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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단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성석제(53) 작가가 지난 6월 말 소설 <위풍당당> 불어판 출판기념회를 위해 파리를 찾았다. 또한 올해 처음으로 기획된 '한국소리축제'에서 그의 단편소설인 <천하제일 남가이>가 연극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7월 6일부터 31일까지 아비뇽 연극제에 참가할 예정이다. 한달 동안 파리에 머물 계획인 성석제 작가를 6월 27일 오후 파리 룩셈부르크 공원 입구에서 만났다.

"외국인들이 내 작품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

파리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성석제 작가
 파리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성석제 작가
ⓒ 김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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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님을 파리에서 뵙게 돼 무척 반갑습니다. 법대생이였는데 소설가가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군대를 갔다 와서 복학을 해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고민을 했지요. 법과 관련된 일로 살아갈 것 같진 않았고 당시 문학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같이 문학 서클에 있던 친구들의 격려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친구들로는 지금은 고인이 된 기형도, 성원근과 나희덕, 원재길이 있습니다. 그 당시 데뷔한 사람만 10명 정도가 됩니다."

- 습작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복학한 해인 1984년부터 하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습작기간이 너무 짧았어요. 2년 후인 1986년에 등단했으니까요."

- 소설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하셨어요.
"1994년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를 쓰면서 미진했던 것, 뭔가 시와 어울리지 않는 문장, 불순물 같은 것들을 정리 정돈하고 있던 중에 그걸 소설이라 명명하고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라는 제목의 책으로 냈어요. 편집자들이 그걸 보고 제게 소설 청탁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계속 소설을 쓰게 됐습니다."

- 소설쓰기가 적성에 맞았나요?  
"적성에 맞는거보다 더 좋은게 원고료가 많다는 것이였죠. (웃음) 시가 일종의 자기 실현, 자기 완성이라면 소설은 방향이 다르죠. 상대가 있는 대화,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의 대화라고나 할까요."

- 소설가 성석제하면 독자들은 우선 이야기꾼을 떠올리는데, 언제 본인이 이야기꾼이라는 걸 아시게 되었나요 ?
"소설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된 1996-1997년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원고가 쏟아져 나왔어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많은 작가들이 비슷한 경험을 할텐데요. 내가 소설을 쓴다기보다 소설이 나를 붙들고 쓰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나는 도구에 지나지 않고. 운명에 매여서 이야기꾼이 된게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 지금까지 27권의 책을 발표하셨는데 글을 쉽게 쓰시는 편이신가요 ?
"글쎄요. 쉽게 쓰고 많이 고치는 편이죠. 쉽게 쓸수록 고칠게 많아져요."

- 소설 하나 쓰는데 기간이 얼마나 걸리시나요 ?
"어떤건 평생 걸리는 게 있고 어떤건 또 그런대로 쉽게 써지는 게 있고 그래요. 단편 소설인 경우 짧으면 하룻밤에 완성되는 것도 있긴 한데 보통 한 달은 걸리죠. 쓰고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장편일 경우 1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됩니다. 그동안 27권의 책을 발표했는데 거의 1년에 한 권 이상을 쓴 셈이 되네요."

- 선생님의 얘기는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소재를 먼저 정하시나요? 아니면 주제를 먼저 정하시나요?
"주로 청탁과 마감이라는 시스템에 의해 글이 나옵니다. 청탁을 받는 순간 무엇을 쓸 건지 어렴풋이 결정이 되요. 청탁인의 의도가 느껴지니까요. 만약에 그 의도를 맞추지 못할 것 같으면 거절하죠."

- 한 작가에게는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주제가 있는데 선생님 작품의 반복적 주제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겪었던 유년기, 성장기의 최초의 경험과 감각, 사건, 만났던 사람이 변주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 추억처럼 첫 경험이라는 것은 모두 강렬하게 각인되니까요."

