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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충남도청을 바라보면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느낌이 든다. 대전충남의 가장 큰 어른으로 대전역에서 중앙로를 따라 길과 시선이 끝날 때 쯤에 우뚝 서있는 옛 충남도청. 1932년에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여 대전충남 근현대사의 한 복판에 오늘도 서 있다. 6월 15일, 대전대신고등학교 역사동아리(문화진로탐방) 학생 12명과 함께 2013년 1월 내포 신도시로 떠나고 건물만 남은 옛충남도청을 답사하였다.

도청과 사람이 떠나고 건물만 남은 옛도청사에 "원도심 활성화"란 대형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 옛 충남도청사 앞에서 도청과 사람이 떠나고 건물만 남은 옛도청사에 "원도심 활성화"란 대형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 최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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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도청이지만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듯한 느낌이  여전히 있다. 또 그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들기에 경비실에 가서 말씀드리고 중앙현관문을 통해 들어갔다. 학생들 잎이 딱 벌어졌다. 중앙 현관의 높은 천장과 그 사이에 만들어진 돔과 아치형 모양의 기둥들이 영화 속의 유명한 근대 건축물 같다고 하였다. 또 양쪽 복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눈 부시게 쏟아져 높고 긴 복도를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만들었다.

높은 천장과 돔형의 실내장식, 긴 복도의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찬란함을 준다.
▲ 도청 내부 높은 천장과 돔형의 실내장식, 긴 복도의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찬란함을 준다.
ⓒ 최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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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사 그리고 대전"이라는 특별 기획전을 보고 소감을 스티커로 붙이는 것이 인기였다.
▲ 전시 댓글 스티커 붙이기 "충남도청사 그리고 대전"이라는 특별 기획전을 보고 소감을 스티커로 붙이는 것이 인기였다.
ⓒ 최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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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가니 '충남도청사 그리고 대전-역사가 된 건축, 시간을 담다'라는 특별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옛 충남도청의 이전 과정의 에피소드와 대전 도시 발달 과정을 옛 사진과 함께 전시하고 있어 대전의 역사를 한눈에 이해하기에 좋았다.

도청이전을 둘러싼 이권과 관련하여 공주유지들과 대전유지들이 펼지는 이전투구가 인상적이었다. 급기야 1929년 야마나시 조선총독이 뇌물받은 사건과 관련하여 사임까지 하게 된는데 거기에 충남도청 이전과 관련하여 대전 유지 및 토건업자들로부터 받은 뇌물수수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주지역에서 도청이전 반대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1930년 11월, 총독부가 정식으로 '충남도청 신축 예산안'을 편성하면서부터였다. 도청을 사수하려는 공주와 도청을 끌어오려는 대전, 천안, 조치원, 논산 간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시작된다. "어여쁜 기생첩 하나를 두고 다섯 사내가 다투는 꼴"이라는 당시의 신문 논평은 그때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공주유지들은 "대전은 일본인 신흥도시, 공주는 백제왕도 조선 전통 도시"라는 명분으로, 대전유지들은 "대전은 교통이 편리하고 발전 가능성이 큰 신흥도시, 공주는 몰락하는 황성옛터"라는 구호로 흠집내기 전략을 구사했다.

해방 후까지 대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 대전에 완공된 충남도청사 해방 후까지 대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 최장문 재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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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1월 조선총독부는 신년 기자회에서 전격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을 발표함으로써 승리는 대전으로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공주 유지가 중심이 된 공주 시민회의 격렬한 저항과 로비등으로 인하여 그해 2월 일본 의회에서 충남도청 이전 예산 전액이 삭감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다.

하지만 3월 대전기성회와 총독부의 로비와 노력으로 일본 귀족 본회의에서 이전 예산이 극적으로 부활,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을 확정지었다. 반전의 반전을 통해 충남도청 이전이 대전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후, 둔산 신도심이 개발되기 전인 1990년대 중반까지 대전역~옛 충남도청 지역은 대전충남의 행정, 정치, 경제, 교육의 중심지 기능을 해왔고, 그 중심에 옛충남도청사가 우뚝 서 있었다.

이상범 학생은(대신고 1)은 "충남도청사를 처음 들어와 봤는데 높은 천장과 낡았지만 고급스러워보이는 창문, 대리석, 문 등이 최근에 유행했던 드라마인 <각시탈> 세트장 같다"고 말했다. 사실 그렇다. 각시탈 드라마 세트장과 같은 시대 건물이고 드라마에 나오는 종로경찰서 및 조선총독부 건물등과 같은 급의 충남도청사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 도청 앞~대전역이 대전의 중심지였다.
▲ 1958년 도청 앞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수립 10주년 행사 1990년대 중반까지 도청 앞~대전역이 대전의 중심지였다.
ⓒ 최장문 재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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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석 학생(대신고 1)을 비롯한 동아리 친구들은 올 10월에 있는 대신고 학술제에서 '옛 충남도청사를 활용한 대전 원도심 활성화 방안'과 관련하여 원도심 답사를 하고 보고서를 쓰고 싶다는 관심 표명을 했다. 옛 충남도청사를 대전 문화 유산의 1번지로 만들고 싶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번 답사의 보람을 느낀다. 학생들의 손과 발을 통해 어떤 글이 나올지 마음이 즐겁다.

"자연은 신이 만들고, 도시는 인간이 만든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고, 앞으로 살아갈 대전이란 도시에 물질문명과 편리함만을 강조하는 현대 고층 빌딩만이 아니라 이야기와 추억이 있는 대전의 과거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치 손자손녀에게 다정한 눈빛으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태그:#옛 충남도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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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세월속에서 문화의 무늬가 되고, 내 주변 어딘가에 저만치 있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보면 예쁘고 아름답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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