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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하이크 길 위에서 다가오는 차를 향해 손을 든다.
▲ 히치하이크 길 위에서 다가오는 차를 향해 손을 든다.
ⓒ 강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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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고 다들 미쳤다고 합니다!"라고 말하며 남자가 멋쩍게 웃었다.

"아뇨. 멋진데요!"

내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남자는 운전하랴 내게 이 여행의 시초와 내력을 털어놓으랴 바빴다. 나는 얘기를 들어가며 차 안을 둘러보았다. 뒷좌석 쪽엔 캠핑 용품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대시보드 위에는 휴지와 수건, 지도 같은 것들이 널려 있었다. 남자는 스타렉스 승합차를 끌고 전국을 떠돌며 캠핑여행 중이었다. 남자의 친구들이 미쳤다고 말하는 그 여정이었다.

남자는 이틀 동안 지리산 산행을 한 후, 경주로 이동하는 길에 나를 만났다. 나는 인월버스터미널에 가려고 집을 나선 길이었다. 히치하이크로 남자의 차를 얻어탔다. 나는 가끔 길 위에서 히치하이커가 된다. 인월까지 나가는데. 서울이든 어디든 타지로 나가거나 장을 보려면 인월로 나가야 한다. 거기서 장을 보거나 버스를 바꿔 타야 한다. 마을에서 인월까지는 차로 10여 분 거리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도로가에서 엄지를 세우면 차는 어렵지 않게 잡혔다. 가는 방향만 같으면 태워준다. 대개는 마을 사람들이거나 달궁이나 뱀사골 쪽에서 내려오는 주민들이다. 그때는 서로 인사를 챙기며 산골살림 돌아가는 얘기들을 가깝게 나눈다.

어떤 날은 떡 배달하고 돌아가는 인월떡집 사장도 만났다. 인터넷 케이블을 설치하고 가던 기사도 만났다. 마티즈를 몰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공사장이나 농장에서 며칠씩 일한다는 사람도 만났다. 전직 대학 강사라고 했다. 그는 공황장애와 이혼이라는 아픔 끝에 새로운 삶을 계획하며, 치유의 시간을 길에서 보내고 있었다.

드물게는 관광객도 만난다. 면면이 다 선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차에 짐이 꽉 차 있어서 며칠 전 히치하이커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그 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하는 뱀사골 슈퍼여자도 만났다. 이제 그 마음의 짐을 덜게 되었다며 내게 미소를 지어보였었다.

엄지만 들면 끝... 길 위에서 만나는 인심 좋은 이웃들

인월장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인월 5일장.
▲ 인월장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인월 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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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히치하이크 경력은 만만치 않다. 살면서 간간이, 여행 중에 수시로. 십수 년 전, 폐사지 답사여행을 했을 때 본격적으로 경험했다. 전국을 돌며 폐사지를 조사하는 일을 했다. 아르바이트였다. 두 달 동안 혼자 무전여행을 하다시피 했다. 순전히 경비를 아껴 책을 사보기 위해서였다. 그때 히치하이크에 숙달되었다. 지나가는 차를 향해 무람없이 선뜻선뜻 손을 들게 되었다. 

그때, 곁눈질로 내 얼굴을 자꾸 힐끗거리는 중년 운전자를 만났었다. 불안해진 나는, 아 번뜻 떠오른 생각, 일부러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콜록거리며 "아, 죄송해요. 콜록! 제, 제가, 콜록! 폐결핵, 콜록, 지금은 많이 좋아졌는데, 콜록! 기침이 이렇게 나올 때가 있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콜록! 직접 접촉하지 않으면 전염은, 콜록"이라며 능청스레 거짓말을 했다. 그때부터 남자는 말 없이 앞만 바라보며 운전에 집중했다. 나의 기침소리도 간신히 잦아들었다.

또 한 번은 내 신상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젊은 트럭 운전사를 만났었다. 그는 음흉한 눈길로 나를 연신 훑어보았다. 눈길과 목소리가 정말 심상치 않았다. 어두운 욕망에 사로잡혀 가는듯. 어쩌지, 어쩌지…. 양손을 땀나게 마주 쥐고 비비며, 그때 굴린 잔머리. 나는 그가 듣게끔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진지하게, 그를 위한 축복기도를 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기에 들은 풍월은 있어서.

"하나님, 이 길도 주님의 보살핌 아래 무사히. 이 착한 기사님께서 가는 길마다 늘 주님께서 동행하시어 지켜주시고 축복을 주옵시고, 기사님의 가족들에게도 건강과…."

그 기도가 태어나 첫 기도였었다. 기도발이 먹혔는지, 애초 나의 불손한 오해였는지, 그는 나를 목적지에 무사히 내려주었다.

