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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수행자라는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속가의 어머니를 모시며 천륜의 효를 솔선수범으로 설법하고 계시는 대선 스님이 수행 정진하고 있는 홍련암 연꽃 방죽
 출가수행자라는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속가의 어머니를 모시며 천륜의 효를 솔선수범으로 설법하고 계시는 대선 스님이 수행 정진하고 있는 홍련암 연꽃 방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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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산하에 밤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불어오던 바람에선 아카시아향이 향긋하더니 요즘 불어오는 바람은 밤꽃 특유의 냄새로 비릿합니다. 바람이 밤나무가 자라고 있는 산비탈을 따라 미끄럼을 타듯이 불어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바람은 자신이 지나온 궤적을 냄새로 말해줍니다. 라일락꽃나무를 훑으며 지나왔으면 라일락 향을 풍기고, 가을 국화가 핀 산길을 스쳐왔을 땐 국화 향으로 말해줍니다. 향기로운 꽃만 있는 게 아니니 바람이 꽃길을 지나왔다고 해서 항상 향기로운 냄새만 나는 건 아닙니다.

바람이 꽃향기를 전해 주듯이 승가 소식은 불교계 매체가 종종 전해줍니다. 요즘 불교계 인터넷 매체에 실려 오는 두 스님 주장으로 승가 여기저기서 구린내가 진동합니다. 현직 원로의원 스님 중에 정말 자격 미달 스님이 있는 건지? '30년 전 대전 버스터미널 근처 00장 여관에서 스님이 처녀를 겁탈해 임신케 한 사건'이 정말 있었던 건지?

아니면 원로의원 심사에서 떨어지고, 주지 선거에서 패한 시기심에 똥물이라도 튀겨 보겠다는 심보로 괜히 내질러보는 헛소리인지는 모르지만 귓구멍을 후벼 파고 싶을 만큼 역한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바람은 냄새를 실어 나를 뿐 저장하지는 않습니다. 바람에 실린 악취를 보다 빨리 없애는 방법은 환기입니다. 새로 불어오는 바람에 향기라도 실렸다면 최선의 환기가 될 것입니다. 

스물한 분 스님의 수행담이 향기처럼 풍기는 <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

<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글·사진 윤문정┃펴낸곳 우리출판사┃2013.5.15┃값 1만 3000원
 <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글·사진 윤문정┃펴낸곳 우리출판사┃2013.5.15┃값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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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정 지음, 우리출판사 펴냄의 <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에 실린 21분 스님의 선수행담이야 말로 승가에서 악취처럼 풍기고 있는 주장이 시기심에서 비롯된 헛소리라면 그까짓 허구쯤 깔끔하게 환기시켜 줄 강력한 꽃바람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은 저자가 21분 스님을 한 분 한 분 찾아다니며 물어서 듣고, 들려줘서 깨닫고, 듣고 보면서 젖었던 느낌을 냄새를 농축시켜 가두고 있는 방향제처럼 기록한 내용입니다.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보았던 풍경과 소감은 수묵화를 그려가듯이 묘사하고, 스님들께서 들려주시는 수행담은 흐르는 물처럼 정리하고 있어 솔바람 물결소리가 저절로 느껴집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꽃이고 부처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전하는 스님들 역할이 바람이라면, 이 책에선 21분 스님이 꽃이고 저자가 발품으로 담아낸 내용이 바람입니다. 도량을 찾아가는 저자 마음이 바람이고, 스님들 수행담을 전하는 저자의 마음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읊는 바람의 흔적입니다.  

도현 스님은, '욕심이 없을수록 살아지는 게 중의 살림살이요,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게 중의 공부요,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자유로워지는 게 중의 멋'이라면서 환하게 웃는다. -<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 59쪽 도현스님 중에서-

대오 스님과 동암 스님, 두 스님께서는 포천 동화사의 부처님을 보고 여법如法하게 모시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한 얘기였는데 이런 사정을 몰랐던 밀운 스님은 '시원찮은 부처'라는 말에 의문을 품었고, '부처님 중에 시원찮은 부처님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화두가 되어, 참구 끝에 한 소식을 한 것이다. 그래서 쓴 시가 佛行佛 僧行僧 人行人불행불 행승행 인행인 이다. '부처님처럼 행동해야 부처님이고, 스님답게 행동해야 스님이며, 사람답게 행동하면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뜻이란다. -<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 94쪽 밀운스님 중에서-

지리산에 있는 3평짜리 연암토굴에서 16년째 수행 중인 도현 스님과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인 밀운 스님께서 저자에게 들려준 말씀 중 일부입니다. 어른 노릇, 아빠 노릇, 선생 노릇, 지도자 노릇…, 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것이 '노릇'이 아닌 가 모르겠습니다. '구실'이라고 해도 좋고 '도리(道理)'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사람답게, 스님답게' 행동하는 게 스님이고 사람

아닌 게 아니라 스님들 중에도 말씀은 그럴싸하게 하지만 평소 살아가는 뒷모습은 스님답지 않게 사는 스님도 있나 봅니다. 신도들에게는 '하심'하라고 하며 권위적인 스님도 없지 않고, 자비와 보시를 설법하지만 정작 당신께서는 누군가로부터 뭔가를 받았을 때 고마움을 표하는 최소한의 도리조차 하지 않는 스님들도 없지 않습니다.

