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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립기념일이기도 한 지난 7월 4일, 안도현 시인이 절필을 선언했다. "불의가 횡행하는 참담한 시절에는 쓰지 않는 행위도 현실에 참여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고백과 함께 우리의 암담한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

안 시인은 "30년 넘게 시를 써왔고 10권의 시집을 냈지만 현실을 타개해 나갈 능력이 없는 시, 나 하나도 감동시키지 못하는 시를 오래 붙들고 앉아 있는 것이 괴롭다"고 자조하며, 지금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그 가치를 눈속임하는 일들이 매일 터져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를 바라보는 심정은 '참담'그 자체다" 고 암울한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 최근 국정원의 부정 선거개입을 노무현 대통령의 NLL 발언으로물타기하려는 파렴치한 국정원장의 행태와 우리 시민사회의 무능한 대응에대한 본인의 참혹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시인이 시를 쓸 수 없게 만드는 우리의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비록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는 힘없는 개인이지만, 한국사회에 대한 한 시인의 절규를 심각하고 무겁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여전히 깊은 침묵을 지키고 있고, 우리 사회는 그의 양심선언에 대해 여전히 아무일 없다는 듯, 그 흔한 지식인 성명서 한 장 조차 볼 수 없다.

사실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최고 권력기관이 자신의 고급정보를 이용한 교묘한 선거의 개입은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처럼 당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불러오는 중차대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건 중대한 범죄행위조차도 분단현실을 빙자하여 여론을 호도하고 대다수 국민을 위해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뿐이다. 그래서 고 문익환 목사는 '우리가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의 민주주의는 요원하다'고 갈파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반민주 수구세력이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분단 현실을 이용해 왔던 행태는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지구상에서 단 하나 남은 유일한 남북 분단국의 설움에, 더욱더 암울한 현실은 어쩌면 동서 분열인지도 모른다. 87년 이래 양김의 분열은 우리의 지역감정을 고착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지만, 소위 말하는 지식인 집단조차도 이 퇴행적인 습속과 행태에서 벗어나기는 정녕 어렵단 말인가!

사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근본적 원인도 지역주의를 떠나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군사정권시절에 민주인사를 고문하던 자들이 단죄되지 못하고 한 지역에서는 최고의 득표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던 부조리한 현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부끄러운 일이다.

자유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를 훼손하는, 미국 같으면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될 국정원의 범죄행위에 대해서, 지역감정의 포로가 된 한국의 지식인 사회가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저들에게 또 다시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한 시인의 양심적인 절필선언에 침묵하는 한국사회가 무섭다.

중국의 진보적 작가 루쉰은 지식인의 처절한 고립무원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한 사람의 주장이 남의 찬성을 얻으면 전진을 촉진케 되고, 남이 반대를 하면 분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속에서 외쳐도 아무 반응이 없이 찬성도 반대도 없게되면, 마치 자신이 끝없는 벌판에 홀로 버려진듯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게 된다. 이 얼마나 큰 비애인가!"

그렇다. 시대의 아픔에 가장 예민한 촉수를 가진 시인이 자신의 전 존재 기반의 근거인 시쓰기를 포기한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고 한 지식인의 양심고백이 우리 지식인 사회에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작금의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여기서 지역감정에 매몰된 우리 지식인 사회의 실상과 허상을 본다. 더 나아가서는 남북통일이 지상 최대의 과업이 되어야 마땅할 분단시대의 역사적 소명을 잊은 지 너무도 오래인 우리의 남루한 역사의식을 본다. 그래서 더욱 벌판에 홀로 버려진 적막을 느낄 시인이 아프다. 아무리 지고 지순한 이론과 사상과 역사적 당위의 실천도 남북 분단과 동서 분열 앞에서는 맥을 못추는 현실이 슬프다.


태그:#안도현 시인, #국정원 선거개입, #분단시대, #역사인식, #지역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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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없는자들 편에 같이 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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