안전한 히치하이크, '기침'과 '기도'가 보장합니다

캠핑여행 스타렉스 뒷좌석에 캠핑용품들 가득
▲ 캠핑여행 스타렉스 뒷좌석에 캠핑용품들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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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끊임없이 히치하이크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뉴스에서 영화에서 소설에서 히치하이크 범죄 사건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 나는 이 마을에 살면서 '겁대가리 상실한 채' 낯선 사람들의 차를 잡아탈 때가 있다. 뭐, 피치 못할 경우들이지만.

오늘은 친구가 등산장비들을 서울에서 고속버스 편으로 보냈다. 내일 내가 지리산종주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었다. 갑자기 계획된 산행이라 택배로 물건을 부치고 받고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마을에서 나가는 버스 시간이 애매했다.

어쨌든 히치하이크로 차를 얻어타면 문득, 일상이 여행처럼 낭만적이고 자유롭게 느껴지도 한다. 잭 케루악 소설 <길 위에서>의 히치하이크 여행처럼. 그러면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또 길 위에서 만나는 훈훈한 인정들이 감동적이다. 그 짜릿한 느낌. 짧지만 강렬한 길 위의 인상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소설 하나가 더 떠오른다. 밀란 쿤데라의 <히치하이킹 놀이>라는 단편소설이다. 사귄 지 1년 된 젊은 남녀가 스포츠카를 타고 휴가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 길에서 그들은 우연히 재미난 놀이처럼 히치하이킹 놀이를 한다. 청년은 낯선 운전사 역할을 맡고 아가씨는 히치하이커로. 결국 두 사람은 그 놀이에 심각하게 말려들게 된다. 둘의 감정 변화가 매우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아가씨가 마지막에 '나는 나야, 나는 나야'라고 절규하며 끝난다.

그 소설을 각색하여 최진영 감독이 '히치하이킹'이라는 독립영화를 만들었다(2004년 제작). 원작과는 설정이 같을 뿐, 내용과 결말은 달랐다. 원작의 띄어난 심리묘사를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나름 머릿속에 남는 영화였다. <백만 송이 장미>에 맞춰 함박눈이 내리는 길에서 율동을 하는, 등장인물들의 뜬금없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반복적이고 절제된 몸짓과 표정. 그 절절한 인간의 외로움이라니.

유목민 남자의 여행에 편승... '나는 나야, 나는 나야' 

캠핑여행 길 위를 달리는 여행자
▲ 캠핑여행 길 위를 달리는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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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렉스 남자의 여행담을 듣다보니 금세 인월 초입 사거리에 도착했다. 내가 내려야 할 곳이었다. 그런데 스타렉스가 서지 않고 버스터미널 쪽으로 좌회전을 틀었다. 남자의 목적지를 향해 방향을 지시하던 내비게이션이 잠깐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남자는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가는 여정이라 괜찮다며 "가다 가다 낚시를 하고 싶으면 낚시를 하고, 산을 타고 싶으면 산을 타고…"라고 말했다.

남자는 인천에서 가구공장을 했었다고 한다. 부도 맞아 몇 번 엎어지기도 했고, 돈도 많이 만져봤고, 이제 일도 돈도 미련이 없단다. 하나 있는 자식도 다 커 상하이에 살고 있고. 몇 년 전부터 가끔 나서는 캠핑여행이 큰 낙이란다. 다행히도 중학교 교사인 아내가 이해해주고 믿어준다고 했다.

"한번 나오면 보통 한 달 정도 떠돌다가 돌아가죠. 집에 있는 것보다 돈은 오히려 덜 써요. 술값이 솔찮게 나가거든요. 마지막 내 꿈은 대형버스를 캠핑카로 개조해서 몰고 다니며, 아내와 날이면 날마다 여행을 하는 겁니다."

남자는 고단한 세상살이의 터널을 빠져나와 길 위에서 유유자적 말년을 보내고 싶은 건가. 나는 나야… 이게 나야, 라며. 드디어 스타렉스가 터미널 앞에 나를 내려놓고 떠났다. 그렇게 나는 남자의 유목생활 같은 여행에 잠깐 편승했다. 
 
덕분에 친구가 보내준 물건을 제 시간에 무사히 받았다. 마침 5일장이 서는 날이라 장터로 갔다. 천천히 장을 구경하며 지리산종주에 필요한 찬거리와 간식거리들을 샀다. 혼자 하는 산행이니 짐 무게를 고려해 최소한의 양으로. 나는 길고 험한 산행을 앞두고, 벌써부터 숨이 벅차올랐다. 그러면서 "나는 나야, 나는 나야…"라고 무슨 주문처럼 자꾸 중얼거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는 나야? 뭐가?

인월 버스터미널 배낭 멘 지리산 등산객과 둘레꾼들을 흔이 볼 수 있다.
▲ 인월 버스터미널 배낭 멘 지리산 등산객과 둘레꾼들을 흔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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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지리산으로 귀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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