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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맘/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첫말로 맘마를 배운다/ (중략)/ 그 다음에는/ 꼬보 꼬보 고보무은 고보무은/ 교보문고를 배운다

교보문고의 광고문구가 아니다. 엄연한 시(詩)의 한 구절이다. 한국시인협회장 신달자 시인이 교보문고 창업주를 소재로 쓴 이 시의 제목은 <신용호>다. <중앙일보> 5월 15일 치 기사에 실린 이 시는 더 이상 시중에서 볼 수가 없다.  

전체 문맥에서 떨어져 나온 단락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맘마' 다음으로 배우는 말이 '교보문고'라는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에 이르면 허탈함에 말문이 막힌다. 실제 독자들은 지난 5월에 민음사가 출간한 시집 <사람-시로 읽는 한국 근대 인물사>(한국시인협회 엮음)에서 이 시들을 만날 뻔했다. 

이 시가 수록된 <사람>은 한국시인협회(이하 '시인협회')의 창립 50주년 기념 시집이다. 한국 근현대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 112명의 빛과 그늘을 조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시집은 특정 기업인에 대한 찬양이 지나쳐 논란을 빚었다.

"진보라는 가면을 쓴 붉은 얼굴들이 마음껏 설치지" 못하도록 나라의 초석을 다졌다고 이승만을 찬양하고, "개발독재가 애국독재로 승화됐다"고 묘사한 박정희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빛과 그늘을 문학의 눈으로 보여주겠다"던 시도가 완전히 무너졌다. 젊은 시인들의 집단적 반발로 시집의 출간은 결국 무산됐다. 한편의 소극(笑劇)으로 끝났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원로시인에 발끈한 '무명작가' 이시백

소설가 이시백 <나는 꽃도둑이다>의 작가 이시백
▲ 소설가 이시백 <나는 꽃도둑이다>의 작가 이시백
ⓒ 이시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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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도 아닌 어느 소설가가 이러한 세태에 "개똥을 씹은 것 같다"고 역정을 냈다. 최근 출간한 장편소설 <나는 꽃도둑이다>의 작가 이시백이 그 주인공이다. '문학의 사생아'인 소설이나 끼적이는 주제에도 그가 분노한 이유는 "가슴 한편에 아직도 시가 벌떡이고 있기 때문"이란다. 대관절 이시백 자신은 얼마나 똑바로 글쓰기를 하고 있길래 문단의 원로 시인의 작품을 두고 "이게 시냐?"고 발끈한 것일까? 그의 문학세계로 들어가 보자.

1988년에 등단한 이시백은 변변한 출세작이 없다. 도시화와 농업개방으로 피폐해진 농촌의 현실을 묵묵히 작품에 담아왔을 뿐이다. 도시화로 무너져가는 충청도 농촌의 현실을 그린 연작소설집 <누가 말을 죽였을까>(2008, 삶이보이는창), 농업개방으로 변해가는 우리농촌의 현실을 묘사한 <갈보 콩>(2010, 실천문학사)이 그의 대표작이다.  

"저는 저의 소설이 어려움에 빠진 해고 노동자나 열에 아홉은 망할 줄 알면서 부나방처럼 자영업의 길로 뛰어드는 서민들을 그저 '힐링'시켜주길 바라지 않습니다."

민중의 아픈 현실을 그려낸다고 해서 그가 무작정 민중을 긍정하리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작 소설에서 이시백은 파괴된 농촌의 현실만큼이나 줄기차게 현실 순응적이고 때로는 폭력에 편승하는 농민들의 이중성을 고발해 왔다. <나는 꽃도둑이다>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과연 잘 살고 있는가?

 <나는 꽃도둑이다> 표지
 <나는 꽃도둑이다> 표지
ⓒ 한겨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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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도둑이다>에서 작가는 청계천변에 터 잡고 살아가는 노점상과 자영업자, 이주노동자의 일상을 그린다. 이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아주 소박하다. '우리가 타인의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가?',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배척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기본적인 물음이다. 

