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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에는 호수공원이 있다. 지하철 3호선의 정발산역에서 내려 1번이나 2번 출구로 나가면 산은 보이질 않고 커다란 광장이 사람들을 맞아주고 그 광장의 바로 곁에 도로 하나를 건너 호수공원이 있다. 호수공원에는 볼거리가 많다. 장미축제가 열리기도 하고 그에 곁들여 음악공연도 마련된다.

하지만 호수를 끼고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엮어내는 풍경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가족 단위로 나와 나무 그늘 밑에 자리를 펴고 여유로운 한때의 휴식을 즐기거나 아니면 빠른 걸음으로 산책로를 돌며 운동을 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띈다. 휴식과 운동은 공원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일상적인 풍경이다.

문득 그와 달리 풍경과 대화하면서 놀아보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말하자면 그곳의 풀들이나 꽃하고 얘기나누고 그곳의 흔한 풍경을 좀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공원에서의 시간이 좀더 즐겁고 재미나지 않을까.

장미
 장미
ⓒ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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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잔디밭에 장미 한송이가 서 있다. 마치 하늘 저 먼 곳,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한마디 건네지 않을 수 없다. "너는 무엇을 그렇게 넋놓고 바라보고 있는 거니?" 돌아온 대답은 이렇다. "그야, 뭐, 내 앞에 와서 각도를 딱 맞춰 서줄 사람이죠. 난 고개돌릴 수 있는 입장이 못되거든요." 하긴 뭐, 장미가 볼만한 사람 지나간다고 고개를 돌릴 수 있겠는가. 장미의 앞에서 각도 맞춰 잘 서보시라. 장미가 오매불망 그리던 장미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장미
 장미
ⓒ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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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미모를 자랑했던 장미가 시들기 시작했다. 시들고 있는 장미는 한창 때와 달리 색이 고르지 않아 보인다. 마치 의사라도 되는양 걱정해주는 것도 괜찮다. "아이구, 이런. 햇볕을 너무 많이 쪼이셨네요. 주근깨가 너무 많이 생기셨어요." 걱정은 해주었지만 대책은 없었다.

국기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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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입구에선 세계 각국의 국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바람과 깃발의 관계를 생각해볼 좋은 기회이다. 바람은 깃발의 힘이다. 깃발은 바람이 있으면 힘을 내고, 바람이 없으면 풀이 죽는다. 우리 곁에 누군가가 없을 때 힘이 빠진다면 그 사람은 깃발의 바람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때로 우리에게도 깃발의 힘이 되어줄 바람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꽃
 꽃
ⓒ 김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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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여기저기서 나무밑의 화단에 가꾸어 놓은 꽃들을 만난다. 꽃은 모양이 재미난 것들이 많다. 이 꽃에겐 이렇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아이고, 지금 상당히 정신사나우시군요. 저 그냥 조용히 사진 한장만 찍고 갈께요."

꽃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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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사나웠던 꽃과 달리 아주 반듯하게 핀 꽃도 있다. 이 꽃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노래가 모습에 딱 어울리긴 하는데 때는 영 제대로 맞추질 못하고 있다. "해뜬 지가 언젠데… 왜 항상 그 노래만 부르십니까." 약간 빈정거리며 그렇게 물었다.

산딸나무꽃
 산딸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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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나무를 만났다. 산딸나무 꽃은 별을 연상시킨다. 산딸나무 한 그루에 꽃이 피어도 너무 많이 피었다. 이럴 때는 사람들에게 별의 소식을 하나 전해주는 것이 좋다. "오늘 밤, 밤하늘에 별은 없을 것입니다. 별들이 모두 일산 호수공원의 산딸나무로 망명했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너무 지겨워 잠시 산딸나무에서 위로 받으며 낮시간을 보내기로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별의 망명 소식을 들으며 망명객이 너무 많아 산딸나무가 저 많은 망명객을 모두 감당할 수 있으려나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바람에 날리는 풀
 바람에 날리는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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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선 풀들이 연신 바람이 이리저리 몸을 누이고 있다. 내가 무엇인가 물어보는 것이 취미인 것을 눈치챘는지 미리 내 입을 막는다. "나는 아무 것도 몰라요. 그저 내가 아는 것은 딱 하나, 바로 바람의 방향뿐. 바람은 지금 저 곳으로 갔어요. 그것 이외엔 저에게 아무 것도 묻지 마세요." 나는 그것만으로 족하다는 듯 한참 동안 풀이 일러주는 바람의 방향 얘기만 들었다. 한참 듣다보니 바람의 방향이 묘연해졌다.

풀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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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이 그냥 피어있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은 입을 벌려 노래를 부르고 있다. 푸른 노래이다. 일제히 모두가 합창을 하고 있었다. 팔까지 벌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듯했다.

잉어와 수련
 잉어와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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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들이 연꽃 구경을 왔나 보다. 하지만 연꽃 구경을 하기엔 잉어의 자리가 영 편치를 않다. 그래서 잉어들이 꽃이 잘 안보인다며 물속에서 난리다. 연꽃과 가장 가까운 자리는 물속이지만 그래도 구경은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최고이다.

의자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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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공원 입구의 광장에서 어떤 사람이 의자의 등받이 걸치고 앉아 전화를 하고 있다. 의자는 언제나 사람을 의자의 무릎에 앉힌다. 우리가 의자에 앉으면 그것은 의자의 무릎에 앉는 것이다. 의자의 등받이에 걸터 앉는 것은 그러니까 의자의 등을 깔고 앉는 것이다. 의자는 그런 사람들이 이상할 것이다. 왜 멀쩡한 무릎을 두고 등에 올라타냐. 의자랑 짜고서 사람하나 이상한 사람 만들었다.

빌려주는 자전거
 빌려주는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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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에서 나오면 곧바로 자전거들을 만난다. 빌려주는 자전거이다. 세워놓은 모습이 특이하다. 모두 코가 꿰어 있었다. 코는 소만 코뚜레로 꿰어 두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자전거도 코를 꿰어둔다. 설명을 보니 천원을 내면 40분 동안 풀어준다고 한다. 코가 꿰인 자전거가 불쌍하면 천원 투자하시라. 자전거도 신이 날 것이다.

가끔 공원을 여유롭게 거닐며 그곳의 풍경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공원을 즐기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태그:#일산 호수공원, #일상적 풍경 다르게 보기, #산딸나무,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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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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