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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윤예·홍성재 (주)러닝투런 대표가 ‘000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러닝투런은 ‘배움을 배우다(Learning to learn)’라는 뜻으로 배움과 가르침의 구분을 경계하고 일상에서 배움을 실천한다는 의미이다.
 신윤예·홍성재 (주)러닝투런 대표가 ‘000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러닝투런은 ‘배움을 배우다(Learning to learn)’라는 뜻으로 배움과 가르침의 구분을 경계하고 일상에서 배움을 실천한다는 의미이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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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에 40년 전에 들어왔거든요. 엄마를 따라 졸졸 왔는데, 우리 집 찾아가는 길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참 많았어요. 그 기와집이 우리 집인가 싶으면 (기와집은) 뒤로 가고 저 집인가 싶으면 뒤로 가고 한없이 골목길을 올라가는 거예요. 딱 우리 집이라고 올라갔는데, 어쩜 그렇게 땅하고 딱 붙었는지. 구르면 무너질 것만 같은 그 집이 우리 집이라는 거예요. 아, 그래도 슬프지만은 않았어요. 서울이잖아요."

지난 13일, 서울 창신동 골목을 걸었다. 손에 지도 한 장을 쥐고 한쪽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눈은 번호가 적혀 있는 파란 표지판을 찾고 있었다. 건물에 붙은 표지판을 만나면 주머니에서 음성안내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번호에 해당하는 음성 파일을 재생했다. 위에 적힌 내용은 2번 트랙 '낙산봉제거리'. 한 아주머니가 창신동에 온 사연을 들려준다. 얼마를 더 걷자 '시온이발소' 벽에 5번 번호판이 붙어 있다. 잠시 멈춰 서서 5번 파일을 듣는다.

"굽이진 삼거리 골목길에 시온이발소라고 있거든. 그곳에 가면 옛 모습 그대로 양철지붕이 있어. (중략) 또 양철지붕 밑에 빨간색 수건이 널려 있거든. 사장님 모습은 얼마나 소박한지 몰라. 그 모습을 떠올리면 정말 재밌어. 그 빨간 딸기코. 30년 동안 이발소에서만 일하셨다는데 피부는 왜 그렇게 검어. (웃음) 한 곳을 지키시는 변함없는 모습에 신뢰감을 갖게 돼. 이곳은 동네 아저씨들 사랑방 역할도 한대…."

 시온이발소. 왼쪽으로 빨간 수건과 러닝투런이 표시해 놓은 파란 깃발이 보인다.
 시온이발소. 왼쪽으로 빨간 수건과 러닝투런이 표시해 놓은 파란 깃발이 보인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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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회적기업 ㈜러닝투런(대표 신윤예·홍성재)이 만든 창신동 지역연계프로그램 '도시의 산책자' 중에서 '삼삼오오 자율산책'을 체험하는 중이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5월 30일부터 7월 21일까지 열리는 '반세기종합전 5 - Made in 창신동' 전시와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러닝투런 사무실을 찾는 이들에게 지도와 음성안내기를 무료로 제공해 창신동 곳곳의 소소한 사연을 주민들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 프로그램은 창신동의 번듯한 건물과 새로 난 큰길 대신 더 좁고 비탈진 골목길로 방문객을 안내한다. 그래서 큰길로 턱턱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지도가 안내하는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길은 대부분 오르막 아니면 내리막이다. '창신시장' '홍표실집' '미스터리 빈집'을 지나 마지막 지점인 '비우당'까지 닿는 데 1시간 30분이 걸린다. 좁고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골목길을 걷는 내내 오토바이들이 쉴 새 없이 달린다. 뜨거운 햇볕 속에 땀은 줄줄 흐르지만 창신동의 속 이야기를 마주하고 나자 처음 와본 이 동네와 꽤 친해진 것 같다.

봉제공장 사이에 예술공간이?

창신동은 2층으로 된 봉제공장이 늘어서 수많은 골목길을 만들어 낸 동네다. 먼지가 많이 나 대부분 문을 열어 놓고 작업을 한다. 안을 들여다보면 바닥과 선반이 헝겊 천지다. 1970년대 이후, 평화시장에 있던 봉제공장들이 하나 둘 이곳으로 옮겨와 현재 3000개가 넘는 소규모 봉제공장이 있다. 동대문 의류시장의 탄탄한 배후기지가 바로 이곳이다. 오토바이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이동수단. 원단이며 옷에 필요한 작은 부품들을 좁은 골목길 사이로 부지런히 실어 나른다.

이런 공장들 사이에 예술공간이 둥지를 틀었다. 러닝투런은 예술과 마을을 기반으로 한 청년사회적기업이다. 2011년 신윤재(29)·홍성재(31)씨가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는 '청년 등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돼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자비로 마련한 사무실에는 '000간'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000간은 비어있으면서 다른 이름들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의미의 '0(공)'과 사이·틈이란 뜻의 '간'을 합한 것이다.

