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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하면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많을 거라는 생각을 누구나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시장에 자주 다니지 않는 이들이나 타 지역 사람들이 어떤 시장의 정보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막강한 자본과 기술을 이용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대형마트에 비하면, 시장을 홍보하는 활동은 조용하기만 하다.

그런데, 시장마다 숨어있는 '구슬'들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이들이 있다. 지역경제미디어 조각보(주)는 전통시장을 알리는 서울시 사회적기업이다. '가장 오래된 시장과 가장 새로운 소비자를 잇는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조각보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으로 젊은 소비자에게 전통시장의 정보와 이야기를 전한다. 5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있는 조각보 사무실에서 홍주선(31) 대표를 만났다.

청년은 시장의 미래

홍주선 대표가 서울지역 시장 맛집 콘텐츠를 엮은 전자책을 소개하고 있다.
 홍주선 대표가 서울지역 시장 맛집 콘텐츠를 엮은 전자책을 소개하고 있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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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엔 불고기라면, 잔치국수에는 오리훈제! 잔치국수 2000원에 김치와 단무지까지 한 상으로 나온다. 국수만으로 허기가 덜 채워진다면 오리훈제 세트도 있으니 걱정 없다. 1950년에 아버지가 서울에서 국수 장사를 했고, 14년 전에 딸인 사장이 모래내시장에 '만달이네 국수'를 차려 대를 이었다. 집에서 조리 가능한 국수 재료들을 가게 앞 가판에서 판매하고 있다. 오색 국수 한 줄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오늘은 '핑크색 잔치국수'에 도전! 잔치국수 2000원, 오리훈제와 국수 세트 4000~5000원.

조각보 앱에 담긴 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 '만달이네 옛날국수' 정보이다. 조각보는 지난해 개발한 아이폰 버전 어플리케이션 '조각보'를 통해 서울과 인천, 경기의 전통시장 41곳에 있는 점포 500여개를 소개한다.

용현시장, 부평시장, 부평깡시장, 거북시장, 모래내시장 등 인천지역 시장 정보도 담겨 있다. 누구나 무료로 다운받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안드로이드 버전은 안정성을 보완 중이다.

이 앱을 개발한 이는 홍주선 대표다. 스마트폰을 제대로 활용하는 이들은 20~30대 청년층. 하지만 이들은 아직 전통시장과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조각보 앱 개발에 공을 들인 이유가 뭘까? 그는 지역 경제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전통시장의 미래가 청년층의 손에 달려있다고 내다봤다.

"지금은 40대 이상이 전통시장을 주로 이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시장을 안 가본 20~30대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 쉽게 시장에 올 수 있을까요? 지금 청년층을 시장에 끌어들여야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시장을 이용할 확률이 높죠. 시장이 청년을 '새로운 소비자'로 여겨야 하는 이유에요."

그는 시장 하나 당 40만 원을 받고 사업을 진행한다. 시장이 선정되면, 간략한 시장 소개와 함께 점포 11개, 이야기 거리가 담긴 '핵 점포' 하나 등, 총13개 정보를 정리해 앱에 올린다. 점포 선정과 글 작성은 해당 지역 청년을 섭외해 일을 맡긴다. 사업비의 절반인 20만 원은 청년 인건비로 돌아간다.

"아무래도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이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쉽겠죠. 또 작업을 하면서 지역 청년과 시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하고요. 청년 소비문화와 일자리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하고 있어요."

"이건 사업이 아니다"란 말에 '난 미디어계의 노점'

조각보는 2010년 희망제작소 사회창안대회에서 우수상과 '우리시대 혁신가상'을 받으며 당당하게 세상에 나왔다.

