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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주식시장이 난리가 났군. 온통 폭락 장세라네. 이러다가 IMF 다시 오는 것 아닌지 몰라?"
"그러게 말이여. 삼성전자 주가 폭락에 작전 세력이 개입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경기도 안 좋은데 주가마저 떨어지면 어떡하란 말이여. 서민들만 죽어나게 생겼군."

경제일간지를 펴든 50대 회사원 두명이 퇴근길 전철 옆자리에 앉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화제는 곧 신문에 대서특필된 주식이야기로 옮겨가고, 두 사람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주가폭락에 대한 걱정을 내놓았다. 작전 세력의 개입이니,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니 하는 경제일간지의 예단을 인용하면서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대화에 끼여 들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주가가 폭락하면 정말로 나라가 망할까? 주가가 떨어지면 서민들은 정말 쪽박을 차는 걸까?'

꼭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눈치만 보며 두 사람 이야기를 듣다가 전철에서 내렸다. 지난주 주가 폭락 소식이 '위기'라는 단어와 맞물려 사람들에게 무겁게 내려 앉았다. 인터넷에서, 종이신문에서, TV 뉴스에서도 주가 폭락 뉴스가 메인으로 다루어졌고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 폭락... 나라가 망할까

17일 코스피 지수가 외국인 매도로 전 거래일보다 6.14포인트(0.32%) 하락한 1883.10을 가리키고 있다. 외국인들은 거래일 기준으로 7일 연속 매도 우위를 나타내며 이날 642억원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사진은 1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17일 코스피 지수가 외국인 매도로 전 거래일보다 6.14포인트(0.32%) 하락한 1883.10을 가리키고 있다. 외국인들은 거래일 기준으로 7일 연속 매도 우위를 나타내며 이날 642억원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사진은 1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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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1등 대장주'인 삼성전자 주가 폭락으로 지난 7일 하루에만 시가총액 15조원 정도가 사라졌다. 그러나 호들갑스러운 반응만 있을 뿐, 그 이면을 분석하는 눈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왜 양적 완화 축소를 하려는 것인지, 삼성전자 주가에 거품이 없었는지, 우리나라 경제 위기의 요인은 무엇인지 이런 문제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은 없이 막연히 주가 폭락을 경제 위기로 연결 짓는 건, 의도된 왜곡에 휩쓸린 무지의 공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2007년 11월께 삼성전자 주가는 55만 6천원 정도였다. 2012년 3월 23일 삼성전자 주가는 126만 1천원이었다. 4년 만에 127%가 급등한 것이다. 이 기간 글로벌 경제 위기와 내수 경기 침체를 감안한다면 선뜻 이해하기 힘든 경이로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경쟁 상대로 불리는 미국 인텔 주가는 5% 상승에 그쳤고 일본 소니의 주가는 무려 73%가 급락했다. 내로라하는 경쟁 상대의 주가가 줄줄이 폭락을 거듭할 때 삼성전자 주식은 나홀로 고공행진을 거듭한 셈이다. 과연 이러한 결과를 경쟁력의 승리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권 하에서 서민들에게 고물가 시름을 가져다 준 고환율 정책. 이명박 정권은 임기 초 947원이던 환율을 2009년 평균 환율 1276원으로 끌어 올렸다. 5년 동안 줄기차게 시행된 고환율정책이 없었다면 매분기마다 사상최대의 매출과 이익 기록을 갱신한 대기업들의 성적은 오히려 사상 최대의 적자로 귀결되었을 것"이라는 게 송기균 경제평론가의 주장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상최대의 흑자 행진은 주가를 폭등시키는 힘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기업과 대주주, 삼성전자 주식의 절반 이상을 소유한 외국인들에게 돈방석을 안겨 주었다. (송기균의 <거짓성장론의 종말> 참조) 

