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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봄옷은 바깥구경을 며칠 못하고 옷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차가워지기도 합니다. 지난겨울 유난히 혹독했던 추위는 빙하가 녹아 해수온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기후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지금 기후변화는 남태평양에 잠기는 섬과 얼음 위를 위태롭게 걷는 북극곰으로 상징됩니다. 과연 그뿐일까요? <오마이뉴스>는 기후변화행동연구소와 함께 통계수치나 외국사례에서 벗어나 '우리의 기후변화'를 찾아보려 합니다. '굿바이 사계절'은 다른 세계에 살게 될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에너지 자립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시도하며 살아가고 있는 허윤석, 최복인 부부와 딸들이 "남들 보기에만 불편해 보일 뿐 과정 자체는 재미있고 즐겁다"며 자랑했다.
허윤석씨 가족은 직접 만든 풍력발전기와 에너지관리공단의 지원으로 설치한 태양광발전기로 전기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에너지 자립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시도하며 살아가고 있는 허윤석, 최복인 부부와 딸들이 "남들 보기에만 불편해 보일 뿐 과정 자체는 재미있고 즐겁다"며 자랑했다. 허윤석씨 가족은 직접 만든 풍력발전기와 에너지관리공단의 지원으로 설치한 태양광발전기로 전기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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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OOO번지. 주변에 인가는 없었다. 좁은 비포장길이 보였지만, 그 앞은 수풀이 무성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뵙기로 한 <오마이뉴스> 기자인데요. 알려주신 주소로 왔는데, 집이 보이질 않네요?"
"도로 옆에 난 길 보셨어요? 그쪽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의아해하며 풀과 나무만 보이던 길로 들어선 직후, 멀리서 '살림'이란 두 글자가 쓰인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허윤석(49)씨가 직접 만든 풍력발전기였다. 집 옆에는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베란다창이 잔뜩 놓여 있었다. 건축 설비 일을 하는 허씨가 현장에서 주워온 물건이었다. 그는 "집 바깥쪽을 유리창으로 빙 둘러싸서 단열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는 저술가 콜린 베번은 2006년 8월, '노 임팩트맨(No impactman)'이란 1년짜리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15일 오후 만난 허윤석씨 가족도 한국의 '노 임팩트맨'들이었다.

허씨의 안내를 받아 '부엌'으로 들어갔다. 감귤창고를 개조해 만든 그곳에서 부인 최복인(43)씨가 무언가를 다듬고 있었다. 가족들의 군것질거리로 직접 심은 땅콩이었다. 최씨는 땅콩뿐 아니라 참기름용 깨와 된장을 만드는 메주콩, 쌈야채, 딸기 등 가족이 먹는 음식의 대부분을 직접 기르고 있다. 종류만 50여 종에 달한다.

4·3사건으로 마을이 사라진 선흘리, 이곳에 부부가 아들(20)과 큰딸(18), 막내딸(16)과 함께 터를 잡은 것은 2007년 일이다. 최복인씨는 어느 날 문득 '내가 하는 일은 물 쓰고, 전기 쓰고… 소비하는 것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산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 최씨는 남편에게 흙과 가까이 살자고 제안했다. 흔쾌히 응한 허씨는 자신의 특기를 발휘했다. 바로 '재활용'이다.

LPG통은 난로, 전선 감았던 나무판은 탁자로 변신

허윤석, 최복인 부부가 택시에 달려있던 액화천연가스(LPG) 연료통을 재활용하여 제작한 난로 겸 오븐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재활용으로 생활물품을, 농사로 식재료를 충당하며 '쓰는 삶'에서 '만드는 삶'으로 살아가고 있다.
 허윤석, 최복인 부부가 택시에 달려있던 액화천연가스(LPG) 연료통을 재활용하여 제작한 난로 겸 오븐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재활용으로 생활물품을, 농사로 식재료를 충당하며 '쓰는 삶'에서 '만드는 삶'으로 살아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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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석씨가 전선이 감겨져 있던 나무판 가져다가 만든 원형 탁자를 보여주며 재활용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허윤석씨가 전선이 감겨져 있던 나무판 가져다가 만든 원형 탁자를 보여주며 재활용의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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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 과수원에서 방풍림으로 쓰던, 삼나무 자른 것을 바닥재로 썼어요. 냉장고는 애월읍에 살 때부터 썼고, 그 옆에 있는 업소용 음료수 냉장고는 처형이 마트하다가 청산해서 가져왔어요. 이 탁자는 전선 감겨져 있는 큰 나무판, 그 윗부분을 떼어서 만들었죠."

