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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8일 공주대 산학협력관 강당에서 열린 '공주 왕촌 한국전쟁희생자 합동위령제'
 지난 28일 공주대 산학협력관 강당에서 열린 '공주 왕촌 한국전쟁희생자 합동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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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진보한다는 걸 믿지 않습니다."

지난 28일 충남 공주에서 열린 '한국전쟁 시기 공주지역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한 유가족의 자조 섞인 한마디입니다.

공주 왕촌 살구쟁이. 1950년 7월 이곳에서 집단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국군과 경찰은 공주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500~700여 명을 이곳에서 집단 총살했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10년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1950년 7월 9일께 공주형무소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원 등 최소 400여 명을 공주 CIC분견대, 공주파견헌병대, 공주지역 경찰 등이 집단학살한 일은 '진실'이며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2009년 공주 왕촌 살구쟁이 현장에서는 317구의 희생자 유해가 수습됐습니다. 조사결과 구덩이 안에 몰아넣고 쭈그려 앉은 자세에서 총살한 후 그대로 매장했습니다. 유해를 흙으로 덮지 않고 큼지막한 돌덩이로 눌러 놓은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추가로 드러난 약 80∼90여 구의 유해... 5년째 방치

한국전쟁당시 군경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들이 묻혀있는 공주 왕촌 살구쟁이 현장.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지난 2009년 이곳에서317구의 희생자 유해를 수습했다.
 한국전쟁당시 군경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들이 묻혀있는 공주 왕촌 살구쟁이 현장.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지난 2009년 이곳에서317구의 희생자 유해를 수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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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왕촌에 발견된 지 5년 여 동안 수습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 유해매장지. 약 80∼90여 구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주왕촌에 발견된 지 5년 여 동안 수습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 유해매장지. 약 80∼90여 구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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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해수습을 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해 발굴에 앞서 폭우에 대비해 굴착기로 배수로를 정비하던 중 나무뿌리에 사람의 뼈가 엉겨 붙어 드러났습니다. 배수로 위쪽에서는 다수의 머리뼈가 드러났습니다. 또다른 새로운 유해매장지(5번째 구덩이)가 확인된 것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팀은 약 80∼90여 구의 유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계획된 4개의 구덩이에 대한 유해수습을 마친 발굴팀은 추가로 드러난 5번째 구덩이에 있는 유해를 수습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추가 예산이 지원되지 않았습니다. 예산이 지원되기만을 기다리던 발굴팀은 못다 수습한 유해를 남겨두고 결국 현장에서 철수해야 했습니다.

발굴팀은 '유해 발굴 보고서'(2009년 말)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당초 진실화해위원회가 제시했던 조사지역 내 4개 지점(구덩이) 이외에 조사지역 밖에 다수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시간과 예산상의 문제로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음을 아쉬워하며 이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계속돼야 할 것이다."

박선주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단장은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 남아 있는 유해의 경우 부식속도가 매우 빨라 가능한 시급히 수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가 할 일... 그런 돈 없다"

부식된 유해 (2009년 공주 왕촌 살구쟁이 유해발굴 모습)
 부식된 유해 (2009년 공주 왕촌 살구쟁이 유해발굴 모습)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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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가까이가 흘렸습니다. 그 후 어떻게 됐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약 80∼90여 구의 유해가 여전히 그대로 묻혀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 업무가 종료됐습니다. 충남도와 공주시는 '중앙정부가 할 일'이라며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습니다.

박선주 유해발굴단장(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이 직접 공주시를 찾아가 인건비 등을 제외한 실비 3000만 원만 지원하면 유해발굴을 마무리하겠다고 하소연했지만 "그런 돈은 없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습니다.

유족회에서도 공주시(시장 이준원)는 물론 충남도지사(도지사 안희정)에게 수차례에 걸쳐 유해발굴에 필요한 인허가와 예산지원 등 행정적 지원을 요청하는 탄원서도 내봤지만 허사였습니다.

곽정근 유족회장은 말합니다.

"충남도지사와 공주시장에게 간절한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중앙정부 일'이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불과 30평 미만의 땅에 묻혀 있는 유골마저 외면하는 현실이 비참하기만 합니다"

전국 유족회관계자도 말합니다.

"2010년 정부가 무고한 민간인을 불법으로 학살한 것은 잘못이라고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했습니다. 사과 이후 공주시와 충남도처럼 무심한 곳은 보다보다 처음입니다"   

공주시는 매년 한 차례 열리는 '희생자 위령제 지원'마저 매년 거절했습니다. 지난 28일 열린 합동위령제에도 10원의 예산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충남도와 공주시의 답변처럼 유해발굴과 위령제에 힘을 보태는 일이 중앙정부에서만 해야 하는 일일까요?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는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건과 관련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할 화해조치의 하나로 ▲희생자 위령제 봉행 및 위령비 건립 등 위령사업 지원 ▲유해발굴과 유해안치장소 설치 지원 등을 권고했습니다. 

공주시장, 단 한 번도 위령제 참석 안해

지난 28일 열린 공주지역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지난 28일 열린 공주지역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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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열린 공주지역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에 지역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지난 28일 열린 공주지역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에 지역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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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공주시장은 정부의 권고에도 단 한 번도 위령제에 참석하거나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습니다. 현 공주시장은 지난 2009년에는 정부기구인 '진실화해화해위가 주관한 공주 왕촌 살구쟁이 희생자들의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 및 위령제 추도사도 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28일 서면으로 보내온 의례적인 추도사를 통해 "60년 전의 불행한 역사의 현장을 교훈삼아 다시는 전쟁의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며 "희생자 영전에 삼가 위로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이를 접한 유가족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다시는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람이 유해 수습조차 외면합니까?"
"올해도 어김없이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네요. 정말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마음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유가족들은 큰 비가 올 때마다 부모형제일지도 모를 유해가 쓸려나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태그:#민간인학살, #유해발굴, #한국전쟁, #공주왕촌, #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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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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