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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국가에 있어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법률의 제·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지난 1년 동안 발의한 법안 4622건 중 295건만 가결됐다. 철회·폐기된 것을 제외한 나머지 3869건 중 상당수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이들 중에서 "제법이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실생활 속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거나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제대로 된’ 법안들을 찾아내서 생생한 현장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박창식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의 등록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지원법'을 발의했다.
 박창식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고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의 등록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의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지원법'을 발의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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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과거 프로듀서(PD)를 할 때 스태프(제작진)나 단역 연기자들한테 200원어치 일을 시키고 50원을 준 적이 있어요. 그들에겐 제가 갑이었죠. 돈을 더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저는 방송사와의 관계에서 을이었습니다. 참 안타까웠죠."


박창식 새누리당 의원의 고백이다. "왜 연예계와 방송업계 종사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법을 내놓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나온 답이다. 박 의원은 1980~1990년대 MBC와 SBS에서 PD 생활을 했다. 김종학 감독과 함께 <모래시계>를 만들었다. 2009년부터 3년 동안 외주제작사인 김종학프로덕션의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태왕사신기>, <베토벤 바이러스>, <하얀 거탑> 등이 이 때 만들어졌다.

국회에서 드라마 제작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박창식 의원은 지난해 8월 연계기획사 등록제와 표준계약서 제정 근거를 담은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냈다. 연예기획사 등록제는 연예지망생이나 연예인들을 기획사의 횡포로부터 막아주는 안전장치다. 이 법이 '장자연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법안은 9개월동안 표류하고 있다. 해당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왜일까? 방송사의 반대가 크기 때문이다. 법안은 표준계약서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표준계약서가 마련되면,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간의 공정한 수익 배분이 가능해진다. 연기자·제작진의 처우 개선도 이뤄진다. 하지만 방송업계 '슈퍼갑'인 방송사는 반대하고 있다. 앞으로도  법안 통과에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는 "연말까지 통과시키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달 2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박창식 의원을 만났다. 

"외주제작사 제작진 혹사... 외국이면 방송사는 구속감"

박창식 의원은 기자와 마주 앉은 뒤 "현업에서 방송 드라마 현장 PD로 일했기 때문에, 현장의 아픔을 잘 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인정 받고 좋은 대우를 받아야할 제작진과 연기자들, 그리고 케이팝 스타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담아야할 그릇인 좋은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작진의 아픔에 대해 얘기했다. 박 의원은 "어디 가서 영화 <광해>나 가수 소녀시대의 제작진이라고 얘기하면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라면서 "(A급이 아닌) 많은 연기자들과 제작진은 월급이 적은 비정규직 신분이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한다,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못 데려간다, 제작진의 80%가 겪고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쪽대본, 밤샘촬영, 안전사고를 촉발하는 제작 환경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밤 10시에 시작하는 드라마인데, 10분 전에 방송 테이프를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밤샘 촬영을 할 수밖에 없고 24시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체제"라며 "그만큼 후진적인 방송환경이다, 외주제작사 제작진이 너무 혹사를 당한다, 외국 사례에 비춰보면 방송사는 구속감"이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열악한 제작 환경과 그에 따른 연기자·제작진에 대한 나쁜 처우는 부족한 제작비 탓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와 계약할 때, 충분한 제작비를 주지 않는다, 제작진이나 단역 연기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나도 현장에서 200원 어치 일을 시키고 50원만 줬다, 돈을 더 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방송사가 갑이고 나는 을이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하려는 것이 표준계약서다. 박 의원이 낸 법안에는 표준계약서 제정 근거가 담겨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표준계약서를 만들고 있다. 표준계약서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간의 '방송프로그램 제작 표준계약서', 외주제작사와 출연자 간의 '방송출연 표준계약서'로 나뉜다. 박 의원은 "두 가지 표준계약서를 통해 방송사-외주제작사-출연자 관계를 공정하게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제작 표준계약서의 주 내용은 방송프로그램의 저작권 문제다. '뜨거운 감자'다. 표준계약서에는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저작권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까지는 방송사가 저작권을 소유했다. 해외 판권 판매 등 부가적인 수익을 모두 방송사가 챙겼다. 출연 표준계약서에는 15일 내 출연료 지급, 최대촬영시간 제한, 휴식시설 제공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는 "갑을 관계가 극심한 방송업계의 관행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만만치 않은 방송사의 반대... "외주사도 전화비를 내야할 것 아니냐"

방송사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지난 2일 박창식 의원과 문화부가 공동 개최한 대중문화예술분야 법제도 개선 공청회에 방송사는 불참했다. 지상파 방송사를 대변하는 한국방송협회는 표준계약서에 대해 "외주제작사에 유리한 계약 체결 강요를 통한 '외주제작사의 몸집 불리기'를 시도하고 있다"면서 여러 차례 비판 성명을 냈다. 외주제작사 대표를 지낸 박 의원의 이력을 꼬집으며 '외주제작사 편들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창식 의원은 이에 대해 "송출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사는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에 따라 외주제작사는 방송사가 하자는 대로 계약할 수밖에 없다"며 "외주제작사도 최소한 사무실 운영비, 전기세, 전화비를 낼 수 있을 정도의 경상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맞받았다.

그는 "표준계약서 내용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가 각각 3만 원과 2만 원을 투자해 5만 원짜리 방송을 만들 경우 투자한 비율 대로 수익을 배분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1000건의 계약이 모두 다르다, 대부분 방송사에 유리하게 돼있다"면서 "방송사 말대로 표준계약서가 공정거래에 어긋나는지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을 구하면 된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방송사가 무조건 잘못했고, 외주제작사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외주제작사가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공청회 같은 자리에서 자유롭게 토론해보자, 방송사는 표준계약서가 제정되면 손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윈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연예기획사 등록제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장자연 사건'과 같은 일은 잊을 만 하면 튀어나온다, 알려지지 않은 게 얼마나 많겠느냐"면서 "명함 하나 파고 오피스텔 하나 구해서 길거리에서 '괜찮은 친구 하나만 잡히면 팔자를 펼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길거리 캐스팅에 나선다, 등록제를 통해 무분별하게 생겨나는 기획사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가 싸우는 사이, 국내 시장에는 미국 드라마가 판칠 것이고, 한류(韓流)의 한은 '차가울 한(寒)'이 될 것"이라며 "다른 의원들의 지지를 얻어 연말까지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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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창식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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