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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도, 깻잎도, 고추랑 방울토마토랑...즐거운 수확...
▲ 즐거운 수확... 상추도, 깻잎도, 고추랑 방울토마토랑...즐거운 수확...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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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처럼 정직한 것도 드물다. 땅은 가꾸고 심은 대로 그 소산을 낸다. 텃밭에 사람들이 씨를 뿌리고 땅에 떨어진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나고 무성히 자라 꽃이 피고 열매 맺고 또 심고 자라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기적과 섭리를 보며 산다. 지난 3월 중순께에는 집에서 자전거 타고 약 15분 남짓 걸리는 야산 자락 아래 텃밭을 만들었다. 공터 곳곳을 사람들이 텃밭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텃밭으로 삼은 땅도 이웃에 사시는 아주머니 밭 옆에 있다.

척박한 땅을 괭이 대신 호미로 굳은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함부로 막자란 풀을 뽑고 온종일 매달려도 다 못해 그 다음 토요일에 다시 나가 풀을 뽑고 돌을 골라내는 작업을 해서 겨우 손바닥만 한 텃밭을 만들었었다. (토요일만 밭에 나간다) 대충 돌을 골라내고 풀을 뽑은 뒤에 밭고랑을 만들고, 이랑을 만들고, 종묘사에서 사온 상추씨와 들깨씨, 고추 모종, 방울토마토 모종, 오이 씨앗 등을 사서 뿌리고 심고 물을 주었다. 처음으로 텃밭이랍시고 만들고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었으니 어설픈 농사꾼 흉내지만 마음 뿌듯했다. 

땅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심은 대로, 뿌린 대로...
땅은 그 소산을 내고...
▲ 텃밭... 땅만큼 정직한 것도 없다...심은 대로, 뿌린 대로... 땅은 그 소산을 내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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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제법 자주 텃밭으로 나갔다. 거름도 하지 않고 비료도 하지 않은 땅엔 비까지 오지 않아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다른 밭에선 무성하게 식물들이 잘도 자라고 있었지만, 우리 밭에서는 굳을 대로 굳어진 땅을 비집고 올라오느라 힘겨운 분투를 목도해야만 했다. 상추 잎과 들깨잎, 고추대와 방울 토마토 나무들이 딱딱하게 굳은 땅을 비집고 올라와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어 측은하기 그지없었다. 죽은 것 같던 그 작은 씨앗이 척박한 땅을 비집고 올라와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처럼 보였다. 고추대와 방울토마토 가지에선 제법 꽃도 피워 생명을 경이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굳은 땅을 비집고 올라온 그것들은 사력을 다해 올라온 듯 보였고 힘겨워보였다.

텃밭 가꾸는 모양이 영 신통찮아 보였던지 옆에 밭에 있던 이웃사람은 쌓아놓은 거름을 조금 퍼다 주고 비료도 얼마쯤 주었다. 거름을 하고 비료를 좀 해야 땅이 비옥하고 작물이 잘 자란다면서. 내가 봐도 우리 텃밭은 기아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고맙게 얻은 비료와 거름을 뿌렸다. 그리고 종묘사에 달려가서 비료를 얼마쯤 더 사와서 뿌렸다. 다음번에 갔을 땐 조금 나아진 듯 했다. 이번엔 빽빽하게 자란 상추와 들깨를 조금 솎아서 띄엄띄엄 옮겨 심었다.

방울토마토가 빨갛게 익었습니다...
▲ 텃밭... 방울토마토가 빨갛게 익었습니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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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매주 한 번은 텃밭으로 나가보리라 생각했건만 웬걸. 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다는데 손바닥만한 작은 텃밭 하나 일구면서도 쉽지가 않았다. 최근에는 켜 누 자전거 타이어 펑크가 나서 몇 주 동안 밭에 나가보지 못했다. 여름장마로 비가 흠씬 내렸다.

몇 주 동안이나 방치해 둔 텃밭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랜 만에 텃밭에 나갔다. 세상에! 기적이다.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오밀조밀 겨우 목숨을 부지하면서 숨 가쁘게 자라던 여리고 작디작았던 상추 잎들은 크고 무성해 밭 가득 채우고 있었고 방울토마토는 주렁주렁 알알이 맺혀 가지가 휘어져 누워 있었다. 와삭 고추랍시고 심은 고춧대에선 하얀 꽃 피고 겨우 작은 고추모양만 달린 것 보았거늘, 클 대로 커져 있었다. 들깨 잎도 무성하고 밭가에 심은 호박넝쿨은 길게 뻗어 호박꽃이랑 아기 주먹만 한 호박도 달고 있었다.

수확의 기쁨, 나누는 즐거움...
▲ 텃밭 가꾸기... 수확의 기쁨, 나누는 즐거움...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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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충분히 맞은 땅은 부드러워지고 비옥했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우리 부부는 상추잎이랑 깻잎이랑 와삭고추를 땄다. 방울방울 달린 방울토마토 가운데 빨갛게 잘 익은 것을 따서 옷에 쓱쓱 문질러 먹기도 했다. 비 맞고 땅은 더 부드러워지고 땅의 소산은 풍성했다.

우린 풍성한 채소를 수확하면서 함께 나눠 먹을 사람들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수확하다 말고 바로 밑에 여동생한테 전화를 했다. 곧 달려온 동생한테도 잔뜩 상추를 안겨주고 봉지 봉지 가득 담은 상추랑 깻잎이랑 와삭고추랑 오후 늦게 자전거 뒷바퀴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수확한 상추 잎이랑 고추랑 깻잎이랑 깨끗이 씻고 양념오리고기를 사서 동생과 우리 내외는 맛난 저녁 한 끼를 먹었다. 직접 재배한 채소를 좋아할 사람들 얼굴 헤아려보며 신문지에 싸고 여러 개의 봉지에 담았다. 농사가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게으른 초보 농사꾼의 즐거운 수확이었다.

나눠 줄 사람들 떠오르고...
▲ 수확... 나눠 줄 사람들 떠오르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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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텃밭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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