그는 현장에서 쓰고 남거나 재활용할 수 있는 자재들로 버려진 감귤창고를 부엌으로 만들었다. 또 컨테이너 박스 두 개를 연결해 거실과 방 두 개가 있는 집으로 변신시켰다. 허씨는 "다 직접 만들 수는 없고, 전선 같은 것은 돈을 주고 샀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품 종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가구, 물품은 모두 '재활용맨'의 손끝에서 새로 태어났다. 부엌에 있는 탁자는 학교에서 버린 책꽂이였고, 난로 겸 오븐은 택시에 달려있던 액화천연가스(LPG) 연료통이었다.

"현재 시스템은 자원을 발굴하고, 그걸로 공장에서 원재료를 가공하면서 계속 자원 없애기를 반복했죠. 그 결과 여러 (환경)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았나요? 그걸 줄이는 길이 기존 자재를 재사용하는 것이에요. 그것도 재가공보다는 있는 그대로. 현장에서 일하다가 쓸 만하면 (집에) 갖다 놓습니다."

"이전에는 공간 제약이 있어서 이만큼은 아니었는데, 여기는 지금 고물상이에요." '원래 남편이 재활용품을 많이 가져왔냐'는 질문에 최복인씨가 웃으며 답했다. 그렇다고 부부가 하루아침에 '친환경적으로 살아보자'며 변한 것은 아니다. 선흘리에 오기 전부터 부인은 제주환경운동연합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했고, 남편은 교육이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허윤석씨는 "아무래도 늘 그런 문제들을 고민했던 일이 (생활을 바꾸게 된) 근원 같다"고 말했다.

재활용으로 생활물품을, 농사로 식재료를 충당하며 '쓰는 삶'에서 '만드는 삶'으로 나아가는 이들 가족에게도 어려운 과제는 있다. 에너지다. 허윤석씨는 풍력발전기와 자전거발전기를 직접 만들었다. 자전거 틀이나 풍력발전기 뼈대로 쓴 금속자재 등은 재활용으로 해결했지만, 구하기 어려운 배터리 등을 구입하느라 총 제작비용으로 500만 원가량 들어갔다. 10년 전 에너지관리공단 등의 지원을 받아 설치했던 태양광발전기도 아직 쓰고 있다.

"풍력·자전거발전기 직접 만들었지만... 아직 경제성이 없다"

허윤석씨가 에너지 자립을 위해 손수 만든 자전거발전기를 보여주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허윤석씨가 에너지 자립을 위해 손수 만든 자전거발전기를 보여주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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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09년 9월 막내딸의 열두 번째 생일날 밤을 화려하게 밝혔던 자전거발전기는 이제 부엌 한쪽에서 쉬고 있다. 수명이 15년 정도인 태양광발전기의 효율은 많이 떨어졌다. 풍력발전기는 끼이익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지만, 가족들은 한국전력공사에서 만들어낸 전기를 쓴다. "한전 전기가 딱 끊어진다면, (두 발전기는 전력 공급에 있어) 훌륭하다"면서도 허윤석씨는 에너지 자립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풍력발전기로 생활한 시간도 1년이 채 못 됐다. 허씨는 "바람이 불면 풍력발전으로 (전기공급원이) 전환되도록 설계했는데 자꾸 컴퓨터가 끊기는 등 불편한 점들이 많아지니까 점점 안 쓰게 됐다"고 말했다. 배터리 문제도 있었다. 그가 풍력발전기에 쓴 20만 원짜리 배터리는 몇 달 쓰면 망가지곤 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값은 1000만 원에 달했다.

"전기자동차용 배터리로 1킬로와트(kW) 발전기를 돌리면 100W짜리 전등 한 시간 정도 켤 수 있어요. (여러 면에서) 아직까진 경제성이 없습니다. 또 막상 '한전 전기를 쓰지 말자'고 해보니까 (발전기로 만든 전기는) 등 하나 켜면 끝이더군요. 전열기구도 못 쓰고. 제3세계 같은 삶을 살지 않는 한 무용지물이에요."

