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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성 위원장님께

최저임금위원회 박준성 위원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 위원장 한지혜라고 합니다. 아니 오늘은 30대 청년, 최저임금에 준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미혼의 여성으로 전할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대졸 이상 학력의 고소득·미혼의 30대로 공무원에 종사하는 여성'으로 파악돼 눈길을 끌었다." (<머니투데이> 2013.07.02.)

'대졸, 미혼의 30대'는 같지만 고소득, 공무원이 아닌 저는 안타깝게도 행복한 사람에 속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뿐만이 아니라, 저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대다수의 20,30대 청년들은 행복을 빼앗긴 조건의 삶을 살고 있기도 합니다.

한지혜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한지혜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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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대학진학률 80%를 넘겨버린 우리나라는 대졸 이상의 고학력을 가진 청년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해 등록금 천만 원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가계는 많지 않기 때문에, 청년들은 입학하자마자 생계를 위해, 등록금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두세 개의 알바를 동시에 뛰기도 합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온 친구들은 케케묵은 지하단칸방이나 화재나 질병, 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고시원, 누우면 발이 현관 밖으로 빠져나오는 원룸 등에서의 주거생활이라도 이어나가기 위해 알바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졸업을 하면 좀 나아질까요? 사실은 졸업을 유예하고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취업준비를 하는 청년들이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먼저 졸업한 선배들이 전공을 살려 중소기업으로, 당장 취업이 되는 일터로 일명 '묻지마 취업'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기업 월급의 절반수준 밖에 되지 않는 임금으로 매일 야근에 병들어 가고,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르는 불안정한 기업에서 힘들어하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취업과 실업을 오가느니 차라리 취업준비기간을 늘려 한 번에 승부를 보고 싶은 것입니다.

6번의 학자금 대출, 졸업 전에 시작된 원리금상환

청년유니온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년유니온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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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취업준비기간을 늘리는 친구들도 학비를 지원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없으면 생계를 위한, 학비를 위한 일을 해야 합니다. 학자금대출을 받은 친구들은 '신용유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게 되는데 '묻지마 취업'조차 하지 못하면 알바를 전전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후자에 해당합니다. 4년제 대학교를 갔고 1년 동안 휴학을 하고 알바를 했지만 한 학기 등록금 벌이도 쉽지 않다는 것을 체득하고 차라리 일찍 졸업하고 취업해서 갚자는 심정으로 6번의 학자금대출을 받았습니다. 2800만 원의 빚은 제가 졸업하고 취업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고, 졸업도 하기 전에 월 60만 원이라는 원리금상환이 시작됐습니다.

저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고 구직사이트를 매일 보며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해왔습니다. 그런 일들은 대부분이 알바였고 길어야 몇 개월 정도를 지속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받는 임금은 당연히 최저임금 수준이었지요. 정보통신이라는 전공을 살려 중소기업에 이력서를 내보기도 했지만 제 스펙이 부족한 탓인지 면접을 보러 오라는 기업은 없었습니다.

알바를 전전하던 저는 다행이도 최저임금을 지키는 사업장들을 만나 한 달에 60만 원씩 학자금 대출 원리금상환을 하면서 살 수는 있었습니다. 평균 월급 90만 원을 받으며 일을 할 때면, 빚을 갚고 남는 30만 원으로 온전히 식비와 교통비를 해결해야 합니다.

통신비가 더 나올까 전전긍긍하며 친구들과 연락하는 것에도 인색해져야 했고 돈이 부족할 때면 점심을 굶기도 했습니다. 운이 좋아 100만 원 정도 버는 일을 할 때면 생활비에 보태고자 4대 보험을 포기한 채(파견직은 업체가 4대 보험을 선택하게 합니다) 다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일을 했습니다.

'신용유의자'(신용불량자의 순화어)가 되지 않고 살 수는 있었지만 제게 미래는 없었습니다. 일만 하는 기계처럼 집과 일터를 오고갈 뿐 친구도 문화생활도 앞으로의 미래도 꿈꿀 수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가장 많이 벌었던 돈이 평균 120만 원,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판매사원으로 일을 하면서입니다.

최저임금은 '청년 임금'... "인상해야 합니다"

알바연대 기습시위 유인물 회수하는 경찰
 알바연대 기습시위 유인물 회수하는 경찰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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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제야 앞으로의 삶을 조금씩 고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빚을 갚고도 남는 생활비의 여분을 나를 위해 쓰면서 적성에 맞는 영역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학원도 다니고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헤쳐 온 것을 자랑하려고 지금까지 구구절절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저와 같은 처지의 청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일하는 청년들이 받는 월급이란 것이 최저임금과 너무도 밀접하게- 아니 어쩌면 온전히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청년들은 더 절박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유니온은 "최저임금은 청년임금"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실제로 청년유니온이 2012년 20,30대 청년들을 상대로 가계부 조사를 했을 때 평균 119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노동계가 요구하는 최저임금을 5910원으로 올릴 경우, 12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임금의 60%이상 고정지출금액(주거비, 식비, 교통비)으로 평균 15~20%는 빚(학자금 대출, 생활비 대출)을 갚는데 사용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빚을 갚기 위해, 혹은 보다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많은 청년들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최저임금으로는 내 몸 하나 눕힐 집에서 살고, 삼시 세끼를 먹고, 아프면 병원을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삶조차 이어나가기 버거운 것이 현재 청년들의 현실입니다.

일하는 청년들이 삶을 이어나가고, 나아가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다름 아닌 최저임금의 인상입니다. 교육제도와 일자리의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 절망 속에서 청년들의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최저임금의 인상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 박준성 위원장님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기 때문에 청년들의 현실을 모르지 않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공익위원으로서 사용자와 노동자 양측의 입장을 헤아리고 조율해야겠지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최저임금 심의 과정을 보면,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영세자영업자들을 위한다는 논리로 노동자, 청년당사자들의 삶은 뒤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경제는 어렵지 않은 적은 없었고, 영세자영업자들이 힘든 이유 또한 대기업들의 횡포, '슈퍼갑'의 횡포 때문이라는 것이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향한다는 이번 정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이 이루어지고, 국민 각자가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는 정부를 대신하여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의 역할에 충실해 주실 것을 감히 부탁드립니다. '공익'을 위해 최저임금 심의에 참여하는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 모두가 함께 사는 경제를 만들 수 있도록, 노사 양측 사이에서 중재의 책임을 반드시 지셔야할 것입니다.

"대졸 이상, 고소득, 30대 미혼의 공무원에 종사하는 여성"이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도록, 일하는 청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박준성 위원장님을 비롯한 공익위원님들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졸 이상, 저소득, 30대 미혼의 행복해지고 싶은 한지혜 드림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청년유니온 위원장입니다.



태그:#최저임금, #최저임금위원회, #청년유니온,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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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작은 소리나마 외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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