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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좀 갑작스러운 발표였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사법처리 방침을 공식 발표한 것은 11일 오후 4시께. 검찰은 이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불구속 기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검찰이 법무부의 압박에 밀려 내놓은 절충안이었다.

이날 오후 2시까지만 해도 기자와 만난 대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주 안에 원세훈 전 원장의 사법처리 수위가 결정될 것이다"라고만 말하며 발표 시기를 특정하지는 않았다. 이 관계자는 "수사팀에서는 끝까지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날 석간신문 <문화일보> 보도로 검찰 내부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윤석열 수사팀장은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지만...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윤석열(여주지청장)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은 1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총선·대선에 개입하라고 지시한 것은 명확한데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금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황 장관을 정면 비판했다. 사진은 1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윤석열(여주지청장)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장은 1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총선·대선에 개입하라고 지시한 것은 명확한데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금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황 장관을 정면 비판했다. 사진은 1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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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채동욱 검찰총장과 수사팀에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안통'이었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구속영장 청구뿐만 아니라 공직선거법 위반 적용에도 강하게 반대했다.

그런 가운데 이날 <문화일보>에서 윤석열 수사팀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총선·대선에 개입하라고 지시한 것은 명확한데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금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황 법무부장관이 검찰의 공직선거법 적용을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황교안-채동욱' 혹은 '법무부-검찰'의 내부갈등이 계속되고 있다는 얘기다.

앞서 언급한 대검의 관계자는 <문화일보>의 보도를 두고 "윤석열 팀장이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다"고 풀이했다. 심지어 "사표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발언이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윤석열 수사팀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검찰에서도 기자들의 확인 요청에 "<문화일보>에서 소설을 썼다"고 대응했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도 "기자와 한 전화통화 내용이 왜곡됐다"며 "오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의 한 의원은 "(<문화일보> 보도 이후) A의원이 윤 팀장과 통화했는데 (윤 팀장이) 전체적으로 <문화일보> 보도 내용이 맞다고 했다"고 전했다. 검찰에서 보는 것처럼 <문화일보> 보도 내용이 '완전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사팀장의 이름으로 나간 법무장관 공격에 부담 느꼈나?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놓고 법무부와 검찰이 심각하게 갈등해왔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새로울 게 없는 얘기다. 그런데도 윤석열 수사팀장은 <문화일보> 보도에 강하게 반발했다. 왜 그랬을까?

윤 수사팀장이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를 보면, 우선 자신이 실명으로 황교안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강도 높게 비판한 점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수사팀장이 실명으로 언론과 직접 인터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윤 수사팀장도 "수사 중에는 언론 대응을 직접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그대로 노출된 데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윤석열 팀장이 이날 전화통화의 상당 부분을 '법무부-검찰의 내부갈등'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다. 그는 "검찰과 법무부의 생각이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 차이를 서로 좁혀서 갈등없이 원만하게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하면 기자들은 그것을 다 검찰에서 반발하고 있다고 쓴다"며 이렇게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 법무부 장관의 검찰 지휘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장관은 검찰사무에 정치적 책임을 지는 사람이고, 그런 책임을 지려면 지휘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만 그 지휘는 검찰총장의 의견을 수용해주는 것이다. 장관이 보고받은 뒤 관심 있는 사안은 물어본 뒤 총장의 의견을 수용해준다. 서로 의견이 조금씩 다른 사안은 조율한다. (국정원 사건도) 지금 조율되고 있다. 우리도 거기에 맞춰서 사건을 처리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에) 반발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검찰, 원세훈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확실하게' 확인했다!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4월 29일 오전 10시부터 30일 오전 12시 20분경까지 14시간여동안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서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과 선거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 4월 29일 오전 10시부터 30일 오전 12시 20분경까지 14시간여동안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에서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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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윤석열 수사팀장은 가장 중요한 보도 내용은 거의 언급하지 않거나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다.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윤 수사팀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총선·대선에 개입하라고 지시한 것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원 전 원장은 선거 개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종북 좌파가 여의도(국회)에 이렇게 많이 몰리면 되겠느냐' '종북 좌파의 제도권 진입을 차단하라'고 지시했고 종북 좌파에는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도 포함된다. 이는 명백한 총선, 대선 개입 지시다."

"원 전 원장은 부서장 회의에서 얘기한 것을 인트라넷에 게시했고 선거 때 문 전 후보를 찍으면 다 종북 좌파이고 종북 좌파의 정권 획득을 저지하라고 지시한 게 공지의 사실이다. 이것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하고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코미디'다."

2개월간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지휘해온 수사팀장의 입에서 나왔다는 얘기다. <문화일보> 보도 내용 가운데 법무부-검찰의 내부갈등에는 적극적으로 대처한 윤석열 팀장이 이러한 내용은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다. 이는 검찰이 수사를 통해 원세훈 전 원장의 총선·대선 개입만은 '확실하게' 확인했음을 방증한다. 지난 4월 18일 발표된 경찰 수사결과를 완전히 뒤집었다는 얘기다.

혹시 윤 수사팀장이 뒤늦게라도 "그 부분도 왜곡된 인터뷰였다"라고 반발하지 모르겠다. 하지만 법무부와 갈등을 겪어온 검찰에서 결국 원세훈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을 적용했다는 것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선거에 개입한 것은 명확하다"는 윤 수사팀장의 발언이 사실이었음을 보여준다. 윤 수사팀장으로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나간 이러한 '천기누설'이 더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검찰의 수사결과, 황교안 장관 해임안 추진보다 중요하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검찰의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검찰과 법무부 내부갈등에 주목하는 경향이 보인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교묘한 수사지휘권 행사'를 비판하며 '해임안 추진'을 검토하는 것이나, 검찰이 엄중한 국기문란사건('정보기관의 선거개입')의 핵심인물을 불구속 기소한 것을 비판하는 것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검찰이 2개월여의 수사를 통해 밝혀낸 '사실'이 훨씬 중요하다. 검찰은 국정원 제3차장 산하에 있던 심리정보국 직원들이 네이버와 다음 등 인터넷사이트 15곳에서 정치·선거와 관련해 수천 건의 글(게시글·댓글 등)을 썼고, 원세훈 전 원장이 이러한 활동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국정원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방식으로 선거에 개입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러한 검찰의 수사결과는 정치적으로는 박근혜 정부의 정당성에 상당한 흠집을 낼 수밖에 없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선거 등에 개입해온 국정원의 쇄신도 불가피하다. 그런 점에서 황교안 장관 해임 추진이나 검찰의 불구속 기소 방침 비판은 '곁가지'일 수도 있다. 그보다는 법무부와 갈등하면서 일구어낸 검찰의 수사결과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태그:#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원세훈,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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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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