냉·난방 해결은 조금 쉬웠다. 기본은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다. 한때는 '수제 에어컨'을 이용했다. 2008년 허씨는 아들과 함께 집 바닥에 파이프를 깔아 서늘한 지하 공기가 실내로 들어오게 했다. 그러나 파이프 입구에 화장지를 갖다 대면 흔들리는 정도로 바람이 세진 않았다. 또 한라산 중산간지대인 선흘리의 여름은 무더운 편이 아니라 부채로도 더위를 견딜 수 있었다.

겨울도 보일러 없이 난다. 허윤석씨는 "우리 부부는 안고 자니까 참 따뜻하다"며 "이사 온 첫해 겨울은 추웠지만 이젠 적응했다"고 말했다. LPG통으로 만든 난로에 쓰는 땔감은 허씨가 현장에서 주어온 목재들을 이용하곤 했다. 최복인씨는 냉·난방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 적응하며 살다보니 "계절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너무 추워서 난로 때고, 철제 고추장 통 안에 양초를 넣어 데우고 의자처럼 위에 앉아 있었어요. 근데 그 다음해부터 (추위에) 적응돼서 (보온용 의자는) 안 썼어요. 또 땔감 준비하고, 고구마를 난로에 구워 먹으면서 지내니까 '우리가 겨울을 보냈지' 깨달아요."

불편해보여도 즐겁다는 가족... "자연스러움에, 직접 하는 일에 기쁨 있다"

허윤석, 최복인 부부는 자신들의 특기인 '재활용'으로 주택 내 방치된 옥상 물탱크를 수거해 지붕에 내리는 빗물을 모아 각종 과일과 야채를 재배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현재 시스템은 자원을 없애기만 반복하고 있다"며 "환경 문제를 위해 기존 자재를 재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윤석, 최복인 부부는 자신들의 특기인 '재활용'으로 주택 내 방치된 옥상 물탱크를 수거해 지붕에 내리는 빗물을 모아 각종 과일과 야채를 재배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현재 시스템은 자원을 없애기만 반복하고 있다"며 "환경 문제를 위해 기존 자재를 재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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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고 있다. 허씨는 "대부분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급자족은 어려운 일"이라며 "'뭘 하자, 하지 말자'는 심하게 말하면 억지스럽다"고 했다. "억지스러운 삶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두 도시를 떠날 수도 없지 않냐"고도 물었다. 그는 현장을 두루 다니는 일을 하기에 자동차와 휴대폰을 사용한다. 홈스쿨링을 할 때 외딴 목장에서 지냈던 아들에게도 휴대폰을 마련해줬다.

"친환경적 삶이요? 어휴, 그렇게 생각하면 참 어색하고 창피해요."

허씨는 고개를 저으며 "그냥 재미있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가장 편해서 이렇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삶의 기쁨을 느끼는, 제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는 정도만 해도 환경을 지킬 수 있지 않겠냐"고도 덧붙였다. 한때 채식주의자였던 부인 최씨도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보니 '채식주의자'보다는 자연스럽게 채식을 선호하는 게 (저한테) 맞았다"고 했다.

'재활용맨' 아빠와 '농사의 달인' 엄마, 홈스쿨링을 택한 아이들은 자연스러운 삶 속에서 '나와 너, 우리를 살리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 풍력발전기에 쓰인 두 글자, '살림'의 뜻이다. 최복인씨는 "발전기 제작을 물어온 사람들은 '우리가 쓸 만큼'이 아니라 세탁기, 냉장고 등 다 쓰면서 더 편리하게 살고 싶어 대체에너지에 관심을 보이더라"며 "그 얘기를 듣다보면 가르쳐주고픈 마음이 사라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장 큰 절약은 사실 안 쓰는 일인데, 사람들은 '더 편리한 삶'만 원하잖아요. (농사짓고, 재활용하는 일은) 불편해보이지만 우리는 재밌어요. 편리함만 쫓다가 진짜 기쁨을 놓쳐버리는 건 아닐까요?"


태그:#기후변화, #굿바이 사계절, #노임팩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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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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