밑에서 봉급이나 타먹는 이들이야 심간 편하겄지. 막상 경영을 책임지는 오나 입장이 되믄 고민되는 게 부지기수여. 막말루 장사 안 되구 골 아프니 가게 문 닫아버리믄 내야 위치게든 못 살겄어? 솔직히 그리 되믄 영식이 엄마는 워측허구, 배달허는 종철이는 당장 워쩔 것이냔 말이여. - <나는 꽃도둑이다> 본문 중에서

떡볶이며 순대까지. 골목상권을 유린하는 유통재벌의 행태를 비추어 보면 '먹도날드 분식' 사장인 김명식의 아내는 분명 경제권력에 핍박받는 약자다. 그러나 그녀는 팔다 남은 김밥쪼가리로 해결하던 점심식사를 개선해달라는 분식점 직원 영식엄마의 요구에 발끈한다.

하여간 다문화인지 뭔지가 문제야. 지금 안산이나 수원 쪽에서는 밤이면 사람이 다니지를 못해. 방글라에 필리핀 베트남에 오사리잡놈이 다 몰려와서 강도질에 강간으로 야단이다 이거야. 거. 누구야! 여자 잡아다가 이백팔십 점으로 사시미 친 놈. 으잉. 오원춘이. 그런 놈들이 버글버글하대니까. - <나는 꽃도둑이다> 본문 중에서

월남전 참전용사 박금남은 공산주의 때문에 배곯아 조국을 등진 탈북자 노점상 경일을 '빨갱이'라 의심한다. 뿐만 아니다. 베트남 이주노동자 비엔 역시 그가 보기에는 '정조 없는 여자'다. '다문화'라는 말로 그들과 공존을 요구하는 세상이 금남에게는 '오염된 짬뽕'에 다름 아니다. 조선족이 인육을 먹는다는 등 근거 없이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박금남의 모습에서는 '일베'를 보는 듯 묘한 기시감마저 든다.

핍박받은 민중이 '없는 이'들을 조소하는 현실

부자감세. 지난번 선거 때도 진근은 대뜸 그 정당을 위해 표를 꾹 눌러주었다. 손발 움직여 먹고사는 생산직이나 하루 품팔이 절반에 가까운 49.2퍼센트가 그이를 찍은 것만 봐도 없는 이들 일수록 부자 편이었다. 공연히 자발머리없는 인간들이 입만 까져가지고 민중이니 연대니 입바른 소리를 늘어놓지만 세상은 그렇게 움직여지는 게 아니었다. - <나는 꽃도둑이다> 본문 중에서

집회현장에 촛불판매로 먹고사는 노점상 임진근에 이르면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는 완전히 허무해진다. 정부의 노점탄압에 언제나 노심초사하는 그는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약자다. 그러나 진근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이들을 비웃으며 세상을 움직이는 건 촛불이 아니라 돈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리고 부자감세를 내세운 정당을 지지한다. 이처럼 작가는 사회로부터 핍박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없는 이들에 대해 조소하는 계급배반적인 민중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그의 소설 속에는 시장바닥 좌판에서 오고가는 억센 사투리와 가난한 이들의 어눌한 신세한탄, 욕망에 들끓는 말들이 뱀처럼 꾸물꾸물 살아 숨 쉰다.

맥없이 거리를 방황하기도 무엇하던 차에 재록은 생각지도 않았던 별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길바닥에 떨어진 한 장의 전단지에서 비롯되었다. 남자들 간깨나 빼먹게 생긴 젊은 처녀가 입었다기보다 벗었다 해야 할 차림으로 입을 비죽 내밀고 전단에는 '입으로 무엇이든 다 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 <나는 꽃도둑이다> 본문 중에서

'입으로 다하는 게 아니라 돈으로 다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알면서도 송재록은 친목회원의 딸 경미가 일하는 '쏭쏭키스방'으로 향한다. 그는 이발사 시절, 매출 때문에 아내의 퇴폐서비스를 모른 척 해야 했다. 진실은 언제나 불편하다. 작가는 풍자와 해학을 통해 그 불편함을 증폭시킨다. 어느 문학평론가는 이시백 소설의 힘이 '민중서사를 지탱하는 구술성'에 있다고 평가했다. 