2011년 은평구 창업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은평구상공회장상 수상, 2012년 강남구 청년창업지원 사업 과정 우수 수료, 한국관광공사 유망사업지원 선정 등, 이어진 경력도 화려하다. 현재 조각보는 지원금이 아닌, 자체 매출로 운영이 가능할 만큼 성장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홍 대표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그는 대학 시절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의 크고 작은 문제와 함께 했다. 학교서 벌어진 일들에 많은 관심을 갖고, 학교 선후배들과 함께 독립 언론을 만들어 거대 담론 속에 묻힌 소소한 이야기를 발굴해 전하기도 했다.

"이때 경험이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미디어에 관심을 갖게 됐고, 직접 운영하는 노하우도 배웠어요."

그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매체를 만들고 싶었다. 각종 기관과 단체에서 마련한 교육 과정에 참가해 창업과 미디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 졸업 후, 노점상을 홍보하는 블로그용 위젯을 실험적으로 개발했다. 그의 첫 창업이었다. 주위에선 하나같이 그에게 쓴 소리를 했다.

"'이건 사업이 아니다, 성공 못 한다, 접어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어요. 노점 상인들이 과연 제 고객이 될 수 있겠냐는 거죠. 전 돈보다는, 사회에 뭔가 이로운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현실의 벽이 너무 높더라고요. 자본과 '브랜드' 없이 뭔가 하고자 할 때, 사회가 얼마나 차가운지, 한 개인이 그 뜻을 지켜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깨달았어요. 어느 날 버스 안에서 창 밖의 노점을 바라보는데, '아, 내가 미디어계의 노점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조각보 홈페이지 화면을 캡쳐한 것.
 조각보 홈페이지 화면을 캡쳐한 것.
ⓒ (주)조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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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인-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 연결고리 꿈 꿔

그는 사업 대상을 노점에서 소상인으로 바꿨다. 법적으로 불법인 노점을 대놓고 홍보하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면서 홍보 매체도 웹에서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그리고 소상인이 몰려 있는 전통시장을 그의 사업 상대로 낙점했다.

"소규모 창업에서 중요한 건 사업 아이템인데, 작고 명확할수록 좋아요. 그래서 사업 대상을 전통시장으로 한정했어요."

한편, 뉴미디어 붐 속에 대책 없이 흔들리는 청년들의 현실도 간과할 수 없었다.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청년에게 인턴기자라는 이름을 주고 온갖 정보를 모아오게 해요. 인건비도 제대로 주지 않고요. 이 정보들은 에스엔에스(SNS)나 앱을 통해 기관 홍보하는 데 사용하죠. 다양한 앱이 개발되고, 뉴미디어 붐은 일고 있는데, 아직 인력시장은 열리지 않았어요. 청년들이 무방비로 소진되고 있는 거죠. 이력서에 경력 한 줄 올리기 위해서요."

그는 지역 청년과 자신의 사업을 연결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사업비의 절반을 청년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기자 몇 명을 육성해 기사를 생산하는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다양한 콘텐츠를 공동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네트워크미디어'가 되는 거죠. 작은 이야기들을 모으면 하나의 지역이야기가 만들어지잖아요. 마치 조각보처럼요. 옛날 양반들은 절대로 조각난 천을 안 썼대요. 조각보는 천이 귀했던 시대, 서민의 삶이 담긴 물건이었어요."

서민들의 실용품에서 이제는 예술품이 된 조각보. 회사 이름 조각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른 더위로 그의 사무실 유리창에선 뜨거운 열기가 계속 쏟아져 들어왔다. 두시간 남짓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 특수목적고에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다면서요? 왜 취직할 생각을 안 했어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어요. 다른 일을 하면 못 살 것 같았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전 돈이 될 사업을 선택한 게 아니라, 어쩌면 이 사업을 계속 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번다고도 볼 수 있죠. 소상인이 잘 돼서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고, 여기서 중견기업이 나오고 또 대기업도 나올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싶어요. 이런 과정을 막연하게나마 꿈꾸면서 사업을 계속 이어갈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시사인천, #청년일자리, #(주)조각보, #홍주선, #청년사회적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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