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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녹색당은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지역에서부터 대안을 만들어가는 얘기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작더라도 눈에 보이고 경험할 수 있는 사례를 통해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불행의 악순환에 빠져 있습니다. 좌절과 무기력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우리의 생활과 동네, 지역부터 바꿔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를 제대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하려면 풀뿌리부터'입니다 [편집자말]
임정엽 전라북도 완주군수가 9일 오후 전라북도 완주군청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 2006년 완주군수에 취임한 뒤 7년 동안 재임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군민의 삶을 높이는데 실험해온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임정엽 전라북도 완주군수가 9일 오후 전라북도 완주군청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 2006년 완주군수에 취임한 뒤 7년 동안 재임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군민의 삶을 높이는데 실험해온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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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푸드가 뭐냐고요? 전 사람들에게 쉬운 말로 이야기합니다. '월급쟁이 농부', 그것이 바로 로컬 푸드여! 요즘 농촌에서 '투잡'하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릴까요?"

로컬 푸드 1번지로 꼽히는 전북 완주군의 임정엽 군수는 막힘이 없었다. 그는 특히 디테일에 강했다. 사업시스템과 시시콜콜한 수치까지 꿰찼다. 또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돈을 밝혔다." "농민들이 주인공이 되어 자발적이고 지속적으로 나서려면 소소한 돈벌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에게 돈은 붕괴된 농촌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는 수단이자 시뻘겋게 녹이 슬은 경운기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 윤활유다.

지난 9일 군청에서 만난 임 군수는 2시간여 동안 완주군표 실험과 도전, 그리고 작은 성공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임 군수와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지방자치 혁신에 대한 한편의 강연을 들은 느낌이었다. 지난 2006년 완주군수에 취임한 뒤 지난 7년 동안 재임하면서 그가 실험해온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임정엽 군수에게 완주군이란?
"전에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완주군에 산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크고 넓고 인구 많고 세수도 많은데 뭐하나 내세울게 없는 완주군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로컬 푸드 1번지, 농업농촌을 살리는 수도, 지역 경제 1번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달라진 7년이다.(웃음)"

- 매니페스토 경진대회 4년 연속 최우수상 수상, 그 비결은?
"약속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거짓말 하지 않는 일, 주민을 믿고 공무원들이 함께 일하는 게 그 비결이다.

- 군정 철학, 또는 평소 군 행정의 지침으로 삼고 있는 말이 있다면?
"주민이다.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모든 사업의 시작과 끝이 주민이다. 주민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지역의 미래가 없다. 논어에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라는 말이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찾아온다는 뜻이다. 내가 기쁘고 즐겁지 않은데 어떤 사람들이 여기를 찾아오겠나? 부러워하겠나?"

간단한 질의응답 뒤에 그는 사실상 강연에 들어갔다. 완주군표 혁신 모델 브리핑인 셈이다. 가급적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 않으려고 기자의 질문은 최소화했다. 그의 말을 부문별로 종합해 정리했다. 

▲ 임정엽 완주군수 인터뷰 임정엽 전라북도 완주군수가 9일 오후 전라북도 완주군청 자신의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역 발전을 위한 장기 발전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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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푸드] 매주 주머니에 돈이 탁탁!... 아들, 며느리가 돌아온다

"로컬 푸드의 1단계는 '건강밥상 꾸러미'다. 계란 10개, 두부 한모, 콩나물 한 봉이, 이 세 개가 기본이고 나머지 7-8개 묶어서 집에 배달한다. 소농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2단계는 직매장이다. 과거 짝퉁 직매장에서는 자본 있는 사람들이이 소비자와 생산자의 이익을 빼먹었는데 우리는 다르다. 현재 완주군 8800농가 중 800농가가 혜택을 받고 있다. '월급쟁이 농부'들이다, 앞으로 3000농가로 확대할 계획이다. 평생 자기 통장 없는 어머니들이 직매장에 자기 사진 걸어놓고, 자기가 가격을 매겨서 자기 상표로 출하한다. 매주 자기 주머니에 돈이 탁탁 꽂힌다. 농민들은 직매장에서 소비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얼굴 있는 먹거리이자 대면 거래다. 내년까지 이런 직매장 7개를 만든다.

한 직매장에서 300-500명이 먹고 산다. 요즘 직매장에 가면 도시로 떠났던 아들과 며느리를 볼 수 있다. 왜? 직매장에 참여하는 70% 이상이 60세 이상의 고령 농업인들인데, 아버지, 어머니의 벌이가 늘어나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돈을 버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가족농이 살아난다. 7개 매장에 수천 개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긴다. 일 년 내내 농사만 짓던 사람들에겐 '투잡'이다. 