해고노동자의 농성장은 이시백의 '글터'

거리강연  거리강연 중인 이시백.
▲ 거리강연 거리강연 중인 이시백.
ⓒ 이시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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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상종이라고, 그가 몸담고 있는 '리얼리스트100'이라는 작가모임도 눈여겨볼 곳이다. 그와 동료들은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현장문예활동'을 추구한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재능교육이나 쌍용자동차 해고사태처럼 사회적 갈등이 벌어지는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작품에 담아내는 것이다.

'리얼리스트100'은 규약으로 "기업 기부금은 받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다. 기업에 빚진 작가가 부의 세습과 일방적 정리해고를 일삼는 재벌의 경제 권력을 올곧게 비판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실제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은 그의 주요 글터 가운데 하나다.

그 당시 우리는 점심으로 싸온 찬밥을, 여자 화장실 맨 구석의 좁은 칸에서 둘이 무릎을 세우고 먹었습니다. 학생들이 바로 옆 칸에 와서 '푸드득' 용변을 보면 우리는 숨을 죽이고 김치 쪽을 소리 안 나게 씹었습니다.

그가 글을 낭독하자 글쓰기 강좌의 수강생들이 숙연해졌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이 쓴 <나는 무슨 일 하며 살아야 할까>에 실린, 청소노동자가 직접 쓴 글이다. 이시백은 수강생들에게 이 청소노동자의 글을 "글쓰기의 경전으로 삼으라"고 주문했다. 글쓰기에 있어서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현실에 깊이 뿌리박고 내 주변을 돌아보라는 의미다.

그의 '저자거리 문학'이 필요한 이유

강연중인 이시백 한국비정규센터의 '쉼표 하나'글쓰기 강좌에서 강연중인 이시백
▲ 강연중인 이시백 한국비정규센터의 '쉼표 하나'글쓰기 강좌에서 강연중인 이시백
ⓒ 한국비정규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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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비정규직센터(소장 이남신)가 주최하는 '쉼표 하나'라는 강좌에서 노동자들에게 글쓰기를 강의한다. 삶을 성찰하는 인문학강좌에 몰리는 이들이 죄다 식자층인 현실이 그는 불편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글쓰기 강좌에 각별히 애정을 쏟고 있다. 그는 이들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주변을 돌아볼 때 우리 사회가 그만큼 좋아진다고 믿는다.

최근 들어 권력자와 재벌기업인의 칠순잔치에나 어울릴 용비어천가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난무하고 있다.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는 작가들이 재벌회장을 "기업보국(企業報國)을 꿈꾼 선각(先覺)"이라고 찬양하고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은 그런 시를 담은 시집 출간을 후원하는 '문화융성'의 시대다.

그러나 여전히 직장을 잃은 재능교육의 노동자들이 2000일이 넘도록 서울 한복판에서 농성 중이고, 24명이 죽어나가도 정치권이 약속한 쌍용차 해고자들의 문제해결은 요원하다. 권력자를 대변하는 인간은 약자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주고도 "그냥 툭 치며 성공하라고 말했을 뿐"(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라며 말장난 중이고, 라면이 맛없다고 승무원을 쥐어패는 대기업 임원처럼 가진 자들의 '갑질' 행태도 그대로다. 찬양보다는 까발리고 조롱해야 할 글감이 널린 시대다. 이시백의 저자거리 문학이 정말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 이시백 작가는 1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4일 남양주시 가운초등학교, 29일 충북 영동 천태산을 거쳐 충남과 부산 자갈치 시장, 그리고 탑골공원의 애국어버이들까지 전국의 독자들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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