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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훨씬 이전 세월에도 기생집에는 기생어미와 기둥서방은 있었습니다.
 천 년 훨씬 이전 세월에도 기생집에는 기생어미와 기둥서방은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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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소위 색시 장사를 하는 술집이야기를 조금은 구체적으로 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얘기를 듣다 접대부 아가씨가 새로 오면 주인 남자들이 성적으로 먼저 어떻게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 봤습니다. 의외로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불문율처럼 지켜지는 질서가 있는데 그렇게 하면 질서가 무너져 영업을 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들 세계에서는 나이나 경력과는 상관없는 위계질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막내와 큰언니 정도로 나이 차가 나도 막내 동생뻘 아가씨가 언니(위)로 정해지면 큰언니 같은 여자가 막내 동생 같은 아가씨에게 절대 복종을 해야 하는 게 그들 세계에서의 질서라고 하였습니다.

주인 남자와 정을 통하고 나면 그런 세계에서도 은연 중 여편네(애인) 노릇을 하려는 여자가 생겨 질서가 엉망이 되기 때문에 그것만은 금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아주 조심하고 재수 없어하는 손님은 깡패도 아니고 조폭도 아닌 양아치라는 얘기도 그때 들었습니다. 술 실컷 먹고, 2차까지 하고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대드는 사람 중에 양아치 기질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술값 포기는 물론 택시비까지 쥐어주면서라도 빨리 내보내는 게 상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끼리는 남녀 관계를 '떡방아'라는 은어로 통하고 있다는 것도 그때 들으며 그들만의 세계를 조금은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당나라 기녀 체험담과 당나라 음악과 춤에 대한 이야기 <북리지·교방기>

<북리지·교방기>┃지은이 손계·최령흠┃옮긴이 최진아┃펴낸곳 소명출판┃2013.5.10┃값 2만 3000원
 <북리지·교방기>┃지은이 손계·최령흠┃옮긴이 최진아┃펴낸곳 소명출판┃2013.5.10┃값 2만 3000원
ⓒ 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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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지·교방기>는 당나라 시대 손계가 체험한 기녀 체험담과 최령흠이 기록한 당나라 음악과 춤에 대한 이야기를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최진아 교수가 옮겨 소명출판에서 펴낸 신간입니다. 

한량인지 난봉꾼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손계가 지은 '북리지'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고급 기루와 기녀들이 밀집해 있던 평강방(平康坊) 지역이 북리(北里)로도 불렸기 때문에 그곳, 평강방에 있던 기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제목이 <북리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588'로 불리는 서울 청량리 골목이나 그곳에 살고 있는 아가씨들을 배경으로 한 기록이었다면 그 책 제목을 '청량리지'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왕련련王蓮蓮의 자字는 소용沼容으로 풍채와 용모가 좀 있었다. 그녀의 아우 소선小僊 이하 여러 기녀들은 모두 그녀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녀의 기생어미는 진晉나라 때 욕심 많기로 유명했던 곽씨郭氏와 같은 성격이었고 기생어미의 기둥서방도 곽씨의 남편 왕연 王衍[이 초탈한 것]과는 달리 물욕이 대단하였다. [그래서] 여러 기녀들은 모두 [그들 부부에게] 남은 돈을 빼앗기는 일이 대단히 심하였다. 그들의 기루에 간 사람들은 사례금이 조금이라도 이르지 않으면 흔히 수레를 남겨두고 옷을 저당 잡혀 돌아가는 일을 당하였기 때문이었다. 복리에서도 유독 이 집의 기둥서방이 유난스러웠는데 대개의 경우 이런 식으로까지 돈을 꾀하는 사람은 없었다. - 113쪽 북리지 중

당나라 시대에도 기생어미와 기둥서방이란 게 있어나 봅니다. 기록은 이래서 중요하고 책은 이래서 좋습니다. 천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당나라 시대에 기생들이 군집해 살던 북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렇듯 생생하게 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남녀사이이며 여자가 있는 술집에서 벌어지는 뒷이야기들입니다. 북리지는 분가루 풀풀 날리고, 교음과 교태가 흘러넘치던 기루(妓樓, 기생집)에서 살아가는 기녀들의 생활, 기생집을 드나들던 손님(士人)과 기녀 사이에 오가던 사랑이야기입니다.

관음증을 자극하는 외설적 내용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도 조금은 퇴폐적인 술집에서 생기는 일들이 당나라 시대에는 기생집에서 있었구나 하는 걸 어림 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입니다.

당나라 음악과 진기 춤 솜씨 담고 있는 <교방기> 

기녀에 대한 품평과 시대의 여성관을 가늠해볼 수 있는 <북리지> 내용보다 관음증을 더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은 당나라의 음악과 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교방기>에서 소개됩니다.

기생들도 사랑을 하고 의리도 있습니다.
 기생들도 사랑을 하고 의리도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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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맞는 기녀, 많게는 열네댓 명 적게는 여덟아홉 명의 기녀들이 향화형제香火兄弟를 맺었다고 합니다. 어느 청년이 이들 중 한 기녀와 관계를 맺으면 나머지 기녀들 대부분과도 관계를 갖는 '돌권(突厥)의 법'이라고 하는 풍습(?)은 관음증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소노오蘇五奴의 아내 장소낭張少娘은 기무에 능하고 용모도 아람다워 답요낭踏謠娘을 연기할 수 있었다. [술자리에 장소낭을] 초대해는 사람이 있으면 소오노가 같이 따라갔다. 초대한 사람은 [소오노를] 빨리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게 하려고 계속 술을 권했다. 그러자 소오노는 '나에게 돈만 많이 주면 떡을 먹어도 취합니다. 술을 권할 필요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현재 아내를 파는 사람을 오노五奴라고 부르는 것은 소오노에서 시작된 것이다. - 218쪽 교방기 중

성을 매개로 한 사건, 패륜을 넘어서는 일들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손계가 기루를 드나들며 체험한 것을 북리지로 기록해 전하고자 했던 진의는 주색잡기에 빠져들면 패가망신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위한 경종일 수도 있습니다.

옮긴이는 북리지 저자인 손계와 기녀들 사적이 있는 당나라 수도인 서안을 세 차례나 탐방합니다. 심혈을 기울여 옮긴 최진아 교수의 꼼꼼한 설명이 주석으로 빼곡히 달려있어 <북리지·교방기>를 통해서 들여다보는 기루는 입체적이고, 당나라 기녀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은 주막에 내걸린 주마등처럼 밝은 윤곽을 더해가며 또렷하게 그려집니다.

덧붙이는 글 | <북리지·교방기>┃지은이 손계·최령흠┃옮긴이 최진아┃펴낸곳 소명출판┃2013.5.10┃값 2만 3000원



북리지.교방기

손계.최령흠 지음, 최진아 옮김, 소명출판(2013)


태그:#북리지, #교방기, #최진아, #소명출판, #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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