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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OECD 34개 국가 중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덴마크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기자는 행복지수 1위의 나라, 덴마크를 취재해서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하는 주제로 기사를 연재 중이다. 필자는 기사를 읽던 중 호주에 가족들을 만나러 왔다. 이른바 기러기아빠라고 불리는 경기도민이며 이렇게 된 지는 꼭 1년째인 비교적 초보기러기다.

작년 호주는 덴마크와 다른 북유럽국가들에 이어 행복지수 4위를 기록했다. 이 곳에 다니러 온 김에 1년쯤 알고 지내는 호주의 대표적 중산층 부부를 인터뷰 해보기로 했다. 물론 덴마크 기사와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꽤 미흡하겠지만 호주 중 특히 남호주(South Australia)의 아들레이드(Adelaide)란 지역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기도 하니 소개 겸 취재해 본다.

호주 전체 인구는 약 2300만 정도, 이곳 남호주의 경우 약 170만이다. 아들레이드라 불리는 도시와 그 주변 위성도시에 거주하는 인구가 120만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중 한국교민이 약 3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십여년 전 500~600여명이던 교민의 숫자가 꾸준히 늘어 현재의 숫자가 된 것인데, 아들레이드 도심에서 차로 이십여분 떨어진 아쎌스톤(Athelstone)이란 지역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권아무개 원장의 설명을 빌면, "물가가 낮고 교육제도가 잘 되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안전해서 아들레이드가 교민들 사이에 인기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기자가 만난 부부는 남호주(South Australia)의 도시 아들레이드(Adelaide)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삼십년 넘게 공무원으로 주부로 살아온 호주의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남편은 피터 소비(Peter Sobey 56, 이하 피터)씨고 아내는 로즈마리 소비(Rosemary Sobey 59, 이하 로즈마리)씨다. 먼저 이들이 살고 있는 아들레이드란 지역의 유래에 대해 물어 보기로 하면서 인터뷰가 시작 되었다.

피터씨와 로즈마리씨 부부. 삼십오년을 함께 살면서 한번의 위기도 없었느냐는 질문에 "노"라고 대답한다
 피터씨와 로즈마리씨 부부. 삼십오년을 함께 살면서 한번의 위기도 없었느냐는 질문에 "노"라고 대답한다
ⓒ 정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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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레이드의 기원은 어떻게 되나요?
피터 : "아들레이드란 도시의 이름은 1836년 영국의 여왕이름인 Qeen Adelaide를 따서 붙여졌어요. 호주의 역사는 아시다시피 죄수들이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영국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이주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데, 남호주의 아들레이드는 순전히 자발적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도시죠.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자부심이 좀 강하다고 할 수 있어요."
로즈마리 : "제 선조는 독일계 천주교신자였는데요. '버팔로'라는 배를 타고 1836년 12월 26일 타즈매니아로 처음 들어오셨다가 아들레이드로 이주하셨다고 해요. 오셔서 목수로 일하셨는데 아들레이드 최초의 목수였을 거예요."

부부는 역사인식이 있었다. 자신들의 선조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었으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즈마리의 선조가 타즈매니아로 입항한 12월 26일은 남호주의 Proclamation Day(남호주의 독립절이라고 해야할까)라고 하는 공휴일이다.

- 피터씨는 대학때 전공을 뭘 하셨나요?
피터 : "제 전공은 apprentice engineering입니다. 대학에서 4년을 공부했고 1975년 주당 55불을 받고 정부의 공공건축물 건축과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근무했어요. 그렇게 십년쯤 더 일을 하다가 2년 반 과정인 Advanced Diploma(석사 과정 전 단계로 우리나라에는 없는 과정)를 밟았어요."

피터씨는 현재 기차 정보 시스템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데, 여전히 정부에서 공무원으로서 근무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연봉은 8만 호주달러를 받고 있으며 세금으로 약 2만호주불 정도를 낸다고 한다.

- 호주에서는 피터씨의 경우처럼 대학에서의 전공과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가요?
로즈마리 :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대부분 자기 전공과 관련이 있는 직업을 택하죠. 제겐 두 아들이 있는데 대니얼은 IT를 전공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 전공이나 대학을 선택할 때 부모의 충고나 조언이 중요하게 작용하나요?
로즈마리 : "전혀 그렇지 않아요. 어떤 충고도 하지 않아요. 본인이 알아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제 동생은 아들 넷에 딸 하나인데요. 첫째는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고, 둘째는 기계, 셋째는 의학, 넷째는 그냥 농부가 됐구요. 다섯째인 딸은 발레를 전공하고 있어요. 모두 자신들이 선택하고 지원했죠."

- 부모들의 학비지원은 고등학교까지만 한다고 들었는데요.
로즈마리 : "네 맞아요. 대학부터는 자기네가 스스로 알아서 하죠. 일년에 대학학비가 6~7천불가량 되는데요. 정부에서 본인들에게 물어봐요. 얼마나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를요. 그래서 지원을 해주고,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갚아나가는 거죠."

- 취업을 못하게 되면요?
로즈마리 : "할 때까지 기다려줘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늦더라도 대부분 취업은 하게 되거든요."

-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평균적으로 얼마의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나요?
피터 : "보통 연간 3만5천불 정도를 받아요."

- 그 정도 급여을 받아서 부모님 도움 없이 결혼하고 집을 살 수도 있을까요?
피터 : "글쎄요. 담보대출을 받아서 살 수도 있어요. 평생 월세(여기서는 주마다 내기 때문에 주세)를 내면서 살 수도 있구요. 선택이죠. 평생 갚아가면서 살 수 있으니까요. 저도 혼자 벌어서 지금 살고 있는 집(현재 오십만 호주불) 정도는 장만했으니까요."

