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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릇파릇하게 잘 자란 모. 올 가을부터 내년 가을까지 우리 가족을 먹여살리 보배다.
 파릇파릇하게 잘 자란 모. 올 가을부터 내년 가을까지 우리 가족을 먹여살리 보배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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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4일 모판을 만들었습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눈꼽만큼 자랐던 모들이 파릇파릇 자라서 모내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토요일(25일)에 모내기를 하기 위해 모판에 있는 모를 논으로 옮겼습니다. 모내기는 현충일에 합니다.

아빠는 왜 모판상자 하나 밖에 못 들어요?

달랑 하나라고 생각하겠지만 물컹물컹하고, 어떤 때는 무릎까지 빠지는 무논에서 모판상자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달랑 하나라고 생각하겠지만 물컹물컹하고, 어떤 때는 무릎까지 빠지는 무논에서 모판상자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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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모판상자 하나, 큰 아빠도 하나. 모내기는 이렇게 공평하고, 평등하다
 아이들도 모판상자 하나, 큰 아빠도 하나. 모내기는 이렇게 공평하고, 평등하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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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은 갈수록 밥을 적게 먹지만, 사람은 그래도 '밥 힘'으로 삽니다. 파릇파릇 자란 모를 볼 때면 그곳에서 자란 쌀이 우리를 한 해 동안 먹여 살리는 보래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모판 상자를 옮기면서 고맙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이유입니다. 모판 상자를 옮기는 나를 본 막둥이가 묻습니다.

"아빠, 모내기하고 나면 언제쯤 쌀밥을 먹을 수 있어요?"
"응... 넉 달 달쯤!"
"넉 달?"
"한 120일쯤 걸려... 아마 10월 초쯤 되면 나락을 밸거야!"
"그럼, 그때 쌀밥을 먹을 수 있겠네요? 나는 새 쌀밥이 맛있어요."
"아빠도 햅쌀이 맛있어! 묵은 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지."
"아빠!"
"왜?"
"모판 상자가 무거워요?"
"아니, 왜?"
"왜, 하나밖에 안 들어요?"
"논은 많이 빠지니까? 좀 힘들어! 나중에는 3개도 들 수 있어."
"모판 상자 3개를 들면 아빠는 힘세다."
"아빠 힘세지?"

어릴 적에 모내기하면 최소한 어른 20명은 해야 합니다. 요즘은 3명 만 있으면 옛날보다 두 배는 더 많이 심습니다. 특히 이왕기가 워낙 좋아서 두 사람만 있어도 옛날 세 네 배는 더 심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까지 만해도 사람이 직접 비료를 뿌렸는데 요즘은 트랙터로 논갈이를 하면서 뿌립니다.

트랙터가 비료를 뿌리는 모습은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정말 편리해졌습니다. 900평이나 되는 논에 비료를 뿌리면 다리, 어깨, 팔이 나중에 어디 붙어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트랙터가 논갈이를 하면서 다 뿌리니, 농부 한 사람 손만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힘든 일까지 덜어줍니다. 물론 많은 사람이 함께 모내기할 때처럼 흥겨운 모습은 아닙니다.

"우리도 가을에는 햅쌀 먹을 수 있어요?"

트랙터 뒤에 달린 노란색 통 안에 비료가 들어있다. 옛날에는 사람이 직접 비료를 뿌렸지만 요즘은 트랙터로 뿌린다. 세상 참 좋아졌다.
 트랙터 뒤에 달린 노란색 통 안에 비료가 들어있다. 옛날에는 사람이 직접 비료를 뿌렸지만 요즘은 트랙터로 뿌린다. 세상 참 좋아졌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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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 뒤에 달린 노란색 통 안에 비료가 들어있다. 옛날에는 사람이 직접 비료를 뿌렸지만 요즘은 트랙터로 뿌린다. 세상 참 좋아졌다.
 트랙터 뒤에 달린 노란색 통 안에 비료가 들어있다. 옛날에는 사람이 직접 비료를 뿌렸지만 요즘은 트랙터로 뿌린다. 세상 참 좋아졌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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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도 우리 동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우리집 아이들입니다. 이네들이 모판상자 옮기에 나섰습니다. 이게 진짜 '생명살이' 공부입니다. 콘크리트 문화에 찌든 아이들이 흙을 밟고, 무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모판상자를 들어보고 무논에 들어가는 우리 아이들이 정말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들입니다. 콘크리트는 죽음이지만, 흙은 생명입니다. 모판상자를 직접 옮겨본 아이들이 밥이 얼마나 귀한 것이 압니다.

