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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 고샅길은 울창한 대숲에 둘러싸여 있다.
 강골마을 고샅길은 울창한 대숲에 둘러싸여 있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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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도 하지. 길에서는 마을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대숲을 지나니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났다. 온통 울창한 대숲에 둘러싸인 강골마을은 오목하게 들어간 마을 입구의 생김새 때문인지 밖에서는 겨우 집 한두 채가 보일까 말까 한데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신선들이 살 법한 비밀의 공간이 숨겨져 있다. 동구 밖 좁은 산모롱이를 돌아서면 떡하니 나오는 마을은 무슨 요술 속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강골마을은 한자로 '골짜기 동' 자를 써 강동(江洞)마을이라 불린다. 예전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그렇게 불린 것인데, 지금은 간척이 되어 드넓은 비옥한 농토를 안마당 삼고 있다.

강골마을에는 숲속에 드문드문 옛집들이 있다.
 강골마을에는 숲속에 드문드문 옛집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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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속에 있는 래인댁
 대숲 속에 있는 래인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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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 속에 있는 옛집, 별천지가 따로 없네!

백년이 넘은 오봉생가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하고 마을 구경을 나섰다. 마을 안쪽에 있는 오봉생가도 병풍처럼 대숲이 둘러쳐 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오봉생가 뒤로 박실댁, 래인댁 등 대숲 중간 중간에 옛집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집들은 근래에 전통마을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이 단장이 되기도 하고 지어지기도 했다. 숲 가운데에 집이 있음에도 전혀 음침하지 않고 볕이 잘 들어온다. 마치 숲속 휴양지에 온 느낌이다.

대숲을 따라 사람 두셋은 나란히 다닐 수 있는 예쁜 고샅길이 있다. 숲속에 드문드문 있는 집과 집을 이어주는 숲길이자 마을길이다. 한 마을임에도 서로의 공간이 노출되지 않고 각자의 숲을 가지고 각자의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사는 셈이다.

숲속의 집과 집을 잇는 강골마을 옛길
 숲속의 집과 집을 잇는 강골마을 옛길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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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집과 집을 잇는 강골마을 옛길

마을을 빙 둘러서 있는 강골마을 옛길은 가운데로 지름길도 나 있다. 집에서 집으로 이동하는 길이 숲길이라는 건 이곳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마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용욱 가옥과 이식래 가옥, 이금재가옥이 있는 곳을 제외하곤 숲속에서 집들이 각자의 풍류를 즐기고 있다.

이런 숲속의 독립된 공간은 아치실댁에 이르면 절정에 달하게 된다. 아치실댁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길의 끝자락 산기슭에 있다. 마치 깊은 산중의 암자처럼 고요한 이곳에도 햇빛만은 넘치고 넘친다. 사방 숲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사각사각 대는 대숲소리, 바람에 몸을 섞는 나무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아치실댁은 대숲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산중의 암자 같다.
 아치실댁은 대숲에 둘러싸여 있어 마치 산중의 암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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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낸다. 이곳에 처음 온 이들은 '이런 별천지가 있나' 하고 모두 감탄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밤이 되면 이곳은 조금은 무서운 공간이 되는 모양이다. 너무 외따로 떨어져 있다 보니 단체가 아닌 몇몇이 와서는 무섭다며 이 집에서의 숙박을 포기하고 마을에 있는 다른 집을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여행자도 처음 인터넷에서 사진을 보고 멋들어진 이 집에 반해 예약하려 했다가 포기했었다. 아내와 어린 딸, 셋이서 숙박할 거라고 했더니 마을 관계자인 박향숙씨가 만류를 했기 때문이다.

열화정 가는 길의 울창한 대숲
 열화정 가는 길의 울창한 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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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정에 오르면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어...

대숲이 울창한 강골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열화정이다. 마을의 제일 높은 자리에 깊이 침잠해 있는 열화정에 오르면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정자로 가는 길에 깔린 박석의 리듬감과 쭉쭉 뻗은 대나무, 푸르른 댓잎이 싱그럽다. 나무 그림자가 멱을 감는 연못도 아름답지만 건물 자체가 주는 그윽함도 비길 데가 없다.

