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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정부는 지난 12일(현지시각)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이 훈센 총리의 요청에 따라 해외 망명 중인 통합야당 캄보디아 구국당(CNRP) 총재인 삼랭시를 특별 사면한다고 밝혔다.

패이 시판 정부 대변인은 이날 "삼랭시의 모든 혐의가 풀렸다"며 "그는 이제 자유인"이라고 밝혔다. 대변인은 이어 "삼랭시의 귀국을 환영하는 바이며, 그는 언제든 모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8년 정계에 입문,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부상한 삼랭시 야당 총재는 28년째 장기 집권해온 훈센 총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캄보디아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존재다.

그는 지난 2009년 베트남과의 국경지대인 스와이 리엥(Svay Rieng)주에서 베트남이 캄보디아 자국 영토를 잠식시키기 위해 부당하게 표식을 설치했다면서 임시 국경 표식을 뽑아버렸으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글맵 지도정보를 유포한 바 있다.

또, 하오 남홍 외무부장관이 크메르 루즈 체제의 핵심 인사였다는 과거 전력에 대한 비판 발언 등 2가지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로 기소돼 궐석재판에서 11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로 인해 훈센 총리 정권의 탄압을 피해 지난 2009년 출국 후 지금까지 해외를 떠돌며 망명생활을 해왔다.

시하누크 전 국왕의 집권 시절에는 재무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삼랭시는 그동안 프랑스를 근거지 삼아 해외망명 생활을 이어왔다. 또 캄보디아의 민주화운동 확산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전 세계를 순회하며 야당지도자들과 민주세력들에게도 지지를 호소해왔다. 국내 언론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금년 6월초 우리나라를 전격 방문, 수천여 명이 넘는 산업연수생과 유학생 등 야당 지지자들로부터 가히 폭발적인 환영과 지지를 받기도 했다.

지난달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에 사면을 요청한 삼랭시는 사면 발표 후 한 언론사의 전화 통화에서 "야당지도자가 총선 기간에 귀국을 허락받는 것은 민주주의에 있어 조그만 승리"라며 자신의 사면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아직 할 일은 많이 남아있다"며 "며칠 이내 귀국해 캄보디아 구국당 총선 캠페인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대변인은 삼랭시가 돌아올지라도 총선에 출마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총선을 불과 보름여 앞둔 시점에서 총선 출마 여부가 이번 선거의 최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삼랭시의 사면은 시하모니 국왕이 훈센 총리의 강력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됐다. 하지만 많은 캄보디아 국민들이 이번 사면을 현 국왕의 단독의지가 아닌 최고 권력자인 훈센 총리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정면돌파를 선택한 훈센의 정치 스타일, 그리고 계산된 전략

34살에 세계 최연소 총리로 취임한 이래 28년째 장기집권중인 훈센 총리는 시하모니 국왕에 보낸 편지에서 "삼랭시의 사면은 이번 선거가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치러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과 여당에 대한 민주세력의 공세를 무마하려는 의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번 훈센 총리의 사면 요청은 "28일 치러질 총선에서 삼랭시가 배제되는 것은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선거의 합법성에 중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라는 주장이 미국 등으로부터 나온 후 전격적으로 행해졌다.

한편에서는 미국국무부와 미국개발처(USAID)가 약 7천만 달러에 달하는 원조금을 삭감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이도 일부 있다. 또, 삼랭시 총재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총선을 앞둔 7월 20일 전후로 귀국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온 만큼, 정치적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훈센 총리가 사면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견해도 상당수다.

하지만, 이번 사면은 미국 등 주변 강대국들의 압력에 굴복하거나 '야당 탄압 독재국가'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이번 7월 총선에서 확실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훈센 총리가 벌인 일종의 도박(?)으로 보는 견해가 더 큰 설득력을 얻는다.

30여 년이 넘는 험난한 정치 역정에서 훈센 총리는 위기의 순간마다 시하누크 전 국왕과 달리 어정쩡한 타협 대신 과감한 정면 돌파로 문제를 해결해왔다. 그 예로 지난 1997년에 연합정부의 한축이었던 훈신펙당과 무력충돌을 통해 권력을 쟁취한 바 있다. 이번 사면조치 역시 그의 성격상 참모나 주변의 조언을 받아들었다기보다는 그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이뤄진 결정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훈센 총리가 이러한 중대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5년 만에 다시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서 그 어느 선거때보다 압승할 수 있다는 나름의 자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치러진 총선에서 훈센 총리가 이끄는 인민당(CPP)은 전체의석 123석 중 무려 90석을 얻어 2/3 이상의 의석을 확보, 압도적 지지 속에 단독정부를 구성했다. 비록 프놈펜을 비롯한 도시민들의 지지도는 예전만 못하지만, 적어도 전 인구의 80% 이상이 거주하는 농촌지역에서만은 여전히 확고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선거에 쏟아 부을 수  있는 자금능력과 조직동원력, 물량공세에서도 여당인 인민당(CPP)은 야당과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인 야당은 이러한 한계상황을 극복하고자, 야당 지지 성향이 높은 도시 유권자들을 공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관리위원까지 매수, 독식해 버린 여당의 위세를 꺾기에는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깨기 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권자수 조작 등 부정선거 가능성 제기... 고군분투하는 야당

