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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버지입니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아들이었지만 지금은 1남1녀의 아버지입니다. 대개 그렇겠지만 저는 '아버지는 처음부터 아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아버지의 흰머리와 주름은 처음부터 있었고, 또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2002년 5월 어느날, 제가 경험한 '문화적 충격'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착각을 깨달았습니다. 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독백

 박재동의 <아버지의 일기장>
 박재동의 <아버지의 일기장>
ⓒ 돌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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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어떤 날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누구의 생일이었거나,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가족이 다같이 식사하는 자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날 우리 다섯 남매가 부모님 집에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다섯 남매와 그에 속한 일가가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니 시끄럽고 번잡했습니다. 그때도 아버지의 자리는 거실에 놓인 쇼파였습니다. 10여년 전에 겪은 교통사고 탓에 아버지의 건강은 좋지 못했고 그 즈음에는 집보다 병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날도 아버지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방에 편히 계시라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아버지는 거실로 나오셨습니다. 아들과 딸, 그리고 며느리와 사위가 밥 먹는 곁에 있고 싶다며 아버지는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요. 제 뒤의 쇼파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시는 웅얼거림이 제 귀에 들어왔습니다. 무심결에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 뭐 필요하신 것 있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힘이 부친 듯 고개를 숙인 채 다시 뭐라고 웅얼거리셨습니다. 하지만 왁자지껄한 분위기 탓에 아버지의 웅얼거림은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아버지 쪽으로 몸을 기울여 재차 "네? 아버지, 뭐라고요?"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내가 이렇게 늙을 줄 몰랐다고...."

그러부터 약 석달 뒤 인 2002년 8월 1일 아버지는 67년간의 일기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릴 적 참 크게 느껴졌던 아버지. 아프셨지만 그냥 그런 모습으로 마냥 저와 같이 계실 것이라 믿었던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그날 '진짜로' 떠났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이미 숨결을 잃은 아버지의 이마에 울며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날, 다섯 남매 중 유일하게 들은 아버지의 독백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늙을 줄 몰랐다"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슬픈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랬습니다. 왜 아버지에게도 젊음이 있었다는 걸 저는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아버지가 말하는 모든 것이 다 틀렸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인 저를 걱정하며 '불의에 대한 침묵'을 강요했을 때 비겁하다고 거침없이 반발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저는 아버지와 대립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운동권 아들인 저는 이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처럼 화해(전두환의 평생 동지였던 아버지, 사랑합니다)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든든한 지지자가 됐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처음 맞은 기일.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나누던 중 아내는 제가 모르는 일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고도 인권단체와 재야단체 등 돈벌이와 상관없는 일만 하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몰래 생활비를 주곤 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오히려 며느리에게 "늘 미안하고 또 고맙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상만이가 돈을 못 벌어와 네가 힘들지? 그래도 네가 좀 이해하고 도와주렴. 사실 나는 상만이가 결혼도 못 하고 직장도 못 다닐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학교 제적당하고 감옥까지 다녀왔으니 그런 남자와 누가 결혼해 줄까 싶어 속으로 많이 걱정했거든. 그런데 너처럼 좋은 사람을 짝으로 만났으니, 나는 네가 참 고맙다. 앞으로 살면서 힘들면 내가 몰래 몰래 도와줄 테니 상만이에게는 말하지 말고 네가 참고 잘 살아주렴."

