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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가수 싸이가 이탈리아 프로축구 결승 무대 축하 공연에서 야유를 받아 인종차별 논란이 있었다. 로마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탈리아 프로축구 AS로마와 라치오팀간의 결승전에 앞서 열렸던 축하공연에서 강남스타일을 부르던 싸이에게 관중들이 야유와 함께 폭죽을 터뜨리고 응원가를 부르는 등 공연진행을 심각하게 방해했다.

그러나 당시 현지 공연 관계자들은 약간의 불미스런 일과 인종차별이 우려되는 행동들이 있었을 뿐이라는 우회적인 표현만 했을 뿐이다.

이외에도 AS로마 팬들은 지난 5월12일 밀라노 산시로 경기장에서 열린 AC밀란과의 원정경기에서 이 팀의 흑인 선수인 마리오 발로텔리와 케빈 프린스 보아탱에게 '원숭이'라고 인종차별성 야유를 보내 경기가 중단되는 일까지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5년 사이에 중국인 이민자들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추세라는 통계발표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갈수록 심해지는 인종차별이었다.  이탈리아에는 인종차별이 노골적인 방법으로 존재한다. 특히 인종차별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이탈리아인들 사이에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탈리아 최초의 흑인 장관의 수난

그런 사실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 있다. 피해자는 다름 아닌 콩고 출신 여성인 세실 키안주 이탈리아 국민통합부장관이다. 그녀는 4월 말 장관에 임명된 후 두달 동안 처참하게 인종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인종차별 논란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 첫 흑인장관인 세실 키안주 국민통합부 장관.
 인종차별 논란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 첫 흑인장관인 세실 키안주 국민통합부 장관.
ⓒ 위키피디아 공동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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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총선에서 제1당인 중도좌파 민주당(PD)은 상원의원이 과반을 넘지 못하자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나폴리타노(88) 대통령은 엔리코 레타(46. 민주당 전 부당수)를 새 총리에 임명했고, 새 총리는 베를루스코니가 리더로 있는 중도우파 자유국민당(PdL)과 그외 중도연합당 모두를 끌어안는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했다. 카를로 참피(C.Ciampi) 내각이후 20년만의 일이다.

2월 총선에서 중도우파 및 극우정당들은 현 상태로 나가면 이탈리아는 이민자들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며 반이민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반면 중도좌파와 진보측에서는 경제활성화를 위한 노동인구증가를 말하며 적극적이고 새로운 이민정책(속인주의에서 속지주의로 변경)공약을 내걸었다.

레타 총리가 세운 연립정부의 새 내각 각료 21명에는 여성이 7명 포함됐다. 그 가운데 한명이 바로 세실 키안주(48) 장관이다. 세실 키안주 장관은 이탈리아 역사상 첫 흑인장관으로, 그녀가 이끄는 국민통합부는 다문화정책을 위한 신설부서다.

이탈리아는 이민 역사가 짧다. 1980년대 들어와서야 남부해안지방에서 동유럽과 아프리카 이주민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타문화권에 대해서도 배타적이다. 그 배타성은 1991년 창당된 극우보수세력인 북부연합당(Northern League) 영향이 크다. 움베르토 보씨(U.Bossi)가 리더인 이 정당은 창당시기부터 이민자 강압정책을 기본정책으로 내세워, 일명 '외국인 때려잡기 당'이라는 노선을 선택했다. 그후 유럽사회에서 질타가 쏟아지고 입지가 좁아지자 '외국인 배타주의'에서 '불법이민자 배타주의'로 약간의 노선 변경을 시도했다.

세실 키안주는 콩고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콩고 정부의 행정관료로 4명의 부인을 통해 총 39명의 자녀를 얻었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는 그녀는 가톨릭 장학금으로 청소년기에 이탈리아로 유학 와 로마카톨릭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그후 에밀리아 로마냐주 모데나시 모데나 대학에서 안과전문의 학위를 땄다. 그는 이탈리아 남편과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이 있고 이탈리아 시민권자다.

