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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避難)'이라는 단어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재난을 피하여 멀리 옮겨 감"으로 풀이되어 있다. 이 뜻풀이 속의 '재난(災難)'을 찾아 보았다. "뜻밖에 일어난 재앙과 고난". 곧이어 '재앙(災殃)'을 찾아 그 뜻풀이를 확인하고, 거기에 있는 '변고(變故)'까지 찾았다.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풀이되어 있었다. '재앙'은 "뜻하지 아니하게 생긴 불행한 변고. 또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불행한 사고"로, '변고'는 "갑작스러운 재앙이나 사고"였다.

뜬금없이 '피난'의 사촌 말들을 소개한 이유가 있다. 최근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이끄는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때문이다.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조하는 이 프로젝트는 대한민국 '슈퍼 갑'들의 맨얼굴을 백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의 명칭에 있는 '피난'이란 말은 문제가 아주 많다.

위에서 봤듯이 '피난'에는 재난을 피해 멀리 옮겨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전쟁 피난'은 '전쟁'이라는 '재난'을, '지진 피난'은 '지진'이라는 자연의 '재난'을 피하는 상황을 가리킬 때 쓰인다. '전쟁'이든 '지진'이든 그것들이 '재난'이라는 사실에 딴지를 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세 피난'에 이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세, 곧 세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법적 테두리 안에서 국민들에게서 거둬들이는 돈이다. 그렇게 거둔 돈은 원칙적으로 국민을 위해 쓰인다. 세금은 우리가 국가라는 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세금이 '피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조세 피난'이라는 말은, 세금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니 '재난'으로 여기고 회피해야 한다는 우리들의 왜곡된 통념을 강화한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말이다. 그러므로 '조세 피난'이라는 말은 '조세 회피'나 '조세 도피'라고 써야 한다. 그것이 이 나라의 부도덕한 '슈퍼 갑'들의 진짜 숨겨진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 더 효과적이다.

 책 표지
이 책의 저자들인 윤상헌, 김준형 선생은 같은 대학에서 각각 언어학과 정치학을 가르치는 동료 교수 사이다. 이들이 주목한 문제는 우리가 평소 별다른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의 폭력성과 이중성이다. 저자들은 이를 "언어의 배반"이라고 부른다.

공저자 중 한 명인 김준형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경향신문> 6월 15일자 '저자와의 대화')에서 "오늘날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이 사회에는 뒤틀린 권력이 판을 치고 있고, 그 뒤틀린 권력이 언어를 배반시키고, 우리는 또 무의식적으로 그런 언어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저자들은 뒤틀린 권력을 유지하는 데 알게 모르게 복무하는 '타락한' 언어, 그리하여 결국 우리를 '배반하는' 언어의 본질을 좀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역할을 나누었다.

언어학자인 윤상헌 교수는 우리를 배반하는 말을 이미지(기표)와 의미(기의)로 나누어 그 왜곡 양상을 설명하였다. 반면에 정치학자인 김준형 교수는 말이 권력에 중독된 역사적 배경과 정치학적인 과정을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우리를 배반하는 언어는, 사람들이 평소 무심코 사용하는 말들 중 그 본래 의미를 왜곡하고 사람들의 편견을 조장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이 말들에는 대개 권력의 작동 방식이 반영되어 있다. 이들 '언어의 배반' 사례는 '국가, 정치, 시장, 여론, 국격, 권리, 긍정성, 경험, 성실, 평범, 순수, 진정성, 착함' 들과 같이 일상어로 널리 쓰이는 것들이다. 책에는 모두 28개의 항목이 실려 있다. 몇 가지만 보자.

나쁜 정치인이 가장 듣고 싶은 말 "정치란 더러운 거야"

먼저 '정치'. '정치'라는 말이 들어 있는 "정치란 더러운 거야", "정치란 원래 그래", "정치란 착한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와 같은 표현들(131쪽)이 있다. 이들 모두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냉소적인 말들이다. 사람들이 아주 쉽게, 혹은 당연하다는 듯이 정치를, 그리고 정치인을 욕하는 이유의 상당한 부분도 이런 말들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정치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정치에 무심한 척하면서 냉소하면서도 입만 열면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까닭이다. '정치' 항목의 필자인 김 교수는, 정치를 향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심이 거의 '중독' 수준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바람직한 '관심'이 아니라 '중독'이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저열한 인식 수준을 드러내줄 뿐이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베르나르 마냉은 정당 민주주의의 퇴조 현상에 대해 말했습니다. 시민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주장하는 주권자가 아니라 정치가의 이미지나 선택적 쟁점에 대해서만 반응하는 수동적인 청중이 되고 있다며, 이를 두고 '청중 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라고 정의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도 이런 불행한 트렌드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치는 더러운 거야!"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감합니다. 하지만 그 실망감의 틈을 이용해서 감시를 피하고, 악한 권력을 굳히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은 나쁜 정치인들과 독재자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37~138쪽)

