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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8일 토요일 아침. 옥천역 광장에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였다. 인근 혜천대학교에서 호텔외식조리를 공부하는 학생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아동 미술치료 교사로 일하는 젊은 여성, 적게 벌어 적게 쓰는 것에 관심 있는 영어 강사, 호주에서 우프(Wwoof, 국제 농업체험교류 프로그램)를 하다가 채식주의자가 된 젊은이, 행정고시에 패스해 전북도청에서 젊은 농업직 사무관으로 재직 중인 공무원, 직장 생활을 하다 뒤늦게 농업에 뜻을 품고 천안연암대학에서 친환경원예를 전공하는 청년….

어쩐지 서먹한 첫 만남. 5월부터 9월까지 총 아홉 차례 진행되는 '청년 로컬푸드 탐방'에 지원한 참가자들이다. 다행히 이날 인솔을 담당한 권단 옥천살림 기획팀장이 쾌활하게 분위기를 이끈다. 간단한 자기소개 후, 상쾌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걸어서 옥천 읍내에 있는 옥천살림(영농조합법인) 사무실로 향했다. 주교종 운영이사가 일행을 맞았다.

'로컬푸드 탐방 in 옥천' 참가자들. 맨 오른쪽이 권단 옥천살림 기획팀장
 '로컬푸드 탐방 in 옥천' 참가자들. 맨 오른쪽이 권단 옥천살림 기획팀장
ⓒ 유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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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살림

서울에서 기차를 타면 대전역 바로 다음이 옥천이다. 정지용 시인이 <향수>에서 읊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바로 그곳. 옥천은 정지용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옥천의 역사는 좀 재미있다. 제3공화국 때부터 육 여사의 친오빠인 육인수가 지역을 '꽉 잡고' 토호세력을 형성했고, 1980년대에는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전남도청의 최후 진압을 담당했던 20사단의 사단장 출신 박준병이 옥천군 국회의원으로 활약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이었으며, <한겨레> 사장을 지낸 송건호 등 진보 언론인을 배출하기도 했다. 1989년에 설립된 옥천신문사도 있다. 옥천을 잘 모르는 사람도 '조아세(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 등 조선일보 반대 운동을 펼쳤던 <옥천신문>은 기억할 것이다.

"옥천은 매우 역동적인 곳이에요. 옥천살림은 2008년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1인당 10만 원씩 출자해서 설립했지요. 처음에는 컨테이너 박스 하나를 얻어서 절반은 두부공장을 하고, 절반은 사무실로 썼어요. 그러던 것이 지금은 10억 원의 연매출을 내는 조직으로 성장했지요.

8, 90년대 매일같이 서울에 올라가 소위 '아스팔트 농사'를 지으며 수입 개방을 반대했지만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여의도에 가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었던 것이 착각이었던 거지요. 무엇을 '달라' 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지키고 빼앗기지 않을 궁리를 하겠다는 열망이 모여 옥천살림을 만들어낸 것 같아요."(주교종 운영이사)

옥천살림은 옥천군내 학교급식과 어린이집 급식·간식에 지역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일반 가정에 친환경 꾸러미 배달 등 옥천군 친환경 농산물 유통을 도맡아 하고 있다. 대표 상품인 '우리콩 두부'는 옥천에서만큼은 시판 포장 두부보다 지명도가 있고 만족도도 높다. 오늘 아침에 만든 두부는 어느 동네 누구네 집 콩으로 만들었는지 옥천 사람이면 다 안단다. 갓 만든 두부만큼 맛있는 것이 있을까. 품질은 말할 것도 없다. 옥천에서 옥천살림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주민 힘으로 만든 안남 배바우 작은도서관
 주민 힘으로 만든 안남 배바우 작은도서관
ⓒ 유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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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 작은도서관 & 어머니학교

버스를 타고 안남면으로 향했다. 전체 주민이 1500명밖에 되지 않는 안남은 옥천군에서 제일 작은 면이지만, 옥천의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한 주민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덕실리 마을회관에서 유기농 로컬푸드로 점심을 먹고 배바우 작은도서관과 어머니학교를 차례로 방문했다.

