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대회 개막전, 굳어진 몸이 풀어지기까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경기 시작 후 25분이나 지났지만 우리 선수들은 단 한 개의 슛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동안 쿠바는 이른 시간에 선취골도 넣었고 세 개의 슛 기록까지 만들어낸 형편이었기에 너무 대조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우리의 어린 선수들은 그동안 알차게 준비해 온 조직력을 조금씩 살려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효율적으로 즐기는 축구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고 있었다.

이광종 감독이 이끌고 있는 20세 이하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은 우리 시각으로 21일 밤 12시 터키 카이세리에 있는 카디르 하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FIFA(국제축구연맹) U-20 남자월드컵 B그룹 쿠바와의 첫 경기에서 아기자기한 공격 전개 능력을 자랑하며 2-1로 멋진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미드필더 류승우의 자신감

큰 대회를 코앞에 두고 골잡이 문창진과 미드필더 김승준 등 핵심 선수들이 다치는 바람에 걱정스럽게 출발한 우리 20세 이하 남자축구대표팀은 경기 시작 후 7분만에 어이없는 수비 실수로 선취골을 내주며 정말로 불안하게 출발했다.

쿠바의 오른쪽 코너킥을 수비하면서 문지기 이창근과 나머지 수비수들과의 눈빛이 어긋난 것이다. 그 덕분에 쿠바 골잡이 레예스는 손쉽게 이마로 선취골을 기록한 것이다. 이에 우리 선수들은 마음이 급해지기만 했고 그럴수록 공격의 실마리는 자꾸 꼬여만 갔다.

우리 선수들의 미드필드 플레이가 되살아나기까지 28분이나 걸렸다는 사실은 반드시 점검이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골잡이 조석재의 오른발 슛을 갈림길로 삼아 거짓말처럼 정신을 번쩍 차리기 시작했다.

오른쪽 미드필더 강상우의 오른발 대각선 슛(30분)이 곧바로 이어졌고 드리블과 패스 타이밍이 훌륭한 미드필더 류승우도 왼발 중거리슛으로 코너킥을 만들어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후반전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된 셈이다.

비록 0-1로 뒤진 상태에서 시작한 후반전이었지만 우리 선수들은 전반전 뒷부분에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키다리 쿠바 선수들을 꼼짝 못하게 몰아세웠다. 5분만에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반전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왼쪽 수비수 심상민의 과감한 드리블을 막아내던 선취골 주인공 레예스는 어설픈 걸기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헌납한 것이다. 이 절호의 기회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권창훈은 침착한 왼발 킥으로 오른쪽 구석을 제대로 노렸다. 후반전 시작 후 비교적 이른 시간에 1-1을 만들어냈기에 우리 선수들에게 희망의 축구공은 더욱 크게 보였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끝내 우리 선수들은 역전 결승골을 짜릿하게 엮어냈다. 83분, 류승우가 공을 몰며 역습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강상우와 공을 세련되게 주고받으며 만들어낸 멋진 골이었다. 강상우의 패스 타이밍도 좋았지만 수비 뒷공간으로 빠져들어가는 류승우의 재치있는 몸놀림이 압권이었다. 미드필더 둘만으로도 상대 수비수 다섯 정도는 우습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멋지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수비수 연제민의 부상 걱정

4-2-3-1 포메이션을 유지하면서 미드필더와 공격수의 아기자기한 조직력을 자랑한 우리 선수들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더 많은 골을 터뜨릴 수 있는 가능성을 널리 알렸다. 하지만 토너먼트(16강 이후) 진출권을 따내기 위해 수비 불안 요소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51분에 동점골이 만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벤치에 있는 코칭 스태프 모두를 몹시 긴장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6분 뒤 한국의 가운데 수비수 송주훈과 연제민이 높은 공을 따내기 위해 무리하게 달려들다가 나란히 쓰러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송주훈은 곧바로 일어났지만 연제민은 코피를 흘린 뒤 들것에 실려나가야 했다. 우주성이 대신 들어와 그 자리를 맡았지만 우리 수비 라인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78분, 아찔한 장면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왼쪽 수비수 심상민이 위험한 백 패스를 시도했고 이 순간 문지기 이창근이 달려나와 쿠바 선수 바로 앞에서 가까스로 쳐냈다.

이제 우리 선수들은 25일 새벽 3시(한국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유럽의 강팀 포르투갈을 상대해야 한다. 다리가 긴 쿠바 선수들을 상대로 아기자기한 미드필드 플레이를 자신감 넘치게 보여준 바 있기에 다음 경기도 축구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로서는 수비수 연제민의 부상 정도가 가장 걱정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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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FIFA 20세이하 남자월드컵 B그룹 첫 경기 결과(21일 밤 12시, 터키 카이세리)
★ 한국 2-1 쿠바 [득점 : 권창훈(51분,PK), 류승우(83분,도움-강상우) / 레예스(7분)]
◎ 한국 선수들
FW : 조석재(90분↔한성규)
AMF : 류승우, 권창훈(65분↔김현), 강상우
DMF : 김선우, 이창민
DF : 심상민, 송주훈, 연제민(59분↔우주성), 김용환
GK : 이창근
* 이 기사는 SoulPlay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축구 U20 월드컵 이광종 쿠바 류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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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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