해마다 와일드 푸드 축제도 한다. 첫해인 2011년에는 12만 명, 작년에는 15만 명이 왔다. 이 축제의 주인공은 주민이다. 가장 잘하는 요리를 만들어 판매한다. 150여개의 부스에 잡상인은 없다. 군에서 최종 심사해서 상품성이 있는 요리를 선별한다. 농촌 모니터 요원을 두고 팸 투어도 한다. 소비자들이 좋은 농산물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면 보여준다. 이런 방법이 대한민국 먹거리를 살릴 유일한 방식이다."

[마을공동체 회사] 현미, 돼지감자, 해초... 별난 두부 마을

"마을공동체 회사도 단계가 있다. 1단계는 '맛있는 마을, 멋있는 마을'이다. 주민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단계다. 여기서 자신감이 붙으면 소규모 공동사업인 2단계 '참살기 좋은 마을'로 진입한다. 3단계는 마을 단위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는 '파워빌리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주민이 출자한 마을회사를 만든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교육이 성공의 열쇠다. 용진면의 주민 160여명을 일본에 연수시켰다. 물론 연수를 가기 전에 6-7차례 교육을 했다.

두부를 만드는 마을은 7개다. 현미 두부, 돼지감자 두부, 해초 두부 등 별의별게 다 있다. 물론 유전자조작 콩이 아니다. 농민들이 지역에서 농사지은 콩이다. 폭리를 취하지 않고 제값을 받고 판다. 청국장 마을, 우리쌀빵 마더쿠키 사업단, 두레농장 등 현재 105개 지역에서 마을회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구이면 안덕마을은 1년에 6억의 매출을 올린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가공품 수익을 싹 가지고 갔는데 농민들도 가공품을 만든다. 이런 가공품을 이용해 수익도 올리고 먹거리를 복원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지점이 로컬 푸드다. 우리 종자가 없어진다고 난리들인데, 소농들이 종자를 복원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우리 몸에 익숙했던 토종 종자들을 이 방식이 아니면 살릴 수가 없다."

[두레농장] "요즘은 며느리도 나한테 꼼짝 못해, 왜냐고?"

"두레농장은 복지형 공동체 사업이다. 마을 내에 공동농장과 공동식당을 만들어 어른들의 일자리, 소득, 건강을 보장하는 생산적 복지모델이다. 65세 이상 70세가 넘은 농부들은 돈이 없다. 하드웨어는 군에서 지원한다. 그들은 외롭고 자주 아프다. 그런데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이 함께 일하니까 외롭지 않다. 소득도 생긴다. 한 할머니가 제게 이런 말을 했다. '요즘은 우리 며느리도 나한테 꼼짝을 못해, 손주 녀석 등록금을 줬거든.' 가정과 마을에서 어른의 역할을 찾으니 가정과 마을이 건강해진다.

여기에 보너스가 따른다. 이분들이 원래하던 일은 아침에 일어나서 물리치료 받으러 가는 것이다. 왜? 국민건강보험에서 돈을 다 내주니까. 기초생활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은 돈도 안낸다. 그런데 그 돈은 국가 의료재정에서 충당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국가 의료재정에도 도움이 된다. 어르신들은 이제 퇴역군인이 아니다. 그 분들이 농촌의 주인공이다."

[커뮤니티 비지니스] 1억 원 버는 농부 만들기? 빛 좋은 개살구

임정엽 전라북도 완주군수가 자신의 군정 지침으로 삼고 있는 논어의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라는 말을 소개하며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찾아온다는 뜻이다. 내가 기쁘고 즐겁지 않은데 어떤 사람들이 여기를 찾아오겠나"고 말했다.
 임정엽 전라북도 완주군수가 자신의 군정 지침으로 삼고 있는 논어의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라는 말을 소개하며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찾아온다는 뜻이다. 내가 기쁘고 즐겁지 않은데 어떤 사람들이 여기를 찾아오겠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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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은 다 고장 났다. 정부는 그동안 농촌 경쟁력을 강조하면서 승자독식의 사회를 만들었다. 힘없는 사람은 농촌을 떠나라고 윽박질렀다. 대신 기업농, 전업농을 양성했다. 수십조 원을 때려 박았다. 그런데도 농촌은 죽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1억 이상 농부 만들기 프로젝트'가 있는데, 1억 버는 사람 50명, 100명을 키우면 뭐하나? 99.9% 농민들에게는 혜택이 없다. 설령 1억 원을 번다해도 대부분 빚더미다. 빛 좋은 개살구다.

이젠 농촌 문제와 전면전을 해야 한다. 커뮤니티 비즈니스센터는 주민과 행정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중간 지원조직이다. 5개 부문별로 현장전문가들이 주민들과 활동하면서 사업을 진행하고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행정에 역제안한다. 주민들이 '읍면 마을 장기발전계획'을 짠다. 주민들이 세운 계획 중 27건은 올해 군 예산으로 반영해서 실행한다. 또 읍면 자체적으로 세운 50여건도 진행한다.