배바우 도서관은 국립중앙도서관의 작은도서관 만들기 사업에 공모, 주민 스스로 따낸 사업비 2억 원으로 지은 것이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설계된 낮은 책장에 마음껏 볼 수 있는 수천 권의 책이 가득하다. 나무로 만든 편안한 바닥과 계단, 조용히 독서할 수 있는 1·2층의 아기자기한 공간. 이용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도서관 덕분에 아이들이 방과 후에 모일 곳이 생겼어요. 도시 아이들처럼 학원에 가는 대신 이곳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도서관에 오죠. 책도 읽고, 지도 선생님을 따라 텃밭 가꾸기나 요리교실 등 함께 방과 후 활동을 해요."(권단 기획팀장)

대청댐을 만들면서 도시에서 걷은 물이용 부담금으로 수몰지구 주민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제도가 생겼다. 지원금을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냉장고를 바꾸거나 세탁기를 새로 들여놓았다. 하지만 안남면 주민들은 그 돈을 쓰지 않고 모아서 지역 사업에 사용하기로 했다.

"안남면 사람들이 그 돈을 모두 모으면 매년 1억5000만 원이에요. 그걸로 마을버스를 한 대 사서 무료 운행을 하려고 해요. 그동안 이곳을 다니는 버스는 읍내로 나가는 것뿐이었거든요. 차가 없는 주민이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마음대로 돌아다니기 어려웠죠."(권단 기획팀장)

이름은 '도서관 셔틀버스'로 하고 도서관을 중심으로 운영할 거란다. 기왕이면 아이들이 도서관에 다니기 편하도록. 이 도서관 셔틀버스를 애용할 학생들이 또 있다. 안남 어머니학교 학생들이 그들이다. 권단 기획팀장은 우리 일행을 안남면사무소 2층에 위치한 어머니학교 교실로 안내했다.

안남면사무소 앞 생태광장에 있는 돌탑은 안남 12개 마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어 주민자치를 상징하고 있다.
 안남면사무소 앞 생태광장에 있는 돌탑은 안남 12개 마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어 주민자치를 상징하고 있다.
ⓒ 유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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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현일분/ 나 큰애기때 신랑집이 부자라고 해서 시집을 왔는데 시집을 와서 보니/ 좁쌀 한말, 쌀 닷되밖에 없어요./ 시집 오던날, 좁쌀 밥 해주더니 저녁에는 죽을 끓였더군요./ 그래서 내뺄려고 했는데 시아버님, 시어머님 계시고 부모없는 조카딸도 있고 그래서 못 갔습니다./ 고생 끝에 영화 온다해서 살았습니다./ 시방은 행복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학교를 다녀서 고맙습니다.

어머니학교에서 처음으로 글을 배운 학생이 쓴 시이다. 교과 과정은 주로 한글 읽고 쓰기 교육이지만 어머니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시혜적으로 읽고 쓰기만 가르치는 다른 교육 기관과는 달리 이곳은 학생 스스로의 '자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학생회를 조직해 학교 살림을 운영하고, 봄·가을에는 소풍도 가고 학예회도 연다.

"우리 어머니들에게 관공서는 무서워서 감히 와보지도 못하는 곳이었죠. 그런데 이제 학교를 다닌다고 면사무소를 자유롭게 드나들고 스스로 주인이 돼서 학교를 만들어가요. 아침 10시 수업인데 8시, 9시부터 와서 공부들을 하세요. 행복하시대요. 못 배운 설움, 남녀차별…, 평생의 한을 씻으시는 거죠."(권단 기획팀장)

옥천신문 & 배바우

다시 덕실리 마을회관으로 돌아와서 바람 솔솔 통하는 정자에 모여 앉았다.

