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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장
▲ 아버지의 일기장 아버지의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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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는 내내, 필자의 눈에는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아른거렸다. 그러면서 두 책의 닮은점이 눈에 들어왔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아버지의 일기장>은 둘 다 겉표지가 누렇다. 또한 출판사도 둘 다 돌베개다. 두 책 다 삽화가 많은 것도 공통점이다.

물론 원문글 작성자인 박일호 선생이 신영복 선생처럼 유명인이 아니었고, 또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일기가 아닌 편지글이었기에 두 책을 일대일 비교한다는 것은 억지일 것이다. 만약 필자가 두 책을 일대일로 비교한다면 신영복 선생, 박일호 선생은 물론 박재동 화백에게도 꾸지람을 들을지도 모른다. 세 분이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거 틀렸어. 번지수가 안 맞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아버지의 일기장>은 닮은 구석이 많은 책들이다. 둘 다 극한의 상태에서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노래했던 책들이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03년도판이다.
▲ 두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아버지의 일기장>은 닮은 구석이 많은 책들이다. 둘 다 극한의 상태에서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노래했던 책들이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함박 미소를 지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03년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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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18년간의 기록

일기를 쓴 박일호는 '한국시사만화계의 대부'로 불리는 박재동 화백의 아버지이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됐을 때, 필자는 '일기장'이라는 부분에 눈길을 두었다. 그래서 박재동 화백이 자신의 일기장을 세상에 공개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어쩌다 박재동 선생 부친 되시는 어른의 일기장을 읽게 되었다'라는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이 책은 박일호의 일기를 엮은 것이다. 만화가게, 분식점 그리고 문방구 주인이었고, 또한 30년간 병마에 시달린 무명인의 일상적인 기록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고백할 것이 하나있다. 사실 필자는 이 책을 박일호 선생이 아닌 박재동 화백의 시선으로 읽었다. 아무리 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한 무명인의 일기를 엮은 책을, 흔쾌히 돈을 주고 구매하는 책벌레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독서 실력이 하찮은 필자 같은 독서인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다. 필자는 박일호 옆에 적힌 박재동이란 이름 석 자가 없었다면 이 책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기를 쓴 박일호 선생은 1929년 경남 울산 범서읍(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면)에서 태어나 언양중학교를 졸업한 뒤, 해방 직후 교편을 잡았다. 당시에는 교사가 부족하여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도 교단에 섰다고 한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는데 군 당국이 관련 서류를 분실하여 재징집이 되어 군대를 두 번이나 가게 됐다고 한다.

제대 후에는 양사초등학교로 복직을 하게 됐고, 23세에 박재동의 모친인 신봉선 여사와 혼인을 하게 된다. 교단에 다시 선 박일호는 열정적으로 교직 생활을 하게 된다. 과로까지 해가며 학생들을 가르친 것이다.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키며 대충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맡은바 소임을 다하겠다는 각오로 수업을 진행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과로가 쌓이다보니 폐결핵이 발병했고, 그 폐결핵 때문에 교단까지 떠나야 했다. 그렇게 병치레를 하다 간경화까지 얻게 된다. 그렇다. 박일호의 젊은 시절은 설상가상처럼 불운의 연속이었다.

 오마이뉴스에서 강연 중인 박재동 화백
▲ 박재동 화백 오마이뉴스에서 강연 중인 박재동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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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가난을 극복하게 해 준 가족사랑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다보면 건강, 질병, 병간호에 대한 언급이 꾸준히 나타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돈이 많이 드는 법! 더군다나 박일호는 교편을 떠나야 하지 않았던가. 산 입에 풀칠을 할 수 없었기에 박일호와 신봉선은 팔을 걷어 붙여야 했다.

부산으로 이주한 그들은 연탄배달, 풀빵장사, 팥빙수장사에 손을 댔다. 그러다 집주인이 하던 만화방을 인수하기에 이른다. 시사만화가 박재동을 탄생시킨, '천국의 도서관'인 그 만화가게를 넘겨받은 것이다. 이렇듯 <아버지의 일기장>에서는 1970~1980년대 한 가난한 도시 서민의 삶의 투쟁(?)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었다. 이 책의 한 축이 박일호의 투병이었다면, 또 한 축은 생활고였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필자가 나열한 두 축을 기본으로 삼으면 이 책은 그저 '글루미 선데이'같은 우울한 기록물일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정겹고, 익살스러운 박재동의 삽화와 코멘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그랬기도 했지만, 그보다 투병과 생활고를 뛰어넘는 세 번째 축이 굳건히 서있었기에 필자는 즐거운 기분으로 책장을 사뿐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럼 그 세 번째 축은 무엇일까? 바로 가족애(愛)였다.