지역 문제를 풀 사람은 잘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다. 돈 많이 들여서 외부 컨설팅을 하는 데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효과가 없다. 지난 정부가 사회적 기업 육성정책을 폈는데, 영양제 주입방식이었다. 영양제가 떨어지면 끝이 났다. 결국 지역의 자원과 자산,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지역의 미래를 모색해야 답이 나온다."

[산림 바이오매스타운] 먼지 한 톨 버리지 않는 독일, 우리는?

"(독일에서 가져온 자료를 펼쳐 보이면서) 독일은 작은 나무를 합쳐서 기둥을 만든다. 지름이 12cm 되는 작은 나무에 골을 파서 볼트와 너트 형으로 만들어 딱딱 맞춘다. 여기 파인 곳에 끼우면 내부와 외부 마감이 된다. 전기선은 이런 파인 홈으로 넣으면 된다. 단열효과도 엄청나다. 우리나라는 25평짜리 집에 25KW 보일러를 놓는데, 독일 사람들은 30평 집에 9KW를 설치한다.

독일에서는 목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켠다. 치수별로 이렇게 잘라서 도시로 가져간다. 나무를 자를 때 분진을 이렇게 빨아들인다. 이건 나무 펠렛의 재료가 된다. 또 폐목으로 열병합시설을 돌린다. 나무 먼지 한 톨 남기지 않는다. 어차피 썩는 나무인데, 에너지도 만들고 일자리도 만들고 자연도 살린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산에서 돈 되는 나무만 갖고 내려온다. 많은 나무들이 산에서 썩는다. 나무의 30%도 사용하지 못한다. 여름에 베는 나무는 습기가 많아서 10%도 재활용하지 못한다. 지금 고산 자연휴양림에 산림바이오매스 타운을 조성한다. 나무 공장에서부터 열병합발전 시설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시범 실시한다. 교육관도 지어서 우리나라 바이오매스 정책을 견인할 생각이다."

[햇빛발전] 공공건물 모든 옥상에 햇빛발전소 지으려는데...

"햇빛발전은 어려움이 많다. 완주군은 협동조합 방식으로 사업을 하려고 조합원을 모으다가 멈춘 상태다. 공유재산 임대에 관한 법률이 문제다. 가령 우리 군청 건물 옥상에 햇빛발전을 세우려면 부동산 평가를 한 뒤에 그 가격에 빌려줘야 한다.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옥상 쪽을 가리키면서) 이 남는 것, 이 노는 것에 돈을 내라니, 채산성이 있겠나? 그래서 우리는 공익과 교육을 위해서는 임대요율을 낮추거나 무상으로 임대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법이 개정된다면 우선적으로 군청사, 지역 면사무소, 지역경제순환센터, 공공급식 지원센터, 마을회관 건물 등에 햇빛발전소를 세울 예정이다. 2000여 평 된다. 또 조그마한 판넬 크기의 태양광 모듈이 25와트 용량이다. 아파트 베란다에 올리면 선풍기 한대쯤은 돌릴 수 있다. 개인이 쓸 수 있는 모듈을 만들어서 보급할 예정이다."   

[남은 임기동안 무엇을?] 농촌이 튼튼해야 도시가 살아난다 

"농촌이 뿌리면 도시는 꽃이다. 뿌리가 튼튼해야 꽃도 피울 수 있다. 농업 발전 없는 선진국은 거의 없다. 농업이 본질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의식주가 있다. 지금까지 주력한 것은 '식'이다. 밥상 혁신을 통해서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려 했다.

두 번째로 시작한 길은 '주'다. 주거 문화를 바꾸고 있다. 집이 기업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뒤에 한민족의 집이 없어졌다. 우리 자식들이 폐기물 처리와 매물비용까지 다 짊어져야 한다. 우리는 흙 건축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흙과 나무로 집짓는 법을 가르친다. 오는 9월에는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의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포럼도 연다. 주거문화를 바꾼다면 거기에 또 엄청난 일자리가 숨어있다. 내가 두 번째 가고 싶은 길이다. 이미 시작했다.

세 번째는 '의'다.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옷장사들이 돈을 최고로 벌려고 개념 없이 만들었다. 물론 기능성 옷은 더 개발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입는 내의는 우리가 만들 수 있다. 여기에도 어마어마한 일자리가 있다. 동상면에 'Hemp(삼베) 전시관'을 열었는데 대마를 활용한 다양한 친환경 삼베제품을 전시·판매하는 공간이다. 이 영역은 남은 임기동안 시범사업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친 뒤에 임 군수의 책상 위를 훑어보았다. 국내외 자치단체와 관련된 각종 문서와 보다만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임 군수가 군정 지침으로 삼고 있다는 '근자열 원자래'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보물창고 같았다.  


태그:#임정엽 완주군수, #로컬푸드, #마을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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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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