‘부처님처럼 행동해야 부처님이고, 스님답게 행동해야 스님이며, 사람답게 행동하면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밀운 스님이 수행하고 계시는 봉선사에서 봉행 중인 생전예수제
 ‘부처님처럼 행동해야 부처님이고, 스님답게 행동해야 스님이며, 사람답게 행동하면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밀운 스님이 수행하고 계시는 봉선사에서 봉행 중인 생전예수제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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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10년 동안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봉행되었던 28분 스님의 영결·다비식 사진 1000여장을 600여 쪽으로 정리한 화보를 꽤 여러 스님에게 보내드린 적이 있습니다. 스님들께서 보내달라고 해 보내드린 건 아니지만 '책을 보내줘서 잘 받았다'고 직접 연락을 주신 스님은 밀운 스님을 포함해 몇 분 스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스님들이 구제하려는 중생, 세속인들도 누군가 뭔가를 보내오면 그 흔한 문자로라도 '잘 받았다'는 인사정도는 할 것입니다. 그게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스님들 세상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무주상보시를 떠올리고, 탁발을 생계수단으로 하는 삶, 받는 것에 익숙해야만 하는 삶을 영위하시는 분들이라는 점을 십분 인정해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쉬움이 잔물처럼 남아있을 때 사소한 마음으로 보내드린 한 권의 책에도 '사람답게, 스님답게'를 실천하시듯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 주신 밀운 스님의 말씀을 지면을 통해서 읽으니 꽃향기를 맡은 만큼이나 마음이 향긋해 집니다.

내 부모 내 가족이 부처, 남편에게 절하고 아내에게 절하면 저절로 화목

"지금 한국 불교는 착각 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인들은 멀리만 쳐다보고 가까운 곳을 보지 못합니다. 조고각하照顧脚下라, 내 발밑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왜 부처와 내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조각이 나는지 압니까? 내 가족을 부처임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내 남편의 일, 아내의 일을 부처님의 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가족이 부처님이 되고 내 가족이 하는 일들을 부처님이 하는 일이라 생각하면 나와 부처는 하나가 됩니다." -<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 150쪽 우룡스님 중에서-

집에 있는 부처에게는 함부로 대하면서 법당의 부처에게 무릎이 닳도록 절하는 건 모순이라며 내 부모 내 가족이 부처님이라는 걸 강조하시는 우룡스님.
 집에 있는 부처에게는 함부로 대하면서 법당의 부처에게 무릎이 닳도록 절하는 건 모순이라며 내 부모 내 가족이 부처님이라는 걸 강조하시는 우룡스님.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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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 중에는 출가수행자라는 관념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시는 분도 없지 않습니다. 길고 오랫동안 열변을 토해가며 설법하지만 추상적이고 공허한 말씀을 전하시는 분도 없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좋은 말씀을 해 주셔도 듣는 이를 감동시키는 못하는 말은 자신만이 도취한 허구에 불과합니다.

몇 년 전, 울진에서 있었던 어느 행사에서 우룡 스님께서 하시는 법문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하셨던 말씀이 바로 '내 가족을 부처로 생각하고, 아침저녁으로 부모와 가족들에게 삼배를 올리게 최고의 불법'이라는 내용이셨습니다.

너무나 쉽고 당연한 말씀이셨지만 심장이 쿵쾅거릴 만큼 가슴에 와 닿는 진리의 말씀이셨습니다. 법당에 가득했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목한 가정을 꾸려갈 수 있는 부처님 가르침으로 담아가는 지혜의 설법이었습니다.

스물한 분 구도자, 고우 스님, 대선 스님, 대원 스님, 명성 스님, 명정 스님, 밀운 스님, 설우 스님, 설정 스님, 성웅 스님, 우룡 스님, 윤성 스님, 원응 스님, 인환 스님, 지묵 스님, 지안 스님, 지원 스님, 철우 스님, 청화 스님, 현봉 스님, 혜담 스님  이 피우고 있는 삶은 이미 그 자체가 구도의 꽃입니다.

지리산 서암정사, 원응 스님이 창건한 천연동굴 굴법당. 한 마디로 입이 딱 벌어지는 법당입니다.
 지리산 서암정사, 원응 스님이 창건한 천연동굴 굴법당. 한 마디로 입이 딱 벌어지는 법당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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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분 스님이 40년 이상을 탁마하며 우려내고 정제한 결실이 <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에 실린 스님 한 분 한 분의 수행이력이며 수행담입니다. 어느 구도자의 꽃은 지금 당장이 향긋함이고, 어느 구도자의 꽃은 가을쯤에나 영글 밤꽃처럼 비릿함일 수도 있을 겁니다.

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 꽃향기를 담아내듯이 저자가 스물한 분 스님을 친견하고 와 바람 같은 마음으로 전하는 구도의 법향이 <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에 오롯이 담겼습니다.

덧붙이는 글 | <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글·사진 문윤정┃펴낸곳 우리출판사┃2013.5.15┃값 1만 3000원



위대한 시작 - 고도원의 꿈꾸는 링컨학교

고도원 지음, 꿈꾸는책방(2013)


태그:#바람이 꽃밭을 지나오면, #문윤정, #우리출판사, #밀운스님, #우룡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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