소설 <위풍당당> 불어판 출판 기념회가 열린 페닉스 서점에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성석제 작가의 모습
 소설 <위풍당당> 불어판 출판 기념회가 열린 페닉스 서점에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성석제 작가의 모습
ⓒ 한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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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불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위풍당당> (한유미, Herve Pejodier 번역, Imago 출판사)도 그렇고 초기 작품 <왕을 찾아서>도 깡패 집단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혹시 직접 경험하신건가요 ?
"제가 깡패냐구요?(웃음) 재미있잖아요. 소설을 쓰기 시작한 시대에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교도소에 간 적이 있어요. 면회소 밖에 서점이 있어서 차입을 해서 넣어줄 수가 있었는데 베스트셀러 목록이 있었는데 거의가 범죄물, 스릴러였어요. 그 때 교도소 사람들이 왜 이런 걸 좋아할까 의아해 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가 이런 거구나 느끼게 되었죠. 그래서 내가 소설가가 되면 저런 소설을 써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또 우연히 제 초기의 단편소설도 깡패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계속 그 쪽으로 변주를 하게 된 거죠. 나를 소설가가 되게 만들어준 고마움을 표시하는거라고나 할까요."

- 작년 6월에 나온 소설 <위풍당당>이 처음으로 불어로 번역 출간되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외국인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반응하나 궁금하긴 하지요. 그러나 이제 와서 내가 어떻게 좌우할 수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성장해서 집을 나간 자식을 보는 심정이랄까요. 이민 가는 자식말이죠."

"스마트폰이 문학의 소비 형태 바꿔"

- 연극 이야기를 해보죠. 파리에서 공연되는 연극 <천하제일 남가이>의 주인공 남가이가 상징하는 건 뭔가요? 
"변신, 변태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죠. 우리 옛날 이야기 중에 추녀에서 미인으로 변한 박씨부인이라든가 개구리 왕자처럼 추에서 미로 변하는 얘기를 쓰고 싶었어요. <천하제일 남가이>는 2000년 경에 쓴 것 같은데 당시에는 지금처럼 성형수술이 성행하지 않을 때였죠. 한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인 미가 다른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타고난 모습은 선천적인 것으로 우리의 의지와는 관련이 없는데 그게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단 말이죠. 그 이유가 뭔가, 그게 궁금했어요. 한 추남이 미남으로 변신하고 이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이야기를 통해서 풀어보고 싶었죠. 남가이가 죽기 전에 한말에 답은 나와 있습니다."

남가이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은 이랬다.

"아무리 멀리서 봐도 사람처럼 보이는 얼굴. 명백히 사람일 수밖에 없는 얼굴. 이런 얼굴이 미남의 얼굴이야. 잘 생겼다는 건 사람답다는 걸 말하는 거지. 천하제일 미남은 천하에 짝이 없이 사람답다는 거야. 그런 사람이 흔할 것 같지. 하지만 세상 어디에서도 찾기가 어렵다네."

- 무대 위에 오른 본인 작품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단편 소설의 디테일을 갖고 1시간에서 1시간 30분 되는 연극을 만든다는게 불가능하죠. 또 소설 작품이 갖고 있는 공간성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도 어렵구요. 그래서 연극적인 변환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건 연극이구나, 분명 내 작품을 올리긴 하지만 연극이라는 별개의 작품으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왜 내가 쓴거하고 다르냐고 하면 그건 월권이죠."

극단 하땅세가 연극 <천하제일 남가이>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극단 하땅세가 연극 <천하제일 남가이> 공연을 마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김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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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문학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연극이 금방 이해가 될까요 ?
"자막이 있으니까 기본적인 스토리는 이해가 될 것이고 나머지는 연극이라는 예술이 갖고 있는 관용성, 표현이 채워줄 거라고 봅니다."

- 한국 문학의 현재 흐름이 어떻게 간다고 보시는지요.
"지난 1970-1980년대에는 상업주의, 참여, 순수문학이라는 어떤 흐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게 없는 것 같아요. 각자가 제 갈 길을 가면서 각계약진 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고도화 되고 전문화 되면서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게 하는거죠."