사실 훈센 총리는 이번 총선 승리에 대한 열망과 관심보다는 총선 이후 발생할지도 모를 삼랭시를 중심으로 한 야당과의 갈등 등 정치적 후유증과 더불어 대내외적으로도 차기 정국운영에 대해 내심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전선거조작을 통해 이미 '가짜 유권자표' 15%를 여당이 확보했다는 야당의 주장이 국제사회에서도 거론될 만큼 상당히 설득력 있게 제기된 가운데, 이번 총선에서 기대 이상의 압승을 거두더라도 이번 총선 역시 부정선거로 이겼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에 시달릴 공산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국내정치무대에 복귀한 '삼랭시'라는 강력한 라이벌이자 최대야당 지도자와 골치 아픈 힘겨루기를 다시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다. 한마디로 뒷맛이 개운치 못한 승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오랜 장기 집권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한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시각과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선거 때보다 뜨겁다는 사실을 훈센 총리는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다. 쟈스민 혁명 등 최근 제3세계국가에서 부는 민주화바람도 간과할 수 없다는 현실도 아시아 최장기집권을 꿈꾸는 훈센 총리에게는 최대 고민거리다.

총선에서 승리를 쟁취하더라도, 부정선거로 무너진 우리나라 이승만 정권의 몰락처럼,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정치적 리더십에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향후 정국운영에 정치적 큰 부담으로 작용, 심지어는 자신의 후계자 문제 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면카드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훈센 총리가 상황의 반전을 노린 노련한 포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최대 정적에게 야량을 베풀어주는 제스처를 취함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 야당탄압 독재자라는 비아냥과 오명을 일부 씻어 총선의 향방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게 됐다. 또 정치적 이미지 제고를 통해 총선 승리 이후에도 후유증을 최소화함으로써 정국운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등 일거에 두 세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총선승리와 정국 안정,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훈센 총리

이같은 '야당총재 전격사면' 조치로 야당이 당초 조성하려고 했던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독재자'라는 비난을 훈센 총리 스스로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게 됨으로써, 이번 선거정국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게 됐다. 게다가 지난 14일 훈센 아버지의 지병에 의한 갑작스런 사망 소식 역시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됨으로써 농촌의 노령 유권자들의 동정표도 덤으로 얻게 됐다.

한편, 이번 사면조치로 삼랭시 야당 총재의 귀국은 어떤 형태든 이번 총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삼랭시 입장에서도 해외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총선을 앞두고 국내정계 복귀라는 큰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과거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 야당 지도자 아키노가 공항에서 저격암살당했던 사건과 유사한 위험을 감수한 채 귀국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동안 강성 이미지가 강한 훈센 총리에 비해 곱상하게 생긴 학자풍 외모만큼 다소 유약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삼랭시 입장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투사로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할 경우 다시 5년 뒤에나 치러질 총선에서 기회를 다시 잡기는 어렵다는 일종의 절박함도 있다.

이 가운데 그가 얼마나 이번 총선에서 야권 성향의 민주세력들을 결집, 전국적으로 야당 붐을 조성시키고, 총선에서 얼마나 많은 의석수를 확보하느냐도 그의 정치생명에도 중대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훈센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고민

캄보디아 유권자들의 성향에 대해 외부세계에선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오랜 기간 이어져온 공무원들의 부정부패와 폭압에 염증을 느낀 도시지역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여당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그러한 정부 비판 성향의 표가 바로 야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이 현 야당지도부의 가장 큰 고민이다.

훈센 총리를 좋아하지 않고, 정부 여당을 지지하지도 않더라도, 소위 '킬링 필드'라 불리는 오랫 내전을 겪어온 캄보디아 국민들이기 때문에 여당이 선거에서 만에 하나 패할 경우, 닥치게 될 정치적 혼란과 또다시 발생할지 모를 내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캄보디아는 지난 40여 년간의 내전을 통해 2백~3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아직도 국민 대다수가 그러한 정신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고, 훈센 총리 역시 국민들의 이러한 정서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그래서, 이를 교묘히 절적하게 선거 전략에 역이용하고 있다. 자신이 총선에서 패할 경우 중국 등 외국과 맺은 대형 프로젝트들이 모두 취소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경제파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대중연설에서 공공연히 말해왔다. 또, 시하누크 국왕 서거보다 더 큰 정치적 혼란과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공공연히 공식석상에서 밝힘으로써 교묘하게 국민들을 협박해왔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여당의 총선패배 시 닥칠지도 모를 혼란과 내전의 가능성에 대해서만은 훈센 총리와 정확히 일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두뇌회전이 빠른 정치 고단수인 훈센 총리는 야당 총재의 사면이라는 카드를 먼저 꺼내듬으로써 정면승부의 길을 선택했다.

삼랭시라는 야당총재의 재등장이 얼마나 이번 총선에 큰 영향을 미칠지는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 돌아온 삼랭시 중심으로 다시 결집될 민주세력이 향후 캄보디아 정국과 훈센 정부의 미래에 어떠한 후폭풍을 불러올지도 예측하기 힘들다.

하지만, 적어도 75세까지 장기집권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63세의 캄보디아 독재자의 꿈이 과연 현실이 될지 여부가 이번 총선 결과에 달려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언제쯤 캄보디아에도 민주화의 봄이 올까 사뭇 궁금해진다.


태그:#캄보디아, #삼랭시, #프놈펜, #사면조치, #캄보디아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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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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