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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님, 오는 27일 오전 10시 30분, 재판장님 앞에 두 사내가 선고를 받기 위해서 서게 됩니다. 이들은 2011년 1심 선고에서 4년형 징역 선고를 받았으나, 부상 치료를 이유로 구속 유예를 받아 이날 2심 재판을 받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사내들의 처지에 대해서 재판장님께 말씀드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2009년 1월 19일 오후 서울 용산로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지역 5층 건물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에 돌입한 가운데, 옆 건물 옥상에 올라간 철거용역업체 직원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농성중인 철거민들을 향해 물을 뿌리고 있다.
 2009년 1월 19일 오후 서울 용산로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지역 5층 건물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에 돌입한 가운데, 옆 건물 옥상에 올라간 철거용역업체 직원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농성중인 철거민들을 향해 물을 뿌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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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용산참사 이후 지금까지 4년 5개월 넘도록 용산참사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해왔습니다.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집행위원장이 제가 맡고 있는 직책입니다. 용산참사에 대한 사법적인 판단은 용산에서 망루농성을 한 철거민들이 국법질서에 도전한 용서받지 못할 불법행위를 한 철거민들이기 때문에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8명의 철거민들이 감옥에 갇혔고, 그중 2명은 지난해 10월 말 가석방으로, 5명은 형집행정지 특사로 감옥 문을 나섰습니다. 용산참사를 배후 조정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남경남, 전철연 의장은 아직 감옥에 그대로 있습니다.

재판장님, 이번에 선고를 받는 두 명의 철거민은 용산참사의 화재 현장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입니다. 2009년 1월 20일, 피고인 지아무개씨는 용산참사의 화재현장에서 극적으로 탈출하였다가 망루를 설치한 옥상 바닥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는 윤용헌, 이성수씨의 도움(지씨의 기억으로 분명히 자신을 살려준 그 두 사람은 화재의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으로 화재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고, 곧 화재가 발생하여 4층 난간에 매달려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구조를 받지 못하고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져 허리와 다리에 중상을 입었습니다. 만약 경찰특공대가 진압 전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되어 있는 안전 매트리스를 설치만 하였다면, 그는 그렇게 심한 부상을 입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곳에서 망루농성을 벌였던 동지들 중 5명이 화마에 희생당했습니다. 그리고 경찰관 1명도 죽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올랐던 망루에서 죽어 내려온 5명의 철거민들은 이들 두 사람의 철거민들과 절친한 동료였습니다. 지씨에게 윤용헌은 친형보다도 더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고 윤용헌씨의 처 유영숙씨는 부상 치료를 하는 순천향병원에 가서 "네가 살아주어서 고맙다"고 했다고 합니다.

용산참사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생존자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대회'가 지난 1월 1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유가족과 노동,시민,사회,종교,정당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려 정부 진상조사위 설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구속 철거민 사면,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국화 꽃을 든 유가족들이 사망한 철거민들의 영정에 헌화를 하고 있다.
▲ 헌화하는 용산참사 유가족들 '용산참사 4주기 범국민추모대회'가 지난 1월 1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유가족과 노동,시민,사회,종교,정당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려 정부 진상조사위 설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구속 철거민 사면,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국화 꽃을 든 유가족들이 사망한 철거민들의 영정에 헌화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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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피고인 김아무개씨는 경기도 구리시 외곽 1천만 원짜리 전세 집에서 네 식구가 살아오다가 철거를 당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부인은 당뇨합병증으로 오랜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그가 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철거를 맞았지만 같은 처지를 겪고 있는 용산의 철거민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연대투쟁에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그 또한 허리와 다리에 중상을 입어서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10번도 넘는 수술, 재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술 받은 다리는 아물지 않고 다시 고름이 차오르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때마다 수술 부위를 절개하고 철심을 새로 박아 넣어야 했습니다. 가장인 그는 부인의 병수발은커녕 딸들이 벌어오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겨우겨우 살아내야 했습니다. 지씨는 아내가 파출부 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의 딱한 사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이 겪는 트라우마가 그들을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밤마다 용산화재 현장이 떠올랐고, 거기서 죽어간 동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내가 죽었어야 가족들 고생 그만 시킬 건데 하는 후회도 있었습니다. 가족들 고생하는 것을 보는 가장의 마음이 오죽 했겠습니까. 너무도 심한 악몽과 대인기피증, 우울증 등으로 지난해부터는 두 사람 모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4년 5개월이 넘도록 계속되는 고통

재판장님, 이 사람들이 지금 감옥에 가야 법의 권위가 서는 것일까요? 1심 재판부는 이들에게 4년형을 선고하면서 다만 부상 치료 중인 점을 감안하여 2심 선고 때까지 구속을 유예했습니다. 이제 재판장님의 판단에 따라서 이들은 법정에서 구속되어 4년형을 살러 감옥에 가야 합니다. 법은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요? 법도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이미 이 두 사람은 4년형의 징역 그 이상을 겪어왔지 않았나요? 4년 5개월 넘도록 용산참사의 아픔을 아로새기며 죽고 싶은 마음 다스리며 살아온 그 고통의 세월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조직화된 도심 테러리스트일 리 없는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들이 잘못된 재개발 제도로 인해서 집과 가게를 빼앗기고, 같은 처지의 철거민들의 투쟁을 도와주러 연대하러 갔던 그 죄값을 그들은 이미 치르고도 남은 것은 아닌지, 답답해서 저는 묻고 싶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들이 감옥에 간다면, 부상 치료는 어떻게 받을 것이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데 다시 우울증이 깊어질 것이 걱정입니다.

그 감옥에서 병든 아내와 어렵게 생활하는 두 딸들을 걱정해야 하는 김씨 그리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을 두고 파출부 일을 하는 그 아내가 멀리 교도소까지 찾아다니며 면회를 오가는 것에 더욱 죽고 싶다는 생각에 빠질 지씨를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의 고통은 그만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이 용산참사의 악몽에서 벗어나, 부상의 고통에서 벗어나, 트라우마의 늪에서 벗어나 한 명의 시민으로, 그리고 가장으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009년 8월 7일 저녁 8시 용산 남일당 현장에서는 200일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앞줄에 앉은 유가족 중 고 이상림씨 딸 현선씨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2009년 8월 7일 저녁 8시 용산 남일당 현장에서는 200일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앞줄에 앉은 유가족 중 고 이상림씨 딸 현선씨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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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님, 용산참사에서 살아난 생존자들의 삶은 참혹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잊을 수 없는 그날의 기억 그리고 그 뒤에 닥친 오랜 수감생활, 그런데도 세상은 변하지 않고 참사의 책임자라는 사람은 법정에 서지도 않는 현실 속에서 울분을 삭이며 살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이야 말해 무엇을 합니까? 이미 떠난 남편들이지만 너무 억울해서 매일 눈물로 지새며 사는 그 유가족들이 부상자 두 사람이 법정 구속되는 모습을 보면 다시 통곡할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더 이상의 피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재판장님이 이번에는 꼭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용산참사 부상자들은 지금 재수술 받고 재활치료하고, 정신건강도 회복해야 합니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감옥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이 같이 사는 집입니다.

부디 저의 이 간곡한 탄원을 외면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선고가 있는 그날 저는 법정에서 그들을 감옥이 아니라 그들의 집으로 데려다 주고 싶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태그:#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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