오늘 재동이가 군복무 중 화실에 나가 받은 보수(월 4만원)를 내 약대(藥代)로 내놓았다. 난생처음 자식에게 받은 돈에 얼떨떨하다. 불효자인 내가 자식의 효심에 새삼 감동한다. 부디부디 재동에게 서광이 비치길 빌고 또 빈다. '자식에게 받은 돈' 1976년 6월 14일자, 78페이지.

<아버지의 일기장>에서는 청년 박재동이 등장한다. 1976년 당시 방위 복무를 했던 박재동은 낮에는 자택 인근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고 밤에는 화실에 나가 학생들을 지도했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번 돈을 약값에 보태라고 내놓으니 부모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특했겠는가.

이외에도 책 곳곳에서는 가족애가 넘쳐났다. 박일호 선생은 어버이날 딸(명이)이 달아준 카네이션에 환한 미소를 지었고, 둘째 아들(수동)이 달라는 동문회비를 주지 못해서 가슴을 쳐야 했다.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장서방(명이의 남편)의 칭찬에 침이 마를 정도였고, 큰 며느리(박재동의 부인)와 작은 며느리(수동의 부인)의 정성에 감동했다. 그렇다. 병치레의 고통과 저조한 매상 같은 암울한 기록들도 책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행복한 기록들이 <아버지의 일기장>에서는 만발하고 있었다.

 독자들을 위해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있는 박재동 화백. 직접 만나보면 실제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다. 
자세히 보면 '청년' 박재동이다.
▲ 박재동 화백 독자들을 위해 캐리커처를 그려주고 있는 박재동 화백. 직접 만나보면 실제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다. 자세히 보면 '청년' 박재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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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슈퍼우먼

이 책을 읽다보면 강한 부부애도 느껴진다. 부부의 인연이 이렇게도 강할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박일호와 신봉선은 찰떡궁합이었다. 이들에게는 연리지나 비익조 같은 수식을 붙여도 될 정도였다. 연리지는 한 나무의 가지와 다른 나무의 가지가 서로 붙어있다는 뜻이고, 비익조는 암컷과 수컷이 각각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라서 짝을 이루지 못하면 날 수 없다는 상상속의 새 이름이다. 연리지와 비익조는 둘 다 금실 좋은 부부를 지칭할 때 쓰이는 말들이다. 그런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부부는 서로에게 좋은 동반자였다.

병든 남편을 위해 신봉선은 매일 같이 보양식을 준비했고, 장사도 도맡아 했다. 신봉선은 '슈퍼우먼'이었는데 연탄배달, 빙수 만들기, 떡볶이 조리, 문구류 판매까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 거기다 남편을 대신해서 파출소까지 끌려가야 했다. 당시는 '불량식품' 근절이니 '유해만화 단속'이니 하는 강압적 단속이 철마다 시행됐는데 병든 남편을 대신하여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고달프고 힘겨운 생활이었지만 신봉선의 다짐은 '강철'과도 같았다. <아버지의 일기장>은 박일호의 일기 이외에 첨언 식으로 박재동과 신봉선의 기록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와 관련된 기록을 한 번살펴보자.

천한 장사한다고 사람까지 천하게 보는 일이 허다했다. 어떤 부모는 아이들이 만화책을 빌려왔다고 열 권이 넘는 책을 불태워버린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만화책이 살림 밑천인데 서슴없이 찢어서 불태워버린다고. 어떤 이는 우리집 양반이 옳은 소리를 하면 만화방 하는 주제에 하고 무시하고, 평생 만화방이나 해먹으라고 악담까지 한다. 내 자식만은 당신들 뒤지지 않게 훌륭하게 키우리라. 세상 사람들이 얕보고 무시할 때면 내 마음은 강철같이 다져진다. 우리의 희망은 오직 세 아이다. 76페이지.