그는 2005년부터 모데나시의 민주당원으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난민돕기와 소수민족 이민자들을 위한 활동에 적극 참여했고, 2008년에는 모데나시 민주당 지방위원이 됐다. 올 2월 총선에서는 민주당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리고 새 총리의 지명을 받아 신설 국민통합부장관이 된 것이다.

5월 30일 의회연설에서 레타 총리는 "희망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고, 다양한 공동체 사이의 다리를 연결하는 새로운 시도가 세실 키안주 장관이 이끄는 국민통합부에서 시작될 것"이라며 국민통합부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기도 했다.

키안주 장관은 취임 후 빡빡한 순회일정을 소화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이 강한 북부의 베네토지방(베네치아, 파도바, 베로나, 트레비조 도시 등이 포함된 지역)을 방문했다가 봉변을 당하게 된다.

참고로, 베네토지방은 극우파인 북부연합당 강세 지역으로 1980년대 전 이탈리아를 경악케했던 글라디오(Gladio)사건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글라디오'는 좌파세력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조직된 과격극우단체로, 베네치아의 명문 귀족가문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그들은 자발적인 후원금으로 무기를 구입하고, 자체적으로 자치법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에 상반되는 단체 및 민간인들을 향해 민간테러를 일삼은 범죄집단이다.

당시 카손검사(현 민주당 상원의원, 원내 부대표)의 전격적인 수사로 그 전모가 드러나 소멸됐지만, 베네토지방 명문귀족들 사이에는 그 단체에 대한 향수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은 일본 극우파와도 밀접히 문화 교류를 하며, 위안부 및 독도 등의 이슈에 대해서도 일본측의 제국주의적 해석을 그대로 홍보하는 등 지극히 반한국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세실 너네 나라로 가버려!"

실제로 키안주 장관이 파도바시 방문 당시 야유와 휘파람과 상스러운 욕지거리가 난무했다. 문제는 그런 군중을 처리하는 파도바 시청 측의 태도다. 국민통합부장관에 대해 일부 시민들이 야유와 조롱을 해도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북부연합당을 비롯해 이탈리아 정부, 국회, 국민통합부 공식 홈페이지는 물론 키안주 장관의 페이스북에는 아래와 같은 인종차별적인 글들이 난무했다.

'"콩고의 원숭이를 콩고로 돌려보내라."
"세실, 너는 줄루족 원숭이다."
"세실, 너, 너네 나라로 가버려!'
"그녀는 반이탈리아적인 흑인이다. 이탈리아를 흑인천국으로 만들어 망하게 할 것이다."
"콩고부족전통을 왜 이탈리아에 심으려 하냐."
"세실, 너네 38명 형제들도 이탈리아에 불러들일거냐?"
"어이, 레타총리, 장관임명하랬지 어디서 원숭이 데려다 앉히라 했냐? 좌파들이 하는 짓이란 이렇다."

이런 비방성 글들이 공공연하게 북부연합당 공식홈페이지에 올라오자 기자들에게 마르코 파반(M.Pavan) 지방의원은 "누구나 자기의사를 자유롭고 다양하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며 삭제의사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런 내용들은 의원들 간의 공방으로 확전됐고, 급기야 북부연합당소속 의원들의 망언이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전해졌다.

콩코 출신의 이탈리아 첫 흑인장관인 세실 키안주 국민통합 장관.
 콩코 출신의 이탈리아 첫 흑인장관인 세실 키안주 국민통합 장관.
ⓒ 세실 키안주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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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3일 북부연합당 소속 여성 의원인 발란드로(Dolores Valandro)는 아프리카 사람이 이탈리아 여성 두 명을 성폭행한 사건과 관련 모든 범법 이민자들을 조사대상에 넣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은 망언을 키안주 장관 페이스북 그녀의 사진 옆에 올렸다.

