리가 끊겼다. 햇빛도 사라졌다. 정막이 감도는 가파른 숲으로 안개가 두껍게 밀려 내려온다. 지난번 지리산종주에서 H와 나는 3일 내내 안개 속을 걸었었다. 비를 쫄딱 맞으며 걷기도 했다. 내가 오늘 이 길로 다시 나선 이유였다. 맑은 날의 지리산이 궁금해 안달복달했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이번에도….

 

짐 배낭- 저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뒤에서 스틱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거대한 배낭을 짊어진 남자 둘이 올라오고 있다. 그들도 지리산종주를 막 시작한 길이라고 했다. 2박3일 일정으로. 나는 안개 속으로 앞서 들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우두망찰 지켜본다. 문득, 저 큰 배낭 속이 궁금해진다. 무엇이 들어 있을까? 내 짐보다 몇 배는 더 무거워 보이는데, 먹을 것, 갈아입을 옷가지, 침낭.

 

지난번 종주에서 H는 무거운 배낭 때문에 고생을 호되게 했었다. 산행 초짜가 70리터짜리 배낭을 처음 짊어지고 지리산종주를 했으니. 그의 배낭엔 그 여정에 한 번도 쓰지 않은 라디오와 휴대폰 충전기와 10단 바람막이와 핫팩과 소주 세 병 그리고 다른 무언가가 더 있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물건들은 배낭 속 어디에 들어있는지, 그때그때 찾지도 못했다.

 

다비드 드 브르통은 산문집 <걷기 예찬>에서 '여행의 안락은 짐을 잘 꾸리느냐 못 꾸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노련한 계산'이 필요하다며. 또 짐 꾸리기에도 각자의 기벽이 있다 했다. 누군가는 초콜릿을 많이 지니고, 누구는 프루스트 전집을 챙기고, 누구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옷을 많이 꾸리고, 누구는 라디오를 꼭 챙긴다며. '짐은 인간을 말해준다'라고 했다.

 

나도 이번 산행에 챙겨 온 무거운 물건이 있다. DSLR 카메라. 무슨 전문 사진작가라도 되는 것 마냥. 그걸 내내 손에 들고 걸으며 셔터를 눌러댔으니 폼은 그럴 듯해 보였을 거다. 그리고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를 가져왔다. 독서광처럼. 500쪽 가까운 두꺼운 책을.

 

2001년도에 인도 배낭여행을 했던 때가 생각난다. 어깨를 찍어 누르는 무거운 짐을 한동안 짊어지고 다녔었다. 말 그대로 돌덩어리를 짊어지고 다녔다. 그 당시 나는 한참 ''에 빠져 있었다. 규암, 반려암, 이암, 역암, 점판암, 화강암, 현무암, 편마암 덩어리들.

 

한신계곡 가파른 길


그러니까 나는 가끔 가깝거나 먼 여행에 나설 때마다, 그 지역의 지질을 이루는 암석을 하나씩 주워오곤 했었다. 그 주변 길거리에 뒹구는 가장 흔한 돌 중에서 크기와 모양과 색과 무늬를 따져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다. 혹은, 반대로 그 지역의 특징과 먼 것을 선택하기도 했다. 화강암 너덜지대 속에서 드물게 박혀있는 퇴적암을 찾아내는 것처럼.

 

내가 수집한 돌은 나의 여행 기념품이고, 자연이 만든 예술품이고, 수천 수억만 년이 응축된 시간이고, 시고, 토템이라고 거창하게 의미도 붙였었다. 일종의 수집병이고 중독이었다.

 

그러니 붉은 성 아그라포트에 가서는 그 주변에서 주먹만한 붉은 사암 덩어리들을 주웠다. 아잔타동굴에 가서는 그 건너편 산 위로 올라가 흰 수정과 자수정이 잘게 박힌 돌들을 찾아 챙겼다. 배낭은 점점 더 무거워져 갔다. 나중에는 메고 일어서지도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여행을 계속하려면 그것들을 버려야 했다. 두어 달을 그러고 다니다가 결국, 보드가야에 가서야 다 버렸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 근처였다. 돌을 내려놓고 대신 보리수나무 잎 한 장을 주웠다. 가이드북 사이에 끼워 넣었다. 지금도 마른 보리수나무 잎이 그 책갈피에 끼어 있다.

 

무거운 짐 진 자는 산 위에서 배불리 먹을 것이요

 

숲 안개 깔린 숲

악전고투 끝에 마침내 세석평전에 올라섰다. 그러나 안개가 사방 휘장을 쳤다. 눈앞이 온통 뿌옇다. 지난번과 똑같다. 나는 잠시 낙심했다. 그러나 내일 다시 이곳을 지나간다. 그때는 안개가 걷히지 않을까.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장터목대피소로 향한다. 안개 속에서 3.4를 쉬엄쉬엄 걷는다. 발치를 살피며. 멀리 조망할 수 없으니 가까운 것들이 더 잘 보인다. 야생화들의 낱낱의 꽃잎과 민달팽이 길과, 개미. 해발 1703m의 촛대봉을 지나고 삼신봉과 연하봉을 넘어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저녁 710. 오늘 나는 9.910시간 걸어왔다. 나로서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였다. 무리하게 많이 걸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몸이 채 적응되지 않은 산행 첫날이라 기력이 바닥났다.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배도 몹시 고프다. 춥다. 안개와 바람 때문이다. 빨리 햇반을 사먹고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쉬고 싶다. 그런데 아, 젠장! 대피소에서 햇반을 팔기는 하지만 데워주지는 않는단다. 김치 한 가지를 놓고라도 따뜻한 밥을 먹고 싶었는데.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으로 전기를 만들어 쓰는데 전기량이 부족해 그렇단다.

 

나는 할 수 없이 전투식량 한 봉지를 뜯어 찬물을 붓고 기다린다. 30분이 지나도 내용물이 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바람 덜 들이치는 내 옆자리 야외테이블에선 남자 한 명과 젊은 여자 둘이 저녁을 먹고 있다. 그들은 쌀밥을 하고 참치찌개를 끓이더니 양념에 재온 오리 주물럭을 볶는다. 밑반찬과 상추와 깻잎, 고추 같은 푸성귀들도 펼쳐져 있다.

 

나는 불쌍한 표정으로 자꾸 그쪽을 건너다본다. 꼴깍, 꼴깍 침이 넘어간다. 고기 한 점만 쌈 싸 주지 거절하지 않을 텐데…. 소주도 한 잔 기꺼이 받아 마실 텐데….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 세계에 빠져 옆자리의 배고픈 여자는 안중에도 없다. 그들은 연신 소주잔을 부딪치며 깔깔깔 흥취에 젖어 있다. 육해진미를 다 싸들고 왔나. 전복을 꺼내 굽기 시작한다. 나는 그만 눈물이 날 것 같다.

 

오늘의 명언이다

 

'무거운 짐 지고 수고한 자는 산 위에서 배불리 먹을 것이오, 그 수고를 마다한 자는 굶주릴 것이니.'

 

나는 차고 딱딱한 전투식량 몇 숟가락을 뜨고 저녁자리를 파했다. 이젠 너무 피곤해서 먹는 것도 다 귀찮다. 씻는 것도 그만두고 대피소로 들어간다. 담요 두 장을 빌려 들고 지정받은 내 자리를 찾아 마루바닥에 자리를 편다. 그대로 나무토막처럼 쓰러진다. 내일 뜰 해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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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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