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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요양원의 중환자실에 가게 되면 늘 노인 환자들의 모습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누워있는 공간에 생각이 머물곤 한다. 삶의 마지막에 차지하고 누워 있는 것이라고는, 방 한 칸도 아닌 고작 침대 하나. 이것을 위해 이토록 뼈가 가루가 되도록 일하고 자식들 기르며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는 게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연극 <배웅>의 74세 동갑 두 남자 노인 역시 말년에 몸 붙인 곳이 병원 침대다. 오래도록 병원 생활을 하는 '봉팔' 할아버지 옆 침대에 '순철' 할아버지가 새로 들어온다. 전직 선장과 교사, 괄괄한 성격과 꼼꼼한 성격, 수다와 독서. 여러 모로 다른 두 노인의 티격태격이야 불을 보듯 뻔한 일.

포스터
▲ 연극 <배웅> 포스터
ⓒ 극단 실험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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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돈 아들에게 다 내놓고 보험 때문에 병원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봉팔, 홀로 딸 하나 길러 결혼시키고는 중병에 걸리자 소리 없이 입원한 순철.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찾아오거나 돌봐주는 사람 없는 외로운 신세라는 것.

처음에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고 서로 못마땅해 하지만 흐르는 시간과 함께 서로에게 적응하며 정이 든다. 그러나 결국 누군가 먼저 떠나게 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뒤에 남아서 '배웅'을 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

연극은 두 할아버지의 입담과 간호사, 의사 등 병실을 드나드는 젊은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로 인해 무겁기보다는 웃음을 주며 이어진다. 그러나 간간이 드러나는 두 노인의 과거사와 현재 처지는 순식간에 코끝을 찡하게 만들곤 한다.

무대 위 두 개의 침대 뒤로는 나무 한 그루와 병실 문이 서있다. 나무는 두 노인으로 보인다. 이 땅에 뿌리 내리느라 애쓰며 지탱해온 삶, 잎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해도 결국 다 떨구고 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

등장인물들이 오가는 문은 인생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삶의 순간순간 마주치며 통과해야 하는 관문들, 문을 통해 이 삶에 들어왔고 또 다시 그 문을 통해 삶에서 떠나가야 한다. 누구나 공평하게 이 생에 한 번 들어오고 이 생에서 한 번 나간다.

그러니 선장이었든 교사였든, 성격이 활발하든 조용하든 마지막에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눕는 것이야말로 가장 공평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침대가 너무 좁고 찾는 이 아무도 없어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프고 씁쓸하다.

연극 속 노인들의 말이 그래서 중년인 내게 절실하게 와 닿는가 보다.

'젊었을 때가 그리워...그 때는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지...죽는 것도 맘대로 안 돼...'

머리로는 알아도 여전히 내 인생의 마지막이 침대 위, 그 빤한 공간에서 마무리 되리라는 실감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서로 배웅하고 배웅받으며 헤어진 두 할아버지는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인사 한 마디 나누지 못하고 영영 이별하는 일도 많으니까.

노배우들의 열연을 보는 일은 감동적이면서도 살짝 걱정스럽다. 그들의 땀에 담긴 세월과 노력을 짐작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건강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노년의 삶의 한 귀퉁이를 있는 그대로 들춰내 보여주며 삶과 죽음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들어주는 연극이다.    

덧붙이는 글 | 연극 <배웅> (강석호 작 / 민복기 각색, 연출 / 출연 : 오영수, 이영석, 강동수, 송유현, 오경선) ~7월 7일까지, 설치극장 정미소.



태그:#배웅, #노인, #노년, #할아버지,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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