우리 시대 '아버지의 일기장'

유명한 시사만화가인 박재동 선생이 펴낸 책 <아버지의 일기장>(돌베개)의 책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쓴 분은 박재동 선생의 아버지 박일호 선생님이지만 그 책에는 제 아버지의 시간도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1929년생인 저자 박일호 선생님과 1934년생 제 아버지가 함께 거쳐 온 시간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역사'를 엿봤습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일기는 1971년 4월 5일부터 시작됩니다. 식목일을 맞아 "마음속 나무를 심 듯 삶의 기록을 심겠다"는 박일호 선생님의 일기는 1989년 5월 27일까지 이어집니다. 이 18년에 걸친 기록에서 박일호 선생님은 한 인간이면서 두 아들의 아버지, 그리고 한 여인의 남편인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제 아버지 역시 그랬을지 모릅니다. 일기를 처음 쓸 때 만화가게 주인이었지만 박일호 선생님의 원래 직업은 교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일호 선생님은 글쓰기가 익숙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 아버지는 배움이 필요했던 시기에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3살에 어머니를 잃은 후 계모의 구박을 받으며 성장한 아버지는 끼니도 잘 채우지 못한 설움을 종종 토로하곤 했습니다. 제가 본 아버지 글씨는 고작 삐뚤빼뚤하게 '그려진' 누군가의 이름 석자와 전화번호가 전부였습니다.

만약 아버지도 글을 쓸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버지의 일기장>은 그래서 더욱 제 아버지 일기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저는 1970년생입니다. <아버지의 일기장>은 그 즈음부터 시작돼 제가 대학에 입학한 1989년까지의 세상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책을 통해 아버지와 함께 한 기억을 떠올린 건 당연합니다.

1980년대 초반 초등학교 운동회 때 아버지가 '전기구이 치킨'을 사가지고 나타난 일,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내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용돈까지 줬던 기억, 구두솔로 털을 털어낸 후 내게 복숭아를 건넨 어느해 여름의 '달콤한 기억' 등이 그것입니다.

시간은 흘러갑니다. 박일호 선생님 역시 1989년 5월 27일의 일기를 끝으로 더는 기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부기가 너무 심해서 점포에 나가지도 못했다. 마침 수동이 식구가 와서 도움이 됐다. 빙수를 많이 갈아 매상이 올랐다. 수동이가 오는 길에 수박을 사와서 복수가 찬 몸이지만 몇 쪽 맛있게 먹었다. 방조가 벌집을 가지고 와서 삶아두었다. 그리고 제수씨가 직접 채취한 아카시아 꿀을 갖고 왔다. 언제나 나를 위해 성의를 베푸는 제수씨께 감사한다."

1989년 6월 18일, 박일호 선생님은 긴 투병생활 끝에 마지막 숨결을 내려 놓습니다. 그리고 18년 동안 '마음속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 듯' 일기를 쓰신 박일호 선생님은 "감사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기록했습니다.

"아아. 지금이라면 그대로 자주자주 전화라도 드릴 수 있겠는데 그땐 왜 그리 쑥스러웠던지요. 전화를 자주 드렸다면 아버지도 자상하게, 기쁘게 이야기를 하셨을 텐데, 그걸 그때의 저는 몰랐습니다."

<한겨레>에서 그림을 그리던 중 아버지의 위독 소식을 들은 아들 박재동 선생은 택시를 대절해 급히 울산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박일호 선생님은 아들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그 아들이 이십 몇년 만에 아버지의 일기를 책으로 엮은 후 아버지에게 바친 이 '회한'의 글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칩니다.

입밖으로 살갑게 표현하지 못하고 일기장에 "감사한다"는 마지막 말을 기록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생전 살갑게 대하지 못한 그 아들의 '뒤늦은 반성'은 지금도 계속 반복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일 겁니다.

'다시'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잃은 지 올해로 11년입니다. 그 11년 동안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어려운 일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 남 몰래 흔들린 적도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품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 아버지처럼 제가 지켜줘야 하는 1남1녀가 있습니다. 저 역시 제 아이들에게 든든한 아버지로 서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그리운 분들에게 이 책 <아버지의 일기장>을 권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아버지와 함께했던 잔잔한 기억을 음미해 보십시오. 저도 오늘은 아버지를 그리워하겠습니다. 마흔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 '다시'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이 세상 모든 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덧붙이는 글 | <아버지의 일기장>(박일호 일기. 박재동 엮음 | 돌베개 | 2013.05. |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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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