"역사를 뜻하는 '사(史)'는 사람 '인(人)'에 입 '구(口)'가 합쳐진 것이라고 해요. 사람이 입으로 하는 것이 역사라는 거죠. 입으로는 무엇을 하지요? 말을 하고, 밥을 먹잖아요. 말은 정치고, 밥은 경제에요. 옥천에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주민의 힘으로 이루어져요. 1989년에 창간된 <옥천신문>이 정치고, 옥천군 친환경 먹을거리를 담당하는 옥천살림이 경제죠."(권단 기획팀장)

옥천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권 팀장의 설명. 말 속에 옥천의 주민자치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16면짜리 주간신문인 <옥천신문>의 한 달 구독료는 6000원, 유가 부수는 4000부다. 옥천군 가구 수가 대략 2만 정도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구독률이다. 옥천 사람들이 <조선일보>보다 많이 보는 신문이 바로 <옥천신문>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창간 때부터 변함없이 발로 뛴 정직과 성실함 때문인 것 같아요. <조선일보>에는 우리 마을 소식이 안 나오잖아요. 하지만 <옥천신문>에는 우리 동네 이야기, 이웃 사람들 이야기가 실려요. 이번 주엔 누구네 소식이 나오나, 궁금해서 사 보는 거예요. 그리고 다른 지역 신문들처럼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지 않고 오직 신문 하나에만 집중했어요."(권단 기획팀장)

안남면 주민자치의 힘으로 만드는 '배바우' 신문
 안남면 주민자치의 힘으로 만드는 '배바우' 신문
ⓒ 유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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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신문들은 대부분 돈 있고 힘 있는 지역 유지가 소유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업을 벌이고, 내실 있는 보도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옥천신문>은 돈 있는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 만들고 경영하는 신문이다.

그런가 하면 안남면에는 <배바우> 신문이 있다. 한 달에 한번 주민기자들이 기사를 쓰고 각 세대와 출향 주민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한다. '배바우'는 안남면의 지역 농산물 브랜드 이름이다. 아이들까지 모두 참여한 스티커 설문조사로 결정했다고.

매달 넷째 주 토요일에는 안남면사무소 앞 생태광장에서 배바우 장터가 열리는데, 지역에서 통용되는 배바우 화폐로 거래한다. 생태광장에는 안남면 12개 마을에서 가져온 돌로 쌓은 돌탑이 있다. 좀 어려워도 고향을 떠나지 말고, 같이 힘을 합쳐 잘 살아보자는 뜻을 담은 것이다.

맛있는 먹을거리

덕실리 마을회관에서 밤을 보내고, 이튿날 옥천 구읍에 있는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 방문을 끝으로 탐방을 마쳤다. 모든 일정이 다 좋았지만, 특히 탐방단의 호평을 받은 것은 맛있는 음식이었다.

마을 어머니들이 해주신 싱싱한 채소로 만든 비빔밥, 옥천살림의 대표상품인 우리콩 두부로 만든 매콤달콤한 두부 조림, 단호박을 갈아 부치고 쑥갓과 구기자로 장식한 단호박전, 요즘 제철을 맞은 배바우 토마토를 고추장에 볶은 토마토 조림. 갓 만든 토마토 조림은 꼭 이탈리안 스파게티 소스 같은 맛이 나서 학생들에게 인기였다.

"먹을거리는 편의점이나 마트가 아니라 땅에서 나와요. 농업·농촌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내 밥상 안에 다 있죠. 안전한 먹을거리를 먹으려면 우리 들녘을 생각해야 해요. 오늘 오신 여러분이 이것을 잊지 않고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권단 기획팀장)

전국 각지에서 모였던 사람들은 1박 2일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아쉬움 속에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저마다의 이유로 음식과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된 젊은이들은 다들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며 밝은 표정으로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덧붙이는 글 | * 슬로푸드문화원이 주관하는 청년 로컬푸드 탐방은 대학생 이상 35세 이하의 청년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 이 기사는 <식량닷컴>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옥천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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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을 무의식적인 소비의 노예로 만드는 산업화된 시스템에 휩쓸리지 않는 깨어있는 삶을 꿈꿉니다. 민중의소리, 월간 말 기자, 농정신문 객원기자, 국제슬로푸드한국위원회 국제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계간지 선구자(김상진기념사업회 발행) 편집장, 식량닷컴 객원기자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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