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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같은 해(1501년) 태어났고, 죽은 해도 각각 1572년과 1570년으로 같은 시대를 산 인물이지만, 우린 한 사람은 잘 알고 한 사람은 잘 모릅니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고, 잘 모르는 사람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입니다.

남명, 어떤 이들은 처음 듣는 호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좌(左) 퇴계, 우(右) 남명'이라 부릅니다. 퇴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면 남명의 학문이 높은 경지에 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명이 후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왕(명종과 선조)이 벼슬을 내려도 끝내 거절하고 '행동하는 양심과 지성'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퇴계가 성리학을 조선학문으로 이론화하는 데 평생을 보냈다면, 남명은 머리에만 머무는 성리학을 거부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요즘 말로하면 '학구파'가 아니라 '행동파'였습니다. 행동하는 지성, 행동하는 선비,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았던 스승을 본받아 제자 50여명은 그가 죽은 지 20년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이들 중에 '홍의장군' 곽재우와 정인홍, 김면 등이 있습니다. 자기가 배운 학식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쓰도록 한 것입니다.

지난 14일 남명기념관(경남 산청군 시천면)에 다녀왔습니다. 생전 처음 남명을 대면했습니다. 첫 만남부터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은둔하면서 학문에만 전력한 선비인 '처사(處士)'였음을 몸으로 느겼습니다.

남명 조식 학맥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0여명이 의병을 일으켰다.
 남명 조식 학맥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0여명이 의병을 일으켰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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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이 얼마나 행동하는 선비였는지 알 수 있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명은 늘 옷고름에 '성성자(惺惺子)'라 불린 방울을 차고 다녔습니다. 방울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자신에게 채찍질하는 것이야 말로 선비정신입니다.

남명은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방울만 달고 다닌 것이 아니라 '경의검(敬義檢)'이란 칼도 차고 다녔습니다. 이 칼에는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子義·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敬)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義)다"라는 명문(銘文)을 새겼습니다.

'성성자(惺惺子) 걸을 때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한다는 의미
 '성성자(惺惺子) 걸을 때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한다는 의미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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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에도 '설자설 혁자결 박생용 장막충(舌者泄 革者結 縛生龍 藏漠沖·혀는 새는 것이요, 가죽은 묶는 것이니, 살아있는 용을 묶어서 깊은 곳에 감추라)라는 글귀를 새겼으니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시대가 잘못하면 행동으로 저항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초야에 묻혀 사는 남명이 조선을 발칵 뒤집는 일이 생겼습니다.

'경의검'(敬義檢.사욕이 일어나면 단칼에 베어버림)
 '경의검'(敬義檢.사욕이 일어나면 단칼에 베어버림)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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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10년(1555년) 남명은 단성현감으로 제수받습니다. 이 때까지 명종은 두 차례나 남명을 '주부'에 제수했었습니다. 벼슬길에 눈이 어둡고, 아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두 손 들과 환영했겠지만 남명은 사직상소(을묘사직소)를 올립니다. 내용은 충격이이었습니다. 명종 모후인 문정왕후를 '과부'로, 명종을 '과소(고아)'로 불렀습니다. 당시 명종은 이름만 왕이지, 모든 실권은 문정왕후에게 있었습니다. 그 문정왕후를 과부로 부르고, 아무리 실권이 없는 명종이지만, 왕이었습니다. 조선이 발칵뒤집힌 것입니다. 상소 중 일부를 옮깁니다.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그릇되었으며,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갔으며, 인심도 이미 떠났습니다. 비유하면 이 나라는 백 년 동안 벌레가 속을 갉아먹 진액이 이미 말라버린 큰 나무와 같습니다(중략)대비께서는 비록 생각이 깊으시다 하나 깊은 궁중의 일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다만 선왕의 일개 어린 후사이실뿐입니다.

군주가 사람을 임용할 적에는 자신의 몸으로써 모범을 보여야 하고, 자신의 몸을 닦을 적에는 도로써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사람을 등용하실 적에 자신의 몸으로써 하신다면 조정에 있는 사람이 모두 사직을 보위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중략)만약 사람을 취할 적에 몸으로써 하지 않으시고 눈으로만 하신다면 가까이서 시종하는 사람 말고는 모두 전하를 속이고 저버리는 무리일 것이니(중략)엎드려 원하옵건데 전하께서는 반드시 정심으로서 신민의 요체를 삼으시고 수신으로서 사람을 임용하는 근본으로 삼으셔서 왕도의 표준을 세우도록 하소서. 왕도의 표준이 표준 구실을 하지 못하면 나라는 나라로서의 구실을 못하게 될 것입니다. 밝게 살펴주시길 엎드려 바라옵니다. 신 조식은 떨리고 두려운 마음을 감당하지 못한채 죽음을 무릎쓰고 아뢰옵니다."(위 상소 내용은 남명기념관 뜰에 있는 '단성소국역비'에 인용한 것임)

남명 조식
 남명 조식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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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그릇되었으며,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갔다"는 남명 상소를 읽어면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사람을 임용할 때, 임금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지, 눈으로 하지 말라는 고언은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도 새겨야 할 충언 중 충언입니다.

남명이 지금 살아 돌아오면 2013년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는 선비로서 살았던 그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 길을 가지 않고 있다면서 이렇게 질타할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의 나랏일은 이미 그릇되었으며,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도 이미 떠나갔다"고 말입니다.

이어 "대통령이 사람을 임용할 적에는 자신의 몸으로써 모범을 보여야 하고, 자신의 몸을 닦을 적에는 도로써  해야 하는 것"이며 "대통령께서는 반드시 정심으로서 신민의 요체를 삼으시고 수신으로서 사람을 임용하는 근본으로 삼으셔서 공화국의 표준을 세우도록 하소서. 공화국의 표준이 표준 구실을 하지 못하면 나라는 나라로서의 구실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왕조시대 초야에 묻힌 선비가 왕과 대비에게 목숨을 건 상소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일부 공직자들은 민주선거를 부정하는 일을 저질렀지만, 오히려 당당합니다. 민주선거를 부정한 이들을 처벌하라는 목소리를 색깔론으로 몰아갑니다. 남명이 살았던 조선보다 과연 대한민국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남명은 말했습니다. 책에 머물지 말고, 책을 뚫고 나가 행동하라고 말입니다. 이 땅의 지식인들은 책에 머물지 말고,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할 때입니다. 지금은 퇴계보다는 남명이 필요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남명 조식, #조선시대, #문정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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