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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를 통해 한국사회가 지닌 모순의 뿌리를 짚어온 정지영 감독. 천안함 영화 제작 및 국정원 선거개입 서명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련의 모습에서는 자신이 믿는 바를 끊임없이 관철할 줄 아는 힘이 느껴진다. 영화를 통해 약자와의 연대를 끊임없이 말해온 그가, 이번에는 국제민주연대 공정여행 홍보대사로 오는 7월 27일부터 8월 4일까지 진행하는 윈난 공정여행 프로그램에 동행할 예정이다.
인터뷰 동안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정지영 감독
▲ 정지영 감독 인터뷰 동안 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정지영 감독
ⓒ 이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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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지난 6월 26일, 정지영 감독은 영화사 아우라픽쳐스 사무실에서 소수민족과 여행자들 간의 지속 가능한 연대를 고민하는 공정여행 기획자 최정규 여행작가를 만나 공정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와 여행. 언뜻 이질적인 듯 했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소수가 지닌 정체성을 지키려 애써온 두 사람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공정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

여행과 영화에서 지속 가능한 관계를 추구해온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눴다.
▲ 공정여행 기획자 최정규 작가(좌)와 정지영 감독(우) 여행과 영화에서 지속 가능한 관계를 추구해온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눴다.
ⓒ 이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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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어떻게 공정여행을 처음 시작하게 됐나요?"
최정규 "저 자신을 돌아보니 여행작가나 여행사 운영 등 여행에 대한 일은 두루두루 많이 해온 것 같아요. 그러다가 몸이 좀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쓰려고 계약했던 책도 다 계약 해지하고 1년 반 정도 몸을 다스리며 쉬었습니다."

정지영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할 정도면 많이 아팠나 보군요?"
최정규 "예. 병원 치료를 받으니 더 안 좋아지더라구요(웃음). 하던 일을 일정'부분 내려놓고 지내던 중, 몸이 나으면 일년 정도 기간을 정해두고 돈 버는 일 말고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제가 몸 담아오던 인권단체인 국제민주연대에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제안한 것이고요. 산업구조가 공평하지 못한 기존의 여행사 시스템 대신, 현지 사람들에게 정당한 이윤이 돌아가는 구조로 운영되는 '공정여행'이란 새로운 흐름이 있으니, 이 여행을 캠페인으로 1년 동안만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죠.

이때 국제민주연대 측에서 흔쾌히 승낙해준 덕분에 공정여행 프로그램이 시작됐는데 여행을 몇 번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녀오신 분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았습니다. 국제민주연대의 공정여행에 참가한 후, 자발적으로 참가자들이 모여 국내 공정여행을 기획하거나 국제민주연대에 회원가입을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주셨습니다. 게다가 다음 차수의 공정여행 참가자를 모집할 때도 주변에 적극적으로 공정여행을 알려주신 덕분에 공정여행 일이 점점 커졌습니다."

정지영 "공정여행에 대한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었는지 궁금하군요."
최정규 "제가 투병할 때 공정무역을 하는 단체에서 연락이 온 적이 있어요. 이 단체에서 문의해오길, 진행하는 공정무역의 생산지 견학 여행 프로그램을 '공정여행' 스타일로 진행해보려고 여행 일정을 짰는데 해당 내용이 어떤지 좀 봐달라는 부탁이었죠. 당시 그 단체에서 말하는 공정여행에 대해 잘 몰랐지만, 프로그램을 살펴보니 그 개념이 어렴풋이 짐작됐습니다. 그래서 공정여행에 대해 먼저 알아본 후 프로그램을 검토해 보았더니 제가 그려본 공정여행의 개념과는 프로그램 내용이 맞지 않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어디서 받았는지 물었는데 일반 여행사와는 성격이 다른 특수한 여행사에서 기획했다는 답변이 왔어요. 근데 한두 개 특이한 일정 외에는 일반 여행사와 거의 똑같은 프로그램이었던 겁니다. 그때 이후 공정여행 개념을 국내에 도입하면 좋겠다는 구상을 하면서, 국내 일반 여행사에서 이 프로그램을 쉽게 진행할 수는 없을 테니, 제 몸이 다 나으면 직접 이 여행을 캠페인으로 확산시켜보자 마음 먹었어요."