"아빠! 나 힘 세지?"
"와! 막둥이 정말 힘 세다. 아빠도 모판상자 하나밖에 들지 못했는데 막둥이도 한 상자를 들었네."
"아빠, 나도 햅쌀 먹을 자격 얻었어요."
"가을에 햅쌀 나면 막둥이 밥 두 그릇 먹어라."
"아빠, 나도 모판상자 들었어요."(큰아이)
"인헌이도 힘세네."
"당연하죠. 체헌이보다 세 살이 더 많은데."
"상자 안 무거워."
"하나쯤 괜찮아요."

아이들도 바지를 걷었다.
 아이들도 바지를 걷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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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판상자를 옮기는 막둥이 모습. 나중에 농부가 되어도 될 것 같다. 막둥이 힘내라
 모판상자를 옮기는 막둥이 모습. 나중에 농부가 되어도 될 것 같다. 막둥이 힘내라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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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하는 데 나라고 못할 것 같나. 큰 아이가 모판상자를 들었다. 하지만 폼이 왠지 막둥이보다 못하다. 농부 체질은 아닌 것 같다
 동생이 하는 데 나라고 못할 것 같나. 큰 아이가 모판상자를 들었다. 하지만 폼이 왠지 막둥이보다 못하다. 농부 체질은 아닌 것 같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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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만히 보면 막둥이는 제법 농부 모습이 보이지만, 큰 아이는 농부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중에 막둥이가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당연히 환영합니다. 콘크리트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생명인 흙을 밟고 살아가는 막둥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물론 막둥이가 농사를 짓겠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모판상자를 옮기는 손주들 모습을 본 어머니는 흐뭇합니다.

"모판상자 옮기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할머니 우리들 힘세죠."
"하모. 힘세다. 올가실(올 가을)에 타작하면 쌀밥 많이 먹어라."
"우리가 모판상자를 옮겼으니까. 쌀밥 많이 먹을 거예요."
"그래도 조심해라. 내가 힘에 조금이라도 있으면 모판상자를 옮길 수 있는데."
"할머니는 이제 푹 쉬세요. 우리가 할 수 있어요."

어머니는 얼마 전 버스에서 굴러 허리를 다쳤습니다. 비록 오진이었지만, 폐암 선고까지 받았던 어머니는 더 이상 자신이 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아쉬운 듯해 보입니다. 젊었을 때 일초도 엉덩이를 방바닥에 붙이지 않았던 어머니입니다. 쇠약해진 몸이 되어서야 쉴 수 있습니다.

우리집 삽질은 MB삽질과 달라요

물꼬를 막기 위해 삽질을 하고 있다. 물꼬를 터거나 막을 때 하는 삽질을 생명삽질이다. 4대강을 죽이는 MB삽질과는 전혀 다른 삽질인 셈이다.
 물꼬를 막기 위해 삽질을 하고 있다. 물꼬를 터거나 막을 때 하는 삽질을 생명삽질이다. 4대강을 죽이는 MB삽질과는 전혀 다른 삽질인 셈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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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가장 재미있고, 웃음을 자아냈던 일은 '삽질'이었습니다. 윗논에서 아랫논으로 물이 많은 흘러내려와 윗논에 물이 줄어들었습니다. 물꼬를 막아야 했습니다. 삽질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발이 삽에서 자꾸 미끄러집니다.

삽질을 하다 보니 갑자기 이명박 전 대통령 4대강 삽질이 생각났습니다. MB삽질은 4대강 죽이기였는데 우리집 삽질은 생명 삽질입니다. 삽질도 삽질 나름입니다. 물꼬를 트고 막는 삽질은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야 함을 보여줍니다. 아빠 따라 강남 간다고 막둥이가 삽질을 합니다. 삽질 모습이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막둥이는 물꼬 트는 삽질을 통해 생명의 귀함을 몸으로 체득했습니다. 온 나라에 생명삽질만 있고, 올해도 풍년이 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막둥이가 삽질을 하고 있다. 막둥이는 안다. 자기가 하는 삽질은 4대강을 죽인 'MB삽질'과 다르다는 사실을. 삽질하는 모습은 그럭저럭 괜찮다.
 막둥이가 삽질을 하고 있다. 막둥이는 안다. 자기가 하는 삽질은 4대강을 죽인 'MB삽질'과 다르다는 사실을. 삽질하는 모습은 그럭저럭 괜찮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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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내기, #삽질, #모판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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