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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남북장관급회담을 12일 서울에서 열자"라고 북한에 제의하고 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남북장관급회담을 12일 서울에서 열자"라고 북한에 제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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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나온 정부 고위관계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앞으로 통일부 출입 기자들이 많이 바빠질 거다. 출장도 많이 다니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이에 대한 UN안보리의 대북제재가 취해진 이래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개성공단사업이 잠정 중단되는 남북관계 악화일로의 상황에서도 통일부 담당 기자들은 바빴다. 그러나 이 관계자의 '바빠질 것'이라는 말은 남북관계가 크게 호전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출장을 많이 다니게 될 것'이란 얘긴 평양·개성·금강산 등 정부의 방북 행렬에 동행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남북 간 대화의 장이 많이 마련될 것이라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의아했다. 개성공단사업 잠정중단 사태가 50일을 넘어가고, 북한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요구한 당국 간 실무회담에 응하지 않으면서 남한의 민간단체들에게는 방북을 허용한다고 천명하는 등 북한은 정부의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정부 비난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었고 '핵 무력 보유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명박정부에서 악화된 남북관계가 박근혜정부에서 더 나빠지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었다.

당시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았고, 남북관계가 호전되길 바라는 이 고위관계자의 희망 정도로 해석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9일 뒤인 지난 6일 북한은 정부가 그토록 요구한 당국 간 회담에 응하겠다고 발표했다. 단순히 회담뿐 아니라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포괄적인 의제들을 열거하면서 대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북한 중대발표 첩보 입수"... 대화 국면 예상했나?

'통일부 출입 기자들이 많이 바빠질 것'이란 정부 고위관계자의 말이 그냥 농담이 아니라 곧 닥칠 대화국면을 시사한 게 아니었던가 하는 '뒤늦은 각성'이 드는 건, 이와 비슷한 시점에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변화 가능성이 언급된 내용도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29일자에서 북한의 '중대 발표설'을 보도했다. 북한이 금명간 중대발표를 할 것이란 첩보를 정부가 입수해 확인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보도가 인용한 정보당국자는 "북한이 그동안 거부했던 6자회담 복귀와 개성공단 정상화, 새로운 특구지정 등 중국과 주변국에서 요구하고 있는 개방 움직임과 관련한 조치를 내놓을 것이란 첩보가 있다"고 했다.

남북 당국 간 회담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올 거라는 내용이어서 현재의 상황과도 맞아떨어진다. 이 보도 내용과 정부 고위관계자의 '통일부 기자들 바빠질 것' 발언이 나온 걸 종합하면, 정부는 북한이 조만간 기존 태도에서 큰 변화를 보여줄 것이라 예측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그동안 정부가 북한과 물밑으로 접촉하면서 이런 상황을 유도한 것은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물밑 접촉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낮다. '물밑 접촉 같은 비공식 접촉보다는 투명하고 공개적인 대북 정책을 지향한다'는 게 현 정부 기조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북한 "대통령이 그동안 일관된 대북 메시지를 유지한 데에 따른 태도변화로 봐야지, 물밑접촉 같은 건 전혀 없었다. 확실하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남북 간 비공식 대화 등 물밑접촉 없이 박 대통령의 일관된 대화의지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냈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난제 많지만, 부풀어오르는 '출장 기대'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통제한 지난 4월 3일 오전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려던 화물차량들이 모두 되돌아간 뒤 차량통행로가 텅 비어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통제한 지난 4월 3일 오전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려던 화물차량들이 모두 되돌아간 뒤 차량통행로가 텅 비어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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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북 정부 간 대화의 장이 열린다 해도, 풀기 힘든 어려운 문제들이 놓여있다. 북한은 이명박정부 때 단행한 5·24 남북경협제한조치를 해제해주길 바라지만, 이 조치의 명분이었던 천안함사건에 대해 '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라는 북한의 기존 입장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의 입장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남북 대화 진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난제가 예상되지만, 통일부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기대는 부풀어 오르고 있다.  쉽사리 가볼 수 없는 북한 지역에 출장을 갈 기회가 있다는 게 통일부 취재 기자의 '특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정부 땐 남북관계 악화로 자취를 감춰버린 '북한 출장' 기회가 되살아나지 않겠느냐는 희망이 생겨나고 있다.


태그:#남북회담, #북한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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