정지영 "국내 공정무역 단체의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거군요."
최정규 "예. 그때 이후 공정여행 관련 해외 사례를 찾아봤는데 이미 유럽에서는 꽤 확산돼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이래 1990년대에 이르러 그 개념이 확립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영국에서 공정여행 전문 여행사도 생겼죠. 그밖에 유럽 각지에서 공정여행 전문상품이 등장했고요. 이런 해외 상황과 달리, 한국은 2008년 당시 여행 관련 전문가 중에 몇몇만 공정여행이 있다는 언급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제 스스로 여행밥을 먹은 사람으로서(웃음) 한국에서 공정여행이 실현되는 모습을 직접 한번 보여주겠다고 결심했죠. 그 후 국제민주연대와 함께 공정여행을 진행해 국내에서 직접 실행에 옮긴 거죠."

정지영 감독과 공정여행의 접점: 소수성과의 연대

정지영 감독은 공정여행 홍보대사 요청을 받으면서 '공정'이라는 말의 쓰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 '공정'이란 말의 쓰임을 설명하는 정지영 감독 정지영 감독은 공정여행 홍보대사 요청을 받으면서 '공정'이라는 말의 쓰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 이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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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규 "그러고 보니 감독님은 어떻게 국제민주연대 공정여행 홍보대사 요청을 수락하게 되신 건가요?"
정지영 "예전에 아이들 인건비를 착취해서 만드는 초콜릿 대신 공정무역 초콜릿을 사먹자는 취지로 공정무역 홍보대사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공정무역 초콜릿을 들고 사진촬영도 했었어요(웃음). 그때 '공정'이라는 말의 쓰임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덕분에 이번 공정여행 홍보대사 요청이 왔을 때도 '공정'이라는 단어에 대해 또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최정규 "준비된 홍보대사이십니다.(웃음)"
정지영 "게다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여행이 그 나라에 가서 현지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거였거든요.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알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죠. 사람들은 대부분 해외를 여행할 때 자기들과 다른 문화를 이방인의 입장에서 그저 수박 겉핥기로 구경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여행 과정에서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하거든요. 같이 생활은 못하더라도 그 나라의 문화에 한번 젖어봐야 해요. 그런 생각 덕분에 홍보대사 제의가 들어왔을 때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공정여행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계속 진행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봐요. 덧붙여 소수민족은 제가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온 주제이기도 합니다."

공정여행은 여행자들이 현지인들의 삶에 보다 깊숙히 들어가는 체험여행이다.
▲ 공정여행에서 만난 현지인,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여행자들의 모습 공정여행은 여행자들이 현지인들의 삶에 보다 깊숙히 들어가는 체험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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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규 "평소 소수민족에 대해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웃음) 공정여행 기획과정에서 현지 사람들의 노동에 올바로 대가를 지불하려다 보니 정해진 여행 기간 동안 현지인들 삶에 녹아들 수밖에 없도록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더군요. 흔히 공정여행이라 하면 현지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니 이건 '도움'이 아니라 정당한 '거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지영 "사실은 카메라를 들고 전문 인문학자 및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와 함께 세계 문화탐험을 하고 싶은 계획이 있어요. 예를 들면 강대국의 문화가 약소국의 문화를 침범할 때 갈등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걸 극복하는 게 '공정'과 '교류'인데, 그 갈등 해결에 대한 접점을 추적해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거든요."

최정규 "사실 감독님을 홍보대사로 섭외할 때도 그런 비슷한 생각의 맥락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상품 개발한 곳이 주로 중국의 소수민족 지역이라, 약자들의 생계와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그런 문제의식 같은 게 있었죠."
정지영 "옛날에 제가 했던 스크린쿼터 운동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봅니다. 지배문화가 소수문화를 종속시키지 않고 공정하게 교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안전망이 필요하기 때문에 할리우드 문화의 일방적 침식에 대비해 스크린 쿼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죠. 소수민족 문화가 자본에 의해 좌우되면 문화가 획일화되데, 이는 더 나아가 삶까지 획일화되는 것입니다. 소설가 조지 오웰이 쓴 <1984>의 시대나 다름없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생태 다양성도 중요하지만 문화 다양성을 지켜나갈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요.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이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겁니다. 이 협약에서는 각 나라가 자기 문화를 지키고 육성하는 것에 대한 정책을 권장하죠.

소수민족 아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공간 안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고 있다.
▲ 귀주 소수민족 아이들의 웃음 소수민족 아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공간 안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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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규 "제가 소수민족 지역에 다닌 지 10년 정도 됐는데, 다녀보면 점점 안타까워지는 게 있어요. 한족들이 중국 소수민족 지역의 관광자원을 개발하면서 그 지역의 관광 인프라를 다 점령해버리는 거예요. 대표적인 곳이 바로 귀주입니다. 원래 귀주에서 제가 좋아하는 마을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한 마을은 원래 여행자들이 방문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본인들 방식대로 소박하게 공연을 보여줬어요.