"왜 아무도 이 여자(세실 키안주 장관)를 성폭행하지 않는거야? 이 여자도 한 번 그렇게 똑같이 당해봐야 끔찍한 성폭행에 대해 그 희생자들이 겪는 고통을 좀 알 텐데, 도대체 왜 아무도 이 여자를 성폭행 하지않고 그냥 두는 거야!"

이에 키안주 장관은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그런 발언으로 상처를 받을 것"이라고 반응했고, 레타 총리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짓들을 하고 있다. 키안주 장관은 이탈리아를 위해 우리 모두와 연대관계에 있는 정부 각료"라고 그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다.

북부연합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중도우파 자유국민당(PdL)까지도 이번에는 극히 예외적으로 "발란드로의 발언은 인종차별주의와 극도의 증오로 가득차 있다"며 규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유럽의회에서도 강도 높은 경고 메시지를 보냈고, 결국 그는 징계처분당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 화가 나서 나온 말"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결국 6월 24일 경찰이 관련 내용 검색 작업에 들어가자 비방 글들이 삭제되기 시작했는데, 북부연합당측에서 끝까지 삭제를 거부한 문구는 다음과 같다.

"콩고 너네 집으로 가! 에베테(Ebete)"

북부연합당측이 밝힌 삭제 불가 이유는 이 말은 베네토지방 특유의 방언으로 유머섞인 덕담(!)이지 결코 비방성 문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에베테는 상당히 모욕적인 욕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북부연합당 핵심간부이자 베네토지방 도지사인 루카 자이아(L.Zaia)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런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강력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고 발표하며 자신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과 하등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지난 6월 22일 베네토 지방 트레비조(Treviso)도시에서 있었던 다문화축제 개막식에서 참석한 키안주 장관을 앉혀 놓고 도지사인 그는 황당한 내용으로 연설을 한다.

"나는 세실장관의 얼굴에서 결코 검은 색을 볼 수가 없다. 살색, 분홍색, 주황색 등 여러 다양한 색을 본다. 왜 그녀를 칭할 때 검은 색을 말하는지 난 이해가 안 간다. 이제 피부색 얘기는 그만하자. 그리고 정작 필요한 '일'에 관해서 말하자. 할 말은 해야겠다. 세실 장관, 도대체 지금 뭐하시는 건가? 지금 뭐하고 다니시는 거냐? 불법입국자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입법안을 준비하기도 바쁠 시간에 여기저기 이민자들을 방문해서 그들의 분위기를 살려주느냐? 왜 이민자들의 권리 찾아주는데 시간을 낭비하느냐? 불법이민자들에게 피해 당하는 우리들 권리는 왜 안중에 없으시냐? 우리도 우리 자식들 먹이고 키우기 급급하다. 왜 불법이민자들에게 세금을 써야 하냐 ? 자 이제 그만 돌아다니시고 책상에 앉아 이민자들을 규제하고 처벌하는 새 입법안을 만드시라. 나를 비롯해 우리 북부지방 사람들은 구체적인걸 좋아한다."

이것이 행사 주최자인 도지사가 방문자인 장관을 앉혀 놓고 수천명 관중을 향해 한 말이다. 장관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신뢰가 무시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북부연합당, 아라비아 숫자 적힌 시계 퇴출 요구  

또한 북부연합당은 같은 날인 6월 22일, 산마리티노 피에몬타노 지방위는 북부도시들의 초중고 교육기관들 교실에서 아라비아 숫자가 적힌 시계를 없애 줄 것을 요구했다. 이탈리아 문화를 좀 먹고 있는 이슬람 이민자들의 아라비아 숫자가 청소년들의 머릿속에 자리잡음으로써 북부 이탈리아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손상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들은 아리비아 숫자가 아닌, 로마문자 표기의 시계를 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이탈리아의 '생얼'이다. 맛있는 피자와 파스타 요리, 멋지고 날렵한 페라라와 람보르기니 자동차, 훌륭한 장인들이 만든 세련된 명품들, 이 모든 것들과 함께 인종차별이 이탈리아에는 공존하고 있다.


태그:#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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