- 직장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호주에도 비정규직이 있을텐데요. 그 실태는 어떻습니까?
피터 : "매년 혹은 몇 년을 단위로 계약을 해서 고용하거나 취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경우에도 회사에서 각종 보험을 들게 되어 있구요. 이런 비정규직의 경우 보통 사용자 보다는 피고용인이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제를 원하거나 또는 일하는 기간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경우가 이에 해당할 수 있겠지요."

- 부모님과 자식의 관계에 대해서 여쭙겠는데요. 물질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지원받거나 물려 받은 것이 없나요?
로즈마리 : "물론 약간 도움 받은 경우도 있어요.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몇 천불 정도씩 주는 경우가 있어요. 그것을 물려받았다거나 유산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죠."

- 피터씨는 정년퇴임이 얼마나 남았나요? 퇴임 이후 받으시게 될 연금액수를 여쭤봐도 될까요?
피터 : "지금 제 나이가 56세니까 한 십년쯤 남았네요. 65세부터 67세 정도에서 보통 정년퇴임을 합니다. 근무한 연수나 퇴직 연금 기준에 따라서 그쯤 정년퇴임을 결정합니다. 퇴직 이후에 받을 연금은 정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표로 자세히 나와있는데요. 제 경우 연간 약 이만 호주불쯤 될 것 같아요. 통신, 의료, 교통 등에서 혜택을 받으니까 현금은 그다지 많이 필요가 없어요. 한 마디로 노후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자는 호주인들은 부모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인터뷰중인 피터씨부부와 기자, 기자의 부족한 영어질문에도 알아서 연륜이 묻어나는 대답을 해준다. 그야말로 우문현답의 연속.
 인터뷰중인 피터씨부부와 기자, 기자의 부족한 영어질문에도 알아서 연륜이 묻어나는 대답을 해준다. 그야말로 우문현답의 연속.
ⓒ 정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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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 "어려서 농장에서 자랐어요. 제겐 남동생과 여동생이 각각 한 명씩 있어서 다섯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농장에서 살기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모기나 풀벌레 등을 못견뎌 해서 도시로 나와 살게 되었고 결국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어떤 가치들을 물려주셨어요. 노동의 가치, 절약의 가치, 나눔의 가치,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의 삶 등을 물려주셨지요. 천식(asthma)도 물려주셨어요(웃음, 그는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좋지 않다고 한다). 어머니는 제게 리더십을 갖게 해주셨어요. 학교 보조선생님이셨던 어머니는 그 옛날 컴퓨터나 회계시스템에 관해 해박하셨고, 스포츠 동호회도 결성하셔서 왕성하게 활동하셨지요. 어머니는 '건강한 경쟁은 오로지 스포츠에서만 존재한다'고 하셨어요."

로즈마리 : "저는 아버지로부터 아름다운 목소리를 물려받았어요. 그리고 수학, 음악, 그리고 발레하는 능력을 물려주셨다고 생각해요. 어머니는 제게 뭐든 만드는 능력을 주셨어요. 손재주가 많으신 편이었는데 요리나 옷 만드는 법을 제게 가르쳐 주셨답니다. 그래서 웨만한 옷들은 제가 다 만들어 입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은 대답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재산의 정도로 부모, 심지어는 조부모들의 능력을 판단하는 우스개 소리까지 등장하는 우리의 세태하고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치열한 경쟁과 부나 권력에 대한 추구가 나은 결과가 무엇일지 생각해 볼 일이다.

- 호주 국민들은 정치나 정치인에 관심이 많은가요?
피터&로즈마리 : "글쎄요 별로 많지는 않아요. 특히 젊은이들은 관심이 더 없지요."

- 호주에서는 투표나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한다던데요?
피터 : "네 맞습니다. 그래서 투표는 거의 모두가 하는 편이구요. 투표 전 우편으로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가 배달 되기 때문에 꼼꼼히 보는 편이기는 합니다."

- 참정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벌금을 문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면서 또 다른 질문이 하나 생각나는데요. 후보자들이 선거전 공약을 하지 않습니까? 당선 후 그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혹시 어떤 재제가 가해지지는 않나요?
피터 : (이상한 질문을 받았다는 표정으로 한참을 생각하더니) "그렇지는 않아요. 다음 선거에서 심판 받기 때문에 공약을 허투루 하는 후보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 두 분은 지금 행복하신가요?
피터&로즈마리 : (지체없이) "네 행복합니다."

오연호 대표기자가 덴마크에서 젊은이들과의 인터뷰 말미에 했다는 질문이 떠올랐다. 참고로 아래의 질문에 대한 덴마크인들의 대답은 굳이 말하자면 '날씨가 좋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 혹시 두 분은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가 뭘까요?
로즈마리 : "없어요."
피터 : "저도 없어요. 아! 있습니다. 제 두 아들놈들 말인데요. 각각 29살, 30살인데요. 아직 총각이랍니다. 이 녀석들이 장가를 가서 손주를 보게 해주면 좋겠어요."

중년을 넘어 노년을 향해가고 있는 피터와 로즈마리 부부는 본인들의 설명에 의하면 호주에서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적당한 크기의 집, 두 아들, 38년째 하고 있는 직장생활, 35년 넘게 하고 있는 결혼 생활, 또 태어나면서 하고 있는 기독교도로서의 종교생활, 이웃들과의 교류 등의 총합이 이들의 행복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젠 우리가 인터뷰에 응할 차례다. 아니 내 차례다. '나는 행복한가?'


태그:#행복, #아들레이드, #피터, #로즈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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