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화순군 도암면에 위치한 '운주사'를 소재로 한 노래 <운주사>를 부르는 스님가수 도성스님
 화순군 도암면에 위치한 '운주사'를 소재로 한 노래 <운주사>를 부르는 스님가수 도성스님
ⓒ 도성스님 제공

관련사진보기


해마다 5월 전남 화순군 화순읍 한복판에서 소년소녀 가장을 돕기 위한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초대가수만도 20여 명.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는 큰 규모의 음악회다.

산사음악회는 화순읍 이십곡리의 작은 절집 천지사 도성스님이 열고 있다. 도성스님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하는 불자이자 <운주사>를 노래하는 가수다. 노래 <운주사>는 대중가요다. 도성스님은 대중가요를 주로 노래하는 '스님가수'다.

산사음악회는 불교와의 거리감을 없애기 위한 대중포교를 위한 노력이며 음악을 통해 중생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공양이다. 또한 그를 스님가수의 길로 이끌어준 인연이다.

신안 압해도가 고향인 도성스님이 불가에 귀의한 것은 19년 전이다. 중학교에 다니던 중 부친을 여의면서 공허해진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시작된 방황의 끝에서, 어느 사찰에서 예불을 올리며 흘러나오는 염불 소리에 끌려 홀린 듯 귀의하게 됐다.

갑작스러운 부친의 죽음에 공허해진 마음은 가출 등으로 이어졌고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낙인 찍혔다. 학업을 잇기 위해 부친의 고향인 압해도로 가서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고교 졸업 후에는 뒷날 기아자동차에 인수된 아세아자동차공업의 하청업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남부러울 것 없이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30여억 원에 달하는 부도를 맞으면서 한순간에 빈털터리가 됐고 원하지 않던 곳에서 많이 아프고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어머니의 출가... 방황의 끝에서 출가 결심

지난 5월 중순경 열린 천지사 제4회 독거노인 및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산사음악회. 갈수록 규모가 커지면서 버겁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이들이 늘면서 행복하다.
 지난 5월 중순경 열린 천지사 제4회 독거노인 및 소년소녀 가장을 위한 산사음악회. 갈수록 규모가 커지면서 버겁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이들이 늘면서 행복하다.
ⓒ 박미경

관련사진보기


그러다가 어머니의 출가를 알게 됐다. 자식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출가한 어머니. 10여 년 넘게 홀로 자식들을 키우면서도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았던 어머니를 속세에서 등지게 한 것이 내 탓인 양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가 몸담은 불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대해, 불교에 대해 알기 위해 미친 듯이 전국 곳곳의 절집들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강원도 산골 어느 절집에서 예불소리를 들었다. 가슴 깊숙한 곳을 울리며 노래가락처럼 들려오는 그 소리는 지친 그를 어루만져줬다.

그 길로 어머니가 계를 받은 전라북도 남원 운봉의 절집으로 달려가 불교에 귀의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지금은 열반한 도정스님으로부터 계를 받았다. 어머니 선정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못했다.

1년간 행자생활을 마친 후 광주 양동시장 인근에서 다른 곳으로 절집을 옮기려던 어머니 선정스님과 함께 새로운 절터를 찾았다. 선정스님은 꿈에 수없이 많은 커다란 물고기들이 뛰노는 자리가 보였다며 그 자리에 절집을 짓기 원하셨다. 어렵게 찾아낸 자리가 지금의 천지사 자리다.

도성스님은 예불에서 불교의 경전을 낭송하는 염불승이다. 출가를 결심하던 당시 가슴을 울렸던 그런 소리로 음성공양을 하고 싶어 택한 길이었다. 절집을 가득 채우는 그의 염불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나오는 묘한 흡인력이 있다.

노래하는 스님가수 도성... 어려운 이웃 위한 산사음악회

5월 중순 화순에서 열린 산사음악회에서 <운주사>를 노래하는 도성스님. 이날 1500여 명의 관객이 함께했다.
 5월 중순 화순에서 열린 산사음악회에서 <운주사>를 노래하는 도성스님. 이날 1500여 명의 관객이 함께했다.
ⓒ 박미경

관련사진보기


염불승으로 여기저기 절집을 다니며 예불을 올리다가 중생들과의 대중적인 소통을 위해 산사음악회를 열게 됐다. 그 인연이 이어져 <운주사>를 노래하는 스님가수가 됐다.

첫 산사음악회를 열고 얼마 후 김기범 작곡가의 사무실에서 노래 <운주사>를 만났다. 도성스님의 속명이 '박운주'인데다 운주사는 그가 속한 문중이 시제를 올리는 절집이었고 화순에 있었다. 범상치 않은 인연으로 여겨졌다.

김기범 작곡가에게 청해 노래 <운주사>를 받고 내친 김에 음반까지 낸 후 전북 고창의 어느 면민의 날 행사에서 '가수'로서 첫 무대에 섰다. 그 후 알음알음 소개를 통해 이런저런 무대에 서면서 가수로 이름을 알렸고 노인복지시설 등에서 노래봉사도 하게 됐다.

함께 노래봉사를 하는 이들이 참여하면서 산사음악회도 더 다채롭고 풍성해졌다. 규모도 갈수록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지면서 때로는 스님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그가 여는 산사음악회를 기다리고 즐거워하며 고마워하는 이들이 있어 기쁘게 음악회를 준비한다.

도성스님은 그가 노래하는 스님가수가 된 것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노래가락 같은 염불 소리에 끌려 스님이 되었고, 대중포교를 위해 산사음악회를 열게 됐고, <운주사>라는 노래를 받게 됐고, 가수가 됐다. 가수가 되어 얻은 수입은 산사음악회와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인다.

예불을 올리며 염불을 하든, 무대에 올라 찬불가를 부르든, 대중가요를 부르든 그는 스님이다. 그리고 가수다. 그의 염불소리와 노래소리를 듣고 단 한 명의 중생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찾고 위로받았다면 그는 만족한다.

도성스님은 그가 가진 재능을 통해 보다 많은 중생들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친숙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 그가 불제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가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도록 무대로 불러주는 이들에게 늘 감사하며 지금도 어느 곳에서 음성공양을 올리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선정스님, #천지사, #도성스님, #운주사, #산사음악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어떤 사항에 대해 알리고 정보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고 글로 남겨 같이 나누고싶어 글 올립니다. 아직 딱히 자신있는 분야는 없지만 솔직하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