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6월 11일치 <서울신문> 1면 보도 내용.
 지난 6월 11일치 <서울신문> 1면 보도 내용.
ⓒ PDF

관련사진보기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교사들의 역사왜곡 교육에 대해 호통을 쳤다. 이날 호통의 근거는 <서울신문>이 지난 11일자에 내보낸 "고교생 69%, '한국전쟁은 북침'" 기사였다.

박 대통령 "잘못된 역사왜곡 교육의 단면", 정말?

이날 <연합뉴스> 등이 보도한 박 대통령의 말을 들어보자.

"얼마 전 언론에서 실시한 청소년 역사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교사가) 교육현장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중략)한탄스럽게도 학생들의 약 70%가 6·25를 북침이라고 한다는 것은 교육현장의 교육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말 고교생의 절대다수가 한국전쟁은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것'(남침)이 아니라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 것'(북침)이라고 배웠다면 큰일이다. 6·25 전쟁의 실상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슷한 내용을 질문한 사례를 찾아봤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2004년 5월 청소년(초등학교 5학년 이상 초중고생 대상)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호국·보훈의식 여론조사'가 <서울신문>의 조사 내용과 비슷했다.

이 당시 '남한이 북침을 했다'는 답변을 한 학생은 0.7%였다. 그렇다면 8년 사이에 왜 100배 가량의 답변 차이가 난 것일까? 이 이유에 대해 박 대통령은 '교육현장에서 역사를 왜곡했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작 조사를 주최한 <서울신문>과 이를 진행한 입시 업체인 진학사의 생각은 박 대통령과 차이를 보였다. 이들에 따르면 <서울신문>의 설문은 전자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설문지 원문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한국전쟁은 남침인가, 북침인가?"

이런 질문지를 본 교육전문가들은 "'북침'이라는 말이 '북쪽을 침략한 것'인지, '북쪽이 침략한 것'인지 헷갈릴 수 있다", "한자어도 동사보다는 주어가 먼저 나와 '북침'에서 '북'을 북한으로 인식할 경우 '북한이 침략했다'는 말로 오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질문지를 제대로 설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울신문>·진학사 "학생들이 북침, 남침 용어 헷갈려"

실제로 <서울신문>도 해당 기사를 보도하면서 "북침과 남침이라는 용어를 헷갈리거나 전쟁의 발발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토를 달았다. 용어에 대한 오해를 줄 수 있는 설문지 설계였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진학사 관계자는 "설문을 진행할 때 '북한의 남침'과 같이 자세하게 묻지 않은 이유는 '남침'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학생들이 용어 자체도 이해 못하고 답변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남침' 또는 '북침'이란 단어를 알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질문지를 명확하게 설계하지 않아 착오가 생겼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남한의 북침' 답변률 0.7%를 기록한 국가보훈처의 질문 내용은 '6·25 전쟁을 누가 일으켰느냐'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학생들의 54.5%는 '북한'이라고 답했고, '남한'이라는 답변은 0.7%였다.

<천재교육>이 만든 중학 <도덕> 교과서 내용.
 <천재교육>이 만든 중학 <도덕> 교과서 내용.
ⓒ 윤근혁

관련사진보기


현행 중고교 도덕과 역사 교과서를 살펴본 결과 이번 <서울신문>의 질문처럼 '북침과 남침'을 단독으로 사용한 사례를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6·25 전쟁을 일으켰다"(천재교과서)고 적어놓은 교과서도 있었다. '남침'이란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북의 침략을 명확히 기술한 것이다.

남침이란 용어를 사용한 교과서도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두산동아)라고 표현하는 등 '북한'이란 고유명사를 반드시 넣어 혼란을 없애는 대신, '남침'의 뜻을 명확히 했다.

이날 인천지역 한 교사는 박 대통령의 호통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보충 수업 중인 아이들에게 '6·25 누가 쳐들어 온 거냐' 물었더니 '북한이 남한에 쳐들어 온 거'라고 다들 답변합니다. 그래서 '그럼 그걸 북침이라고 할까, 남침이라고 할까' 했더니, 다들 '북침'이라고 합니다. ㅋㅋㅋ"

박 대통령과 교육부에 제안한다. 질문내용을 '2004년 국가보훈처의 설문지'처럼 고쳐서 다시 조사를 해봐라. 그렇다면 결과는 전연 딴판으로 나올 것이다.

벌써부터 일부 보수신문들은 일부 교원단체와 교사를 겨냥해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다. 대통령이 준 '먹잇감'을 물고서 말이다. 하지만 그 '먹잇감'은 오버로 탄생한 불량식품이란 소리가 교육계 여기저기서 들린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직접취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