그런데 그곳에 한족의 자본이 들어가 관광개발을 시작한 후 다시 찾아 갔더니 귀주 묘족들의 공연을 한족 무대감독이 와서 연출하고 있더군요. 그랬더니 중국의 일반적인 공연과 별 차이가 없어지는 거예요. 공연하는 사람들의 옷만 묘족의 전통복장일 뿐이었죠.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족이 소수민족의 관광상권을 점령하게 됐을 때의 실상을 알게 됐어요.

어차피 소수민족 마을은 앞으로 관광개발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현지 마을사람들에게 직접 여행 자본이 흘러갈 수 있게 직접 계약을 해서 "당신들 마을에서 놀던 대로 공연을 하며 같이 놀아보자"라고 제안하는 거죠. 그게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정지영 "한족들이 소수민족들을 지배할 생각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겠죠.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소수민족 사람들이 스스로 마을의 관광자원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말이죠."

'공정'이란 단어를 일상화할 수 있는 방법

최정규 작가가 정지영 감독에게, 홍보대사로써 공정여행에 대해 바라는 바가 있는지를 물었다.
▲ 정지영 감독에게 공정여행에 대해 바라는 바를 묻는 최정규 작가 최정규 작가가 정지영 감독에게, 홍보대사로써 공정여행에 대해 바라는 바가 있는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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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규 "이쯤에서 공정여행 홍보대사로서 공정여행에 대해 바라는 바가 있다면 말씀해주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정지영 "'공정'이란 말이 사실 일반인에게 낯선 단어입니다. 근데 상당히 중요한 말이죠. 공정이란 단어를 어떻게 해야 편하게 일상화될 수 있나, 이런 걸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소위 자유무역, 자유무역 하는데 '자유무역'가지고는 안 되요. 영화로 치면 영화관에 할리우드 영화가 1000개의 스크린을 장악하고 나머지 영화는 들어갈 데가 없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찾는 영화 위주로 스크린을 내주는 과정에서 작은 영화가 자연히 도태되는 건데 이걸 왜 문제 삼냐고 하기도 하죠. 근데 이건 자유로운 거지 공정한 건 아니거든요. 자유에 공정의 개념이 더해지면 상당히 많은 단점이 극복될 거라고 봅니다. 덧붙이자면 공정이라는 단어가 우리 몸에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람들에게 공정하다는 말이 단지 약자를 배려하는 말로만 인식되는데, 그런 측면도 있지만 더 나아가 기회 균등하고도 연결되는 것이죠. 지금은 사람들이 그걸 체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정지영 감독은 공정여행과 현지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는 진지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참여하는 윈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보이차에 대해 관심을 보이거나 고산병 증세를 걱정하는 등 여행자의 마음으로 여행지에 대한 관심을 표했다. 이번 윈난 공정여행을 통해 현지인들의 삶을 깊숙하게 체험해보고 싶다는 정지영 감독. 그의 여행이 충분히 공정하면서도 즐거운 시간이 될 것임을 확신하게 되는 이유다.

정지영 감독과 공정여행 함께 가고 싶다면?
공정여행은 여행 현지의 주민들에게 여행으로 발생한 이윤이 미미하게 돌아가는 대형 여행사의 패키지 위주 여행산업에 대한 대안적 여행으로, 성매매 관광이나 보신 관광 등 불합리한 형태의 관광을 거부하며 현지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여행 이윤이 돌아가는 형태를 고민하는 여행이다.

여행지 주민들의 생활방식과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물론, 현지 소상공인의 물건으로 쇼핑하기 등을 권장한다. 공정여행을 주관하는 NGO 단체인 국제민주연대에서는 2009년부터 공정여행을 진행해왔으며 올해에도 2013년 여름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모집하고 있다.

인기 여행프로그램으로는 '차마고도 윈난-소수민족 문화체험여행'(8월3일~11일, 8월10일~18일), '내몽골-게르위로 쏟아지는 백 만개의 별, 초원에 눕다'(7월27일~31일, 8월3일~7일), '여름만주-침대기차 타고 대초원 달려 러시아국경까지 가다'(8월10일~14일), '귀주-소수민족 문화체험 여행'(8월3일~11일) 등이 마련돼 있다. 자세한 사항은 국제민주연대 공정여행 홈페이지(www.fairtour.co.kr)와 공식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fairtravel.khis) 등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문의전화: 070-8812-5809.



태그:#공정여행, #정지영 감독, #최정규 작가, #중국 소수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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