이렇게 가족을 위해 아내는 희생을 했고, 그런 아내를 박일호는 극진히 사랑하였다. 그런 부부애가 통했던 것일까? 발병 당시 얼마 못 산다는 의사의 진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박일호는 3남매를 다 시집·장가 보냈고, 손자·손녀까지 안아 봤다. 또한 아들 박재동의 손을 거쳐 자신이 18년간 써온 일기장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아버지의 일기장>에서 박재동은 '타임머신'을 타고 청년 박재동으로 돌아가 그 시절의 아버지와 대화하고 있다. 매일같이 글쓰기가 버겁다는 아버지의 일기에 아들은 힘들어도 꾸준히 써야한다고 답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쓴 일기장을 통해 현재의 박재동은 '철없던' 청년기의 자신과 만나고, 그 '철없던 아들'을 묵묵히 바라보는 아버지를 만나고 있던 것이다.

 박재동 화백이 직접 그려 준 필자의 모습. 그런데 필자의 모습이 좀 껑뚱하게 나온 것 같다. 박 화백께서는 이 그림을 불과 30초 만에 완성하셨다. 놀라울 정도의 속작 능력이다.
▲ 캐리커처 박재동 화백이 직접 그려 준 필자의 모습. 그런데 필자의 모습이 좀 껑뚱하게 나온 것 같다. 박 화백께서는 이 그림을 불과 30초 만에 완성하셨다. 놀라울 정도의 속작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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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꿈

아버지에게도 꿈이 있었다. 특용작물을 기르는 농장 경영이 바로 그것이었다. 박재동의 할아버지는 박일호에게 농사를 지으라고 지게를 만들어줬지만 박일호는 그 지게를 부숴버린다. 자신에게는 꿈이 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하지만 아버지의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젊은 시절 들이닥친 병마 때문에 모든 것을 접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접어야 했던 아버지의 꿈은 고스란히 자식 세대로 넘어갔다. 부모세대의 꿈과 관련하여 박재동은 오마이뉴스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녀들의 꿈이 중요하듯 부모들의 꿈도 중요합니다. 자식들의 꿈을 위해 부모들이 자신의 꿈을 접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자식들을 위해 일방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은 전후로 필자는 꿈이 하나 실현됐고, 새롭게 꿈이 하나  생겼다. 실현된 꿈은 평소에 존경했던 박재동 화백을 직접 만났고, 박 화백이 직접 필자의 캐리커처를 그려주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생긴 꿈은 결혼이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어서 결혼 생각은 엄두도 안 났지만 이 책을 읽으니 당장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로생활도 좋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면 솔로 때와는 다른 희로애락이 생길 것이다. 그런 희로애락을 거치다보면 부모만이 깨달을 수 있는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의 캐리커처를 그려준 박재동 화백에 대한 답례로 박재동 화백의 캐리커처를 그려보았다. 박 화백이 그려준 그림에 필자의 그림을 덧붙였다. 그럼 박재동 화백과 곽작가의 공동작업이 되는건가?  박재동 화백을 그린 캐리커처는  <손바닥아트>에 나온 모습을 응용해서 그려보았다. 
 저 그림 그리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이 참에 그림 공부 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시화전을 열어보고 싶다. 시화전도 나의 꿈이다.
▲ 캐리커처 필자의 캐리커처를 그려준 박재동 화백에 대한 답례로 박재동 화백의 캐리커처를 그려보았다. 박 화백이 그려준 그림에 필자의 그림을 덧붙였다. 그럼 박재동 화백과 곽작가의 공동작업이 되는건가? 박재동 화백을 그린 캐리커처는 <손바닥아트>에 나온 모습을 응용해서 그려보았다. 저 그림 그리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이 참에 그림 공부 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시화전을 열어보고 싶다. 시화전도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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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기장>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앞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는 내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두 책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둘 다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까지 미소를 머금고 읽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일기장>은 30년 동안 병마에 시달린 사람의 기록이었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던 사람의 기록이었다. 병마와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것에 굴하지 않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기록했던 두 분께 박수를 보낸다. 또한 좋은 기록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 준 박재동 화백에게도 감사를 보낸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artpunk

제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아버지의 일기장 - 만화가 박재동, 아버지의 오래된 일기장에서 부정父情을 읽다

박일호 일기, 박재동 엮음, 돌베개(2013)


태그:#박재동, #아버지의일기장, #박재동캐리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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