필자의 말마따나 인간은 천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가 꼭 필요하다. 또 인간은 짐승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정치와 정치인을 혐오하고 냉소만 할 게 아니라, 좋은 의미로 정치에 '중독'되어 적극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다음으로 '용서와 화해'. 우리나라는 개항 이후 일제 침략과 분단, 동족 간 전쟁과 독재 정치라는 고통스러운 현대사를 거쳐 왔다. 그만큼 '원수지간'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용서와 화해'라는 말을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많이 쓰는 배경이다. 그런데 이 말들을 정말 진정성 있게 쓰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보수 기득권자들이 독점한 '용서와 화해'

아이러니컬하게도, '용서와 화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보수 기득권자들이 독점한 단어처럼 돼버렸다. '용서와 화해'의 필자인 윤 교수는 이 장에서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방문한 박근혜 후보의 예를 들고 있다. 필자는 박 후보의 행보를 무작정 좋게만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과거 역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이 수반된 것이 아니라면 단지 자신의 이미지 쇄신을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수행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윤 교수는 대통령으로서 그가 펼쳐가는 국정의 내용이 그(방문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 밝혀 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나는 필자의 이런 분석에 동의한다. 최근 국정원 발로 촉발된 일련의 냉각 정국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예의 '진의'가 백일하게 명백하게 드러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나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묘소 방문이 철저하게 기획된 '쇼'였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지금, 부관참시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잔인한 보복을, 무덤에 말없이 누워 있는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김무성, 권영세, 김용판, 원세훈, 남재준 등의 이름을 가진 인간들이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벌인 짓들이 그 명백한 증거이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깊는다"는 속담이 있다. '용서와 화해'의 필자인 윤 교수는 이 속담이,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말 한마디의 무게와 진정성"이라는 원래의 의미를 잃었다고 지적한다. 윤 교수는 "과거만 보지 말고 미래를 이야기하자"는 말 한마디가 용서와 화해의 길을 가자는 말로 들릴 수 있지만, 그 말의 진의는 우리의 역사와 사회정치적 상황에서 확인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고,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죽었다고 외치고 있다.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졌다고 아우성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NLL은 피와 땀으로 지킨 곳"이라는 속보이는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중국으로 갔다. 누구를 위한 건지도 모를 '국익'을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아마 조만간 신문지상이나 티브이 화면에서 "박 대통령의 방중, 국익 외교 성공리에 마쳐"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2013년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가.

저항과 분노, 비판과 대안의 의식이 거세된 채 권력을 소유한 강자에게는 무조건의 '충성'을 바치는 비겁한 모습은 자신의 사적 욕망에 충성을 요구하는 독재자의 모습과 서로 닮았습니다. 부드러운 표정과 언어로 치장한 교양으로 점잔을 빼지만 자신들의 알량한 지식, 권력, 돈의 봉토를 다독일 뿐 정의롭지 못한 역사 속에서 결코 분노하지 않는 군색한 지식인들의 자화상입니다. 총칼을 앞세운 군부 독재 시절과 돈다발을 흔들어대는 금권 정치 시대는 그 정치 공학적 기법과 도구는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사람을 겁박하고 회유하는 교활함이 우리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격하시킨다는 의미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착한 몸매'와 '착한 햄' 같은 표현에서, 사람의 어휘를 버리고 짐승의 소리를 택하여 순하게 도살당할 날을 기다리며 살을 찌우는 짐승들의 집단 아바타 같은 속물스러움을 보았다면 지나친 것일까요? (275쪽)

<언어의 배반> (김준형 · 윤상헌 지음 | 뜨인돌 | 2013. 6. 12 | 279쪽 | 1만 3천 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배반 - 언어학자와 정치학자, 권력에 중독된 언어를 말하다

김준형.윤상헌 지음, 뜨인돌(2013)


태그:#<언어의 배반>, #김준형, #윤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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