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르페 디엠>  포스터

▲ 영화 <카르페 디엠> 포스터 ⓒ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 이 기사에는 영화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1. 부부

능력있고 열정적인 청춘 남녀 '스테인'과 '카르멘'. 서로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예쁜 딸을 낳아 기르면서 각자 열심히 일하며 멋지게 살아간다. 그런데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어도 스테인의 바람기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급기야 아내 카르멘도 남편의 바람기를 살아생전 고치지 못할 병통으로 받아들이는 수준에까지 이른다.

그러던 중 카르멘이 유방암에 걸리고 이어지는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환자 본인도 남편도 최선을 다하지만, 그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어렵다.

환자는 울고 토하고 짜증내고, 남편은 일하다 병원으로 달려가고, 그러나 이렇게 애쓴 결과 다행히도 암 완치 판정을 받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쁜 두 사람은 행복해 하며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로 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

그러나 안타깝게도 운명의 여신은 그렇게 수월하게 넘어가주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암이 전이되어 재발한다. 시간을 늘릴 수 없다면 맘껏 즐기기로 한 두 사람,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기로 결심하고 카메라를 들고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딸아이에게 남길 편지와 사진을 찍어 모으고, 나중에 묻힐 곳까지 살펴보는 카르멘과 그 곁을 지키는 남편. 그러나 아내의 암 투병과 간호 중의 어려움을 다른 여자의 품에 파묻혀 잊으려 했던 남편의 버릇은 끝내 없어지지 않는다.

#2. 가족만의 섬

의사는 암 환자인 카르멘과 보호자인 스테인에게 병의 진행 상황과 예후를 정확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집에서 투병할 때도 두 사람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물론 친구들이 걱정하고 드나들기는 하지만 남편과 아내와 어린 딸, 세 사람은 섬에 사는 것 같다.

응급 의료나 간병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의 고통에 몸부림칠 때도, 남편은 집을 뛰쳐나가 거리를 방황하고 환자 곁에는 어린 딸만 있을 뿐이다.

영화 <카르페 디엠>의 한 장면  암 환자와 가족, 두 사람이 걸어가야 하는 길은 아프고도 멀다...

▲ 영화 <카르페 디엠>의 한 장면 암 환자와 가족, 두 사람이 걸어가야 하는 길은 아프고도 멀다... ⓒ 프리비젼 엔터테인먼트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 시대지만, 아무런 도움의 손길도 없이 모든 짐을 부부 두 사람만 지기에는 버겁다. '거기 누구 없냐'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3. 안락사

병원에서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하니 집에 돌아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침대에 누운 카르멘. 친구들과의 작별인사도 마쳤고 이제 떠날 시간을 기다리며 하루 하루 연명할 뿐이다. 그러다가 이부자리에서 용변을 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 괜찮다고 위로하는 남편에게 카르멘은 간곡하게 말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기 싫어! 더 이상 못하겠어!"

카르멘의 바람을 남편에게 전해듣고 왕진을 온 의사는 사무적으로 약물을 주사한다.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인 '적극적 안락사'다. 살인이냐 아니냐를 두고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논쟁 중인 사안이다.

이 영화는 안락사를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네덜란드에서 만들었기에 별다른 갈등 없이 이런 마지막을 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4. 죽음준비

병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치료에 나서고, 더 이상 방법이 없을 때 아프고 힘들지만 그 또한 받아들이는 젊은 두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애통하고 원망스럽겠지만 울며 불며 발버둥치는 법은 없다.

어린 딸에게 남겨줄 무언가를 위해 애를 쓰고, 이 다음에 아이가 세상 떠난 엄마를 추억할 수 있게 해주는 태도에는 잔잔한 감동이 있다. 아프고 힘든 와중에 가족, 아이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으니 참으로 성숙하다.

암 환자 가족으로 고통을 견디지 못해 다른 여자 품에 안겨 잊으려 몸부림치는 젊은 남편. 얼마든지 자신의 행위에 대해 합리화가 가능할지 몰라도 아내와 아이를 향해서는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카르멘은 자신의 죽음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해 떠나긴 했지만, 인위적인 약물 주입을 통한 '적극적 안락사'는 내게 여전히 커다란 과제로 남아있다. 통증 조절을 해서 아프지 않도록 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없을지 고민하게 만든다.

아무튼 영화는 암 진단,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 전이와 재발, 죽음준비, 죽음의 방식, 거기다가 가족이 겪는 어려움과 갈등까지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카르페 디엠'이 단순히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을 넘어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덧붙이는 글 <카르페 디엠, Stricken (네덜란드, 2009)> (감독 : 레이노앗 오얼레만스 / 출연 : 까리세 판 하위텐, 바리 아츠마, 안나 드리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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