-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한국 사람들이 이전보다 책을 덜 읽는다고 생각하세요?
"그렇죠. 책도 아마 이전보다 덜 팔릴겁니다. 책 분야에서도 양극화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팔리는 소설은 그 전보다 더 많이 팔릴 수가 있고 반면에 안팔리는 여러 작품들, 의미가 있는 많은 작품들이 독자의 손에 들어가기도 전에 사장되는 경우가 많죠. 그게 작가의 의욕을 끊고 새로운 작품의 산출을 막고 있죠. 소설은 지난 몇 백년동안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해왔는데 지금은 독서와 대중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그래서 좋은 작가들이 늦쳐지고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스마트 폰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마트폰은 의사 소통을 위한 도구인데 중독성과 의존성이 있어요.

우리가 어렸을 때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책을 통해서 공부를 했고 책의 영향권하에 살고 있다면 지금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의 영향권하에 살고 있는 거죠. 사람의 인생, 세계의 운명이 스마트폰이 있기 전의 시대와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달라질건지, 가치관은 어떻게 변할건지 알 수 없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전보다 나빠질 거라는 건 분명해요. 문학을 하는 작가는 스마트폰을 포함한 광속의 액정팬을 이용하는 정보문화에 적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문학이 필요할 것이라는 질문을 던져 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이 나옵니다. 소설은 이야기 하는 과정이 느리고 방식도 느리고 받아들이는 방식도 느린데 이렇게 느린 문학이 광속의 액정팬인 젊은이들에게는 필요가 없게 되는 거죠. 순간적으로 보고 하나의 정보로서 지나가는 문장은 문학작품은 아닌거죠. 그래서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요."

- 요즘 한국 사회에도 핍박 받는 '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을 위해서 작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작가들은 언제나 을의 편이었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이것을 논의하는게 오히려 이상하죠. 이전부터 갑과 을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 성향이 심해졌지요. 그리고 지금은 그에 대해서 다 발언을 할 수 있게 되었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 정보사회 덕분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러한 상태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동의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은 맞죠. 어떤 식으로든 바꾸어 나가야 하는데 작가의 입장에서는 당장 거리로 뛰쳐나가는 식의 행동을 할 수는 없어요. 느리기 때문에, 근본적인 방식을 생각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공유할 방식이 무엇인지 문학작품을 통해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에게는 불만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저 같은 작가 입장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문학작품으로 응전하는거라고 봅니다."

- 작가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연인으로서 제 정치적인 입장이 있고 할 말도 많지만, 작가로서는 정치 참여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선은 작가라는 직업이나 직위를 이용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구요. 그러나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각자의 입장이 다른거니까요."

- 프랑스 작가 중에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처음에는 불어로 쓰인 시를 좋아했어요. 프레베르의 시나 베케트, 이오네스코의 희곡을 좋아해요. 그리고 소설가 중에서는 셀린느을 좋아하는데 특히 <Mort a credit> 라는 작품을 읽고 나서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 현재 집필 중인 작품이 있으세요 ?
"지금 장편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창비에 연재 중입니다. 마감날을 마추려면 파리에서도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닙니다."

- <천하제일 남가이>가 아비뇽 연극축제에도 참가하여 7월 말까지 프랑스에 계실 예정인데, 연극 관람과 독자와의 만남 등을 제외한 자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실 예정이신가요 ?
"이곳 저곳 좀 돌아다닐 예정입니다. 내가 낯설어질 때까지 말이죠. 장소가 주는 에너지가 있잖아요. 어디 낯선 곳에 가서 낯선 내가 몸부림을 치는걸 보고 싶어요."

- 그게 작품으로 하나 남아도 괜찮겠는데요.  
"그게 여행이 갖고 있는 매력이죠. 모험의 매력."

- 파리에 처음 오셨는데 전체적인 파리나 파리지엥의 인상이 어떤가요.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는 느낌이 드는거예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비슷해져가고 있는게 아닌가. 이건 좋은 의미가 아니죠. 세계의 전 도시가 자기 색깔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 3개월 체류했던 베를린도 마찬가지였구요. 단지 인종과 사람 머리 색깔만 다르달 뿐, 음식도 비슷해진 것 같구요."

- 프랑스에 계실 동안 시골 같은 구석진 장소를 많이 가보세요. 이곳만의 특성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네요.
"그럴려구요. 그 장소,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개성을 맛보려면 그 장소에 가야죠."


태그:#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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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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