정권의 주가 떠받치기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외국 투자자나 투기세력의 핫머니가 빠져나가 주가 하락의 조짐이 생기면 정권는 어김없이 국민연금 등 연기금을 동원해 주식을 사들이면서 하락 장세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올해만 하더라도 4월 말까지 2조 7천억원의 연기금이 주식 매입에 쓰였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이런 주식 매수는 주식을 팔고 떠나는 외국 투자자들에게는 안정적 이익을 보장해 주었고, 주가의 추가하락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때부터 주가 하락 때마다 반복된 국민연금의 주가 떠받치기는 국민연금 부실화 논쟁에 기폭제가 되었다.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기업의 곳간을 채워준 고환율 정책.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까지 동원한 주가 떠받치기는 당연하게도 주식시장에 투기자금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자산거품 발생은 필연적이었다.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가 삼성전자의 주가를 떨어뜨리고 있다면 이는 고환율과 국민연금으로 떠받쳐온 주식거품(자산거품)의 붕괴신호로 볼 수 있다. 주가가 하락하면 국가 경제가 흔들리고 서민 살림살이가 힘들어 진다는 말, 자본과 권력이 지어낸 유언비어일 뿐이다. 정작 우려해야 할 것은 삼성전자 주식 15조 증발을 빌미로 정부가 환율시장에 개입하고 국민연금으로 주가 방어에 나서는 일이다. 

'5월에도 주택대출 증가... 4·1 부동산대책 약발'.

지난 12일 대다수의 언론들은 이와 유사한 제목의 기사들을 줄줄이 쏟아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첫 부동산 대책이 4월 1일 발표되고 한 달, 서서히 주택거래가 늘어나면서 부동산 대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한 언론들은 4월과 5월 주택담보대출 증가를 그 증거로 내세웠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5월 전국 주택 거래량은 9만136건으로 지난해 5월(6만8047건)에 비해 32.5% 늘어났다고 하지만, 주택담보대출 증가 현상을 부동산 경기 회복의 신호탄인 것처럼 분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무려 16번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책은 서민 주거 안정에 맞추기보다는 집값을 떠받치기 위한 대출 권유책이거나 건설사 살리기에 지나지 않았다. 청년들에게 향후 수입을 담보로 한 대출까지 권했던 이명박 정부. 그런 가운데 가계 빚 1천조 시대가 열렸고, 연체율이 급증했다. 그런 상태에서 박근혜 정부는 첫 부동산대책으로 또다시 대출 권유책을 내놓았다.

알바연대 등 최저임금 1만원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사용자 단체의 최저임금 동결안을 규탄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이들은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라는 대형 현수막 위에 '수백억 배당잔치, 조세피난처로 빼돌린 돈으로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이라는 현수막을 펼치며 사용자 단체의 동결안을 철회와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 알바연대, 한국경총 기습시위 알바연대 등 최저임금 1만원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사용자 단체의 최저임금 동결안을 규탄하며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이들은 '일자리는 최고의 복지'라는 대형 현수막 위에 '수백억 배당잔치, 조세피난처로 빼돌린 돈으로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이라는 현수막을 펼치며 사용자 단체의 동결안을 철회와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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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징후는 오히려 이런 것이다. 파산과 그로 인한 자살자가 넘쳐 나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이 늘어나는 데도 부동산 거품을 만들어 하우스푸어 돌려막기를 권유하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경기만 좋아지만 집값이 금세 반등해 한 몫 단단히 거머쥘 수 있다는 의도된 왜곡. 한끼 밥값도 안 되는 시간당 최저임금 4860원 인상요구에 그동안 너무 많이 올랐다고, 그렇게 되면 고용이 더 불안할 수 있다는 자본권력과 아르바이트든, 비정규직이든 고용률 70%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정부의 고용정책과 이런 것들에 대해 어떤 비판도 없이 15조 삼성전자 주식 증발만 경제위기 조짐이라고 떠벌리는 언론들이 바로 진정 위험한 징후들이다.

경기가 안 좋아서? 과연 맞는 말일까

경기가 안 좋아서라는 말이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가계 빚이 폭증하는 것도 경기가 안 좋기 때문이고, 자영업자가 줄줄이 도산하는 것도, 심지어 시간당 최저임금 4860원을 더 올릴 수 없는 것도 경기가 안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권력과 자본에게 이 말은 책임을 회피하고, 저항 없이 부를 집중시킬 수 있는 더없이 좋은 도피처인 셈이다. 경기가 안 좋아서라는 말을 이제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일은 경기가 안 좋아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또 경제위기는 삼성전자 주가 폭락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다. 정작 우리에게 다가온 위기는 이 모든 문제가 경제가 안 좋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무지와, 경제가 살면 모든 것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환상이다. 삼성전자 주가 15조원 증발과 최저임금 4860원 동결. 어떤 것이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인지도 구별 못하는 무지가, 내 가정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태그:#주식폭락, #고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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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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