마당 앞 소박한 연못을 드리운 열화정도 역시나 깊은 숲 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아담한 일각문, 목련·석류·벚나무·대나무 등 온갖 나무들이 주변의 숲과 어울려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해낸다. 별다른 정원시설 없이도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우리 원림의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열화정은 대숲이 울창한 강골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열화정은 대숲이 울창한 강골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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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 중요민속자료가 4곳이라니...

열화정에서 마을로 내려오면 이금재 가옥이 나온다. 안채의 뒤쪽이 'ㄷ'자인 보기 드문 형태의 집이다. 중요민속자료 157호로 지정된 이 가옥의 목재들은 벌목한 다음 바닷물에 충분히 담가서 그 뒤틀림을 방지하여 강도를 유지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금재 가옥에선 오봉산 자락이 무척이나 다양한 풍경을 보여준다.

이금재 가옥과 나란히 붙어 있는 집이 중요민속자료 159호인 이용욱 가옥이다. 강골마을에는 이외에도 중요민속자료 160호인 이식래 가옥, 앞서 소개한 중요민속자료 162호 열화정이 있다. 강골마을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한 마을에 중요민속자료가 4곳이나 지정돼 있다.

강골마을에는 중요민속자료가 4곳이나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금재 가옥, 이용욱 가옥, 이식래 가옥이다.
 강골마을에는 중요민속자료가 4곳이나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금재 가옥, 이용욱 가옥, 이식래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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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샘. 왼쪽 담장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왼쪽이 이용욱 가옥 오른쪽이 이금재 가옥이다.
 소리샘. 왼쪽 담장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왼쪽이 이용욱 가옥 오른쪽이 이금재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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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욱 가옥과 이금재 가옥 사이에는 특이한 샘이 하나 있다. 일명 '소리샘'이라는 곳인데 우물가 담장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일부러 뚫어 놓은 이 돌구멍 사이로 집주인은 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엿듣고, 마을 사람들은 대감 집을 엿보곤 했다. 이 좁은 돌로 만든 창이 서로의 소통공간인 셈이었다.

초가로 된 이식래 가옥은 아늑하다. 본채와 사랑채가 초가인데 비해 광채는 특이하게 기와로 지어졌다. 생산된 곡식과 농자재 등의 보관을 중요시 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 광은 이용욱 가옥과 붙어 있어 자연스럽게 담장의 구실도 한다. 이용욱 가옥을 중심으로 예전에는 한 가족이었던 것이 재금을 하여 각기 이식래 가옥과 이금재 가옥으로 분가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강골마을에서 숙박을 하면 이식래 가옥에서 시골밥상을 먹을 수 있다.

이용욱 가옥에서 본 오봉산. 오봉산의 바위들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에서 보면 마치 사람이 앉아 글공부를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을에 인재가 많이 났다고도 한다.
 이용욱 가옥에서 본 오봉산. 오봉산의 바위들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에서 보면 마치 사람이 앉아 글공부를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래서 마을에 인재가 많이 났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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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골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이용욱 가옥은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이다. 솟을대문을 한 행랑채에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안채, 사당까지 갖추어져 오래된 고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집 역시 오봉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툇마루에 앉아 오봉산을 바라보면 실제보다 가까이 보인다. 원근감을 표현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는 가옥이다. 집 앞으로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어 이 집의 유래를 더욱 깊게 한다.

전통마을과 옛 빛이 빛나는 강골마을은 약 950년 전 양천 허씨가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 후 원주 이씨가 500년 동안 거주하였고 광주 이씨가 이곳에서 정착하게 된 것은 400년 전이다. 이 마을의 송죽이 울창하고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백로가 서식한다 하여 '강동'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 바다였을 강골마을 들판에는 보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예전에 바다였을 강골마을 들판에는 보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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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2013년 5월 4일~5일 전남 보성 강골마을 여행
* 이 기사는 코레일 누리집에 실릴 예정이며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는 실렸습니다.



태그:#강골마을, #오봉산, #이용욱가옥, #이금재가옥, #소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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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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