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그는 '바보' 노무현과 참 많이 닮았다. 1990년 3당 합당 전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부산에서 연거푸  1985년(12대), 1988년(13대) 당선됐다. 하지만 김영삼이 노태우, 김종필과 함께 3당 합당을 하자 따라가지 않았다. 결과는 '줄줄이' 낙선이었다(사하구 보궐선거, 14대 총선, 15대 총선,16대 총선, 17대 총선, 부산시장선거, 19대 총선).

노무현만 '바보'가 아니라, 그도 바보였다. 그는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다. 김정길 전 장관이 30년 정치인생을 마무리했다. 김 전 장관은 5일 자신의 트위터이를 통해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 김정길트위터

관련사진보기


"이제 저는 정치를 떠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지역주의에 맞서 수없이 도전하고 좌절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긴 세월 정치적 소신 지킬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 여러분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김정길 올림"

지역주의 타파가 노무현 정치인생에 가장 큰 목적이었듯이 김정길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지역주의 철폐를 향한 일념은 김정길이 먼저 꾸었다. 1971년 부산대 총학생회장에 출마하면서부터 영호남 지역감정 철폐를 외쳤다. 당시 독재자 박정희는 지역주의를 적극 활용했다. 김정길은 이에 저항한 것이다. 김정길은 지역주의 철폐를 배신하지 않았다.

3당 합당 때 김영삼을 따라가지 않았다. 아마 김정길이 김영삼을 따라갔다면 국회의원 당선은 '따논당상'인지 모른다. 12대, 13대 때 통일민주당 원내수석부총무, 통일민주당 원내총무를 역임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 철폐를 배신하지 않은 그에게 부산은 당선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는 부산을 버리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인터넷 대통령'이란 별명이 있었다. 김정길 역시 행정자치부 장관 시절 누리집에 '장관과의 대화방'을 개설해 '국민과의 직접소통'을 처음 시도했다. 지금 각부처 누리집은 장관과 대화방이 있다. 김 전 장관이 첫발을 내딛은 결과다.

김대중 정부 때 행자부 장관을 했으니 노무현 정부 때는 더 높은 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2004년 4월 17대 총선때 다시 부산 영도로 내려갔다. 2004년 탄핵 열풍이 거세게 불던 때였다. 당선은 코앞에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당선자는 김정길이 아니라 김형오였다. 2000년 16대 때 노무현이 선거 전날까지 허태열을 여론조사에서 이겼지만 개표 결과는 허태열이 이겼던 것처럼. 부산 지역주의는 한 마디로 '콘크리트'였던 셈이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부산시장에 도전했다. 하지만 44.57%를 얻어 패배했고, 지난해 19대 총선 때는 부산 영도를 스스로 떠나 부산진구을에 출마해 40.7%를 얻어 패배했다. 7번째 낙선이다. 아마 영도에 출마했다면 20년 만에 금배지를 달았을 것이다.

바보 노무현은 그래도 대통령을 했다. 김정길은 끝없이 낙선했다. 하지만 그가 정치에서 패배했다고 보지 않는다. 바보 노무현처럼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30년 정치인생을 배신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트위터에서 이렇게 적었다. 같은 마음이다.

"아침 일찍 김정길 전 장관님이 전화하셨습니다.정치를 그만두시겠다구요.노무현 대통령 보다 더 바보처럼 지역주의에 맞서는 정치를 해왔는데....너무 큰 희생이었던 걸 잘 알기에 아무 말씀 못드렸습니다. 노대 통령에 대한 의리로 버텨오셨는데,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태그:#김정길, #정계은퇴, #노무현, #김영삼, #지역주의타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