신씨와 홍씨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이들은 창신동에 있는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예술교육을 한다. 그리고 000간에서 전시회도 연다. 또 '도시의 산책자'처럼 외부 프로젝트를 받아 진행하기도 한다. 남은 시간엔 창신동에서 어떤 예술 활동을 벌일지 고민하고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동네를 오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뚝딱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엔 주민들이 앉아서 쉬던 평상의 낡은 장판을 걷어내고 새 것으로 바꿔놓았다.

예술공간이라지만, 이곳 주민들은 000간을 그리 어렵게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이 이곳을 수시로 들러 안부를 물었다. 한 초등학생은 길에서 큰 소리로 "들어가도 돼요?"라고 묻더니, 신씨가 인터뷰 중이라는 손짓을 하자 "안녕히 계세요" 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이 동네에 온 지 3년째. 신씨와 홍씨가 이곳에 발을 딛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예술가로서 어떤 삶을 살까

 러닝투런’의 사무실이자 전시장인 000간.
 러닝투런’의 사무실이자 전시장인 000간.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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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가로 활동했다. 예술가로서의 삶은 일반 직장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내외 좋은 장소에서 전시를 하고, 공모전에 작품을 내고, 그것으로 스펙을 쌓고, 이름을 알려 작품을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두 사람도 늘 원하던 공간에서 전시 의뢰가 와 기뻤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허무했다.

"작품을 만드는 작가는 물론 필요하죠. 중요한 건, 제 내면의 욕구와 예술가로서의 삶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나는 예술가로서 어떤 삶을 살아갈 건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했어요."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열고, 퍼포먼스를 하는 등 예술 활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신씨는 돈을 벌기 위해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회화를 가르쳤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과 '가르치는 예술'이 어긋나 있음을 깨달았다.

"저는 '다름'에 관심이 많아서 이를 주제로 퍼포먼스를 열기도 했어요. 단지 다를 뿐인데, 이것이 어떤 차별로 이어지는지 참가자들이 직접 느끼고 스스로도 질문을 하게끔 하는 거죠. 그런데 학교에선 제가 아이들에게 '이게 답이다, 모두 똑같이 따라 해'라고 가르쳐야 하잖아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요."

신씨와 홍씨는 시선을 돌려 삶과 예술을 조금 더 '친절하게' 연계할 방법을 찾았다.

이때 한 기업이 마련한 메세나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창신동의 지역아동센터와 예술가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신씨와 홍씨는 이 프로그램으로 창신동에 처음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는 기술을 가르치는 대신, 장소와 대화하는 방법을 전달하고 의미를 공유했다.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은 그들에게 이 지역의 문제를 털어놨다. 그들의 시선이 창신동이라는 지역으로 점점 좁혀졌다. 예술 활동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이미 하고 있으며,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주민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들이 이 지역과 관계를 맺는데 접착제 역할을 했다. 아이들을 통해 부모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씨와 홍씨는 주민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낯선 예술가가 아닌, 젊고 세련되면서도 친근한 선생님으로 다가갔다.

지역공동체와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사업하고 싶어

 창신동 봉제거리에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달린다.
 창신동 봉제거리에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달린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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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하고 있는 '도시의 산책자' 프로그램은 신씨와 홍씨에게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었다. 이들에겐 주민들에게 들은 창신동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가 이미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런 와중에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마을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모아 음성파일로 만들고, 디자이너 두 명을 고용해 창신동 '소리 지도'도 만들었다.

"이곳을 방문하신 분들이 동네 구경하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근현대사가 녹아 있는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재밌는 동네거든요. 창신동의 진짜 모습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끼고 갈 수 있게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주민들도 이들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좁은 골목과 골목을 연결하는 투어 프로그램은 주민들과의 깊은 관계 속에 탄생할 수 있었다.

이들은 지역과 연계한 새로운 교육 사업을 구상 중이다. 이 동네를 중심으로 이뤄진 패션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직접 디자인부터 시작해 옷을 만들어보는 체험프로그램을 계절마다 여는 것이다.

"오랫동안 봉제 일 하신 분들이 직접 옷 만드는 과정부터 우리나라 패션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거예요."

여기에 더해 이들은 아예 자체 의류 브랜드까지 계발할 생각이다.

"봉제공장이 성수기와 비수기 구분이 너무 뚜렷해요. 1년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기간이 비수기라 공장 운영이 어렵고 일자리도 들쑥날쑥하죠. 그래서 생각한 건데, 창신동 자체 브랜드를 만들면 어떨까 싶어요. 우리가 디자인한 옷을 동네 주민들이 직접 제작해서 누구나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거죠. 이 동네 주민들이 다 옷 기술자들이거든요. 괜찮겠죠?"

마지막 질문은 역시나, 수익에 관한 것이다.

"수익이요? 물론, 수익은 적을 테지만 수요는 많을 것 같아요. 큰 수익을 내는 사업보다는, 지역공동체와 함께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싶어요. 저희에겐 돈보다 의미가 중요해요. 이곳에 오면서 '의미 없이 돈 버는 일은 더 이상 하지 말자'고 다짐했거든요. 이 원칙을 지켜갈 거예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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